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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사부님 말씀대로 사람을 많이 구하다

글/ 산둥(山東) 대법제자

[밍후이왕]

먼저 사부님께 문안드립니다. 사부님, 노고 많으셨습니다!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95년 법을 얻은 대법제자로 올해 78세다. 어기적어기적 오늘까지 걸어오면서 법공부를 잘해야만 모든 것을 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매일 적어도 설법 1강을 배웠고 정각 발정념 4번 외, 시간이 나면 정각마다 발정념을 했다. 단체 법공부할 때는 속인의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법공부하는 외에 수련 중 부딪힌 문제나 진상을 알린 경험을 교류했다. 모두의 정념이 점점 충족해졌고 문제에 부딪혀도 먼저 사부님을 생각했고 발정념을 생각했다.

1, 대법은 나에게 새 생명을 주다

나는 40살 이전부터 입에서 쓴맛이 나기 시작해 20년 가까이 음식 맛을 몰랐다. 40살이 넘자 또 허리 척추 통증이 심해 아플 때는 감히 허리를 굽히지 못했고 다리도 풀려 힘이 없었다. 후에 뇌혈관 수축, 혈액공급 부족, 심장병까지 걸렸다. 93, 94년에는 가장 심하게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지기도 했다. 그런 나는 한 번 치료하는데 8,000위안가량 들었고, 퇴원하고 집에 돌아온 후에도 매일 25위안의 약으로 유지해야 했는데 1년에 서너 번씩 발작을 일으켰다.

당시 영감과 자녀 모두 출근하고 난 뒤 혼자 집에 있어도 밥을 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다. 가족이 겨우겨우 모은 돈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라 내 마음은 정말로 초조했다. 병이 심할 때는 방바닥에도 내려갈 수 없었고, 링거를 맞을 때마다 며칠이나 걸렸다. 7~8일이면 혈관이 굳어져 혈관을 찾느라 바늘을 여기저기 꽂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고 눈을 감았다. 간호사를 볼 때마다 무서워 속으로 벌벌 떨었고, 여름이면 다른 사람들은 걸상에 앉아 바깥바람을 쐬지만 나는 어지러워 움직이지도 못한 채 방바닥에 누워 울기만 했다. 하루가 1년 같은 이런 생활은 한 치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몸을 지탱할 수 있으면 다리 위에 가서 몇 번이나 뛰어내리고 싶었지만, 가족에 대한 정을 버릴 수 없어서 죽지도 못 한 채 허덕이며 살아야 했다.

1995년 10월, 장남이 파룬궁을 연마해 병이 다 나은 사람을 보고는 집에 돌아와서 나에게 연마하라고 했다. 나는 “몸이 이러한데 나을 수 있겠냐? 가지 않는다!”고 했지만, 영감과 아들이 고집을 부리며 가라고 했다. 우리는 마침 그 당시 파룬궁수련생이 전력공사 2층에서 수련심득교류회를 하는 걸 알고는 찾아갔다. 계단을 오를 때 영감과 아들이 나를 부축해 올라갔다. 방에 들어갔는데 바로 중간에 걸린 사부님의 법상을 보자마자 전류가 몸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흘렀다. 그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지금까지 잊을 수 없다.

교류회에서 40대의 한 여자 수련생이 심득체득을 말했다. 그녀는 원래 백혈병을 앓았는데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다고 했지만, 파룬따파를 수련하고는 신기하게 다 나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말하다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말에 큰 감동을한 나는, 그때부터 파룬따파가 좋다고 생각했고 대법이 나의 병을 없애줄 수 있다고 믿었다.

이튿날 현지 보도소의 수련생과 아들이 와서 사부님의 설법 녹화를 틀어주었고사흘 후 또 ‘전법륜’을 사 주어서 나는 단숨에 보기 시작했다.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단번에 ‘전법륜’을 다 봤다. 정말 볼수록 보기 좋아서 끝까지 읽었다. 다 보고나니 전례 없이 정신이 바짝 들었고, 아픔이 크게 감소하여 약을 먹지 않아도 괜찮아 대법이 내 병을 없애줄 수 있다고 믿어졌다. 그러나 영감은 좀 걱정되는지 “심한 병인데 약을 먹지 않고 괜찮겠어요? 조금이라도 먹어요.”라고 했다. 나는 “이젠 약을 먹는 것도, 링거를 맞는 것도 지긋지긋해요. 최근 몇 년간 약 때문에 위가 다 망가졌지만, 병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심한 병도 다 나았으니 대법대로 연마하면 꼭 나을 것이에요.”라고 했다.

