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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을 바꾸고 바른 법리에 따라 수련

글/ 랴오닝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시골 대법제자이며 2007년 1월에 법을 얻었다. 몇 년 전에는 하는 둥 마는 둥 법공부도 적게 하고 연공도 몇 번 해보지 못했다. 2009년에는 거의 대법에서 벗어났는데 사부님께서 홍대하고 자비로워 끊임없이 나를 점화해 주시고 나를 우매함 속에서 깨우쳐주셨다.

아래는 2년간 수련 중에서 일부 관념을 바꾼 경험을 글로 적어 사부님께 보고하고 수련생과 교류하겠다. 법에 있지 않는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기를 바란다.

관념을 바꾸고 두려운 마음을 제거, ‘증거’가 아니고 ‘법보’다

부친 수련생은 납치당한 적이 있어 내가 박해 받을까 봐 마음이 무거우셨다. 나는 일찍이 인터넷에서 음성전화 항목을 맡았다. 스스로 강좌를 다운해 배우기로 했다. 하지만 안전 규칙을 보고 놀랐다. 핸드폰 인증번호를 바꿔야 하는데 노트북을 갖고 집 멀리 가야 비로소 안전하다고 한다. 시골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노트북을 메고 나가면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차가 없어서 멀리 가지도 못하고 그때 또 능력에 한계가 있었다. 이 작은 가정 자료점도 바쁘기에 배우지 않았다.

이후에 음성전화가 우리 지역에 널리 보급되고 일부 수련생도 전화를 걸 수 있었다. 하지만 인증번호를 바꿀 줄 몰라 내가 바꿔줘야 했다. 나는 인증번호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두려운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어려웠다. 방법이 없이 눈 딱 감고 집에서 바꾸기로 했다. 처음에 전화를 걸 때 자주 문제가 생겼다. 거의 매일 수련생이 나를 찾아와 핸드폰을 수리했다. 게다가 대다수 수련생은 핸드폰 안전 덮개를 씌우지 않고 우리 집에서 핸드폰을 사용하고 더욱 심한 것은 직접 우리 집에 전화를 건다. 수련생에게 주의하라고 알려줘도 듣지 않는다. 표면상 나는 침착하게 수련생에게 핸드폰을 조정해 주고 인증번호를 바꿔주지만 마음속으로 갈수록 더욱 두렵고 압력은 더욱 컸다. 두려울 때 배후 일종 물질이 있는 느낌이며 당황하고 숨쉬기도 어려웠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친척 한분의 입을 빌어 나에게 두려운 마음은 자신이 아니라고 점화해 주셨다. 마음속으로 좀 편안했다.

얼마 후 현지에 자료점을 세웠다. 협조인은 일부 소모품을 우리 집에 두었다. 소중한 프린터를 건드리면 안 되기에 작은 방에 놓았다. 속으로 ‘어쨌든 빨리 가져가겠지’라고 생각했다. 며칠 후 협조인 수련생은 사당이 또 박해를 해 물건을 잘 보관하라고 하고 그들도 주간은 모두 숨기고 ‘전법륜’만 남겼다고 했다. 마음속으로 ‘당신들은 다 배치하고 나는 어떻게 하라고?’라고 생각했다. 방에 있는 설비를 보고 수련생에게 물었다. “물건을 가져갑니까?” 그녀는 먼저 가져가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수련생이 어려워하는 것을 알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날 하루 나는 압력이 아주 컸다. 수련하지 않는 남편이 불난 집에 부채질 하듯이 말했다. “누가 우리 집보다 물건이 많지! 컴퓨터, 프린터, 자료, 창고에 또 몇 개 위성접시가 있지!(NTD 위성접시를 가리킨다.) 만약 누가 우리 집을 수색하면…” 나는 “무슨 근거로 수색해요!” 이렇게 입으로 말했지만 가슴은 두근거렸다.

