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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탄광에서 진상을 알리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어떤 때 진상을 알리는 것은 매우 괴로웠다. 어떤 사람은 어떻게 진상을 알려도 삼퇴하지 않으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자주 읽으면 복을 받는다고 알려줘도 태도를 표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법을 잘 배우지 못해 속인의 미시적인 깊은 곳을 감동시킬 수 없었거나 당시 발정념을 잊었거나 자신의 자비가 정말로 부족해 강철을 녹일 수 있는 마음이 없다고 생각해 매우 괴로웠다. 멀리 떠나는 세인의 뒷모습을 보면 매우 괴로웠고 이 사람이 또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길게 탄식했다.

개인 수련이라면 내 앞에 놓인 길은 오직 착실한 수련뿐이다. 고향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우리 마을 사람이 사투리를 말하든 어떤 옷차림을 하든 어떤 풍습이 있든 그들을 한 식구로 생각했다. 진심으로 우리 마을 사람이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다 대법의 구도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랐다. 이곳 사람들을 깊이 사랑하고 있으며 심지어 한 명도 도태되지 않고 다 남길 바랐기 때문에 온힘을 다해 그들을 구했다.

탄광에서 진상을 알리다

밖에서 일하지 않으면 마을에 돌아와 잤는데 현 위원회, 현 정부 610 요원, 국가보안, 향과 마을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우리 집에 와서 소란을 피웠다. 매번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대법이 좋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다 좋다고 하지만 “좋다면 혼자서 집에서 연마해요, 자료를 배포하지 마세요”라고 하고 강제로 무슨 ‘인식’, ‘삼서’를 귀찮게 계속 쓰라고 했다.

2005년 3월, 100여리 떨어져 있는 깊은 산속에 있는 탄광에 가서 일했다. 출근 첫 날, 탄광 궈(郭) 부사장이 우리 집에 와 식사했다. 친구가 이미 그에게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말해줬기 때문에 그는 식사하면서 “파룬궁이 우리 ○○ 탄광에 왔으니 어떤 정도로 선전할지 모르겠네. 국가도 어찌하지 못하는 이렇게 강한 파룬궁에 대해 우리가 무슨 방법이 있겠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늘 읽으면 온 가족이 평안할 것입니다”라고 하자 그는 “봐, 봐, 봐라, 즉시 사람을 ‘미혹’시키는군. 해고하지 않으면 안 되겠어”라고 농담했다. 그러자 모두들 웃었고 나도 웃었다.

출근한지 며칠 안됐는데 탄광 지도자, 간부, 회계, 출납, 안전검사, 가스안전 검사요원 등은 모두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것을 다 알게 됐다. 특히 궈 부사장은 나를 보기만 하면 “파룬궁 왔구나, 파룬궁에 대해 좀 말해봐”라고 했고 사람들도 친절하게 “좀 말해봐요”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공산당의 3반, 5반, 반우파투쟁, 문화대혁명, 6.4천안문 학살사건, 파룬궁 박해를 말해줬다. “공산당이 3년 자연재해 때 사람이 죽지 않았다고 하는데 누가 믿겠어요? 농촌의 넓고 넓은 땅에 어디든 다 배추를 심을 수 있었는데 촌 간부는 정원에 배추 한 포기 심었다고 자본주의 꼬리라고 뽑아버리며 심지 못하게 해서 멀쩡한 사람을 굶어죽였죠, 아니면 농촌에서 어떻게 사람이 굶어죽겠어요?”라고 했다. 생산과장은 “나무껍질마저 다 긁어 먹어도 배불리 먹지 못해 힘이 없었지”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우리 마을 싼마오투이(三毛腿)이란 사람이 바로 멀쩡하게 굶어죽었어요”라고 모두들 너도 나도 한마디씩 공산당의 악랄한 역사를 말하며 취사장의 요리사가 밥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토론했다.

광부는 대다수 쓰촨, 후베이, 산시 사람인데 일한지 3개월도 안 되어 서로 다 알았지만 그들은 내 이름을 몰랐고 내 이름이 ‘파룬궁’인 것처럼 나를 ‘파룬궁’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알려줬고 진상을 알리고 삼퇴하고 평안하라고 했다. 한번 말해서 안 되면 두 번 말했다. 어차피 시간은 많았기 때문이다. 온 탄광 백여 명은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았고 분위기도 매우 화목했다.

