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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시련 속에서 걸어온 12년

글/ 산둥 대법제자 위칭(玉清)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부님의 불은호탕(浩蕩佛恩)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 속에서 어려움에 부딪치고 비바람을 맞으면서 12년을 걸어왔습니다. 저는 수련하면서 겪은 일과 부분적으로 체험한 내용을 사부님께 보고를 드리고 아울러 수련생과 교류하려고 합니다.

1. 장애를 돌파하고 대법을 얻다

2002년 한 대법수련생이 나에게 파룬궁(法輪功)을 소개하며 수련할 마음을 갖게 해줬다. ‘전법륜(轉法輪)’을 겨우 며칠간 보았을 뿐 아직 연공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여러 해 동안 나를 괴롭히고 곤혹하게 했던 신경쇠약, 불면증, 두통, 후두염 등등의 병이 신기하게도 나았으며, 그동안 그렇게 추악했던 사회적인 현상과 세상의 불공정한 세태에 대해 불공평하다고 여겼던 불평불만의 마음도 많이 차분해 졌다. 마치 큰 꿈에서 깨어난 듯 마음이 갑자기 밝아지는 것 같았다.

나 자신이 이렇듯 짧은 시간에 일어난 심신의 변화에 대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가 일단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운 이후에, 그가 인생 중에서 알고자 했고, 또한 해석하지 못했던, 많고 많은 문제를 그는 단번에 알게 되었다. 아마 그의 사상과 함께 승화할 것이며, 그의 심정은 대단히 격동될 것인즉, 이 한 점은 확실하다.”[1] 정말 그랬다. 심지어 천진하게도 ‘이상하다. 사부님께서 어떻게 나의 감수와 생각을 아실까?’라고 생각했다.

법 공부와 연공을 계속하니 심장병, 비염과 습관적으로 오던 감기 등등 모든 질병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깨끗이 사라졌다. 그 한 동안 나의 신체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으며, 마음도 갈수록 편안해졌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인생의 참뜻은 ‘반본귀진’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사상관념에 근본적인 전변이 발생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있어본 적 없이 행복했으므로 어떤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일체는 모두 그렇듯 신기하고 불가사의 했다. 그러나 그렇게 훌륭한 법을 얻은 것이 얼마나 운이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고 기뻐하고 있을 때 고난과 마난도 잇따라 왔다. 2002년은 바로 중공악당이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자에 대해 광적으로 탄압과 박해를 가장 혹심하게 가할 때였다. 당시 나의 수련상태는 우리집식구들이 보기에 의심할 바 없이 “바람을 맞받아 가는” 형국이었다. 나는 가족 중에서 가장 먼저 법을 얻은 사람이다. 그 전에는 파룬궁(法輪功)의 진상을 아는 사람이 없었으며, 안다는 것은 텔레비전방송과 신문 등 중국공산당(이하 중공) 악당의 언론에서 보고 들은 것뿐이었다. 파룬궁(法輪功)에 대해 조작과 모함으로 비방하여 세인들로 하여금 독해를 끼치게 하는 거짓 정보였던 것뿐이었다. 그때는 사람들이 파룬궁(法輪功)이란 이 세 글자를 언급하기만 해도 공포의 두려움을 느꼈던 시절이었다.