자신을 반드시 한번 조절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선 물건은 어디로 숨길 때가 없다. 어떻게 대면해야 하는가? 나는 자문했다. ‘왜 두려워하는가? 왜냐하면 몇 대 프린터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인쇄한 자료를 왜 두려워하는가? 이것은 모두 증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어느 법률이 이 물건들이 위법이라고 규정했는가? 이왕 없으면 사람의 이치에서 봐도 나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더욱이 이것들은 모두 사람을 구하는 법기, 법보(신통한 보물)이며 금빛 찬란해 사악을 물리칠 수 있다. 마땅히 영광스럽다고 생각해야 한다. 더군다나 자료점은 사부님께서 중점 보호하는 장소다. 사부님이 계시는데 두려워할 이유가 있는가?’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했다.

이후 매번 소문이 나돌기만 하면 나는 이 일념을 지키고 ‘이것은 사람을 구하는 법보다. 사악이 박해하는 증거가 아니다. 박해는 나와 관계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속으로 갈수록 평온했다.

내가 정진할수록 남편은 더욱 기뻐하다

나와 남편은 작은 장사를 한다. 매일 생활은 바쁘다. 때로 수련생이 우리 집에 와도 남편은 불쾌해했다. 내가 장사를 하는데 방해한다고 생각했다. 자주 협조인과 접촉해 본 지역에 보편적으로 정진하지 않는 상태를 아주 똑똑히 알고 있었다. 나는 줄곧 정체에 조급해한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본적이 없다. 단지 집에서 자료를 좀 만들고 나가서 수련생과 교류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원인은 간단한데 ‘자신은 잘 수련하지 못한다! 게다가 집의 장사도 떠날 수 없고 아이도 작고 돌봐주는 사람도 없다.’ 시간이 길어지자 이런 두문불출 상태에 적응돼 어찌해도 정진하지 못했다.

작년 8월 어느 아침, 나는 ‘진수’ 경문을 외웠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나의 정진하는 마음을 보시고 현성(縣城: 현소재지)에 가서 수련생과 교류하는 것을 배치하셨다. 외지 수련생은 중점으로 관념을 바꾸고 어떻게 반(反)박해를 하는 것을 말했다. 나는 이런 순정한 마당에서 나는 참을 수 없어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수련생이 “가족의 교란으로 정진하지 못하는 수련생을 말할 때 법정인간일 때 당신의 가족은 무엇을 대면하겠는가?” 이때 나는 깨어났다. 자신이 이전에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면 늘 가족의 감정을 고려했다. 남편은 자주 불쾌함을 표시했다. 그래서 나는 남편 말을 따랐다. 마치 그를 위해 생각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의 미래를 해치는 것이다! 기왕 가족이 나와 함께 법을 위해 온 생명이라면 오늘부터 관념을 바꾸고 자신의 일념을 ‘내가 정진할수록 남편은 더욱 기뻐한다!’로 정했다.

교류는 오후 3시에 끝났지만 이미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가 없었다. 나는 택시를 타고 가려 했다. 수련생은 차를 몰고 우리 진(鎭)에 가서 교류를 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밥을 먹고 함께 갔는데 이미 6시가 넘었다. 수련생은 우리 집에서 교류를 하면 되느냐고 물었다. 우리 집에 여태껏 이렇게 갑자기 많은 수련생이 온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모든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머리는 텅 비였다. 나는 평온하게 전화를 걸어 남편에게 “아이가 시끄럽게 했나요?”라고 물었다. 남편은 괜찮다고 했다. 나는 “당신 집을 좀 정리해 주세요.” 그는 수련생이 오는지 알고 통쾌히 응했다. 전혀 불쾌한 기색이 없었다. 이전이라면 분명히 꾸지람을 했을 것이다. “당신 정신 나갔어? 아이가 하루 종일 젖도 먹지 못했고 나는 일하며 아이도 봐야 하는데 당신 저녁 또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오다니, 당신 정말 잘하네……”