그렇게 전심전력으로 법공부하고 연공하면서 다시는 약 한 알 먹지 않았지만, 병이 완전히 없어졌고 신체가 매우 건강해졌으며 온 가족이 혜택을 받았다. 하여 나는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집안일도 많이 했고 빨래할 때 한 손으로 물통을 들고 쌩쌩하게 걸었다. 아들딸은 나의 건강이 좋아진 것을 보고 일가족 모두 기뻐하고 화기애애했다. 주변 사람들은 나의 큰 변화를 보고 잇따라 파룬궁을 연마하기 시작해 당시 1백여 명이나 연공에 참가했다.

2, 대법을 수호하고 진상을 알리며 사람을 구하다

99년 대법이 박해당한 후부터 TV에서는 날마다 대법을 모욕하는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많은 사람도 따라서 대법을 욕하면서 귀중한 책을 태웠다. 나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칼로 에는 듯 가슴이 아팠다. 한번은 아들이 몇 명의 건축노동자를 고용하여 집을 개축할 때였다. 마을위원회 사람이 또 책을 거두어서 불태우는 모습을 보고는 괴로워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내가 슬프게 우는 모습을 보고는 일하던 사람도 정부가 과하다고 했다. 몇 년 후 그 건축노동자들에게 진상을 알렸더니, 그들은 당시 내가 울던 장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면서 “한 노부인이 그렇게 슬퍼서 운다는 것은 첫째, 파룬궁은 매우 좋다. 둘째, 매우 억울하다는 것을 말합니다.”라고 했다.

자녀들은 효성스러워 나의 파룬궁 연마를 지지했다. 최근 아들은 각자 아파트를 샀는데 서로 나와 함께 살자고 했다. 몇 년 전 영감이 죽고 나 혼자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있어서 아들딸과 함께 살지 않고 원래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솔직하게 아들에게 “건강하게 오늘까지 살 수 있는 것은 다행히 파룬궁을 연마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 생명은 대법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고 목적은 잘 수련하라는 것이다. 이 몇 년 동안 파룬궁은 아직 박해당하고 있고, 사부님은 아직 모함당하고 있다. 제자로서 사부님을 위해 나서서 말해야 하고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야 한다. 인류가 곧 큰 재난이 있을 것임을 보셨기 때문에 지금 사부님께서는 빨리 사람을 구하라고 하셨다. 사부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사부님의 말씀대로 사람을 구해야 한다. 나 혼자 집에서 살려는 이유는 조용하고 편리를 위한 것으로, 더욱 많은 시간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매일 나가서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너희와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 보살펴주고 싶지만, 지금은 안 된다. 내가 하려는 일을 다 한 뒤, 그때 가서 보자. 지금은 혼자 생활하는 게 내가 원하는 것이다. 혼자서도 생활을 잘할 수 있으니 너희는 시간이 있으면 날 보러 오고 시간이 없으면 각자 바쁘게 살아.”라고 했다. 아들들은 나의 고집을 못 이기고 내 뜻에 따랐다.

맨 처음에 진상을 알리는 대상은 주로 친구, 옛 동료와 이웃 등이었는데 진상을 알릴수록 점점 범위가 넓어지면서 겨냥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농산물 시장, 강재시장, 노점상, 상가는 모두 내가 진상을 알리는 대상이었다. 몇 년이 되자 나와 수련생들은 대부분의 크고 작은 상가, 노점상 주인에게 모두 진상을 알렸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은 대법 진상을 받아들인 혜택자로서, 지금은 대법 진상을 전하는 개별적인 매체가 되었다.

