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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시간을 틀어쥐고 전력으로 중생을 구하다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나와 남편은 1999년에 법을 얻었다. 하지만 막 수련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당의 박해가 시작됐다. TV, 신문에서는 매일 대법을 모독하고, 친지친구들은 모두 우리를 협박하고 비웃었으며 또 우리에게 대법서적을 훼손하게 했기에 남편은 책을 숨겨 둘 수밖에 없었다. 머지않아 우리와 연락하던 수련생이 청원했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 사망했다. 우리는 수련 환경을 잃었으며 차츰차츰 뒤떨어져 내려가게 됐다.

2008년 큰 딸이 간질병에 걸려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됐다. 내게는 마치 청천벽력 같았고 마음속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한창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한 수련생을 만나도록 해주셨다. 이때부터 우리 온 가정은 새롭게 대법 속으로 돌아오게 됐다. 7일 후, 나의 류머티즘, 협심증, 담낭염, 경추 질환이 모두 나았다. 딸의 병도 아주 빨리 나았다. 온 가족이 불은호탕(佛恩浩蕩)의 행복 속에 푹 젖어 있었다.

다른 수련생이 우리가 너무 많이 뒤떨어졌다고 하면서 재빨리 우리에게 사부님의 각지 설법과 ‘밍후이 주간’을 가져다주었고 컴퓨터를 켜서 우리에게 자비로운 사부님을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는 눈물을 흘렸다. 나는 묵묵히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무릇 앞으로 또다시 무슨 일이 발생한다 할지라도 저는 모두 사부님을 따라 끝까지 걸어갈 것입니다.”

1. 스스로를 잘하기부터 시작해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하다

우리가 막 대법에 다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교란이 왔다. 친구친지들은 너무도 겁이 나서 우리에게 압력을 행사하면서 우리를 수련하지 못하게 했다. 특히 양쪽 부모님들은 바로 인근에서 붙잡히고 맞아 사망한 수련생이 있다는 남동생의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고 우리를 걱정하셨다. 나는 남편에게 이번에 우리는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는데 반드시 잘해야 하며 그래야만 비로소 사부님께 죄송하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잘하는 것부터 시작해 세상 사람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했다. 우리 부부는 채소농사로 생계를 유지했는데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착실하게 법공부와 연공을 했다. 채소밭은 우리에 의해 정연하고 예쁘게 꾸려졌고 또 메탄가스못도 건설해 비닐하우스 5개를 만들어 우리 집은 꽤 윤택한 생활을 하게 됐다. 평소 열정적으로 이웃, 친지를 돕고 절대 그들과 모순이 발생하지 않게 했으며 무슨 일이든 자기가 손해를 볼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것을 양보했다. 시아버지는 집안일은 상관하지 않고 사방으로 놀러 다니면서도 집에 돌아오면 아내와 아들에게 욕하곤 했다. 시어머니는 심성이 나쁘지 않으나 잔소리를 하기 좋아해 항상 내가 한 것이 이것저것 맞지 않다고 하셨으나 나는 따지지 않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우선 먼저 그들에게 가져다 드렸다. 시부모님은 10묘의 넓은 밭은 가꾸었는데 우리는 자기 일을 제쳐두고서라도 그들의 파종과 추수를 도왔고 이로 인해 봄부터 가을까지 남편과 나는 매년 1천 위안 상당의 경제적 손실을 봤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따지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대법제자이기에 오로지 가서 법을 실증할 수 있을 뿐 대법에 먹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후에 시아버님은 어디에 가서나 모두 사람들에게 며느리가 좋다고 말했는데 이웃들도 시부모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정말 복이 있네요. 이처럼 훌륭한 며느리를 두다니요. 정말 만 명 중의 한 명도 고르기 힘든 사람이에요.”