집에 온 후 남편은 친한 친구처럼 수련생과 열정적으로 인사를 했다. 내가 아이에게 젖을 주고 그는 자발적으로 아이를 돌봤다. 밤 11시에 수련생이 떠났다. 남편은 다음날 일찍 일어나 물건을 팔아야 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는 원망도 없었고 타고 온 봉고차는 내가 200위안을 지불했는지 오해를 했지만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이후 나는 매일 바쁘다. 자주 아이를 돌보며 집안일을 할 때 수련생이 나를 찾아와도 남편은 늘 “당신 빨리 가요”라고 했다. 그는 혼자 아이를 보며 일을 했다. 나는 밥 먹는 것을 잊고 남편에게 밥을 지어주는 것도 잊는다. 남편은 남은 반찬과 밥을 먹는다. 하지만 그는 늘 기뻐한다. 또 나에게 이렇게 바쁜데 힘들지 않느냐고 물으며 “힘들지 않으면 돼!”라고 한다. 나는 자신 관념의 변화가 남편에게 그렇게 큰 변화를 줄지 몰랐다. 정말로 그렇다!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

자주 한 마디 말이 귀가에서 들린다. “생명은 마땅히 근본적으로 개변해 자신의 것이 돼야 한다.” 이것은 사부님의 점화와 기대다. 또 새 우주의 각자로 되려면 반드시 위사위아가 무사무아로 바꿔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법공부를 적게 한 나는 망연하다.

근본적인 변화는 일념에 있다

작년 9월 하순, 사악은 현지 여러 수련생을 납치했다. 게다가 계속 납치하겠다고 떠들어댔다. 듣건대 많은 수련생의 전화는 도청되고 일시에 불안감을 조성했다. 본 지역은 본래 정법노정을 따라 가지 못하는데 이번에 핸드폰도 감히 사용하지 못하고 서로 연결하지도 못한다. 현(縣)의 기타 수련생을 찾지 못해 진상을 알리는 항목은 마비됐고 정체는 소침해졌다.

본 지역의 두 협조인 중 한 분은 진상을 알리는 항목의 부품을 구매하느라 동분서주했다. 나는 맹목적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한 분은 가정 마난에 빠져 어찌할 수 없었다. 이어 농번기라 많은 수련생은 옥수수를 거두느라 정신이 없었고 연공도 하지 않고 법공부도 적게 하고 형식에만 그쳤다. 한 수련생이 말한 것처럼 “옥수수만 눈에 보이고 정념이 없다.” 수련생의 상태를 보고 나는 한편으로 애가 타고 어찌할 방법이 없다. 협조인이 정념이 없고 책임이 없다고 생각했다. 매일 나도 바쁘고 화가 나며 피곤하고 소침 속에서 하루하루 지내고 두려운 마음도 밖으로 나온다.

이런 상태는 11월 하순까지 이어지고 하루는 주변 수련생과 사부님의 신경문을 40분 배운 후 정념이 배로 증가됐다. 그래서 자신이 넘쳐 생각했다. 수련생이 이 경문을 배우면 두려운 마음을 제거할 것이고 정진할 것이다. 나는 협조인 수련생에게 소식을 전해 그 둘에게 우리집에 오라고 했다. 우리는 함께 신경문을 배웠다. 하지만 수련생은 마음에 닿게 법공부를 하지 못해 정념이 부족하고 여전히 소침했다. 협조인 수련생이 간 후 나는 마음이 무겁고 또 안달이 났다.

밤 11시 남편이 잠들었다. 나는 결가부좌를 하고 결인을 하고 앉아 수련생들의 상태를 생각했다. 정체의 느슨함, 소침함,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른다. 사부님께서 어떤 상황에서도 안을 향해 찾으라고 한 것이 생각나 자신이 수련생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았다. 정체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신변 수련생 A를 말하면 만약 당초 자신을 내려놓고 그녀와 교류를 했다면 그녀는 일찍이 수련생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을 그만뒀을 것이며 한 달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며 몇 천 위안의 돈도 손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총총히 그와 두 번 교류를 하고 포기했으며 수련생 A가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농번기 때 만약 자신의 일과 이익을 내려놓고 아이를 안고 멀리 있는 수련생을 보러 가면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수련생은 여태 나오지 않던 내가 이렇게 바쁜 중에 아이를 안고 나오는 것을 보고 자연히 정념이 생긴다. 만약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하면 우리 정체는 절대 이렇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협조인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데 습관이 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단지 집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수련생만 원망했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하러 왔는가?! 조사정법하러 온 것이 아닌가? 사부님은 나에게 무엇 하러 보내는가?! 나는 자책하며 눈물을 금치 못했다.