몇 년 전, 도시 확장으로 곳곳에서 공장건물, 주택단지를 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현지 건축 노동자 외에 많은 외지 사람이 몰려 왔다. 나는 매일 삼륜차를 타고 ‘9평’ 책, 갖가지 간행물과 소책자, 진상 CD 등 한 상자 진상자료를 가지고 가서 공사장을 왔다 갔다 했다. 공사장에 한번 가져간 진상자료는 매우 빨리 배포되었고, 어떤 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 서로 빼앗으려는 장면이 일어났다. 한번은 외환선 도로를 수리하는 공사장에 갔는데 길이 넓고 도량이 깊어서 일하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길가에서 사람들에게 CD를 배포했는데 서로 다투며 가져가 버려 매우 빨리 없어졌다. 차를 타고 떠나려는데 도량 아래에서 일하던 한 남자가 삽을 들고 올라왔다. 그는 신발 한 짝이 떨어진 것도 상관하지 않고 큰 소리로 “계속 달라고 불렀는데 다른 사람들만 주고 왜 저에게는 주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내가 반드시 가져다주겠다고 해서야 나를 놓아 주었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는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정념만 강하면 생명은 위치를 잘 배치할 수 있다. 한번은 한 40대가량 된 남자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꽤 난폭했다. “내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압니까?”라고 했다. 나는 “당신이 뭘 하는 사람이든 중요하지 않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합니다.”라고 했더니 그는 “제가 바로 당신들을 잡는 사람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우리는 나쁜 짓도 하지 않았고 법도 위반하지 않았는데 왜 잡죠, 파룬따파는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주는 것이고 ‘진선인(眞善忍)’을 논합니다. 좋은 사람을 잡고 마음이 편안합니까? 나쁜 짓 하지 말고 좋은 사람해요.”라고 했더니 그는 “어떤 자료들입니까, 한번 보죠.”라고 말하며 자료를 가방에다 몇 개 넣고 갔다.

지금의 경찰은 사무실에 있거나 단체 행동하는 외, 공공장소에서 경찰복을 입는 사람은 매우 적다. 나는 사복 경찰을 만나면 “뭘 하는 사람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인간은 목숨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일하는 것도 돈 벌어 가정을 먹여 살리려고 하는 게 아닌가, 일가가 평안해야 진짜 행복이다.”고 말하면 사복 경찰은 가버린다. 한번은 한 편의점에서 주인에게 진상을 알리는데 마침 경찰복을 입은 사람이 왔다. 편의점 주인이 “그는 경찰이 아닙니까?”라고 했더니 그 사람은 말을 이어받아 “제가 진짜 경찰이라도 당신을 잡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진상을 알릴 때 신기한 일에 부딪힌 경우도 있다. 한번은 한 공사장에 갔는데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심한 가뭄으로 많은 노동자는 일하는 외에도, 가뭄과 싸우기 위해 바닥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내가 진상을 알리자 그들이 몰려와 “파룬궁은 신기하다고 들었어요,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할 수 있으면 우리는 다 탄복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말이 나오는 대로 “내일 비가 내릴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정말로 큰비가 내렸다. 며칠 후 또 그 공사장에 갔더니 사람들은 멀리서부터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제각기 한마디씩 했다. “우리는 모두 탄복합니다. 정말 대단해요. 파룬궁은 정말 대단해요. 이번 비는 참 제때에 왔어요. 매우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응당 우리 사부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당신들을 도와 가뭄을 해결해줬어요. 우리 사부는 사람을 구하러 온 것입니다. 절대 파룬궁을 반대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그들은 자꾸 머리를 끄덕였다.

무더운 여름에도 진상을 알리는 나를 보면 많은 사람은 “연세가 이렇게 되셨는데 집에서 선풍기 바람에 수박을 드시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시지, 왜 밖에서 뛰어다니십니까, 무엇 때문에?”라고 했다. “당신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까? 대법이 이렇게 좋은데 아직 모르잖아요. 지금의 사람은 모두 대법을 위해 온 것인데 공산당은 배우고 연마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책도 보지 못하게 하며 파룬궁이 좋지 않다고 속이고 있고, 박해하고 있는 게, 공산당은 바로 중국인을 해치러 온 것입니다. 파룬따파는 불가 대법이므로 공산당이 불법(佛法)을 박해하면 죄가 있기에 신불이 그것을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공산당을 따라가면 재앙을 받지 않겠습니까? 빨리 탈퇴하고 목숨을 구해요.”라고 했다.

3, 사부님의 말씀대로 사람을 구하면 누구도 막지 못한다

물론 가끔 진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과, 깊게 해를 입은 사람을 만나 고발당해 수차례 잡혔던 적이 있지만, 매번 사부님의 보호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매번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변함없이 계속 나가서 진상을 알렸다. 오늘 어떤 사람, 어떤 일도 내가 사람을 구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사부님의 말씀대로 사람을 구하면 누구도 막지 못한다. 몇 년 동안 겪은 게 매우 많아 다 상세하게 기록할 수 없고, 다음 몇 가지만 정리했다. 많은 일의 구체적인 시간은 이미 기억나지 않아 어림잡아 말할 수밖에 없다.