나는 처음 집에서 법 공부를 할 때는 공개적이었으므로 집안사람들을 피하지 않았다. 내가 책을 본 지 2일이 되던 날, 남편은 내 앞에서 낮은 목소리로 아주 엄숙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 어쩌자는 거야? 위(중공악당을 가리킴)에서 탄압이 그렇게 심한데 당신 아직도 이걸(轉法輪) 봐? 보면 안 돼 안 돼! 누가 줬어? 어서 돌려 줘!” 나는 그의 말에 개의치 않고 여전히 날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 책을 읽었다. 그 며칠 동안 남편이 비슷한 말과 태도를 보였으나, 내가 아무런 반응이나 변화를 보이지 않자, 주먹을 휘두르며 사납게 말했다. “보니, 당신은 내말을 듣지 않는구나! 당신이 또 책을 보면 내가 어떻게 당신을 혼내는지를 두고 봐! 내가 당신에게 (미리) 경고하지 않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좋은 법을 얻고도 미처 기뻐하지도 못했는데, 당신의 그 따위 행동에 내가 두려워 할 줄 아는가?’ 나는 그를 힐끗 한 번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없이책을 들고 다른 방으로 갔다. 그는 계속 귀찮게 굴면서 또 쫓아와서 으르렁거리는 것이었다. 나는 책을 덮고 조용히 말했다. “당신, 보세요, 이 여러 해 동안 당신은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오토바이를 좋아하고 또 유행에 따라 몇 년에 한 번씩은 새것으로 바꾸었지요. 당신의 그런 취미와 습관으로 가정환경을 오염시켰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건강을 해치게 하는 바람에 적지 않은 돈까지 써버렸지요. 나는 여러 번 당신에게 그런 것들을 끊으라고 권했어도 당신은 듣지 않았어요. 비록 그런 습관이 나쁘긴 해도 그건 당연히 당신의 권리고 또 자유에 해당됨으로, 나는 강하게 당신에게 강압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어째서 나는 안 되는가요? 하물며 이 책은 사람으로 하여금 심신을 건강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 혜택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또 어느 누구도 해치지 않는데도 말이어요. 이 가정에서 당신과 나는 마땅히 평등해야지요. 그렇지 않아요? 당신에게 알려줄게요. 이 책은 아주 훌륭해요. 모두 어떻게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으며, 다만 읽기만 해도 심신이 편안해져요. 믿기지 않으면 당신도 읽어봐요.”

그는 그 자리에 선 채 한 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자신이 도리에 어긋났다고 여겼는지 토라져가버렸다. 그랬지만 그는 결코 그것으로 그만두지 않았다. 그는 후에 나의 친정집 식구들을 불러왔다. 미혹 속에 있는 친정집 가족들 역시 혈육의 정에 이끌리고, 나의 안전을 생각해서 역시 적극적으로 나의 파룬궁수련을 반대했다. 언니는 더욱 심하게 말렸다. “너, 텔레비전에서 보도한 그 파룬궁을 보렴. 자살한 것, 스스로를 살인하는 분신자살하는 것 말이야. 그것은 주화입마 했기 때문인데 얼마나 무서우냐! 너는 가정이 있고, 애도 있는데, 그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당한다면 어떡할 거냐?” 나는 급하게 외쳤다. “언니, 언니는 모두 속았어요! 언니가 본 것과들은 것은 모두가 거짓이어요. 그건 모두 역겨운 중공사당(邪黨)이 파룬궁(法輪功)에 덮어씌운 모함이고 날조예요! 그걸 그대로 믿어요? 그런 언니를 탓할 수도 없겠지요. 나도 이전에는 텔레비전과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모두 사실인줄 알고 믿었었으니, 나는 ‘전법륜(轉法輪)’을 읽어본 다음에야 파룬궁(法輪功)이 얼마나 좋은지를 알게 됐어요, 책에서는 모두 사람을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했어요, 이 중공은 너무 나빠요. 파룬궁은 억울하게 모함을 당하고 있어요!”

그러자 오빠가 독단적으로 말했다. “연마하지 못한다! 연마해서는 안 된다! 공산당이 얼마나 사악한지 넌, 모르냐? 사실을 왜곡하고 거짓말을 만들어 내고. 군중을 미혹시키고 기만해서는 그것을 위해 소란을 피우게 하여, 그것들의 목적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이 몇 해 동안 그것들이 계속 자행해 온 일관적인 수단이었다. 이 사회에는 옳고 그름이 없고, 단지 적응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맞아, 그것은 사악한 깡패인데 너에게 무슨 방법이 있겠냐? 이 사회는 바로 그것들이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는데, 네가 그것을 건드려서 뭘 할 수 있겠냐? 너의 팔로 그것의 허벅지를 뒤틀 수 있느냐?”