이때 갑자기 정수리에서 한줄기 강대한 에너지가 나오고 에너지 중 한 소리가 확고하게 말했다. “사부님! 나는 반드시 사부를 따라 집에 돌아가겠습니다! 이후, 내가 정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으면 반드시 힘을 다해 하겠습니다. 만약 하지 못하면 형신전멸하겠습니다!” 말을 마치자마다 나는 깜짝 놀랐는데 이것은 퇴로가 없는 맹세였다. 이렇게 부족한 자신인데 하물며 어떻게 정체를 말할 수 있었을까? 나는 생각했다. 역시 이것은 진아(眞我)의 본성이 내보내는 일념이다. 혹시 이것은 사전 서약한 것이며 사부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시는 것이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마음속으로 확고하게 말했다. “사부님! 이왕 말했으니 나는 반드시 할 것입니다!”

그 후부터 사부님의 점화는 끊이지 않았다.

구세력과의 모든 연계를 끊어버리다

다음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앉아있는데 갑자기 뚜렷한 염두가 나왔다. 구세력과의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자. 그래서 나는 결가부좌를 하고 마음속에서 견정한 일념을 발했다. ‘구세력 당신들 들으라! 이후부터 나는 당신들과의 일체 모든 연계를 끊어버리겠다! 내가 잘 수련하든 못하든 당신들은 나를 교란할 자격이 없다. 나는 대법제자고 사부님이 관여하고 있다! 구세력은 단지 제거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 다음 머리가 아주 청성하고 사부님의 법이 생각났다. “정법의 한 길에서 하늘을 뒤흔들거니, 바르지 못한 부(負)적인 것들 전부 도태되리라”[2] 나는 깨달았다. 부정적인 생각이든 부정적인 행동은 모두 구세력이 연대되고 우주 정법으로 도태해야 할 생명이다. 이전 머릿속에는 모두 부정적 사유였다. ‘내가 수련을 잘하지 못하니, 나의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내가 이렇게 수련해서 돌아갈 수 있겠는가?……’ 늘 이런 부정적인 사유로 자신을 생각하고 진아와 가아(假我)를 구분하지 못했다. 그를 따라 가고 그에게 지배되어 상태가 어떻게 좋겠는가! 그러므로 이후 부정적 생각이 나오면 그것을 붙잡고 즉시 청리했다.

인터넷 봉쇄는 마땅히 존재하지 말아야한다

구세력과 연계를 끊고 머리는 아주 청성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에 접속하려 했다. 마음속으로 접속할 수 있는가? 이때 청성한 염두가 나왔다. ‘인터넷 봉쇄는 마땅히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확연히 깨닫게 됐다. 인터넷 봉쇄는 없고 정보는 자유다. 이것은 세간 법률, 세간의 바른 이치에 맞지 않고 근본적으로 마땅히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하물며 우리 신의 사이트가! 만약 매 대법제자가 이 점을 인식하면 이른바 진둔(金盾)프로젝트(중국에서 네티즌에게 해외소식을 차단하는 인터넷 프로젝트)는 바로 세간의 가상이고 쇠붙이 따위는 절대 작용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인터넷 카드를 꽂고 자유문을 클릭했는데 얼마 후 서버를 찾지 못한다고 나왔다. 나는 정념이 족해 말했다. “무슨 서버를 찾지 못하는가? 누가 허용하는가? 접속할 수 있다!” 그 결과 단번에 접속했다. 나는 격동돼 말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그 후 인터넷 접속은 순조롭고 ‘민감한 날’은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이전에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는 것은 중공이 인간세상에서 인터넷 봉쇄 가상을 인정한 것이다. ‘민감한 날’에는 인터넷을 접속하지 못하는 것은 일상이었다. 자신이 법공부와 연공이 따라 가지 못하고 발정념도 상태가 좋지 않아 인터넷 접속에 교란이 있다고 오해하고 더욱 다그쳐 수련상태를 조정하고 교란을 타파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구세력을 인정한 것이다. 수련을 잘하지 못해 누락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은 교란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구세력이 배치한 가짜 이치에서 수련하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바른 이치 “구세력의 일체를 전반적으로 부정하라!”[3]에 따라 수련하지 못했다.

