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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음을 깨닫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대법 수련은 ‘진(眞), 선(善), 인(忍)’을 동시에 수련한다. 근 몇 년 이래의 수련상태를 총화하면 나는 자신이 “참음”에서의 수련이 아주 고생스럽고 아주 어려우며, 많은 고비에서 참지 못했다고 여긴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참음은 심성제고의 관건이다.”[1]를 실증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특히 ‘인(忍)’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데, 오직 ‘인(忍)’해야만 비로소 대덕지사(大德之士)로 수련할 수 있다. ‘인(忍)’은 아주 강한 것으로서 ‘진(眞)’과 ‘선(善)’을 넘어선 것이다. 수련의 전 과정에서 당신에게 ‘인(忍)’하라고 하며, 心性(씬씽)을 지키고 함부로 행동하지 말도록 한다.”[2]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하는 사람에 대해 말한다면 일반적으로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함은 가장 확실하며 적절하게 표현한 일 처리 방법이다.”[3]

예를 들어 말한다면, 누가 갑자기 삿대질 하면서 당신을 욕할 때 당신은 심정이 태연할 수 있는가? 또 예를 들겠다. 대중이 많이 모인 공개적인 장소에서 뺨을 얻어 맞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참겠는가? 바로 사존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당신들,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 몇이나 갑자기 어떤 사람이 삿대질하며 당신에게 욕할 때 심정이 담담할 수 있는가? 몇이나 다른 사람의 비평과 지적에 직면해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을 수 있는가? ”[4]

‘참음’은 확실히 아주 강한 물건으로서 실속 있게 하려면 아주 쉽지 않으며, 철저하게 하는데는 간고한 하나의 과정이 있다.

1. 초기에는 먼저 ‘꾹 참는 것’을 해내야 하는데 억지로 참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남에 대하여 또 인내하지 못하는데 그건 잘못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또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참으라고 하셨으니 나는 꾹 참겠다.’ 시간이 길어지면 당신은 아마 ‘사부님, 저는 참는 것이 너무나 괴롭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말하자면, 그것은 참음이 아니며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은 전혀 화가 나지 않으며 아무리 큰일에라도 모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데 무엇 때문에 참는 것이 괴롭단 말인가? 이래야만 수련하는 사람이다. 또 어떤 사람은 체면을 고려해서 참는데 이것은 모두 진정한 참음이 아니다. 하지만 수련을 했으니 당신은 잠시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당신은 그래도 정말로 참아야 한다.”[5]

나는 깨달았다. 초보 수련에서 모순 고비를 넘기는 중, 적어도 먼저 ‘꾹 참고’ 억지로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반드시 결심을 내리고 이를 악물며, 반격하지 말고 반박하지 말며,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설령 마음이 뒤집어지고 얼굴표정이 보기 싫고, 심지어 눈에 눈물이 고이더라도 한 마디도 하지 말고 멀쩡한 채로 버티어내야 한다. 욕망의 억제에서 이를테면 성욕, 색욕, 정욕, 식욕에서 그리고 각종 인이 박인 것을 마음을 굳게 먹고 그 욕망이나 사념에게 분명히 알려준다. 아무튼 난 너를 성공하지 못하게 할테다. 어쨌든 네가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게 하겠다. ‘너’는 내가 아니다, ‘너’는 나를 유혹할 수 없다. 나는 ‘너’를 제거하겠다!

실질상, 꾹참고 억지로 참는 것의 특징은 ‘마음을 움직여 참는 것’이다. 수련은 사람의 마음을 버리는 것이라 틀림없이 강렬하게 그 마음을 자극할 것이며, 그 마음은 괴로움을 당할 것이고, 각종 욕망의 유혹 중에서 그 마음은 난동을 부릴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인내심’을 해냈고 성질을 참았으며, 정서를 참았고 괴로움과 분통을 터뜨리지 않아 참지 못한 사실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면 이 역시 ‘참은 셈’이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 당신이 참아낼 수 있지만 마음속으로 내려놓지 못한다면 이 역시 안 된다”[6] 우리는 또 고층차에로 가야 한다.

