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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사존을 따라 줄곧 앞으로 나아가다

[밍후이왕]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1994년에 대법수련에 들어선 노제자다. 나는 운 좋게 사존께서 몸소 법을 전하시고 공을 전하신 2기 학습반에 참가할 수 있었으며, 일찍부터 현지 연공장의 보도원이 됐다. 당시 나는 기공 같은 것에 별로 흥미를 가고 있지 않았는데 파룬따파(法輪大法), 이 법은 내포가 매우 크고 순정하며 자비로울 뿐만 아니라 곧 불법(佛法)인 우주대법이라고 명확히 언급하신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강의를 듣고 매우 놀라고 경이롭게 생각했다. 그래서 한 순간에 수련의 길로 들어서게 됐으며 착실히 법공부하고 열심히 연공했다.

비록 병을 제거하기 위해 대법을 수련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후에 내 신체에는 매우 큰 변화가 일어났다. 예전에는 온몸에 모두 병이어서 무슨 편두통, 신경쇠약, 류머티즘, 자궁내막증 등등의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으므로, 젊은 나이인데도 가정부를 들여 도움을 받아야했다. 걸핏하면 병원에 입원하기 일쑤였는데 신체적으로 너무 약골이라 바람에도 쓰러질 것 같은 지경이었다. 그런데 수련한 지 얼마 안 되어 이런 병들이 모두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아주 건강해 가정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할 수 있게 됐다. 가족들은 모두 내가 “‘임대옥(林黛玉-홍루몽 여주인공으로 나약한 여자의 상징)’에서 ‘화무란(花木蘭-역사적인 여자 영웅)’으로 변했다”고 했다.

나는 ‘7.20’ 이 얼마 지나지 않아 수련생과 함께 성 정부와 시 정부를 찾아가 청원하면서 ‘대법과 사부님의 결백함’을 주장하다가 현지 파출소에 납치된바 있으며, 2000년에도 현지 수련생과 함께 베이징(北京)에서 “국가지도자들이 파룬궁(法輪功)을 이해하고 박해를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청원을 했다. 천안문광장에서 현수막을 펼치고 함께 높은 소리로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정법이다!”라고 외치다가 천안문파출소로 납치됐으며 집으로 돌아온 후 현지에서 중점 감시대상으로 지정됐다. 설령 이 10여 년 동안 온갖 만난을 겪으면서 이미 60세에 이르렀지만 내 신체는 갈수록 건강해 흰머리도 없고 피부도 부드러우며 얼굴 혈색도 좋아져서 사람들은 모두 나를 보고 “30대 같다”고 하는데 아들과 함께 있으면 사람들은 늘 우리를 오누이로 착각할 정도다.

수련은 처음과 같이 해야

10여 년간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으로부터 당했던 각종 박해의 괴로움에 대해서는 잠시 내려놓고 언급하지 않겠으며, 다만 이 몇 년간 대법수련 중에서 제고하고 깨달은 점만을 이야기하려 한다. 내가 검은 소굴에서 마지막으로 뛰쳐나왔을 때 가장 갈망했던 것은 바로 법공부였다. 원래 집에 있던 대법서적들은 모두 사악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내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수련생이 위험을 무릅쓰고 모든 대법서적을 보내주었다. 나는 급하게 직장을 구하지 않고 다만 매일 많은 시간을 내어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만 했다. 법공부를 통해 구세력이 존재하는 본질과 목적을 인식하게 됐고 이번 박해를 사부님께서는 근본적으로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았다.

