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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인은 법을 실증할 책임밖에 없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내 주위의 수련생들이 일부 병업 현상이 나타났다. 법을 얻은 지 17년 되는 50여 세 되는 한 노수련생이 눈과 귀가 어두워져 션윈 시디도 볼 수 없게 됐으며, 50세가 채 안 된 또 한 수련생은 때 이르게 뇌혈전 증상이 나타나 약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두 사람의 병업은 모두 2년이 넘게 지속했다. 이 상태를 보고 나는 마음이 조급해 한동안 사람 마음으로 그녀들에게 관심을 기울였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사람 이치로 말하면 말할수록 더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게 되므로 나 자신마저도 그 속에 빠져들었다. 그들의 집착에 집착하면서 그걸 지적하고, 여러 번 그들을 향해 “사부님의 법리요구에 따라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는데, 그들이 별다른 개변을 보이지 않자, 나는 나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그들을 자꾸 원망했다. 한 번은 수련생이 “급하게 한다고 해도 소용없다. 무엇이나 다 과정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나는 “얼마를 더 기다려야 제거할 것인가? 집착을 넘기는 시간을 인위적으로 끌지 마라.”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밍후이왕에서 적지 않은 수련생이 쓴 ‘주위 수련생이 병업을 넘지 못할 때 안으로 자신을 찾은 체험문장’을 보고 많은 계발을 받았다. 나는 즉시 나에게 수련생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마음을 찾았다. 수련생의 장점을 보지 않고 수련생의 장기간 있었던 결점만을 보았다. 나는 나의 장점과 수련생의 단점을 비교하면서 수련생이 고생하기 싫어한다고 지적했는데, 수련생에게 내가 겪었던 예까지 들면서(두 번 넘어졌을 때 한 방법) 어떻게 나 자신의 말대로 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는 분명하게 자신을 과시하는 것이고,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 자기를 실증하는 마음은 겉으로 ‘수련생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엄밀하게 감춰져 있어서 법리를 똑똑히 보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나만이 옳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미 내가 난관을 잘 넘겼으니, 수련생들이 나를 배우라고 선양한 것이었다.

여기까지 쓰고 나서 나도 모르게 사부님의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사실 속인 중에서 좋은 사람이 되려면 영웅 모범인물을 본보기로 하는데, 그것은 속인 중의 본보기다. 당신이 수련자가 되려고 하면, 전적으로 당신 자신의 그 마음에 의거해 닦아야 하며, 전적으로 당신 자신에 의거해 깨달아야 하는데, 본보기가 없다.” (‘전법륜’) 법에 비추어 볼 때 나의 이런 수법은 또 무엇인가? 이는 분명하게 나 자신을 본보기로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병업을 넘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이 나보다 못한가? 이는 수련생을 얕보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과시심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자신을 과시하는 것은 전형적인 당문화의 표본으로 겉만 번지르르하게 과장한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착실하게 수련할 것을 바라신다! 수련생들도 여러 번 내가 넘어져 허리를 다쳤지만 법공부가 따라가고 심성 제고가 빨라 3, 5일 만에 나았던 사실을 부러워했기 때문에, 나는 이걸 수련생에게 말하는 자본으로 여기며 아무 때나 다른 수련생에게 말하면서 참고로 삼게 했다. 법리를 제대로 말하지 않고 자신을 본보기로 하는 마음이 바로 승부욕이 강한 쟁투심이 아닌가? 이건 무슨 좋은 것이 아니므로 빨리 그것을 해체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수련인에게 주신 것은 생명궤적의 변화이지만, 낡은 우주의 이치와 구세력이 사람에게 배치한 생명규칙은 노, 병, 사 이런 생명궤적이다. 그것들이 지키는 규칙이 바로 이것이고 그것들은 그것들이 도태하고자 하는 사람을 도태시킨다. 그럼 대법제자가 병업에 걸렸을 때 우선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그것을 승인하지 않고, 법을 실증해야 하며 당당하게 법을 실증해야 한다. 조금도 에누리 없이 법을 실증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주신 고층차 법리로 대법을 실증해야지, 초등학교 교과서를 가지고 그 층의 법리로 고층차를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

우린 법을 위해 왔는데 사부님과 서약이 있다. 우리 신체의 모든 부분, 모든 세포는 모두 법을 실증하기 위해 왔다. 법을 실증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니, 낡은 세력의 노, 병, 사에 겁먹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진정한 수련인을 제약하지 못한다. 우리 심성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고층차 법리 요구에 도달하면, 대법의 위력이 펼쳐질 것이다. 대법수련은 생명궤적을 개변하여 운명을 개변한다. 병업을 넘는 것을 자신의 감각에 그치지 말고, 법 실증과 개인 병업 난관을 구분하여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일체다. 병업 난관을 넘는 과정이 바로 법을 실증하는 과정이며 법을 실증하는 것은 우리 책임이고 서약의 완수다.

개인 층차에서 깨달은 것이니 적당하지 않은 점은 수련생께서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4년 9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9/28/29698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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