시누이들은 도시에 살고 있었는데 매번 돌아오면 우리는 재배한 채소를 따서 주었고 얼마나 비싸든지 아까워하지 않았다. 매년 변함없이 대하는 우리에 대해 그들도 깊이 감동해 나를 친여동생 대하듯 했다. 시어머니가 어떻게 고자질해도 그들은 믿지 않을뿐더러 도리어 “이렇게 좋은 며느리를 어디 가서 찾겠어요?”하며 시어머니에게 한바탕 말한다. 머지않아 우리 둘은 인근 지역에서 유명해졌는데 사람들은 우리를 언급하기만 하면 모두 남편은 부자가 되는 전문가이고 아내인 나는 ‘채소농사의 여성 일인자‘로 뽑았으며 게다가 마음씨가 착하고 고생을 참고 견딜 줄 알며 어르신에게 효도를 잘하는 사람들임을 알게 됐다. TV에서 날조하는 파룬궁은 생계를 제대로 꾸리지 않고 집안도 돌보지 않으며 노인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유언비어에 대해 우리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믿지 않을 것이다.

작년 겨울,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와 싸운 후 밖에 있는 불을 때지 않은 방에서 지냈다. 첫날밤에 불을 땐 후 주무셨는데 이튿날 인사불성이 되어 병원으로 옮겨져 검사하니 가스중독이라고 했으며 응급치료를 받고서야 깨어났다. 이 바람에 온 집안이 난리가 났다. 시어머니는 매일 병원에 입원해 있으며 1천 위안 안팎의 치료비를 지불해야 했고 한 달 사이에 2만 위안을 썼다. 시아주버니는 병원이 심하게 돈을 뜯어먹는다고 욕하고 친지들은 화가 나서 “이것은 쓸데없이 일을 만든 것 아닌가요? 멀쩡한 가족을 이렇게 망가뜨리고 아들딸들에게 얼마나 많은 번거로움을 가져다준 겁니까?”하며 시어머니를 마구 욕했다. 손윗동서는 화가 나서 펄쩍펄쩍 뛰었는데 시어머니에게 연신 훈계했으며 시어머니는 감히 아무 소리도 못했다.

나는 자신은 대법제자이기에 마땅히 사부님과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하며 대법을 실증하는 것은 내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시아주버니, 두 번째 시누이와 서로 번갈아가며 시어머니의 병시중을 들었다. 나는 매일 삼시세끼 밥을 나르고 링거 주사를 놓는 것을 돌보고 곁에서 고압 산소치료 받는 것을 도왔다. 게다가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데려오는 일까지 하다 보니 지치고 야위어 말이 아니었다. 친지들은 내가 시어머니를 이처럼 극진히 돌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감동해 친딸 같다고 했고 같은 병실 사람들도 내가 시어머니를 이렇게 잘 대하는 것을 보고 모두 내가 그들의 친딸인줄 알았다며 깜짝 놀랐다.

시어머니는 병원에서도 여전히 시아버지를 욕했고 성질을 부렸다. 내가 이처럼 돌보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불만이었고 이것이 안 되고 저것이 싫다며 투정을 부렸다. 병실 환자와 그들 친지들마저도 차마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번은 같은 병실 환자가 말했다. “당신 시어머니는 당뇨병, 뇌혈전이 있기에 늘 고기를 드시면 안돼요. 그래서 제가 썰어 놓은 오향두부를 좀 사왔어요.” 이때 시어머니는 화를 내며 밥이 마음에 안 든다고 계속 나에게 훈계했다. 이 바람에 사위와 병실 동료 환자 할머니까지 화가 났다. “이 할머니가 정말 너무 한 거 아닌가? 당신 며느리에게 이러다니요? 누가 지금 시어머니를 상관하는 며느리가 있어요? 당신 큰 며느리는 왜 와서 시중들지 않나요? 왜 좋고 나쁨도 분간할 줄 몰라요?” 나는 시어머니와 따지지 않고 ‘이것은 좋은 말을 듣기 좋아하는 내 마음과 명을 구하는 마음, 보답을 구하는 마음을 닦아 없애라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안을 향해 자신을 찾았다.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해 여러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三退: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조직을 탈퇴하는 것을 약칭하여 삼퇴라고 부름)를 권했으며 션윈DVD를 나눠줬다. 그들은 모두 기뻐하며 중국공산당 조직에서 탈퇴했다. 한 학교 선생님은 탈당했을 뿐만 아니라 내 손을 잡고 격동해 말했다. “정말로 당신처럼 훌륭한 사람을 보지 못했어요. 좋은 사람에게는 꼭 좋은 보답이 있을 거예요.”

