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동북 대법제자 수심
[밍후이왕] 나는 예전부터 줄곧 새벽 3시경 일어나 연공하는 걸 거의 빠뜨린 적이 없다. 발정념도 정각 4번을 거의 빠뜨리지 않고 했으며 또한 시간만 있으면 견지하여 정각 발정념을 했다. 여러 해 동안 나는 혼자 집에서 법 공부했는데 근무환경이 괜찮아 낮에 출근해서도 여유시간과 점심 휴식시간을 이용해 전자책(e-book)으로 법 공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법 형세의 진척과 요구에 따라 더욱 많은 수련생이 걸어 나와 단체 법 공부에 참가하였지만, 나는 여전히 꾸물대면서 그 한 걸음을 내디디지 못했다. 후에 수련생이 자꾸 재촉해서야 드디어 법 공부에 참여하였다. 비록 단체 법공부에 매일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나의 상황에 맞추어 주말과 명절, 휴일에 법 공부 소조에 참가했는데, 그렇게 한 지 이미 여러 해 되었다.
단체 법 공부 참가는 가장 정확한 일이다. 단체 법 공부하면서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볼 수 있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을 수 있으며 서로 원용하고 공동으로 정진하면서 제고할 수 있다. 또한, 단체로 발정념 할 때는 그 에너지가 매우 강하였다.
최근 1년이 넘도록 나는 대법 서적을 모두 갖추게 되어 순서대로 체계적으로 법 공부하기 시작했다. 거의 ‘전법륜’을 한 번 다 학습하면 동시에 각 지역 설법 1권도 마치게 되었다. 이렇게 오늘에 이르기까지 거의 네 번을 배웠는데 아직 몇 권만 더 배우면 완전히 네 번이다. 이전에도 각 지역 설법을 보기는 했지만, 밍후이왕의 순서에 따라 이처럼 체계적으로 배우지는 않았는데, 이번에 이렇게 법 공부하니 한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고 깨닫는 게 아주 많았다. 책 한 권을 볼 때마다 모두 제고가 있었고 게다가 인상이 아주 깊었다. 예전에는 비록 보기는 했지만 보고 난 후 아무런 인상도 없었다. 예전에는 무엇이 깨달음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아주 큰 제고를 가져왔는데 자신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과거에 없었던 현상이다.
법 공부와 연공은 사부님께서 분부하신 ‘3가지 일’ 중 기초적인 한 가지로, 최근 몇 년을 내가 평온하게 지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법 공부 기초가 좋았기 때문이다. 법 공부와 연공을 견지하려면 아주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아침에 알람이 울렸을 때 절대 주저하면 안 된다. 반드시 얼른 일어나야 하는데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 법 공부를 견지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바쁘다고 해서 법 공부하는 수량과 질량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이 모두 장기적인 견지와 착실한 수련을 해야 하는데 생각만으로 혹은 말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렇게 법 공부와 연공의 착실한 기초가 있었기에 매일 어떤 심성 고험에 부딪쳐도 거의 모두 넘을 수 있었다. 설사 즉시 넘지 못하더라도 후에 법 공부하는 것을 통해 생각을 넓게 가지고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때뮨에 법 공부는 정말 좋고 단체 법 공부는 제고가 더욱 빠르다.
진상 화폐로 환전하면서 광범위하게 중생을 구하다
나는 늘 돈거래 하는데, 몇 년 전 우리 지역에 전문적으로 진상 화폐를 인쇄하는 수련생이 있었다. 수련생이 잔돈으로 바꾼 것을 정리하여 인쇄하는걸 보니 몹시 어려운 과정이었다. 여러 사람이 모은 잔돈을 통일로 정리하여 눌러서 평평하게 하는데 어떤 것은 씻어야 하고 어떤 것은 다림질해야 해서 시간과 심혈을 아주 많이 낭비하였다. 나는 그들보다 편리한 조건이 있는데 왜 이용하지 않는가? 그래서 수련생을 협조하여 잔돈 바꾸는 일을 책임졌는데 이것은 자신의 여러 가지 마음, 예를 들면 두려운 마음, 이익에 대한 마음을 제거해 버릴 수 있는 항목이며 게다가 책임감을 수련해낼 수 있었다.