전화 도청은 마땅히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더는 소침하지 않고 정체에 유리하다고 생각만 하면 적극적으로 했다. 사부님의 배치아래 나와 수련생은 먼 시골에 가서 병업 형식으로 엄중 박해당한 수련생을 도와줬다. 현지의 수련생이 전화를 걸 때 “두 대법제자가 왔는데 당신들 오세요. 우리 함께 교류해 봅시다.” 나는 듣고 마음이 덜컥했다. 수련생에게 ‘전화에서 민감한 단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말하려 했다. 이때 머릿속에서 ‘무슨 민감한 단어인가?’ 생각해 보니 그렇다. ‘대법제자’는 신성하고 아름다운 단어다. 속인 전화에서 욕하고 나쁜 짓을 하는 것도 두렵지 않는데 우리는 무엇을 그리 두려워하는가! 이때 청성한 염두가 나왔다. ‘전화 감청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즉시 이른바 ‘전화 감청’을 마땅히 ‘불법도청’이라고 생각했다. 세간의 법률에도 공민의 프라이버시를 말한다. 단지 중공(중국공산당) 사당의 변이된 사회에서 비로소 존재한다. 세간 사람의 바른 이치를 말하면 모두 마땅히 존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데 하물며 신의 바른 이치인데! 만약 모든 대법제자가 이 점을 인식하면 핸드폰과 신호를 전송하는 이런 계통은 단지 우리가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도구일 뿐이다. 더욱이 우주 중의 정법에서 구도를 기다리는 일종의 생명 형식이다. 그런 감시설비는 사악의 불법분자를 감시하는데서 잘 발휘해야 한다.

이런 것을 깨닫고 장기간 ‘핸드폰’에 대한 두려움은 단번에 사라졌다. 하지만 수련생과 교류 중 나는 핸드폰을 지니고 가지 않고 또는 건전지를 뺀다. 박해가 발생한 후 수련생들은 핸드폰에 민감하다. 그러므로 전화 소리가 수련생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게다가 속인도 수업과 회의 때 핸드폰 여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표면 형식에 주의하는 것도 세간의 이치에 부합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 핸드폰은 절대 사악의 도청기가 아니고 우리의 모든 법기이며 나와 인연이 있는 구도된 생명이다. 나의 능력 범위 내에 절대 불법 도청이 존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자신을 낮게 보는데서 자신의 위치를 바로 잡다

줄곧 주변의 한 수련생을 흠모했다. 2009년 법을 얻고 입문하자 ‘전법륜’을 3번 보고 세 가지 일은 동시에 하고 착실히 수련하는 것을 중시한다. 대법 수련을 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비기면 그녀는 1학년에서 침착하게 제고 승화하고 있는데, 나는 줄곧 법공부와 연공도 따라가지 못하고 발정념을 하는 상태도 좋지 않으며 단지 법을 실증하는 일을 조금 하고 있다. 자신이 아직 유치원에 있고 1학년에 정식 올라가지 못한 느낌이다.

하루 그녀와 함께 교류했다. 그녀가 진지하게 작은 일에서부터 자신의 집착심을 찾는 것을 듣고 마음속으로 ‘언제 나는 여유가 있어 연속 전법륜을 세 번 보고 착실히 수련해 1학년에 가겠는가?’라고 생각했다. 나는 결가부좌와 결인을 하고 갑자기 생각했다. ‘정법은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1학년에서 가는 것은 이미 시간이 맞지 않는다. 사부님의 정법은 우주 중에서 모든 생명이 다시 위치를 배정하는데, 나는 자신의 위치를 다시 정하고 유치원에 있지 않고 1학년도 다니지 않고 대학졸업을 하는 위치에 놓자. 이왕 사부님께서 가르친 것은 부처를 수련하고 도를 수련하는 법이기에 나는 직접 자신을 신불의 위치에 놓자. 이때 사부님 말씀이 생각났다. “당신이 시작하자마자 직접 고층차에서 수련하게 한다.”[1] 다시 말하면 우리는 본래 고층차의 신이다. 단지 세간에 미혹돼 신 노릇을 할 줄 모를 뿐이다.