가장 감동적이었던 적은 갱에서 석탄을 끌어올릴 때였다. 우리는 삼륜차로 작업장에서 캐낸 석탄을 석탄 창고로 운반했고 석탄 창고로부터 전송대로 위로 올려 보냈다. 만약 정전이 되어 석탄 창고가 가득차면 우리는 삼륜차 시동을 끄고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 한번은 석탄 창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있었는데 멀리서 당번 반장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묻자 그는 “가자, 석탄창고로”라고 말하며 끌고 갔고 또 모든 노동자를 석탄 창고로 불러 모았다.

석탄 창고에 가보니 탄광 안전 검사원, 가스 안전 검사원, 전송대 관리원, 기록원 등 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들의 손도 얼굴도 몸도 까맸지만 눈은 흰색이었다. 당번 반장은 “누구도 말해서는 안 된다. ‘파룬궁’이 말하는 것을 들어라”라고 하자 광부들은 매우 조용했다. 나만 서 있으니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고 이것은 역사의 책임과 의무가 나를 진상을 알리는 무대로 밀어 올려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조용히 듣게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산당의 살인역사, 대법의 아름다움, 위대하신 사부님의 자비로움,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을 말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친절했는지 자신도 몰랐다. 우렁찬 목소리, 광부 형제들의 진심어린 눈빛은 어제처럼 영원히 기억이 생생하다.

정념

99년 7월 중국공산당의 박해가 시작되자 나는 수련생들과 함께 여름이든 추운 겨울이든 오토바이를 타고 향진의 마을에 진상자료를 대량 배포했고 마을마다, 사람 개개인의 손에 배포해주고 싶었다. 천천히 일하려는 마음이 생긴 결과 두 차례 불법적으로 현 구치소에 수감됐다. 한동안 조용했다가 또 교란이 일어나곤 한다. 탄광 사장이 두 번이나 나를 해고하려 했는데 탄광 부사장이 동의하지 않는 바람에 해고당하지 않았다.

2007년 7월 1일, 탄광 사장은 회의에서 “반드시 ‘파룬궁’을 해고해야 한다. 내 탄광인데 내가 결정을 못하겠느냐!”라고 했다. 사장은 매우 행패를 부렸고 진상을 믿지 않았다. 부사장은 “왜 하필 임시공 하나를 해고시켜야 합니까?”라고 하자 사장은 현 간부의 의견이라고 했다. 아내는 비록 연공하지 않지만 나를 매우 지지했다. 해고당했다고 알려주자 아내는 “왜 당신을 해고하죠?”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그렇죠”, “안돼요. 파룬궁을 연마하면 돈 벌 수 없고 굶어죽어야 합니까! 울분을 풀어야 해요. 그들에게 그런 법이 어디 있냐고 물어봐요”라고 했다. 속으로 ‘당신의 의지가 강하면 난 당신보다 더 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7월 2일 오전, 자전거를 타고 국가보안 대대장을 찾으러 공안국에 갔다. 그는 많은 진상자료를 봤었고 우리도 줄곧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국가보안 대대장은 사무실에서 나를 보더니 “뜻밖이네요, 무슨 일인가요?”라고 했다. “탄광에서 일하는데 탄광 사장보고 절 해고하라고 했나요? 왜 해고해요? 제가 무슨 법을 위반했나요?”라고 하자 국가보안 대대장은 멍한 표정으로 “정말 모릅니다. 진짜 탄광 사장에게 당신을 해고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조용히 탄광에서 일하면 현에 번거로움이 없어 우리도 바라는 것인데요”라고 했다. “대대장이 아니면 공안국 국장이겠죠”라고 하자 대대장은 “공안국에서는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았어요. 현위원회 610주임에게 가서 말해봐요”라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자전거를 타고 현 정부로 갔다. 5층 610사무실의 문을 두드리자 610주임이 나오더니 “대대장이 금방 전화했어요, 구체적으로 한 번 말해봐요”라고 했다. 나는 소파에 앉아 말했다. “탄광 사장은 저를 해고하고 610사무실의 지시라고 해요. 국가보안 대대장에게 물어봤더니 공안국에는 그런 규정이 없지만 현 610사무실의 지시일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제가 무슨 법을 위반했길래 해고시킵니까?” 610주임은 “모르는 일입니다. 탄광 사장보고 당신을 해고시키라고 지시한 적이 없지만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는 알아봐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610주임은 즉시 탄광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이얼을 누르고 “여보세요, 여기는 현위원회 사무실 부주임 겸 610 사무실 주임인데 몇 분이면 됩니다. 왜 파룬궁 수련자를 해고했어요?”라고 했다. 탄광 사장은 “그것은 진 서기, 진장(鎭長), 진 인민대표대회 주임의 지시입니다. 진과 마을에 파룬궁 전단지가 너무 많아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워한다고 했어요”라고 했다.

