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점오상태에서 본 장기 병업(12)

글/ 대륙대법제자 홍원

[밍후이왕] (전문에 이어)

18, 인생의 처지가 아주 순탄하고, 고생을 견디는 능력이 부족하며, 고생을 겪는 내포를 이해하지 못해 작은 난이 큰 고비로 되다.

큰 고생을 겪어보지 않으면 고생을 견디는 능력이 안 된다. 이러한 수련생은 대법 수련 중의 고생을 겪는다는 내포를 깊이 이해하기는 아주 어렵고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정진요지-경지)의 경지에 도달하기 어렵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하신 말씀 “心性(씬씽)은 德(더)[德(더)는 일종 물질이다]를 포괄하고; 참음(忍)을 포괄하며; 깨달음(悟)을 포괄하고; 버림(捨)을 포괄하는데, 속인 중의 각종 욕망과 각종 집착심을 버리는 것이며; 또한 고생을 겪을 수 있어야 하는 등등 여러 방면의 것을 포괄한다.”를 읽기도 했지만 얼마 안 지나면 고생을 겪는 것 역시 씬씽의 중요한 부분임을 잊어버린다.

나는 이러한 수련생을 보았다. 비슷한 병업 현상이 나타났을 때 다른 수련생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여전히 법 공부, 연공을 견지하면서 버텨 2, 3일이면 곧 지나가 버렸지만, 그녀는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거나 누워 있으면서도 책을 보지 못하고 그저 법을 듣기만 한다(정신은 쉴 새 없이 다른 데 가 있다). 열흘, 반달씩 끌다가 나중에는 견뎌냈다. 하지만 이 부분 병업을 소멸했으나 사상은 승화되지 못했고, 고생을 낙으로 삼는 경지와는 반대로 멀어졌다. 여전히 고생에 부딪히면 원망심이 생기고, 고생 중에 위덕을 쌓는 것을 교란으로, 박해를 받는 것으로 여겨서 심성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다음번에 똑같은 마난이 또 오고, 쌓일수록 커져서 나중에는 작은 고비가 큰 고비로 되어 버린다.

고생을 참으며 고비를 넘지만 심성을 제고하지 않는 이런 방법은 과거의 세간소도와 같은 것이지 직지인심인 대법수련이 아니다. 고생을 견디지 못하는 그녀의 이런 마음은 세간소도보다도 못하고 법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수 없으며 장기간 감성적 인식에 머물러 있게 된다.

고생을 견디지 못하는 이런 사람(수련하지 않는 속인도 마찬가지)의 가장 직접적인 후과로는 바로 자신의 아이를 응석받이로 나쁘게 키우고 심지어 어린이 제자를 망치게 된다는 것이다.

19, 지나치게 자식의 응석을 받아주고 귀여워하는 중, 노년 수련생

최근 듣자니 한 중년 수련생이 병업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구세력이 그녀를 박해한 구실을 보여주셨다. 그 중 한 가지가 놀랍게도 지나친 사랑 때문에 대법제자를 망친 것이었다.

수련생이 자세하게 그녀의 상황을 소개했다. 나는 들으면서 추적조사를 해보았다. 이 문제가 비교적 전형적일 뿐만 아니라 또한 아주 보편적 현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앞으로 더 깊은 교류를 할 것이지만, 여기서 먼저 간단히 언급하겠다.

그녀의 딸은 근기가 아주 좋아 인간에 와서 법을 얻고 정과를 얻을 그런 사람이었다. 전형적인 표현으로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학업을 팽개치고 엄마에게 이끌려 천안문에 가서 대법을 실증하였던 것이다. 그녀도 큰 고생을 겪었고, 가정환경이 부유하지 않아도 그녀는 될수록 딸을 고생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부님이 ‘전법륜’에서 하신 “누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서, 부모에 대해, 자녀에 대해서도 모두 잘 대하고, 곳곳마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 말씀을, 아이를 고생시키지 않고 손해 보지 않게 하는 게 아이에게 좋은 것으로 이해했다. 하여 곳곳에서 아이를 고려하고, 될수록 아이의 요구를 만족시키면서 무엇을 요구하면 될수록 만족시켰다. 자신은 아껴먹고 아껴 쓰면서 아이만큼은 억울함을 당하지 않게 했다. 기점이 속인의 가장 차한 지나친 사랑의 경지(속인은 아이를 받들어 키우는 것은, 아이를 해치는 것과 같다고 한다)에 있었고, 고층차에서 보면 바로 좋고 나쁨을 가리지 못했다. 아이는 ‘홍음’ 중의 ‘고생을 낙으로 삼다’를 외웠지만 겨우 입으로만 이해했을 뿐 동화되지는 못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무엇을 하고 싶다고 해서 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 그녀가 양성해 낸 아이는 무엇을 하고 싶으면 무엇을 하고야 마는데 제멋대로다! 어렸을 때에는 ‘홍음’을 외울 수 있었지만, 그러나 어려서부터 먹기를 좋아하고 노는 것을 탐했으며, 게으르고 향수를 누려 커서는 이제 수련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고생을 너무 크게 겪는다면 당신은 곧 수련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조그마한 고생이고 작은 업력 덩어리이지만 이런 아이들로 말하면 바로 큰 고생인데 어찌 수련하겠는가? 하물며 그녀는 병업으로 사망했으니 아이에게 심리장애를 조성한 것이다. 금세에 이 아이가 다시 대법으로 들어가기가 너무너무 어려운 것이다. 이후의 환경은 그렇게 큰 압력이 없을 것인즉 돌아갈 조건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렇게 큰 대근기의 각자가 이처럼 사람 중에서 망가지게 됐으니 죄업이 크지 않는가? 실제로는 수련생을 망가뜨린 것과 마찬가지이다. 단지 ’선‘이란 방법을 썼을 뿐이지만 이런 ’선‘은 조금 높은 경지에서 보면 선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예전에 아주 정진하던 어린이 제자가 크니까 정진하지 않으면서 수련하는 둥 마는 둥했다. 심지어 법 공부도 연공도 하지 않는데 모두 수련생들의 속인 관념의 오염으로 초래된 것이다. 가정환경이 보통인 수련생에게는 이런 상황이 비교적 적고 가정환경이 부유한 수련생에게 비교적 보편적으로 나타났다.

많은 중, 노년 수련생은 자녀를 응석받이로 키우고도 자신은 승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법에 대한 이해가 속인에 머물러 있을 뿐만 아니라, 표준을 가늠하는 것도 속인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법 공부하고 정진한다는 것은 형식일 뿐이고, 법리적으로 정진하지 못하고, 이성적으로 승화하지 못하며, 자신의 병업도 수차례 되풀이 된다. 게다가 어린이 제자를 잘 이끌지 못한 죄과로 병업은 정말로 넘기 어렵다. 반드시 속인의 관념을 근본적으로 개변하는 게 비로소 수련이다

(계속)

문장발표 : 2014년 10월 2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0/23/299247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