처음에 두려운 마음이 있었지만, 그것은 사부님께서 안배해 주신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원래 돈거래를 별로 하지 않았지만, 후에 직장에서 나를 금융 기관과 잔돈을 바꿀 수 있는 자리에 배치해주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 지역과 나 개인을 위해 안배한 수련과 법을 실증하는 길이기에 반드시 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다른 업무로 바꿀 기회도 있었는데 업무가 적고 심지어 매일 체크만 해도 되었지만 신중하게 생각해 보니 그렇게 하면 잔돈을 바꾸기 어렵게 되었기에 나는 현 위치에 남아 업무가 좀 과중하더라도 기꺼이 하려고 했다.
잔돈을 바꾸려면 운용 자금이 있어야 한다. 몇 년 동안 보통 가장 적어도 5만 위안의 운용 자금을 남기고, 많을 때에는 한 번에 10여만 위안이었다. 모두 내 돈으로 해결하였는데 여기에서 나의 이익지심을 제거해 버렸다. 어떤 사람은 돈을 빌릴 때 은행 대출이자를 계산해서 돌려주었는데 다시 말해 만약에 이 돈을 쓰지 않고 빌려 준다면 1년에 1만 위안에 1,200위안의 이자가 붙는다. 그렇게 따지면 그 몇 년 동안 적어도 2만 위안의 이자를 적게 얻은 셈이다. 또한, 늘 기타 항목에도 돈이 필요했기에 그 몇 년 동안 나는 적어도 2만여 위안의 돈을 내놓았다. 하지만 사실 나의 돈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 몇 년 동안 나는 종래로 돈에 쪼들리지 않았고 생활조건이 아주 좋았으며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럼 이 모든 것은 모두 나에게 중생을 구도하라고 조건을 만들어 주신 것으로서 나에게 조사정법의 사명이 있기에 비로소 그런 복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돈을 내놓아 중생을 구도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진상 화폐를 바꾸는 과정에서 나는 자신의 길을 걸어오면서 많은 두려운 마음과 이익에 대한 마음을 제거하였다. 처음에 나는 직접 직장의 잔돈을 이용해 돈을 바꾸었지만, 후에 수련생들이 아주 잘하여 잔돈 수요량이 갈수록 많아지자 우리 지역의 진상 화폐 수요를 만족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 잔돈을 바꾸는 기회를 충분히 이용하여 수련생들이 진상 화폐에 사용할 수 있도록 더 많이 바꾸었다.
그동안 아슬아슬한 적도 있었다. 현지 수련생 여러 명이 동시에 박해당했을 때, 불법으로 재산을 몰수할 때 찾아낸 진상 화폐가 사악의 주의를 끌었다. 사악은 각 은행의 CCTV 카메라를 확인하였는데 그렇게 하는 게 나에게 작지 않은 고험을 가져다주었다. 우리가 잔돈을 바꿀 때마다 모두 각 은행의 창구에 가서 바꾸었는데 나는 들키지 않았을까?
사람 마음이 일어났을 때 반드시 정념이 우세를 차지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자신을 놀라게 해 생각할수록 겁이 난다. 그동안 나도 계속 할 것인지 반복하여 생각해 보았는데 한동안 멈추었다가 다시 바꾸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법 공부와 수련생과의 교류를 통해 그래도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수련생도 협력해 주었다. 내가 얘기하자 수련생들은 그들의 친척이나 친구 혹은 들키지 않은 수련생을 찾아서 은행에 가서 직접 바꾸게 했는데 이것 역시 사부님께서 나에게 주신 지혜였다. 그렇지 않고 나 혼자만 한다면 정말 불편했다. 이것 역시 정체적인 제고와 정체 수련의 요소를 체현하였는데 수련생들의 정체적인 협력은 수련인의 무사무아를 충분히 보여주었다.