시간이 있으면 오토바이를 타고 각 마을에 가서 진상자료를 배포했고 온 현 10여명 인민대표대회 주임이 다 현에 있기 때문에 거기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깊은 산속마을에 수련생이 나 혼자뿐이기 때문에 진상을 알리고 배포하는 것은 나의 책임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주임이 “진 간부의 의견입니다”라고 하자 나는 “주임님이 저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온 가족의 생계가 달렸습니다”라고 했다. 주임은 즉시 진장(鎭長)에게 전화했는데 “이 몇 년 동안 진과 마을에 파룬궁 자료가 너무 많아 문제가 생길까 봐 탄광 사장보고 그를 해고시키라고 했어요”라고 했다. 주임은 “증거가 없으면 해고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했고 진장은 “며칠 후 탄광을 찾아가 말해보겠습니다”라고 했다.

주임은 이것은 진장이 핑계를 대서 거절하는 것이라 방법이 없다고 했다.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도 밥을 먹어야 합니다!” “탄광을 관리하는 현장을 찾고 사람을 610사무실에 보내 물어보겠어요. 꼭 해결해주겠으니 먼저 집으로 돌아가요”라고 했다. 나는 “그래요,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주임은 “당연한 일이죠”라고 했다.

7월 9일, 또 610 사무실 주임을 찾아갔다. 주임은 “부 현장이 해결해준다고 했고 시 610 사무실도 갔어요. 시에서도 이 일을 매우 중시하고 있으니 즉시 해결될 겁니다. 며칠 지나면 현에서 인민대표대회 회의를 한다고 하는데 그때 진 서기, 진 주임과 말해보고 탄광 사장도 회의하러 오니까 꼭 해결해 줄 겁니다. 먼저 돌아가 며칠 기다려요”라고 했다.

10여일 지난 후 대법 진상을 또 알리러 610주임을 찾아갔다. 주임은 착한 사람이지만 대법에 대해 태도를 밝히지 않았다. “진 간부와 만났는데 탄광 사장이 태도를 밝히지 않는다고 합니다. 계속 말해볼게요”라고 했다.

7월 20일 나는 또 현 위원회 610주임을 찾아갔는데 사무실에 없었으므로 오토바이를 타고 진 사무실로 갔다. 경비원이 “누굴 찾으세요?”라고 물었다. “서기를 찾아요.” “사무실에 안 계세요.” “진장은요?” “안 계세요.” “주임은요?” “안 계세요.” 그의 말이 믿어지지 않아 2층과 3층으로 올라가 서기와 진장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는데 정말로 없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7월 25일, 또 현 위원회 610 주임을 찾아갔는데 사무실에 없었다. 그리하여 현장 사무실로 찾아갔는데 현장도 없었다. 또 현 위원회 서기 사무실로 찾아갔는데 주임이 몇 사람과 무엇인가 상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를 보더니 주임은 610사무실로 나를 데려가 말했다. “간부들이 탄광 사장과 말해봤는데 해고는 진의 결정이라고 당신이 탄광에서 일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또 이랬다저랬다 하면 전혀 간부답지 않아 이후에 탄광을 이끌기 어렵다고 말했어요. 탄광 사장이 독립적으로 경영하기 때문에 진에서도 방법이 없어요. 진장은 이렇게 번거롭다는 것을 알았으면 관여하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했어요.”

‘대법제자가 이렇게 만만한가?! 차 버리고 싶으면 차는 축구공인가?!’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당신들만 찾겠어요. 몇 년 전에 당신들이 저를 찾았는데 이번에는 제가 질질 끌 것입니다. 어차피 시간은 많거든요”라고 했다. 주임은 “며칠 후 꼭 해결해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610주임은 매번 해결해준다고 했지만 해결해주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말하자 아내는 하하 웃으며 “하하…… 그들이 무슨 시간이 있다고 당신과 놀겠어요!”라고 하자 나도 웃었다.

