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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 신경문을 읽으면서 경사경법을 생각하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의 신경문 ‘2014년 샌프란시스코 설법’이 밍후이왕에 발표돼 처음 읽었을 때 마치 현장에서 사부님의 설법을 듣는 것처럼 심신이 가없는 자비 속에 놓여있었다. 조용히 읽고 있을 때 갑자기 “개인 장사는 당신(你)이 말한 범위에 속하나요?”는 물음을 보았는데 여기에서 글쎄 ‘닌[您-’당신(你)‘의 존칭어]’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니(你)’를 사용했다.

나는 반복해서 이 한 줄을 몇 번이나 봤고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정말 쓰리고 괴로우며 놀란 마음으로 다 읽었다. 그러한 쓰라림과 괴로움은 사부님에 대한 우리의 불손함을 보았기 때문이고 놀라운 것은 대법제자로서 말투가 너무 건방졌기 때문이다. 질문한 사람이 신수련생일 수도 있고 외국어를 번역하는 가운데서 조성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내가 보았으니 우연한 일은 아니다.

단 하나의 단어이지만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중국 대륙에서는 사악한 당(黨) 문화의 해독을 입어 사람들이 잘난 체하고 거만한데 존사경법하지 않는 것이 대륙 수련생 중에서는 개별적인 현상이 아니다. 행동거지에 겸손함과 공경이 부족하다.

또 하나의 보편적인 현상은 수련생들이 대법 책을 함부로 놓는 것인데 법학습이 끝나면 책을 닫는 것이 아니라 엎어놓거나 안경을 책 위에 놓는다. ‘전법륜’을 오래 읽어 낡으면 또 새 책을 구하는데 어떤 사람은 이미 여러 권을 구했다. 지금 각 자료점에서는 기본상 책을 만들 수 있는 능력과 조건이 되기에 새 것을 좋아하고 낡은 것을 싫어하는 마음에 모두들 각 자료점에 새로 인쇄한 한 세트 통합본을 앞 다투어 요구한다. 이유는 이러한 설법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신수련생 외에 우리 지역 노수련생들은 거의 경문 한 편도 빠뜨리지 않았다. 한 장짜리를 보면 되지 않는가? 대법에 대해 이렇게 불경한 것을 볼 때마다 가끔씩 나는 정말 할 말이 없다. 수련생들이 나에게 요구하면 나는 단번에 거절하는데 우리 여기에 누구도 책이 부족하지 않고 나는 대법 책을 만들지 않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새로 법을 얻은 수련생이 책을 구하거나 혹은 확실히 필요할 때는 기꺼이 만들어준다.

수련생들이 헐고 낡은 한 장짜리 경문과 설법을 나에게 돌려줄 때 내가 예전에 법을 얻었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 얻은 첫 번째 대법 책이 바로 수련생이 갖다 준 필적이 반듯하지 못한 수사본(手寫本)이었다. 한 번은 친구가 무심코 첫 페이지에 물을 떨어뜨려 나는 조심스럽게 한 장을 베껴 쓰고는 다시 꿰맸다. 비록 도처에 글씨를 빠뜨리거나 잘못 쓴 부분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진귀한 보물처럼 여겼다. ‘베껴 쓴 책은 인쇄한 책과 동일한 법의 위력이 있다.’[1]는 것을 깊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 자신을 포함해 많은 수련생들이 그렇게 소중히 여기지 않는데 왜냐하면 지금 대법 책 한 권을 얻으려면 너무 쉽고 스스로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대법 책을 얻는데 집착하는데 사실은 새로운 책을 좋아하는 마음이지 법의 소중함과 대법의 소중함을 깨달아서가 아니다. 과거에 소도(小道)에서 수련하는 사람들은 일생을 추구하고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기다리면서 신선이 될 기회를 조금이라도 지체할까 봐 걱정했다. 오늘 대법이 세상에 널리 전해졌을 때 우리가 각종 사람마음을 버리지 않고 중시하지 않는데 절대 신성한 인연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러면 정말로 가슴을 치며 후회할 일만 남길 것이다.

우리 모두 진정으로 사부님을 존경하고 대법을 소중히 여기기를 바란다!

부족한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인터넷에서 교류하고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주)[1]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베껴 쓴 경문의 처리’

문장발표:
2014년
11월
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1/6/29992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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