이후에 시어머니는 병이 재발해 반신불수가 됐는데 신체는 마치 나무막대기처럼 딱딱했고 말할 수도 없었으며 대소변도 가릴 수 없었다. 매일 밥을 대신 먹여주고 대소변을 받아야 했으며 엄청나게 많은 귀저기를 빨아야 했는데 악취가 코를 찔렀다. 나는 여전히 한마디 원망 없이 시중을 들었다.

내 작은 시어머니는 내가 매일 시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잘해드리는 것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다. “자네 시어머니는 정말로 복 받았어. 자네와 같은 이런 좋은 며느리를 두다니. 내 며느리는 나를 욕하지 않으면 나를 가라고 내쫓기만 하는데 정말로 살 생각이 없다네, 정말 살맛이 없어.” 이에 나는 “제 사부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하라고 가르친 것이에요.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에 진선인(眞善忍)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럼 나도 배울 거야”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작은 시어머니도 대법수련으로 걸어 들어오게 됐다. 매일 법공부하고 연공하더니 얼마 되지 않아 온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빛나며 안색이 좋아져서 친지친구들 사이에서 큰 화제로 되었다.

시어머니 집에는 한 이웃이 있었는데 항상 우리 시부모님과 다퉜고 매년 싸웠다. 이전에 내가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지만 그녀는 전혀 삼퇴하려 하지 않았고 또 좋지 않은 말까지 했다. 그는 이번에 내가 반신불수가 된 시어머니를 잘 돌보는 것을 보고 감동해 말했다. “너무나 대단하네요. 당신 시어머니가 당신을 그렇게 좋지 않게 대하고 도처에서 당신 흉을 보는데도 당신은 여전히 이처럼 시중을 잘 들다니, 우린 다 탄복했어요. 나도 대법을 배울 거예요.” 나는 그녀에게 사부님 설법 녹음을 듣도록 했고 또 대신 대법서적을 청했다. 그에게 연공을 가르쳤고 그녀에게 다큐멘터리 ‘우리는 미래에 알린다’를 보여주었다. 이웃은 감동하며 말했다. “TV에서 말한 것이 다 거짓말이었구나. 대법이 이렇게 좋은데 나는 너무나 늦게 배웠구나.” 진상을 듣지 않던 그녀의 딸도 기뻐하며 삼퇴를 했다. 그녀 아들은 이전에 진상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게다가 또 “공산당이 얼마나 강해요? 당신들이 싸워 이길 수 있어요?”라며 내 남편을 비웃기까지 했다. 이번에 그의 모친이 아들에게 말했다. “이후에 다시는 사부님과 대법에 불경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보응을 받을 거야.” 그녀 아들은 이후로 과연 정말로 감히 말하지 못했는데 또 “사부님, 사부님”하며 불렀다. 정말로 감동적인 장면이었는데 이후에 그들 온 가족이 모두 수련의 길에 들어서게 됐고 이 한 가족이 구원됐다.

나는 오직 자신의 일언일행을 잘 수련해야만 바른 길을 갈 수 있고 비로소 사람을 구할 수 있음을 깊이 체험했다.

2. 시간을 틀어쥐고 전력으로 중생을 구하다

법을 얻은 지 얼마 안 되어 우리 지역의 한 자료점이 파괴됐다. 우리 이곳은 농촌이라 수련생들이 적다. 나는 자신은 대법제자이기에 이곳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의연히 이 책임을 짊어지고 사부님의 가호와 수련생들의 도움 하에 가정 자료점을 차렸다. 여태껏 컴퓨터와 프린터를 만져보지도 못했던 나는 이 첨단과학기술 기기들을 보고 흥분도 되고 멍해지기도 했는데 만약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이 한평생 그것들을 다루지 못했을 것이다. 인내심 있는 수련생들의 도움 하에 나는 인터넷에 접속하고, 다운로드하며, 프린트하고, CD를 구울 수 있게 됐다. 한 장 한 장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진상자료와 션윈 DVD를 보며 나는 이 영광을 나에게 주신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렸고 내 전부를 다 해서 사부님 말씀에 따라 중생을 구도하리라 마음먹었다.