솔직히 말해서 오빠의 이 말은 확실하고 분명했다. 이 몇 해 사이 중공통치하에서의 절대 다수 중국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었음에도 감히 말하지 못하는 그런 심리상태였던 것이다. 오빠는 문화혁명 전에 대학생신분이었으므로 중공의 역대 정치운동에서 박해를 당하는 타격을 입었다. 그러므로 중공깡패집단에 대해서는 나보다 요해하는 정도가 깊고 또 더욱 투철하다. 혈육의 정에서 나오는 심정으로 나와 내 가정이 해를 당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를 만류하며 교란하는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모두 헛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않고 일어서서 오빠 언니에게 깊게 머리 숙여 절을 올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나에 대해 이처럼 걱정하며 관심을 보여줘서 고마워요. 물론 나를 위해서 이렇게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나도 여러 해 동안은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삶에 원칙이 없었고 나라는 것도 없이 살았어요. 직장에서나 사회에나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무작정 따라하면서 그렇게 일을 했어요. 많게는 모두 틀렸음을 당연히 알면서도 마음을 어기며 순종하며 부합했어요. ‘전법륜(轉法輪)’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이전에 그렇게 산 것이 얼마나 가치가 없고, 얼마나 마음을 어긋나게 했는가를 알게 됐어요. 이 사회는 그야말로 미쳤어요.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도 왜 이렇게 어려운가요? 파룬궁(法輪功)이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한 데는 잘못이 없어요. 나는 파룬궁수련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여러분도 이 책을 참답게 읽기 바래요” 나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가버렸다. 뒤에서 “저애는 이젠 푹 빠졌어. 방법이 없어!” 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이렇게 구세력은 혈육의 정으로 나의 가족을 이용해 나의 수련을 가로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들의 계획은 여지없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얼마 후 중국 책력으로 10월 1일이 제사일이여서, 우리는 모두 집에 모여 부친에게 제를 올렸다. 언니 오빠는 나를 보자 모두 몹시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들 앞에 나타난 나의 일신은 모두 새롭게 변했기 때문이다. 이전의 나의 온 몸은 모두 병이었다. 160cm 키에 체중은 54kg 밖에 안 된 허약체질로 매일 죽지 못해 살아가는 실정이었다. 그들은, 심성이 유쾌하고 얼굴에 홍조가 어리며, 살이 올라 몸매가 나고, 어투도 많이 착해진 지금의 나의 모습을보면서 “많이 변했구나. 정말 좋다!“ 하고 칭찬했다.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파룬궁(法輪功을 연마해요!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우주의 특성이 직접 당신의 신체에서 반영되어 나오며, 직접 당신 신체와 통한다.’”[1] 나의 완전한 변화는 살아 있는 광고와도 같아서 나의 가족친지와 친구에게 나의 변화된 몸을 통해 대법이 아름답고 초상적이라는 것을 실제로 보여준 것이다. 중공악당의 파룬따파(法輪大法)에 가한 날조가 스스로 파멸 된 것이다. 그 후 내가 진상을 알리고 법을 실증하는 가운데서 많은 가족친지와 친구들이 ‘3퇴’를 했다. 그리고 특기할 만한 일은 오늘까지 선후로 10여 명이 대법수련의 길로 들어왔는데, 나의 남편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사부님께서 나를 구하시고 나의 가족도 구해 주신데 대해 감사드린다.

2. 사부님 가호로 난관을 넘다

2008년 중공사당은 ‘올림픽개최’란 명분을 들어 전국 각지에서 대법제자들을 광적으로 납치하고 체포했는데 우리 이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 기간 동안에 10여 명의 대법제자들이이유 없이 납치당하고 가택수색을 당했으며, 여러 자료점이 파괴되고 여러 수련생들이 불법적인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어떤 사람은 중공의 핍박으로 살 수가 없어서 집을 떠나 떠돌이 신세가 되었으며, 어떤 사람은 집중적인 감시로 미행당했는데, 그렇게 사악은 몹시 창궐했다. 그처럼 갑자기 들이닥친 탄압으로 인해 우리 지역의 대법제자들은 단체 법공부와 진상 알리기가 차단됨에 따라 사람을 구하는 정체적인 수련환경이 파괴당하게 됐다. 박해당한 10여 명의 대법제자들은 모두 앞장서서 가던 사람들이었다. 자료를 만드는 사람이거나 협조인이었다. 사악의 기습적인 습격에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몰랐다. 모두 각기 같지 않은 교란을 받았다. 그러므로 많은 수련생들이 ‘밍후이주간’을 볼 수 없게 되었으며, 진상자료도 구할 수가 없었다. 미행당하는 수련생의 행동은 더욱 용이치 못했다. 모두들 갑자기 중심을 잃었으므로 모두 응집력이 떨어져 마치 흩어진 모래알 같은 형세였다.