법리를 이해한 후, 이 몇 년간 나 자신이 늘 구세력의 박해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원인을 찾게 됐다. 이는 내 생명 깊은 곳에 아직도 구 우주의 관념과 흔적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많이 감당할수록 소업은 많았으며 따라서 공이 자라는 속도도 시간이 갈수록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지금까지는 구세력의 박해를 묵인하면서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걸었던 것이다. 나는 이 같은 사상적 염두를 조속히 귀정(歸正)시키기 위해 매일 발정념을 하며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공간장의 사악의 요소를 제거했으며, 구세력의 일체 박해요인을 인정하지 않았다. 현지 ‘610’사악조직이 배치한 사람은 매일 나를 미행했으며, 시 ‘610’조직 담당자는 나에게 차 한 잔하자고 불러놓고 (파룬궁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사실 이것들은 모두 나에 대한 교란이었다. 내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 구도하려는 것을 저지하려고 시도한 것이었다. 나는 발정념으로 그것들을 제거했으며 그런 사람들에게 대법제자를 박해할 경우 좋지 않은 이해관계가 나타날 것임을 명확히 알려주었다. 그 후 미행과 차 대접받는 그런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몇 차례 설법에서 “수련이 처음과 같으면 반드시 원만한다.”[1]는 법리를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오랜 기간 꾸준히 견지해 오면서, 끊임없이 정진하는 그것이 비로소 진짜 정진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하자면 정말로 어렵다. 그러므로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하면, 반드시 정과를 얻는다.”[2] 나는 외재적인 환경이 아무리 복잡하다고 해도, 수련의 길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모두 정신을 바짝 차리고 100% 신사신법(信師信法)할 것이다. 천만 년의 기다림과 기대는 모두 오늘을 위한 것이 아닌가? 어떻게 느슨해 질 수 있겠는가? 단체법공부하고 단체연공과 법회교류는 사부님께서 우리들이 정진실수(精進實修)할 수 있도록 배치하신 형식이다. 나는 일부 노수련생들에게 연락해 법공부 팀을 구성하자고 건의했지만 내부적인 어떤 이유 때문에 잘 되지 않았다. 어떤 수련생은 내가 특무일지도 모른다고 했고 어떤 수련생은 현재 내가 중공으로부터 엄밀하게 감시당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어느 누구도 감히 나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나는 이는 모두 구세력이 수련생들의 사람 마음을 이용해 만들어낸 혼란과 간격이라고 생각하고 매일 법공부와 발정념을 하면서 구세력이 다른 공간에서 조성한 간격을 제거했고, 또 사존께 가지를 청했으므로 반드시 법공부 팀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점차 노수련생들이 나를 찾아와 교류했는데 내가 법공부 팀을 구성하자고 다시 제기하자마자 곧바로 찬성했다.

점차 우리 지역의 일대에서는 법공부 팀이 잇달아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주 4~5일간씩 단체법공부에 참가할 수 있었다. 직장에서 퇴직한 노년 수련자들은 보통 오전에 법공부하고 오후에는 단체연공을 했는데 모두들 즐거워했다. 마치 1999년 ‘7.20’ 전의 그런 행복했던 시절의 느낌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법공부 팀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 격려하며 에너지 장은 매우 강해졌다. 일부 두려움이 있던 수련생들도 천천히 두려움을 제거하고 정정당당하게 걸어 나와 진상을 알릴 수 있었고 수련생들은 모두 자신의 특기에 맞는 항목에 맞춰 모두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었다. 매개 팀에서 매일 배포되는 자료는 수백 부에 달했으며 ‘삼퇴’를 시킨 인원도 몇 십 명씩 됐고 어떤 때는 함께 고급 주택가에서 자료를 배포했는데 하루에 수백 부씩 배포하기도 했다.