나는 낮에는 밭일을 하고 저녁에 법공부를 다 마친 후 식구들이 아직 잠들기도 전에 이미 진상자료를 만들기 시작해서 늘 늦은 한밤중까지 했지만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남편은 장이 열려 외출할 때도 진상자료를 갖고 이곳 동네방네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걸어 다니며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면 진상을 알렸다. 나도 어디를 가든 호주머니와 손에 진상자료를 갖고 다니며 가는 곳마다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우리는 장이 열리는 기회를 이용해 대량의 진상지폐를 만들었고 가는 곳마다 사용했으며 매일 나가면 많은 진상지폐를 썼고 또 대량의 새로운 지폐를 바꿔 와서 계속 진상화폐를 만들었다.

이후에 ‘밍후이 주간’에서 핸드폰으로 진상녹음전화와 진상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문장을 보고 우리도 다른 수련생에게 도움을 청해 핸드폰 하나를 구입해 진상전화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배웠다. 장이 열리는 곳은 모두 농촌에 있다 보니 길이 아주 멀었는데 남편이 운전하는 동안 나는 전화를 걸며 서로 아주 잘 협력했다.

우리 가정 수련환경은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농촌이라 일이 많았고 점심휴식시간에 잠시 법공부를 하려 해도 시어머니가 보고 화를 냈으며 발정념을 시작하기만 하면 시어머니가 달려와 좋지 않은 말들을 했다. 어떤 때 수련생이 방문해도 시부모님은 기분이 좋지 않으셨다. 그럼에도 수련생들이 그들을 선하게 대하고 항상 웃으며 대하기에 시간이 길어지자 그들도 받아들이게 됐지만 여전히 그다지 통쾌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시어머니는 탈단했고 대법이 좋다는 것을 믿고 있었지만 시아버지는 매일 어떻게 말해도 다 듣지 않으며 또 우리에게 “조심해라, 밖의 사람들이 알고 잡으러 오지 않게 조심해라. 너희들은 아직 학교 다니는 두 아이가 있지 않느냐”라고 했다. 남편은 그래도 매일 나가서 장사를 하면서 진상을 알릴 수 있었지만 나는 시어머니가 온종일 곁을 지키고 있기에 쉽사리 자리를 뜨기 힘들었고 다만 여름에 장이 열릴 때거나 겨울에 친정에 돌아갈 때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각종 기회를 이용해 구석구석 빼놓지 않고 진상자료를 몇 차례씩 돌렸다. 소모품과 CD 등 진상용 자료를 구입하는데 있어 우리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여태껏 옷 한 벌 사기 아까워했고 옷 한 벌을 수년 간 입었으며 아이들 옷도 모두 다른 사람이 준 것인데 아낄 수 있으면 최대한 아꼈다. 사부님과 대법이 아니라면 이 집은 일찌감치 없었을 텐데 요만큼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후에 사부님께서는 묘하게 우리 집을 도시로 이사하도록 배치해주셨다. 시부모님을 떠나게 되어 우리는 대량으로 법공부를 하고 안심하며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3. 정체에 용해돼 난관을 돌파하고 기술을 배우다

도시에 와서 처음에는 낯설어 나는 스스로 자료를 인쇄하고 배포했으며 매일 나가 진상녹음 전화를 걸고 진상메시지를 보냈다. 남편은 여전히 장에 나갈 때 진상녹음 전화를 걸고 가는 곳곳마다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나는 수련생과의 교류가 없어 오로지 밍후이왕에 접속해 수련생들의 교류문장을 많이 읽을 수밖에 없었다. 수련생들이 각자 용맹정진하며 중생을 구도하는 이야기는 매우 감동적이었는데 자신과의 격차와 집착을 찾으면서 제고가 매우 빨랐다.