2. 다시 수련인 표준에 부합되는 진인을 해내야 한다

중국 사회에는 이런 명언이 있다. “작은 일을 참지 못하면 큰일을 망칠 수 있다” 이는 속인의 교활한 참음이다. 지금은 속인 중에도 우스갯소리가 있다. “지구 사람과 놀지 말라” 역시 참음을 말한 것이다. 하지만 지구인이든 외계인이든 필경은 모두 사람이므로 여전히 사람의 참음인 것이다. 듣는 말에 따르면 대철학가 소크라테스는 일생에서 ‘한부’(悍婦)에게 장가들었는데 아주 사나웠다. 한 번은 이 한부가 또 으르렁 거리며 그를 욕했다. 소크라테스는 피해서 집문을 나섰다. 막 창문 밑에 이르니 갑자기 더러운 물이 그의 머리에 쏟아졌다. 이때 물에 빠진 닭 모양이 된 소크라테스는 도리어 유머적으로 말했다. “번개치고 우레 울더니 비가 억수로 퍼붓네.” 이는 성인의 참음으로서 층차도 낮지 않다. 우리나라에는 고대 고승 두 분인 한산(寒山)과 습득(拾得)의 한 단락 대화가 있다. 한산이 습득에게 물었다. “세간에는 나를 비방하고 나를 업신여기며, 나를 모욕하고 나를 비웃으며, 나를 비천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쩌면 좋을지요?” 습득이 대답했다. “그를 참아주고 그를 양보하고 그를 피하고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하고, 그를 인내하고 그를 상관하지 마시오, 몇 년이 지난 후 그가 어떤가를 보십시오.” 대화는 아주 정채롭다. 이상의 사례는 나에게 거울과 같은 의의가 있다. 하지만 대법제자의 정법수련 목표, 책임, 의의는 소도 상의 그런 수련인과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우리가 수련하는 것은 전체 우주이다.

진정으로 표준에 도달한 참음을 해내려면 우선 반드시 법 공부를 잘 해야 한다. 오직 대법만이 못해낼 것이 없는 것이다. 대법을 끊임없이 머릿속에 넣으면, 마음과 머리에 담기만 하면, 오직 대법 중에 용해되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 다 잘 할 수 있다.

가. 시시각각 우리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중대한 책임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만약 제대로 수련하지 못한다면 어찌 우리의 ‘서약’을 실현할 수 있겠는가? 어찌 우리 세계의 중생을 구도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기나긴 세월 속에서 줄곧 간절하게 기대하고 있다. 그들을 위해서라면 또 무슨 참을 수 없는 것이 있단 말인가!

나. 반드시 흉금의 용량을 확대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여러 번 우리에게 우주, 천체, 대궁의 구조와 호한을 얘기해 주셨는데 그건 우리더러 더 잘 수련하게 하고 우리에게 시야를 넓히고 흉금을 넓히어 용량을 증가해 주시기 위해서였다. 우리에게 이렇게 큰 법이 있는데 비하여 속인의 고만한 불공평에 불평이 있고, 풍자하고 비꼬며, 모욕 억울함은 다 무엇인가? 아무 것도 아니다! 작디작으며, 너무도 작은 것이다!

다. 일체 모순을 대하고 처리하는 기점을 ‘안으로 찾는데’ 놓아야 할 뿐만 아니라 완전히 안으로 찾아야 하고 무조건 안으로 찾아야 한다. 수련자가 부딪친 어떠한 일이든 그건 모두 우리더러 수련하라고 준 것이다. 당신에게 그런 마음이 있기에 비로소 그런 일이 나타난 것이며, 모두 사부님의 고심한 안배인 것이다. 이러면 우리는 점점 가경에 들어갈 수 있다. 비꼼이 오면 슬쩍 웃어주고, 타격이 오면 없는 듯 하며, 유혹이 오면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리 큰일이라도 모두 마음에 담지 않고 수련자 표준에 도달한 참음을 해 낸다.

3. 대법의 참음은 더욱 높은 층차의 내포임을 부단히 깨달아야 한다

대법의 ‘참음’에는 무한히 심원한 층차와 내포가 있다. 나는 지금 겨우 세 가지를 깨달았다.