이런 상황을 맞은 우리의 마음은 아프기 그지없었다. 대법수련자의 본능적인 책임감과 사명감은 우리 몇 몇 수련생을 묵묵히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냉정하게 법에서 교류하면서 어떻게 수련생을 이끌어 우리 현지의 수련환경을 다시 회복할 것인가, 어떻게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할 것인가를 상의했다. 그런 다음 우리는 각기 자신의 유리한 조건을 이용하여 재빨리 자기가 능히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설비를 사들여 자료점을 다시 건립하고, 생존한 자료점의 규모를 확대시켰다. 여러 개의 법 공부 팀을 조직하여 정체적으로 될수록 재빨리 정상적인 수련상태를 회복했다.

나는 법 공부 팀의 건립을 책임졌다. 솔직히 말해서 단체 법 공부를 건립하는 것 역시 어려운 과정이었다. 예상치 않게 갑자기 나타난 사악의 잔혹한 탄압과 박해에 직면하여 부동한수련생에게 부동한 상태를 나타나게 했다. 극도로 두려운 마음 때문에 어떤 사람은 수련을그만 두었고, 어떤 사람은 집에서 몰래 법 공부와 연공을 하면서도 감히 걸어 나오지 못했다. 물론 마난 앞에서 정념이 확고하고 정정당당하게 하는 대법제자는 그래도 많았다. 나와 수련생은 각기 수련상태가 좋지 않은 수련생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그들과 함께 법 공부 하면서 법에서 교류와 토론을 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수련생의 가족은 박해당할까 두려워 수련생이 우리와 접촉하는 것을 극력 반대하면서 심지어 직접 가로막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또 아주 저속한 말로 비난하기도 했다. 어떤 수련생은 진상을 모르는 가족이 난폭하게 저지하고 간섭을 해도 정념이 부족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이렇게 집집마다 뛰어다녔지만 그야말로 그 어려움은 말로 표현키 어려울 정도였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轉法輪)‘에서 말씀하셨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한다.”[1]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드디어 나오지 않는 수련생이 하나하나 걸어 나와 단체 법 공부에 참가하게 했다.

모두들 단체 법 공부와 교류, 그리고 발정념을 견지 했으며, 또 안으로 찾기를 통해 법리가갈수록 분명해졌으므로, 현지 대법제자가 교란당하고 박해를 당하게 된 원인도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올림픽 전에 중공사당이 해체되어 멸망할 것이고, 정법이 결속될 것이라”고 모두들 부동한 정도로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수련생들은 모두 미혹 속에 있는 세인들에 대해 조급해 지면서, 빨리 사람을 많이 구하는 데만 바삐 신경을 쓰면서, 법 공부와 발정념을 홀시했던 것이다. “정법이 곧 결속될 것이다”라는 강대한 집착의 갈망이 큰 누락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그러므로 구세력에게 틈탈 기회를 주게 되어, 그렇게 큰 교란과 박해를 당했던 것이다. 많은 법 공부를 통해 수련생들은 두려운 마음이 줄어들었고, 정념이 늘어났으며, 서서히 수련상태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수련생과 자료점 수련생은 거대한 압력을 무릅쓰고 여러 가지 곤란을 돌파하면서 새로운 자료점을 계속 개설해 나갔으며 기존 자료점은 정리 확장시켰다. 재빨리 각종 진상자료제작을 속개시켰다. 그러나 나는 그 과정에서 무엇을 겪고, 무엇을 알게 되었지만, 더욱 많은 것은 알지 못했다. 그들의 손에서 나온 각종 진상자료는 그것들의 마난 속에서 강대한 정념과 근면한 대가를 인증시켜줬다. 후에 우리는 또 휴대폰진상 알리기 프로젝트 팀을 구성했는데 날이 갈수록 모두 더 잘 했다.

