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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간 착실한 수련이 가져온 신수련생의 큰 변화

글/ 대륙 신수련생

[밍후이왕] 나는 2013년 6월에 대법을 얻은 신수련생이며 지금 편하고 자유롭게 진상을 알릴 수 있다. 이런 좋은 상태는 짧은 2개월간 착실한 수련에서 가져다 준 변화다. 나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으로 사부님의 한 단락 설법 “만약 당신들이 사람마다 모두 내심에서 법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위력이 끝없는 법의 체현 ― 인간 세상에서 강대한 불법(佛法)의 재현(再現)이다!”의 한 층 내포를 체험했다.[1]

올해 4월 초 나는 야시장에서 매점을 하나 냈으며 매일 손님에게 진상을 알렸다. 하지만 6월 10일쯤 진상을 생각하면 무형의 압력이 있었고 불안했다. 매번 손님이 오는 것을 보면 그(그녀)가 다른 매점에 가기를 희망했다. 왜냐하면 내가 진상을 잘 알리지 못하면 후회하고 자책했기 때문이었다. 한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면 괜찮은데 두 사람이 오면 감히 진상을 알리지 못했다. 밖의 기타 환경에서 사람을 만나도 감히 말하지 못했다. 손님이 트집을 잡아도 물론 나는 화를 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아직 원망이 있었다. 가정에서 남편이 듣기 싫은 말을 해도 자주 참을성 없이 대꾸하고 아이가 시끄럽게 굴어도 역시 화를 내고 때렸다. 그때 수련생이 말한 일마다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잘한다고 생각했다. 수련생이 쓴 글에서 법공부가 마음에 닿게 하면 주의식이 강해진다고 했는데 어떤 느낌인지 몰랐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줄곧 법에서 수련하라고 하셨고, 법을 실증하고 자신을 실증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당초 나는 이런 것을 깨닫지 못했다.

나는 법공부를 대량으로 하고 수련생의 글을 대량으로 봤다. ‘홍콩 관광지에서 진상을 알리고 심성을 수련하고 자비롭게 중생을 구도’, ‘법공부를 하고 마음을 닦고 발정념을 한 수련체험’, ‘정과 색욕에 대한 인식’ 이 세 편의 수련생 글을 몇 번이나 봤다. 특히 ‘정과 색욕에 대한 인식’은 집착심의 두려운 결과를 똑똑히 알게 됐다. 게다가 매일 대량으로 사부님의 신경문을 배우고 법공부를 하고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보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명확한 사로가 생겼다. 수련은 바로 각종 집착심, 사람 마음을 이기는 것이라는 것을 인식했고, 그것들의 진면목을 똑똑히 알게 됐으며, 그것들을 청리하면 그것들은 소멸되고 혹은 감소됐다. 되도록 잘 수련하기 위해 자신의 일언일행, 일사일념을 엄격히 요구했다.

6월 중순부터 실행하기 시작했다. 하루를 예로 든다. 처음에 많은 것을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깨달았다. 아침 5시 반에 일어났다. 하지만 아직 졸렸는데 다시 자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는 이것은 한 무더기 구역질나는 검은 벌레, 흰 벌레(이것은 ‘법공부를 하고 마음을 닦고 발정념을 한 수련체험’ 글에서 수련생이 각종 집착심의 다른 공간에서 체현을 묘사)가 편안한 가상으로 나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즉시 일어나졌다. 이 글은 나에게 가볍게 색욕심을 제거하게 했고 색욕심이 나오면 그것을 한 무더기 대변과 구더기로 보게 했다.

8시에 아이를 깨웠다. 아이는 일어나지 않고 울며 시끄럽게 굴었다. 이것은 원망심에 대한 고험이며 동시에 소업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법 “왜냐하면 그 업력이 거기에 있어서 그가 당신을 도와 제거하려 한 것인데,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고 그와 싸움을 벌였기 때문에 없애버리지 못했다.”[2]를 줄곧 염했다.

9시에 장을 보면서 자신이 공짜를 좋아하고 좋은 것만 고르지 않았는지 보았다. 집에 돌아가 집안일을 하면서 일사일념에 집착심이 있는지 검사하고 발견하면 청리했다. 처음에 한 가지 염두에 몇 가지 집착심이 있었고, 때로 한 가지 집착심을 지니고 다른 집착심을 제거했다.