7월 30일, 또 610 주임을 찾아갔다. 주임은 “현 지도자가 탄광 사장과 이야기하려고 하니 며칠 후 소식을 줄 겁니다”라고 했다. 나는 “더 이야기하지 마세요, 탄광에서 일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주임은 “다른 곳에서 일해도 좋죠. 어디에서 일하든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라고 했다. 나는 “내일 베이징 민원실에 가서 진 서기, 진장, 진 인민대표대회 주임을 고소할 것입니다. 국가 민원실에서 고소하지 못하게 하면 천안문 성루에 올라가겠어요”라고 말하고 문을 열고 훌쩍 나와버렸다. 차를 타고 금방 집에 도착했는데 610주임의 전화가 왔다. “내일 탄광에 출근해요. 정법위 서기가 탄광 사장에게 압력을 가했는데 탄광사장이 복직시키지 않을 수 있겠어요?”라고 했다. 나는 주임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이튿날 오토바이를 타고 100여리 떨어진 탄광으로 출근했다. 탄광에 도착했을 때 마침 점심식사 시간이라 식당에 갔는데 부사장, 생산팀장, 당번팀장, 탄광 주요산부들은 내가 출근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웃으면서 “파룬궁이 또 왔네!” “파룬궁이 또 출근했네!”라고 했다.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다

2008년 사당의 올림픽이 개최될 때, 탄광은 7월부터 생산을 중단해 노동자들은 다 집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나도 시내로 돌아와 삼륜 오토바이를 사서 택시기사를 했다. 이것은 대면 진상을 알리는 기회였다. 사부님께서 이 일을 하라고 하셨으니 꼭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상을 알리는데 사람마다 자신만의 방법이 있는데 나도 마찬가지다.

한 번은 두 젊은 여자가 차를 탔는데 전신국에 간다고 했다. 나는 먼저 발정념하고 그녀들 배후의 사령을 제거했다. 그리고 “학생이에요?” “대학졸업생이에요.” “입당한 적이 있나요?” “공청단에 가입한 적은 있어요.” “신청서를 썼나요?” “네.”, “맹세, 공산당 조직에 가입하겠다고 맹세한 적 있죠?” “네.” “함부로 맹세해서는 안돼요. 고대부터 맹세하면 운명을 같이 한다고 해요, 당송원명청, 어느 조대든 멸망할 때가 있는데 맹세했으면 공산당이 멸망될 때 따라서 죽는 것이 아니겠어요? 타이타닉처럼 1등석이든 중등석이든 하등석이든 배는 침몰될 운명이니 배를 타지 않아야만 평안하니 당단대에서 탈퇴한다고 맹세해야만 평안한 것이 아니겠어요?” “네, 이치가 있네요, 어떻게 탈퇴하죠?”, “융핑(永平)이란 이름을 지어 줄테니 진심으로 탈퇴하기만 하면 된답니다. 머리 석자 위에 신령이 있으니 신은 알죠.” “네, 탈퇴시켜주세요. 여동생도 탈퇴시켜주세요.”, “좋습니다, 여동생에게는 무슨 이름을 지어줄까요?”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융푸(永福), 영원히 행복하라고 해요”라고 언니가 말했다. “좋아요, 융핑, 융푸, 평안과 행복”이라고 하자 두 자매는 빙그레 웃었다. “좋은 사람이니 평생 평안하고 성실하고 착하고 참고 양보하길 희망해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늘 읽으면 평생 평안할 겁니다.” “네.” 나는 또 천안문 분신자살에 대해 말해줬다. 전신국에 도착하자 자매 둘은 기쁘게 내렸다.

또 한 번은 한의원에서 한 여자애를 봤는데 내 차를 보더니 웃으며 손을 저었다. 차에 오르자 어디 가는지 물었더니 버스정거장까지 간다고 했다. 알았다며 “학생이죠, 어디서 공부해요?”라며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여자애는 웃으면 말하지 않았다. “입단했어요? 절대 당단대에 가입하지 말고 탈퇴해야 해요. 당단대에서 탈퇴해야만 평안해요.” “아저씨, 이미 두 번째 말해줬어요. 이번이 세 번째예요”라고 했다. 그제야 어찌 된 일인지 알았다. “모르겠는데요?” “아저씨는 저를 못 알아보지만 전 아저씨를 알아요.” “탈퇴했어요?” “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자주 읽어요.” “네.” 나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가 몇 번이나 있었다. 대법 진상이 이미 그녀들 마음속에서 뿌리를 뻗은 것을 보고 매우 감동했다.