수련생들의 공동노력을 통해 일체는 모두 귀정(歸正)됐다. 8개 단체 법 공부 팀은 수련생에게 단체로 법 공부와 교류 그리고 토론을 할 수 있게 했으므로 공동정진과 공동제고의 환경이 있게 하였다. 수련생들은 각자의 조건을 이용하여 부동한 방식으로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리어 사람들에게 조리 있고 정연하게 알렸다. 그때부터 나도 자연스럽게 우리 지역의 협조인의 한 사람으로 되었다. 이렇게 어느 새 6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모든 어려움을 다 겪었지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2]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3. 협력하는 중에 수련생은 늘 나를 배려했다.

나는 처음 몇 년간은 작은 부분에서 인쇄와 제본 그리고 자료전달과 분배를 책임졌다. 나는 이미 직장에서 퇴직한 몸이기 때문에 비교적 많은 시간을 낼 수 있었으므로 무슨 일에나 안배하기가 쉬웠으며, 세 가지 일을 하기도 다소 순조로웠다. 그런데 후에 애가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면서부터 나의 조용하고 질서 있었던 수련환경이 파괴됐다. 날마다 자식과 손자를 돌보는 것 등 기타 가사일로 많은 시간을 빼앗겼기 때문에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도 보증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래도 한 동안은 정체적인 일을 첫 자리에 놓기로 정했어도, 가정일 또한 잘해야했다. 없어진 시간은 내가 세 가지 일을 해야 할 시간임은 의심할 나위 없는 일이다. 대법제자의 세 가지 일의 질과 양은 수련상태를 인증한다. 그 때 나는 종일 바삐 돌아쳤지만 마음은 불붙듯 조급했을 뿐 상태는 갈수록 멀어졌다.

교류를 통해 나의 상황을 알게 된 수련생은, 나를 대신해 자발적으로 자료인쇄와 제본 그리고 기타 돌아가는 일들을 감당해줌에 따라 내가 생활로부터 받는 압력을 덜어주었다. 그러므로 나에게 법 공부와 연공 그리고 발정념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있게 됐다. 그러나 밖으로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 일은 보증할 수가 없었다. 나는 집을 장시간 동안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수련생들은 6년 동안 서로 협력하여 비교적 순조롭게 대법의 일을 하였다. 우리에겐 속인의 명절이 없었고, 엄동과 혹서가 없었으며, 비바람 부는 날씨와 좋고 나쁨이란 개념조차 없었다. 오직 제 때에 각종 진상자료를 제작하고 전달하였다. 무슨 일 어떤 원인으로도 중단하거나 지체한 적이 없었다. 우리의 이 수련정체는 언제나 양호한 운행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어느 해 섣달 그믐날이었는데, 저녁 7시 반은 우리 자료점이 자료를 전달하는 시간이었다. 속인들은 모두 온 가족이 단란히 모여앉아 음식을 먹고 폭죽을 터뜨리면서 섣달그믐을 즐기고 있을 때, 나는 고막이 터질듯 한 폭죽 소리 속에서 이미 한 수련생이 우리가 약속한 장소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부터 볼 수 있었다. 나는 격동되고 가슴이 뭉클했다. 나는 그런 환경 속에서 사부님의 법인 “속인은 나를 모르나니/ 나는 심오 속에 앉아 있도다 / 이익과 욕구 속에 나 없나니 / 백년 후에는 오로지 나로다”[3]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순간 온 몸에 뜨거운 열기가 퍼지는 것을 느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의 눈물이 줄줄 흘렀다. 자료를 넘겨 줄 때 폭죽소리는 더욱 요란해서 서로 대화를 하면서도 다 알아듣지 못한 채 그저 알았다는 듯이 웃기만 했다.

어느 여름 날 저녁, 자료를 넘겨줄 시간이 되었는데 폭우가 쏟아지면서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수련생이 왔을까? 내가 만약 가지 않거나 늦게 간다면 수련생이 빗속에서 나를 기다리지 않을까? 나는 반드시 가야한다, 수련생이 돌아가지 않았다면 내가 한 번 더 뛰면 될 것이다. 그래서 비옷에 우산을 들고(비옷으로 자료를 싼다) 폭우 속으로 걸어갔다. 멀리 빗속에 서있는 수련생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정말이지 몹시 감동됐다. 솔직히 말해서 날씨가 좋거나 길이 좋을 땐 앞당기거나 3, 5분 정도 늦는다고 해도 대수로운 일이 아니지만 오늘처럼 폭우가 쏟아지든가 광풍이 불 때는 언제나 정확하게 시간을 지키면서 수련생이 나를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오직 대법수련자만이 이럴 수 있는 것이다.