나는 기술도 없고 도와줄 다른 수련생도 없었기에 프린터가 고장 나도 수리할 줄 몰랐다. 전화번호도 큰 거리에 나가 하나하나씩 베꼈는데 이후에는 다 쓸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마침 걱정에 빠져있는데 사부님의 배치 하에 도시 수련생을 만났다. 정체에 용해된 후 내 수련의 길 또한 한 계단 높은 곳에 올랐다. 우선 법공부 팀이 생겼고 교류하고 정체적으로 협력하는 환경이 생겼는데 우리 소조의 몇 동수들은 모두 매우 정진했고 모순이 있으면 안을 향해 찾았으며 서로 협력하면서 정체로 제고했다. 70여 세 노년 수련생은 매주 다른 수련생을 데리고 농촌에 가서 자료를 배포했는데 춘하추동, 엄한혹서를 가리지 않았다.

나는 많은 기술과 기능을 배웠는데 이리하여 자료를 인쇄하고 션윈 DVD를 제작하며, ‘9평’을 만들고, 달력을 인쇄하며, 소모품을 만드는 등 수련생들이 무엇을 필요로 할 때 나는 그것을 할 수 있었다. 기술 수련생이 나에게 진상녹음 전화방법을 가르친 후 나도 10여 명 수련생들을 격려하고 도와 녹음전화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들은 대다수가 연세가 많은 노년 수련생들인데 전화 진상도 해보려 했지만 자신감 또한 부족했다. 나는 사부님의 법을 말하며 그들을 격려하면서 인내심 있게 가르쳤다.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 두 번에 안 되면 세 번, 이렇게 줄곧 알게 될 때까지 가르쳤다.

올해 8월, 한 수련생이 나에게 삼퇴를 권하는 절차를 단번에 자동으로 완성할 수 있는 핸드폰을 주었다. 사람을 구하는데 이렇게 좋은 방법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나는 보자마자 눈이 빛났고 다른 수련생들도 보고서는 너무 좋다고 말하며 모두 갖고 싶어 했다. 나는 재빨리 기술 수련생을 찾아갔다. 그의 꾸준한 노력 끝에 이 기술을 배웠고 아주 빨리 더욱 많은 수련생들이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현재 우리 법공부 팀에는 매주 많은 삼퇴성명 명단이 생기게 됐다.

우리 이곳 기술 수련생은 매우 수고스럽다. 많은 수련생들이 그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데 프로그램을 깔아주고 프린터를 수리하기에 너무나도 바쁘다. 그리하여 그는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시간이 부족했다. 기술 수련생은 사악의 박해를 받아 신체가 매우 허약해졌고 늘 피를 토했다. 그를 찾지 않는다면 자료를 만들어 낼 수 없고 그를 찾는다면 또 너무나도 번거로움을 끼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기술 수련생은 아주 힘든 상황에서도 여전히 원망 하나 없이 여러 사람들을 도왔다. 나는 마음속으로 무척 괴로웠다. 자신의 의지하는 마음이 그 수련생을 해쳤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나는 프린터를 수리하는 기술을 배우려고 결심했다. 수련생이 기계를 수리할 때 나는 유심히 보면서 묵묵히 마음속에 기억했다. 먼저 케이스를 해체하고 그 다음 메인보드를 해체하며 다음 전체 기계를 떼어 내어 디스크 드라이버를 해체하고 다시 되돌아 조립해봤다…… 이 과정에서 기술 수련생의 어려움과 고생을 체험하게 됐고 조급한 마음, 자신이 대단하다고 느끼는 마음, 과시심 등등을 닦아 없앴으며 차츰차츰 익숙하게 배울 수 있게 됐다. 이후로 기계의 작은 고장은 나 스스로 모두 처리할 수 있었고 기술 수련생을 번거롭게 하지 않아도 됐다.

나는 또 컴퓨터 프로그램과 핸드폰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을 배웠다. 더욱이 핸드폰 기술은 많은 수련생들에게 정체를 형성해 중생구도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나는 또 기술 수련생을 대신해 일부 일들을 분담할 수 있었으며 그의 압력을 경감시켜 주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주신 지혜임을 나는 알고 있다. 오직 당신이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사부님께서는 무엇이든 다 도와주신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주신데 대해 감사드리며 또 기술 수련생의 사심 없는 도움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

4. 과거의 수련생을 되찾아오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중국대륙에서 온 일부 수련생들을 보고 아직 걸어 나오지 않은 그러한 수련생들에게 속히 걸어 나오게 하고, 그런 방향을 잃은 수련생들을 빨리 찾아서 진상을 말하라고 당부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은 곧 가장 비참한 말로에 직면할 것이다.”[1]