그러면 신은 어떤 상태인가? 사부님의 법이 떠올랐다. “자비는 신의 영원한 상태다”[4], “사실 자비는 거대한 에너지이며, 바른 신(正神)의 에너지이다.”[5] 신불은 단지 자비밖에 없는데 그 자비는 무슨 느낌일까 생각하고 있는데 한줄기 강대한 에너지가 온 몸을 감쌌다. 아름답고 광명하며 온화하고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자비인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자신이 맞게 깨달았음을 알고 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주신 격려다. 내가 일어날 때 삽시간에 위대해 보였고 두 발로 땅을 밝지 않으면 붕 떠오르려는 느낌이 들었다. 눈물이 나왔다……

그 후부터 많은 집착심이 단번에 사라졌고 법공부도 조용히 할 수 있고 발정념을 해도 넘어지지 않고 느낌에 에너지장이 강해졌다. 특히 작은 일로 수련하지 않는 가족과 자주 다투고 했는데 지금 이런 일이 더는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머릿속에 한마디가 나온다. ‘대법 이외에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겠다. 사부님 외에 나는 누구에게도 빌지 않고, 자비 외에 나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정법 수련에 자신감이 족하고 파룬따파의 홍대함에 더욱 깊은 인식이 있었다.

여기에서 이번 교류회를 통해 수련생들에게 주의를 주겠는데 절대 자신을 작게 보지 말라. 자신의 이런 수련상태도 일단 위치를 바로 잡으니 큰 비약이 있었다. 여러분은 나보다 한 강을 더 배워도 헛되게 배우지 않을 것이고 연공을 한 번 더 해도 헛되지 않는다. 이것은 우주의 대법이다! 자신도 이전에 일부 잘못을 했다. 정체에 손해를 가져다주었다. 몇 년간 정진하지 않는 나는 사람을 구하는 많은 기연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나를 포기하지 않고 가호하고 줄곧 점화해 주셨다. 수련생이여! 소침함에서 걸어 나오고 정신을 차리고 정진하자! 위치를 바로 잡으면 우리는 신이다!

초과 지출에서 정상적인 소비, 대법자원은 많이 써도 없어지지 않는다

몇 년 전 자료를 만들 때 수련이 따라가지 못하고 기술도 익숙하지 않아 인쇄 할때 자주 실수를 해 많은 종이를 낭비했다. 대법 자원을 낭비하니 죄책감이 나왔다. 그래서 내 돈으로 소모품을 사서 속죄했다. 남편이 보고 기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갓 집을 사서 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때 자신의 능력도 제한돼 있고 단지 ‘밍후이주간’만 인쇄하고 대량의 진상자료는 외지 자료점에 의거했다. 현지 수련생은 자발적으로 돈을 내는 사람이 적고 협조인 수련생은 외지 자료점에 돈을 좀 줘야 하고 나에게도 돈을 줘야 하기에 경제적으로 압력이 크다. 그래서 소모품을 추가 구매할 때 되도록 협조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다.