몇 년 동안, 우리는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기본상 진상 화폐를 지속해서 공급할 수 있었고, 서로 좋은 기제(機制)를 형성하게 되었다. 자신이 저축한 돈을 꺼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문적으로 은행에 가서 잔돈을 바꾸는 사람이 있으며, 인쇄를 책임지는 사람이 있고, 또 사람들과 교환을 책임지는 사람도 있었다. 후에 모두 우리 수련인만 사용하는 것은 속도가 너무 느리고 범위가 너무 작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수련생들은 직접 만나서 진상을 알리는 기초 하에 직접 속인들과 바꾸었는데, 주로 장사하는 소상인과 일부 마트 등이었다. 모든 게 평온하게 돌아가는 게 사부님께서 가장 좋은 길을 안배해 주셨기에 일체는 모두 자연스럽게 되어 갔다.
그리하여 우리 지역 수련생들이 자주 잔돈을 바꾸는 곳의 바깥 유리창에는 수십 개의 우담바라 꽃이 피어났다. 우리 지역에서는 큰 액면인 1백 위안짜리 지폐에 진상을 인쇄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사람이 길을 열었기에 종래로 은행에서 몰수하는 일이 없었다. 정말 가장 부면적인게 거부하는 것이 고작이고 이 또한 극히 드물었다.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는데, 이는 진상 화폐가 시중에서 유통되는 것을 더욱 촉진했는데 물론 이 또한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처음 물건을 살 때는 화폐 여러 장 속에 진상 화폐를 한 장씩 넣었지만, 후에는 두 장, 세 장, 나중에는 전부 진상 화폐였다. 진상 화폐가 아니면 쓰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이미 호흡이 잘 맞아 만약 진상 화폐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물건을 사지 않을 정도였다.
친척이 나를 도와 진상을 알리자 복을 받다
나는 시골에 친척이 있었는데 매번 그곳에 갈 때마다 1, 2백 부의 자료를 챙겨갔다. 친척 두 사람 중 매번 적어도 한 사람은 나와 동행해 진상을 알리려고 집집이 다녔다. 진흙땅도 가리지 않고 피곤한 줄 모르고 강을 만나면 신을 신은 채 강을 건너고, 산을 만나면 산을 넘으면서 발에 물집까지 생겼다. 그런데도 친척은 한 번도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사실 한 번도 그들에게 가자고 한 적이 없었지만, 그들은 매번 나 혼자 가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아 몇 년 동안 견지해 왔다. 그들은 전혀 불평하지 않았는데, 나는 이 또한 그들의 사명으로 그들 역시 자신들의 사명을 완성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친척도 마찬가지로 복을 받았다. 원래는 그다지 좋은 조건이 아니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대법은 그들로 하여금 나날이 좋아지게 하였다. 원래는 적금도 못 넣고 하루 벌이 생활을 했는데 지금은 적지 않은 금액의 적금도 넣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신체가 좋아졌고, 새집을 지었으며, 오토바이, 삼륜차도 장만했고, 현대 가전제품이 없는 것이 없다. 이는 원래 생각조차 못 한 것으로 그들 역시 대법이 복을 가져다준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일부 어려움에 부딪혔다. 작년 겨울, 눈이 덮인 미끄러운 길에서 친척의 오토바이에 앉아 우리는 아주 멀리 갔는데, 아주 편벽한 곳에까지 갔다. 길에서 두 번이나 꽤 심하게 넘어졌는데 당시 나는 사부님의 법이 생각났다. ‘우리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 [1], 나는 당시 말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얼른 일어납시다.” 하여 그때 우리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
며칠 전, 나는 또 시골에 내려가려고막 문을 나서는데 갑자기 구름이 몰리더니 큰비가 쏟아졌다. 요 며칠은 계속 비가 와서 나는 갈까 말까 생각했다. 후에 나는 이러한 일념을 내보냈다. ‘나는 가야 해, 중생은 진상을 기다리고 있는데.’ 바로 이 일념 때문에 사부님께서는 나를 도와주셨다. 마침 택시 한 대가 오더니 승차할 건지 물었고 나는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내내 발정념했고 도중에 비가 그쳤다. 저녁에 내가 나갈 때에는 하늘이 맑게 개였고 정말 파랬는데 그 며칠 동안 이렇게 맑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중생은 모두 내가 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무사히 갔다가 무사히 돌아왔다. 나는 정말 감개무량했는데, 사부님의 법은 정말로 위대하시다.
주 :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문장발표: 2014년 8월 1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8/17/2956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