오후에 법공부를 했다. 먼저 마음속의 잡념을 제거하고 법공부를 했다. 법공부를 할 때 법공부를 많이 해서 질리는 마음이 나왔다. 처음에 나는 이길 수 없었다. 이후에 대법제자 본성의 자아가 여기에 온 것은 대법에 동화하고 조사정법하러 온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부동한 층차에는 부동한 법이 있다’[2]. 어떻게 공부를 많이 하면 질리는가? 마땅히 내심에서 법공부를 하기 좋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매번 법공부를 하면 제고된다. 그러므로 이번에 본 것과 전에 본 것이 다르다. ‘부동한 층차에는 부동한 법이 있기’[2] 때문이다. 법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것은 진정한 내가 아니다. 먼저 법공부를 많이 하면 질린다는 가짜 자아를 제거한 다음 조용히 법공부를 했다. 곧 매번 법공부를 하고 새로운 체험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때론 글마다 마음에 닿고 때로 연공할 때처럼 에너지에 감싸인 느낌이며, 게다가 배우면 배울수록 배우기 좋아했다.

오후 4시에 매점에 가서 장사를 하고 손님이 오면 손님에게 상품을 추천한다. 자신의 이익에 대한 마음을 제거하고 손님이 구매하든 안하든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시간이 되면 손님에게 진상을 알린다. 진상을 알릴 때 나오는 마음은 더욱 많은데, 입을 열기 어려워하고, 고객이 듣지 않을까봐 두려워하고, 고객이 얕볼까봐 두려워한다. 특히 두 사람이 있을 때 그중 한 사람이 듣지 않아 헛되게 말할까 두려워한다. 이런 집착심을 청리하고 나의 본성이 강대해지게 했다. 사부님의 법을 생각하고 대법제자의 진아(眞我)는 어떤 모양인지 생각했다. 자신이 서서히 강대해 지고 집착심이 서서히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저녁에 10시 반에 매점에서 돌아와 삼퇴 명단을 보았다. 처음에 마음속으로 ‘오늘 나는 몇 명을 탈퇴시켰는가?’라고 생각했다. 이후에 이 속에 위사위아(爲私爲我)의 마음이 있음을 느꼈다. 나는 곧 “오늘은 몇 사람이 탈퇴했지?”라고 생각했다. 내 마음은 오직 그들이 구도된 것을 보고 안심이 되는 느낌뿐이었다.

수련생은 아마 위처럼 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 이것은 내가 자연스럽게 천천히 한 것이다. 되도록 잘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된다. 주로 청성할 때 매 시각 자신을 법에 용해시키면 대법의 힘이 있다. 매일 법공부를 할 때 지금 층차에서 제거해야 할 집착심을 의식한다. 의식은 할 수 있지만 하기 어렵다고 느낄 때, 집착심이 우리에게 준 괴롭고 무력한 가상임을 똑똑히 알아야 하며(어떤 편안한 느낌은 모두 집착심이 작용함) 그것을 이겨야 하며 제거해야 한다. 만약 그래도 할 수 없으면 본성의 자아가 아직 강대하지 않은 것이다. 바로 법공부를 많이 하면 진아(眞我)가 강대해지면서 최후에 꼭 그 집착심을 이길 수 있다. 매번 내가 생각했지만 하기 어렵다고 느껴질 때, 이런 어려워하는 염두는 바로 사람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7월 초 어느 날, 10시쯤 되었을 때, 나는 책을 보다 힘들어 매점 문을 바라보며 한 사람이 더 오면 나는 한 사람을 더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때 나는 갑자기 진상을 알리는 것이 두렵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에 비가 와서 집에서 이틀간 법공부를 했다. 7월 7일 그날 나는 삼퇴 효과가 이전보다 나아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진상을 알릴 때 편하고 자연스러웠다. 진상을 생각해도 이전처럼 불편한 감이 사라졌고 그런 무형의 압력도 작아졌다.

7월 22일 밍후이왕 수련생의 글을 보았다. 수련생은 “사악은 마치 맹견 같아 당신이 그를 무서워하면 그것은 당신을 쫓고 당신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도 움직이지 않으며 당신이 그를 쫓으면 그것은 도망간다”고 적었다. 이때 나는 사부님의 설법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추위에 대처하는 별도의 방법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네가 추위인가, 네가 나를 춥게 하고, 나를 얼게 하려하는가? 내가 너보다 더 차가워져 너를 얼려 버리겠다.’(뭇사람 웃음, 박수) ‘네가 나를 덥게 한다면 거꾸로 내가 너를 덥게 해서 네가 더워서 견디지 못하도록 하겠다.’”[3] 나는 사부님의 이 한 단락 법의 한 층의 의미를 깨달았다. 갑자기 자신이 마땅히 정정당당해야 하며 더욱 열정적으로 진상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 사람이 듣지 않으면, 그 사람 자신이 양심이 없어 부끄러워해야 하며 내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 후 비가 이틀간 내려 집에서 이틀 법공부 했다.