4. 수련생이 나를 도와 심성을 제고하게 했다.

수련 속에서는 무슨 일이든지 다 닥칠 수 있다. 나에게 심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하는 일도늘 발생했다. 한 수련생은 개인적인 이유로 단체 법 공부에 참가하지 않는데, 그러면 그에게는 진상자료와 신경문을 팀에서 챙겨줄 수가 없게 된다. 보통 장기간에 걸친 이런 수련생들 대부분은 수련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자료와 신경문 등 모든 자료를 내가 직접 전해준다. 안전 문제 때문에 전화로 예약할 수도 없다. 어떤 땐 몇 번 가도 사람을 찾을 수가 없을 때가 있다. 어쩌다가 집에 있게 되면 전해주게 되는데, 그럼 그 수련생은 경문을 받아들고 경문의 발행날짜가 지난 걸 보고는 쌀쌀하게 말한다. “이렇게늦게 가져왔군!” 솔직히 말해서 그런 때는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기가 아주 어렵다. 이런 수련생은 보통 장기간에 걸쳐 관을 넘는 중에 있거나, 법 공부가 적고 법리가 분명하지 못하다. 그래서 쉽사리 속인의 마음으로 문제를 생각한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소용이 없다. 나는 비록 입으로는 뭐라고 말을 하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생각한다. ‘수련생분, 집에 앉아서 가져다주는 것을 받으면서도 무슨 이것저것을 따지며 불만스러워 하는가? 당신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나 하는가?’

그때는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였으므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무엇 때문인지 매 번 내가 억울하고 괴롭다고 여길 때면 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功)을 수련하는 길은 마음이 지름길이라/ 대법은 끝없나니 고생을 배(舟)로 삼을지니라”[4]가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재빨리 심태를 바꿔 내가 부닥친 모든 사람이나 일에 대해 좋게 대할 수 있었다. 어떤 땐 자료를 받으러 오는 수련생이 오래도록 오지 않을 때도 있는데, 후에 만나면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한다, “그만 까맣게 까먹었어요” 또 어떤 사람은 당당한 듯 말한다. “자기는, 우리 집에 일이 많고 바빠서 시간을 뺄 수 없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 그는 내가 엄동설한이나 비바람 속에서 자기를 기다리며 고생했을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떤 때 교류회를 열면, 수련생은 두려운 마음이 중하고 자아보호심이 강해 사람이 많으면 안전문제가 있으므로 참가하지 않다가도 도리어 후에는 한 번 또 한 번 교류회 상황을 묻는데 사람을 걱정하게 만든다. 그렇다. 일이 닥치면 우선 남을 고려해야 하며 반복적으로 수련을 해 나가야 한다.

최근 몇 년 간은 이런 현상이 많이 줄어들었다. 모두들 다 수련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확고히 믿는다. 무릇 내게 닥친 모든 것은 전부 나의 수련과 관계있는 것이거나 내가 어느 마음을 버려야 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나의 수련과 관계없는 것은 사부님께서 안배해 주시지 않을 것이다. 법리가 분명하니 법에서 제고하고 마음속 고달픔도 자신이 제고하고 승화함으로써 아주 달콤함으로 변했다.

정법이 최후에 이르렀으므로 세인들이 구도될 기회도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 지금의 일분일초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나는 꼭 사부님께서 나에게 안배해 주신 수련의 길에서 매 한 발자국을 바르게 잘 걸어갈 것이다. 자신을 잘 수련하고 사람을 빨리 많이 구해, 사분님의 자비로운 구도와 중대한 책무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사명을 완수하여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맞지 않는 곳은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전법륜(轉法輪)’[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정진요지-교란을 배제하자’[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시사:‘홍음-각자’[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시사:‘홍음-파룬띠파’

(밍후이왕 제11외 중국대륙대법제자심득교류회)

문방발표 : 2014년 11월 16일
문장분류 : 11회법회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1/16/2996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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