사부님의 정법형식의 추진에 따라 일부 신수련생들이 잇달아 걸어 들어왔다. 노수련생들은 신수련생들을 이끌고 함께 법공부하고 진상을 알리며 서로 협조했는데 효과가 매우 좋았다. 우리가 법공부하는 장소는 법공부를 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또한 서로 정보를 교류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자료 제작과 협조에서 젊은 수련생들은 노년 수련생들을 도와 일을 나누어 협조했는데 진상 CD를 제작하거나, 진상소책자를 제작하거나, 진상스티커를 제작하거나 혹은 호신부를 제작하기도 했다. 누가 협조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이 모두 자발적으로 협조할 수 있었다. 또 누가 병마의 교란을 받는 것을 발견하면 일부 수련생들은 즉시 그의 집으로 가서 발정념하고 법공부를 하며 수련생을 도와 고비를 넘기게 했으며, 기타 사람들은 집에서 그를 위해 발정념을 했다. 누가 사악의 박해를 당한 것을 발견하면 수련생들은 마찬가지로 단체 발정념을 조직했고 또한 어떤 수련생들은 가족들을 도와 정념을 수립하고 사악의 검은 소굴로 찾아가 사람을 요구하거나 혹은 정의로운 변호사를 통하여 법률로 구하는 등등의 일을 했다. 이런 하나의 좋은 수련환경 때문에 비록 매우 바쁘고 힘들었지만 모두 그 속에 용해되어 마음속은 매우 착실하고 충실했다. 어떤 때는 사람을 구하는 항목을 위하여 밤을 새며 자료를 제작했고 이튿날 평소대로 출근했어도 조금도 졸리지 않았다.

대법제자는 세 가지 일을 잘 하는 중에서 자신의 심성을 제고하고 승화해 올라간다. 수련생들은 매일 함께 대법을 실증하는 각개 항목을 하고 있었는데 서로 간의 일부 문제로 인해 모순이 발생해 매우 날카로웠다. 한 수련생은 곧 나에게 “하는 일이 많으면 번거로움이 갈수록 많아집니다”라고 했다. 몇 명의 수련생은 다른 의견을 듣고 싶지 않다면서 자료제작 팀을 떠나기도 했다. 이것은 모두 틀린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 몇 년간 내가 하던 세 가지 일이 많았기 때문에 어떤 수련생들은 나에 대한 의견도 많아졌다. 나는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나 자신의 집착심을 폭로했다. 나는 늘 웃으며 스스로를 ‘총애의 별’이라고 여겼다. 모순이 없이 너도 좋고 나도 좋다면 어떻게 제고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 몇 년간 세 가지 일을 하면서 점차 자신이 최고라고 여기는 마음,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마음, 일로 생각하고 하려는 마음, 환희심과 과시심 등등을 알게 되어 모두 제거했다. 물론 지금 말은 쉽게 하지만 당시 관을 넘을 때는 뼈에 사무칠 정도의 괴로움이 있었다. 이렇게 비학비수(比學比修)하며 정진하는 좋은 환경에서 전체 법공부 팀의 구성원들의 심성은 모두 여러 정도의 제고를 얻었다. 정말로 일거다득(一舉多得)의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사악의 경제적 박해를 제거하다

내가 ‘검은 소굴’에서 갓 나왔을 때 직장에서는 불법적으로 나를 공직(공무원)에서 해고시켰다. 남편은 내가 수련하기 전에 이미 공무로 순직해 나는 아들과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게 됐다. 내가 박해로 실직을 당했으므로 경제적인 여건이 안 됐기 때문에 가족들은 모두 나를 보고 “바보 언니, 크게 손해 봤다”면서 많은 비난을 했다. 그래도 나는 웃으면서 “대법을 수련하는 것은 타고난 복이 있는 것이다. 착한 사람은 하늘이 돕는 법이니 기다려 봐라. 나는 곧 좋아 질것이다”라고 가족들에게 말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생들은 속인 중에서 수련하는데 누구나 모두 가난해진다면 어떻게 생활을 하겠는가. 또한 우리는 자금이 있어야 진상자료를 제작해 사람을 구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사악의 배치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타파한다고 마음먹었다. 몇 년간을 아래에서 위까지 층층의 관련기관을 찾아다니고 관련 책임자를 향해 상황을 알리면서 진상을 전했다. “내 남편은 나라를 위해 순직했으므로 현재 가장을 잃은 모자는 당연히 국가에서 정한 규정대로 경제적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라고 말했다.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해 나라를 위해 의료비를 절약한 것은 말하지 않더라도 ‘진선인(眞善忍)’ 법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더욱 좋은 사람이 되려 했는데 당신들은 규정에 따라 일을 처리하기는커녕 오히려 저를 납치하고 감금했을 뿐만 아니라 근무 권리까지 박탈했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요? 비양심적이라는 비난이 두렵지 않은가요!?”