어느 해 겨울 저녁, 몇 명의 수련생이 우리 집에서 법공부할 때 악인에게 고발당해 현지 파출소에서 경찰 6~7명이 왔다. 수련생들이 방안 가득히 법공부하는 모습을 본 한 경찰이 차에서 수갑을 가져와서 채우려고 했다.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은 채 사부님께 빌면서 경찰에게는 “수갑은 나쁜 사람에게 채워야 하고 우리에게 채워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진선인(眞善忍)’을 연마하는 좋은 사람이니까.”라고 했다. 다른 한 경찰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들며 “빨리 가져가요.”라고 하자 경찰은 일부 진상자료를 가져갔고 함께 있던 수련생들을 다 데리고 갔다. 난 맨 뒤에서 끊임없이 진상을 알리고 있으니 경찰은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불이 꺼지지 않게 화로에 땔감을 더 보태야겠어요. 집에 돌아오면 방이 추워요.”라고 하자 경찰은 “보탤 필요가 없어요.”라고 했다. 그 말은 오늘 저녁에 돌아오지 못한다는 뜻이었지만, 나는 “즉시 집으로 돌아올 겁니다.”라고 말했다.

파출소에 도착하니 사무실 가득히 납치된 수련생들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들을 구해달라고 사부님께 빌면서 경찰에게는 “지금이 어떤 시기인데 아직도 장쩌민의 앞잡이를 합니까.”라고 말한 뒤 한참 발정념을 하고 있는데 한 경찰이 큰 소리로 “일어나요, 고개 들어 봐요. 이럴 줄 알았으면 연마하지 말 것이죠. ○○○ 좀 봐요.”라고 했다. 그때 다른 한 경찰이 “○○○ 방으로 가세요.”라고 하여 혼자서 그 방에 있었다. 좀 지나, 또 “○○○ 이 방으로 오세요.”라고 했다. 그 방에 가보니 경찰이 마침 수련생들을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었다. 한 수련생이 “우리는 둥링(東嶺, 구치소를 말함)에 갑니다.”라고 했다. 그들이 간 후 한 경찰이 나에게 “집으로 돌아가세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한 경찰에게는 “노인네를 좀 바래다줘요. 집 부근까지만 바래다주면 돼요.”라고 했다가 그 뒤에 또 “연세가 많으니 집까지 바래다줘요.”라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내일 공안국에 한번 다녀가요.”라고 했지만 나는 즉시 “안 갑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사부님의 보호로 그날 저녁 11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기타 수련생은 구치당하고 벌금까지 나왔다.

또, 한 번도 역시 겨울이었다. 시장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다 진상을 모르는 사람에게 고발당해 시장을 관리하는 악인이 나를 가로막았다. 마침 그날은 장날이라 사람에 매우 많았다. 나는 많은 사람을 향해 큰소리로 진상을 알렸다. 악인은 제 발 저리니 즉시 나를 붙잡아 그들의 사무실로 납치해서는 경찰에게 전화했다. 당시 파룬궁수련생을 고발하면 상금을 받았기 때문에 악인은 돈 받을 생각으로 매우 흥분해 끊임없이 전화를 걸었다.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난 대법제자다.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빨리 사람을 구하려는 것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가겠다고 요구했더니 못 가게 했다. 점심 무렵 국가보안 경찰이 왔다. 경찰이 사부님의 이름을 들먹이길래 나는 즉시 큰 소리로 “입 다물어요.”라고 저지했다. 그 결과 왔던 국가보안 경찰은 돌아서 갔다.

악인은 다른 사람과 접촉하지 못하게 나 혼자 방에 있으라고 하고는 젊은이에게 감시하라고 했다. 그 젊은이는 추워하는 내 모습을 보고 난방을 켜서 따뜻하게 해 주었다. 옷이 잡아당겨 져구질구질해진 모습을 보고 세심하게 단추를 잘 채워주자 악인은 “그녀가 네 엄마냐”라고 비웃었다. 나는 젊은이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해 주었다. 점심때 젊은이가 나에게 돈가스 2개와 라면을 사줬지만 나는 먹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만 확고히 한 채 끊임없이 발정념 하며 가지해달라고 사부님께 청했다. 오후 2시경 악인은 결국 경찰과 연락이 닿지 않자 할 수 없이 나를 풀어 주었다.