차를 탄 학생 몇 명에게 진상을 알려준 적이 있다. “천안문 분실자살 사건 알아요?” “알죠, 파룬궁” “그것은 파룬궁을 연마하는 진짜 제자가 아니고 공산당이 사람을 찾아 파룬궁인 척하고 파룬불법(法輪佛法)을 모욕하고 죄를 뒤집어씌운 겁니다. 천안문 분신자살한 그 왕진둥(王進東)이란 사람의 온몸이 탔는데 머리카락만 타지 않았어요”라고 하자 학생들은 하하 웃었다. “허난 노인 몇이 베이징 역전에서 내려서 어디에 가서 휘발유를 사요? 베이징 싼환로(三環路)내에는 주유소가 한 집도 없는데 에어버스가 주유해줬을까? 노인들이 콜라병을 든 손을 하늘로 뻗어 에어버스가 와서 주유하길 기다렸다가 가득 주유하고 천안문에 가서 분신자살했을까요?”라고 하자 학생들은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아니면 중앙에서 노인들을 일부러 파견해 파룬궁인 척하고 허난에서 베이징까지 기차를 타고 오게 한 거겠죠. 그러니 사람마다 휘발유 한 통을 갖고 기차에 탔는데 경찰은 막지도 않고 기차에 온통 휘발유 냄새가 나는데도 경찰은 냄새를 맡지 못하고 검사하지도 않아서 승객들은 다 달아나고, 남은 몇 명 노인을 특별 대우해준 거겠죠”라고 하자 학생들은 더욱 웃었다. “파룬궁은 ‘진선인(眞善忍)’을 논하고 좋은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며 전 세계에 널리 전해졌어요. 그것은 불법(佛法)이에요. 신불(神佛)이 보호해주니 늘 읽으면 복 받죠. 그렇지 않겠어요?” “예, 예.” “공청단에 가입한 적이 있어요?” “가입한 적이 있어요.” “신청서를 써봤어요?” “네.” “그것이 다 맹세니까 당단대에서 탈퇴한다고 맹세해야만 평안을 보장할 수 있어요.” “어떻게 탈퇴해요?” “진심으로 탈퇴하겠어요?” “네.” “이름을 뭐라고 할까?” “룽룽(龍龍)” 또 하나 있었는데 이름을 잊었지만 다 탈퇴했다.

대면 진상을 알리면 사람의 관념을 타파하고 그들의 선량한 마음을 계발할 수 있다. 이치로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있어 대부분 사람은 지지했는데 어떻게 말해도 삼퇴하지 않고 ‘진선인(眞善忍)’이 좋다고는 하지만 탈당하지 않는 친구도 있다. 대법제자로서 진상을 널리 알리는 것은 자신의 의무와 책임이므로 노력해서 잘해야 한다.

맺음말

우리 집안은 남매 다섯이었는데 어릴 적부터 가정이 가난했고 지금 사십이 넘었는데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돈도 없고 집도 없다. 어떤 때 결혼식에서 친구, 동창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은 다른 사람과만 말하고 나에게 얼굴을 돌리지 않고 나를 무시해 어떤 때는 마음속으로 매우 열등감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가장 큰 자비심으로 그들에게 먼저 말을 걸었고 진상을 알렸다. 그들은 입으로 내 말을 믿는다고 했지만 진짜 믿는지는 알 수 없어 집에 돌아오면 매우 괴로웠다. 사부님께서 설법 중 “며칠 좀 묵었다가 총총히 간다.”[1]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실천 중 며칠 좀 묵는 기간에 사부님을 확고하게 믿고 대법을 확고하게 믿으며 노력해 대선대인(大善大忍)의 흉금이 있는 대법제자가 되어 세인을 구도하겠다. 어떤 때 나도 눈물을 흘리지만 간난신고 14년 반박해 중, 조사정법의 홍류(洪流) 중 미래에 이것은 휘황찬란한 한 페이지라는 것을 믿는다. 사부님을 따라 함께 걸어온 길이기 때문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밍후이왕 제10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3년 11월 1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0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18/281586.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3/11/28/1434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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