나는 그들에게 “파룬따파는 정법인데 억울함을 당한 것입니다. 장쩌민(江澤民)이 중공을 이용하여 이렇게 잔혹하게 박해를 선동하고 만들어낸 것입니다”고 알려주었으며, 또 “바른 것과 사악한 것, 옳고 그름을 구별하여 장쩌민을 따라 나쁜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에 상응한 보응을 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라는 등등 끊임없이 진상을 알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삼퇴’를 했는데 그 중 일부 책임자들은 은밀히 ‘전법륜(轉法輪)’을 요구해 보았으며 또 어떤 사람은 직접 대법수련에 들어서기도 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는 직장이 생겼는데 월급에는 각종 민정국가유공자의 위로금 등등의 항목이 합해져 처장급 간부 수입과 같은 고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예전과 비교할 때 경제적인 여건에서 아주 큰 변화가 있게 됐다. 아들은 늘 우스갯소리로 나에게 “대단한 부자”라고 말했다. 대법제자는 모두 개인이 얼마나 많은 돈이 있다고 하더라고 이런 돈은 모두 대법자원으로 마땅히 법을 실증하고 진상하는데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자금을 바르게 사용하면 수입 역시 갈수록 더 많아졌는데 “대법을 수련함은 역시 복이 있는 것이다.”[3]를 실증할 수 있었다.

법을 사부로 삼고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걷다

몇 년 전 한 지방 수련생이 우리지역에 와서 “우리 지역을 위해 매우 중요한 한 편의 문장을 쓰려고 합니다”라고 했으며, 또한 그 일에 참여하는 수련생들은 무슨 ‘공덕이 무량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몇몇 수련생들이 나에게 과분한 칭찬을 하더니 나보고 그 일에 참가하라고 했다. 당시 나는 곧바로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게 되어 “그 일을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 나중에 그 지방 수련생이 직접 나를 찾아와 그가 일찍이 썼던 문장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한번 훑어만 보고도 매우 불편함을 느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대법제자가 쓰는 문장은 대법을 실증하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하는 마음의 내용이어야 할 뿐, 개별적으로 어떤 수련생의 공덕을 칭송하는 문장을 써서는 안 됩니다. 특히 그렇게 빗나간 내용뿐만 아니라 이미 현재는 수련하지 않는 수련생에 대한 내용을 써서는 안 됩니다”라고 했다. 계속해서 “현재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많은 사람을 구하고 빨리 구하라’고 하셨는데, 문장을 쓰려면 그런 내용을 중심으로 써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또 “일체는 법을 사부님으로 모시고 대법으로 가늠해야 하며 또한 관련되는 면도 너무 넓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수련생의 명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잠시 멈추고 법공부를 많이 한 후에 다시 이야기하죠”라고 건의했다.

나중에 들었는데, 그들은 남의 충고를 듣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도처에서 취재했다고 했다. 나는 매우 급한 마음으로 그들을 찾아 상의하려 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내가 자신들이 하려는 ‘큰일을’ 교란한다고 하면서 나를 만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기에 참여했던 수련생들은 거의 모두 (중공에) 납치되어 감금됐으며 몇 명은 이미 소위 중공이 원하는 대로 ‘전향’됐다고 했다. 나는 상심이 매우 컸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더욱 명백해졌다. 만약 당시 내가 법리에 분명하지 못해 몇 마디 듣기 좋은 말에 현혹되어 두뇌가 명석하지 못했고 또 명리심이 일었다면 나도 매우 위험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직 법을 사부로 모시고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바르게 걸어야만 가는 길이 갈수록 밝아지는 것이다.