가. 대법의 참음은 자비와 위엄이 동시에 존재한다. 정법시기 대법제자인 우리는 조사정법해야 하고 대법을 원용해야 한다. 대법은 자비와 위엄이 동시에 존재한다.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참음(忍)은 나약한 것이 아니지만, 온갖 수모를 다 참고 견뎌내는 것은 더욱 아니다. 대법제자의 참음은 고상한 것이다. 이는 생명이 위대하고 견고하여 꺾을 수 없는 금강부동(金剛不動)의 표현이고, 이는 진리를 견지하기 위한 관용(寬容)이며, 이는 아직도 인성(人性)이 있고 아직도 정념(正念)이 있는 생명에 대한 자비와 구원이다. 참음이란 이미 완전히 인성이 없고 정념(正念)이 없는 그런 사악한 생명의 무절제한 악행에 대한 무제한적인 방임이 절대 아니다. 참음이란 진리를 위하여 일체를 모두 버릴 수 있지만, 참음이란 이미 인성이 없고 정념(正念)이 없는 사악한 생명이 무법천지로 중생과 부동한 층차에서 대법(大法)의 존재를 패괴하는 것을 관용하는 것이 아니며, 살인방화를 방관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7] 우리가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그런 사악한 세력을 견결히 제거하는 것은 정념 공능으로 사악을 전멸하는 것이며, 인성이 없고 정념이 없는 사악한 생명더러 현세현보하게 하려는 것이다.

나. 대법의 참음은 아름다운 경지를 가져올 수 있다. 우리가 크게 참은 후면 “일거사득”[8]할 뿐만 아니라 또 비바람이 지난 후이면 만물이 청신하고 하늘이 맑게 개인 감각이 있을 것이며, 물아양망(物我兩忘)이 나타날 것이다. 일체 모두를 버릴 수 있고, 인간 세상의 일체는 작고도 작아 텅 빈 것 같은 경지일 것이다. 그건 정말로 아름다운 경지이다.

다. 대법의 참음은 위대하고 영원한 우주 의의를 깊게 이해했다. 우주의 근본 특성은 진, 선, 인이며, 오직 진, 선, 인의 특성을 충분히 구비해야만 원시물질, 원시 미립자 혹은 본원물질을 모이고 결합하고 함께 원용하여 부단히 발전시켜 만물을 형성하고 일체를 형성하며, 우주를 형성하는 것이다. 우주 일원, 하나의 성분, 하나의 미립으로서의 당신은 반드시 모두 진(真)이어야 하고, 물질로부터 특성에 이르기까지의 특성은 진진(真真)이어야 한다. 동시에 또 선이어야 하고 선에 이르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참고 양보하고 인내하고 포용하며 포납해야 하는데 이래야만 비로소 무사무아, 선타후아, 공생영존(共生永存) 할 수 있고 그들은 모두 우주 중의 가장 바른 생명이다. 그렇지 않다면 필연적으로 서로 배척하여 나중에는 해체되고 만다, 우주의 근본 대법 진, 선, 인은 우주의 영원한 특성을 구비했다. 그는 자동적으로 일체 정확하지 못한 상태를 바로 잡을 수 있고, 끊임없이 복원하면서 우주를 원용하여 우주로 하여금 금강불파, 성주불멸하여 영원히 항구하게 한다.

조그마한 깨달음으로서 틀린 곳은 수련생께서 지적해 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사부님저작:《전진요지》〈무엇이 참음인가〉

[2] 리훙쯔사부님저작:《파룬궁》〈제3장心性(씬씽) 수련〉

[3] 리훙쯔사부님저작:《미국동부법회설법》

[4] 리훙쯔사부님저작:《로스앤젤레스법회설법》

[5] 리훙쯔사부님저작:《휴스턴법회설법》

[6] 리훙쯔사부님저작:《전법륜》

[7] 리훙쯔사부님저작:《정진요지2》〈더는 참을 수 없다〉

[8] 리훙쯔사부님저작:《시드니법회설법》

문장발표 : 2014년 11월 29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1/29/3008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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