내 작은 가방에 자료점 돈을 넣고 다 쓰면 채워 넣는다. 남편은 끊임없이 가방에 돈을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 “당신들의 돈은 어찌 아무리 써도 적어지지 않지?” 나는 “당연하죠. 우리 대법자원은 아무리 많이 써도 없어지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남편은 “당신이 여기에 돈을 얼마 사용했지? 5,6천은 되겠지?”라고 물었다. 나는 평온하게 “몰라요. 자세히 계산하지 않았는데 비슷해요.” 그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간 열심히 일하고 먹고 입는 것을 아끼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좀 미안했다. 이후에 관념을 바꿔 생각하니 왜 미안한 마음이 있는가? 생활을 하는 것은 정상적인 소비고 대법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은 초과 지불이라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대법은 일체 생명이 존재하는 근본이다. 내 생명의 모든 것을 바쳐도 사부님과 대법이 우리에게 준 것을 보답할 수 있는가? 돈을 좀 쓰면 어떤가? 나는 관념을 바꾸고 대법에서 소비는 초과 지출이 아니고 우리 집의 가장 중요하고 정확하고 정상적인 소비라고 생각했다. 그 후 남편도 돈 방면에서 더는 말하지 않았다.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작년에 비해 대법 일을 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장사에 몰두하는 시간이 자연히 적어졌다. 게다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한 제품을 팔지 않았다. 하지만 큰 딸이 중등전문학교에 다니느라 2만 위안의 초과 소비가 생겼다. 속인에 이치에 따르면 작년에 비해 마땅히 경제적으로 힘들어야하는 나는 경제상 일은 생각지도 않고 대법을 수련하면 복이 있다고만 알고 있다. 특히 절약하지 않고 생활을 했는데 오히려 돈이 좀 남았다.

올해 초 몇 년간 보지 못했던 동창 수련생을 보았다. 그는 우리 집의 장사가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아주 좋다고 했다. 생활비를 쓰고도 돈이 좀 남는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지금 상태에 만족하면 안 되고 마땅히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고 했다. 당시 나는 동창 수련생이 법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련인이 무슨 일을 만나도 우연한 일은 없다. 자신이 지금 상태에 만족해하고 있고 정력을 들여 더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는다. 혹시 이것은 사부님의 점화이고 자신이 돈에서 마땅히 인식이 제고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자세히 생각하니 자신이 비록 정진하지 않지만 작년에 비해 역시 제고됐다. 게다가 대법회도 끊임없이 나를 제고하게 했다. 사부님께서는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아름답다”[6] 그러면 상대적으로 경제조건도 마땅히 갈수록 좋아져야 한다. 게다가 대법제자의 돈은 모두 대법 자원이고 그것도 마땅히 많이 써도 없어지지 않는다.

법리에서 분명하고 남편이 “비수기라 장사는 잘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나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일념을 붙잡고 대법 자원은 많이 써도 없어지지 않는다. 얼마 전 수련생과 친척에 3만 위안을 빌려주고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에 1만 위안을 주었다. 남편은 “밖으로 돈을 빌려 주는 것은 쉽지만 우리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해?”라고 했다. 나는 “집에 아직 돈이 많아요”라고 했다. 그는 “돈을 다 쓰고 당신은 어떻게 하려고?”고 했다. 나는 “마음 놓으세요! 대법제자의 돈은 많이 써도 없어지지 않아요. 영원히 다 써도 다 쓰지 못해요.” 남편은 웃었다.

맺음말

수련 중의 매번 제고를 보면 모두 관념을 바꾼 것이 유익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고층 천체(天體) 중에서 대각자(大覺者)의 세계와 생명은 바른 법리 속에서 생성된 것이거나 바른 법리 속에서 수련하여 원만한 것이다. 그의 일체는 모두 바른 법리에 부합된다.”[7] 나는 확고하게 사부님의 바른 법리에 따라 수련해 가겠다. 비록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수련생의 그런 ‘모든 것을 버리고 중생을 구하는’ 자비의 경지와 거리가 아직 멀다. 하지만 대법이 나를 깨끗이 씻어 주고 나는 정체와 중생을 위해 지불하는 중에 노력해 자신을 내려놓고 사적인 것에서 빠져나와 정정당당한 정법시기 대법제자로 되겠다!

사부님 감사합니다!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허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사: ‘홍음3-정법’[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4]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사: ‘홍음3-왜 거절하는가?’[5]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각지 설법9-2009년 워싱턴DC 국제법회 설법’[6]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각지 설법1-베이징 국제교류회 설법’[7]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사: ‘정진요지2-대법은 원용하다’

문장발표: 2014년 8월 2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8/25/2963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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