한번은 어느 지방에서 이곳에 와서 근무하는 신수련생이 수백만 위안을 모금하는 단체행동에 참가해 모 언론매체를 통해 기부를 한다고 하면서 기부금을 받았다. 나는 급히 그녀에게 찾아가서 함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정진요지3-자금을 모으는 문제에 관하여’를 공부했다. 사부님께서는 “몇 년간 줄곧 어떤 사람이 중국대륙에서 제멋대로 자금을 모으는데, 국외의 씬탕런 방송국, 따지웬 신문과 일부 수련생이 꾸리는 기타 매체를 돕는다는 구실로 수련생들로부터 자금을 모으고 있다. 이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내가 이전의 설법 중에서 수련생에게 돈을 받지 말라고 말했는데, 왜 그대로 하지 않는가? (일부 수련생이 자발적으로 진상을 알리는 자료를 마련하는 것은 제외한다.)”[4]라고 말씀하셨다. 법공부를 통해 이 신수련생은 약 1백만 위안의 현금을 전부 수련생에게 돌려주었다.

우리 현지에는 일찍이 한 보도원이 있었는데 백만여 위안을 모금해 하나의 공장을 설립했다. 그의 목적은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수련생들을 받아들이기 위함”이라고 했다. 이 보도원은 40여 세로 나중에 구세력에 의해 육체를 빼앗겼다. 이 공장에 출근하던 기타 대법수련생들은 몰래 들어온 특무들에 의해 미행당했으며 적지 않은 수련생들이 납치됐다. 공장은 적자를 냈고 일부 돈을 낸 수련생들의 생활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다. 이는 모두 침통한 교훈이며 우리는 마땅히 각성해야 한다.

일찍부터 일부 천목이 열린 노년 여 수련생이 나를 보고 내 신체에 “무엇이 있다”고 말했으며 “어떠어떠하게 좋다”고도 했다. 이는 나에 대한 일종 고험으로서 내 마음이 움직이는지, 환희심이 이는지, 과시심을 나타내는지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교류 중에서 일반적으로 이런 얘기를 하지 말라고 제기한다. 교류는 주요하게 비학비수 하는 것으로 어떻게 하면 이성적으로 법을 인식하고 어떻게 하면 법에서 법을 인식하며, 어떻게 하면 조속히 사람의 각종 집착심을 제거해 천백 년 간 형성된 각종 완고한 사람의 관념을 제거 하는가 등을 교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다해 착실히 법공부를 잘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해서 사전서약을 완성해야할 것이다.

은혜, 무한한 은혜

나는 분명하게 기억한다. 1994년 사부님께서 친히 하신 설법반에 참가한 첫날밤에 꿈을 꾸었다. 나는 개구쟁이 어린 남자 아이였다. 한 가닥 사부님의 솜털을 잡고 삼계에서 내려온 것 같았다. 사부님께서 길가를 송이송이 연꽃 길로 포장하시며 만 가지 마귀들이 길을 막는 것을 제거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수승(殊勝)하고 신기함은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다. 그 후부터 매번 고난에 부딪혔을 때, 넘기 어렵다고 느껴질 때, 오직 꿈속에서 놀라 “사부님!”하고 외치면 사부님께서는 즉시 나타나셨는데 나는 언제나 작은 남자아이의 모습이었다. 나는 사부님의 발등에 서있었는데 사부께서 나를 데리고 유유히 상승하셨다.

나는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감당하신 것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제자는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부족하다. 할 말은 매우 많지만 사존에 대한 무한한 은혜는 헤아릴 수 없다! 마지막에 ‘사부님의 손’ 이 한 수의 노래가사로 내 교류를 마치려 한다.

“사존이여, 사존

저는 사존의 손을 꼭 잡으렵니다

정념정행으로 사존께서주신 모든 것에 보답하렵니다

저는 사존의 손을 꼭 잡고

사존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2013년 대뉴욕지역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지 설법9-2009년 대뉴욕국제 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미국법회설법-뉴욕법회설법’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3’-자금을 모으는 문제에 관하여‘

(밍후이왕 제11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4년 11월 1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1기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1/14/299615.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4/11/19/1469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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