또 한 번은 대략 2003년경, 인근 마을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였다. 당시 200개를 가져가 집집이 다니며 모두 다 배포한 뒤 돌아가려고 할 때 마을 서기에게 발견되어 고발당했다. 우리가 마을 십자로에서 경찰을 기다리고 있는데 많은 사람이 보고 있었다. 나는 큰소리로 “여러분 잘 들으세요, 이들은 훤한 대낮에 사람을 함부로 잡습니다. 저는 대법을 연마하는 사람이고 파룬궁을 연마해 온몸의 병이 다 나았습니다. 파룬궁이 억울함을 당했기에 대법을 위해 나서서 말하려는 것입니다.”라고 외치고 있는데 경찰차가 왔다. 경찰은 “집에 있지 않고 왜 이것을 배포합니까?”라고 했다. 나는 “사람을 구하고 있어요.”라고 하자 경찰은 “그럼, 당신은 누가 구해 줍니까?”라고 했다. 나는 “우리 사부님께서 구해주실 것입니다.”라고 하자 경찰은 “사부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우리 사부님은 리훙쯔 사부님입니다.”라고 했다.

당시 사악이 가장 창궐할 때였다. 시내에서는 세뇌반을 꾸리고 있었고 많은 파룬궁 수련생이 그 안으로 납치되어 갔을 때였다. 경찰은 동사무소 직원을 불러 나를 세뇌반으로 끌고 가려 했다. 나는 가는 도중에도 내내 동사무소 직원에게 진상을 알리면서 집으로 가겠다고 했더니 그들은 논의한 후 “먼저 집으로 돌아가고 내일 학습반에 나오세요.”라고 했다. 나는 “안 갑니다.”라고 대답했는데 정말로 날 찾으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대략 반년이 지난 후 시 전력공사에 가스를 넣으러 가스통을 가지고 갈 때였다. 예전에 진상을 알렸던 그 마을을 지나가는데 거리에 있던 한 사람이 “전력공사에 가스를 넣으러 갑니까?”라고 말을 걸었다. 그는 눈과 입이 비뚤었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게 행동이 부자연스럽고 똑똑하게 말하지 못했다. 자세히 보니 그 마을의 서기였다. “마을 서기입니까?”라고 물었더니 모호하게 응답하는 그에게 나는 “이것은 응보를 받은 겁니다.”라고 했다.

최근 몇 년간은 주로 중학생, 초등학생을 선택해서 진상을 알렸다. 가장큰 피해를 입고 있는 학생들을 절실하게 구도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매일 학생들이 등하교 시간에 맞추어 학교 정문 앞이나 부근 길가에서 기다렸다. 계절과 날씨를 가리지 않고 시간 맞춰 학생들에게 달려가 진상을 알렸다. 수업을 시작하면 다른 곳에 가서 진상을 알렸다. 나는 식사시간이 일정한 적이 없었다. 매번 배가 고프거나 오후 단체 법공부할 시간이 되면 집으로 갔다. 우리 이 도시는 크지 않다. 주변에는 십여 개의 학교가 있는데 모든 학생이 나를 잘 안다. 많은 학생은 멀리서부터 나를 알아보는 데, 많은 초등학생은 멀리서부터 “할머니” 혹은 “할머니,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부르며 인사했다. 어떤 때는 좀 큰 학생들에게 인터넷 돌파 소프트웨어를 주기도 했는데, 많은 중학생은 다른 친구들에게도 주겠다고 몇 개 더 달라고 했다. 인터넷 돌파 CD 안에 많은 전자책이 들어 있기에 많은 학생은 보기 좋아했다.

주변에 나와 비슷한 노수련생이 몇 명 더 있다. 그들도 매일 오전에는 시장에 가서 직접 만나서 진상을 알리며 사람을 구했고, 오후에는 단체 법공부에 참가했다. 올해처럼 높은 기온에 무더운 날씨에도 나와 주변 수련생들은 여전히 매일 밖에 나가서 사람을 구했다. 우리는 어떤 일에 부딪혀도 법으로 대조하여 서로 일깨워주고, 비학비수(比學比修)하면서 사람을 구할 줄 알았다. 누가 어느 날 나가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했고 심지어 죄를 지은 것 같았으며 사부님께도 죄송했다. 지금의 하루하루는 사부님께서 사람을 구하도록 연장해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해야만 사부님께 실망하게 해드리지 않는 것이다.

문장이 두서가 없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번 법회는 사부님께서 남겨주신 기회이므로 다시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 생각나는 대로 썼다. 수련생 여러분의 양해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자비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합장하고 사부님께 큰절을 올립니다.

(밍후이왕 제10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3년 11월 1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0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17/281578.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3/11/29/1434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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