최근 한 수련생이 말하기를 진상을 알릴 때 14년 동안 수련에서 뒤떨어진 부부를 만났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일찍 두 차례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했고 이후에 부인은 3년 불법노동교양을, 남편은 1개월 불법감금 당했다. 현재 남편은 그래도 아직 조금씩 법공부하고 있으나 부인은 이미 사오(邪悟)하여 수련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 수련생이 말했다. “우리 둘이 오늘 오후 그녀 집에 갑시다. 당신이 발정념하고 내가 그들에게 이야기 할게요.” 우리는 큰 수박을 사갖고 그들 집을 방문했다. 남편은 그래도 괜찮았는데 어떻게 말해도 다 들었다. 부인은 하는 말이 온통 헛소리였는데 우리는 그것에 움직이지 않고 사부님께 우리를 가지해 주실 것을 청했다. 우리는 발정념한 후 그들에게 션윈을 보여줬고 1대1로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 그들 마음속 매듭을 풀어주었다. 그 부인은 이전에 함께 수련하던 나날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이튿날, 나는 MP3와 사부님 설법을 준비해 그들에게 가져갔다. 그 부인은 마치 다른 사람으로 바뀐 듯 온 얼굴에 미소를 짓고 말했다. “저는 마침내 알게 됐어요. 당신이 저를 대신해 엄정성명을 발표해주세요. 저는 사부님께서 줄곧 저를 버리지 않았음을 깨달았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당시 나는 깜짝 놀랐는데 그녀가 되돌아옴이 이처럼 빠를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홍대한 은혜의 호탕함에 감격했다. 이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잘 배치해주신 것이었다. 나는 말했다. “당신 두 사람은 법공부하여 재빨리 따라오세요. 사부님께서 줄곧 당신들을 걱정하고 계세요. 절대 사부님의 심혈을 저버려서는 안 됩니다.” 두 사람은 듣자마자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꼭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사부님을 따라 집에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이후에 나는 또 협조인 수련생을 통해 사부님의 모든 설법서적을 한 세트 청해 이튿날 그들에게 가져갔다. 의외로 그들의 딸이 그들이 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반대하는 바람에 남편은 두려워 어쩔 수 없어했고 부인은 “겁내지 말아요. 우리는 반드시 이 관을 넘어야 해요”라고 말했다. 잠시 후 그들의 딸이 건너왔는데 안색이 무척 안 좋았다. 나는 인사를 건네고 나왔는데 마음속으로 그들이 이 관을 잘 걸어지나올 수 있을지 걱정됐다. 이틀이 지나 다시 그들을 보러 갔는데 그들은 관을 뚫고 지나왔을 뿐더러 또 나에게 세 명의 삼퇴명단을 건네주었다. 현재 그들은 매일 노력해 법공부하고 다급히 사람을 구하는데 매주 삼퇴 명단이 있었다.

이 두 수련생의 몸에서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과거 수련생을 되찾아오라고 하신 의의를 깨달았다. 그것은 한 대법제자의 회귀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천체와 무량한 중생의 재생(再生)인 것으로 그들 주위의 무량한 중생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나는 오로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사부님, 사부님께서는 너무나 자비로우십니다. 시시각각 매 한 중생을 마음에 두시고 중생을 위해 끝없는 고생을 겪으셨습니다. 제자는 어떤 때 아직도 많은 사람마음이 있고, 어떤 때 아직도 소극적이고 나태한데, 정말로 이렇게 해서는 마땅하지 않습니다. 제자는 앞으로 반드시 ‘수련을 처음같이 하는’ 열정을 되찾아 사부님께 더 많은 기쁨과 안심을 드리고 걱정을 좀 더 덜어 드리도록 하며,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원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만약 적합하지 않는 곳이 있다면 수련생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랍니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경문: ‘法輪大法 각 지역 설법11-20년 설법’

(밍후이왕 제 11회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4년 11월 12일
문장분류: 밍후이 대륙법회(11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1/12/299780.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4/11/17/146908.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4/11/17/1469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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