7월 25일 내가 매점에서 진상을 알릴 때 먼저 강대한 일념을 보냈다. ‘나는 전 우주에서 가장 바른 일을 하고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 일은 가장 좋은 일이고 나는 가장 큰 선념으로 당신을 구한다.’ 나는 정정당당하고 의욕이 더 커졌다. 진상을 알릴 때 내 주변의 무형의 압력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음은 더 편안해졌다. 이렇게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고객과 진상을 알리고 고객도 역시 진지하게 듣는다. 듣지 않는 사람은 정말로 자신이 부끄러워 도망간다. 이후에 압력의 느낌이 나오면 이 일념을 사용한다. 때로 염하지 않았는데 마음이 편안하다. 이후에 마땅히 집착심을 이기는데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정당당한 대법제자인데 집착심을 두려워할 것인가.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이 오면 그것을 쫓는다. 이렇게 어떤 집착심이든 마음속에서 먼저 한번 웃은 후 가볍게 그것을 제거한다.

지금 나는 수시로 진상을 알릴 수 있고 게다가 가볍고 자연스럽게 진상을 알릴 수 있다. 마치 다른 사람과 잡담하는 것 같다. 진상을 듣지 않는 사람은 그가 가련해 보이고 듣고 탈퇴하지 않는 사람은 정말로 그를 위해 아쉬워한다. 때로 자신이 잘 말하지 못해 그가 탈퇴하지 않으면 자책한다. 그를 구하지 못해 괴로워한다.

지금까지 듣기 싫은 말을 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비록 내가 말하는 내용은 간단하지만 말마다 내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3분을 듣는 사람은 대다수 삼퇴를 하고 많은 사람이 나에게 감사하다고 말한다.

매일 큰 관이든 작은 관이든 모두 가볍게 넘어갈 수 있다. 매일 법공부를 하고 신경문을 보며 밍후이왕에 발표한 수련생의 교류문장을 본다. 오래 보다보니 밥 먹는 시간마저 줄이게 된다. 때로 마음에 닿게 보면 연공할 때처럼 한 줄기 강대한 에너지가 감싸고 있는 느낌이다. 때로 정말로 말마다 마음에 닿는다. 매 구절의 의미는 이전과 모두 다른 새로운 체험이 있다. 매일 제고가 있는 느낌이다. 남편이 듣기 싫은 말을 해도 웃고 지나간다. 이것은 모두 내심에서 우러난 것이다. 마치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활 중의 일체는 나에 대해 그렇게 ‘허무(虛無)’한 것 같다. 일사일념은 자연히 대법의 일을 생각하고 있다. 물론 매번 수련이 잘 된 부분이 지나간 후 아침에 일어나면 또 상태가 좋지 않다. 하지만 법공부를 통해 하루 이틀이면 좋아진다.

수련생들은 내 상태를 보고 아마 나의 의지력이 아주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많은 수련생에 비해 의지력은 정말로 아주 부족하다. 지금 결가부좌를 40분밖에 못한다. 의지력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6월 중순 이전에 많은 집착심이 모두 좋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의지력이 부족해 제거하지 못했다. 처음에 ‘전법륜’ 4,5강까지 보고도 무엇을 말했는지 통 알 수 없었다. 단지 예언에 따라 사부님은 마땅히 구세주라고 믿고 있었고 또 파룬궁이 전 세계에 널리 전해져, 느낌에 파룬궁은 대단하다고 생각해 비로소 견지했다.

지금의 상태가 있게 된 것은 주로 아래 3가지가 있다. 첫 번째, 매일 법공부를 하는 시간이 비교적 길고 일체 시간을 이용해 법공부 했다. 자신을 시시각각 법에 놓는데, 당신은 한 명의 대법제자로서 법공부를 하는 것은 마치 속인이 배가 고파 밥을 먹는 것과 같은 요구라고 느낄 것인데, 정말 그런 갈구하는 느낌이다. 집착심이 나를 교란해 눈을 뜨지 못하게 했으나, 사람이 밥을 먹듯 나는 법공부를 했고, 게다가 법공부를 내려놓지 못했다. 내려놓으면 마치 사람이 배가 고파 힘이 없는 느낌이었다. 조금 더 배우고 싶고 조금 더 배우고 싶었는데, 서서히 모든 것이 모두 변했다. 두 번째는 신사신법이다. 처음에 자신도 사람의 관념으로 대법을 대하고 각종 의혹이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대법이 맞다고 생각하고 정법이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법공부를 할 때 “그래서 그에게 알려 준다: 자네는 여기에서 연공(煉功)을 잘 하도록 하게. 내가 나갔다가 잠시 후에 올 테니 자네는 날 기다리도록 하게.”[2] 이 한 단락을 볼 때 갑자기 나는 눈물이 났다. 사부로서 제자를 제도하기 쉽지 않고 사부님께서 우리를 제도하는데 매우 어렵고 고생스럽다는 것을 체험했다. 동시에 자신이 사부님을 백분의 백으로 믿지 못한 것에 부끄러웠다. 스스로 백분의 백으로 신사신법(信師信法)해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마음속에 한 가닥 신사신법하지 않는 염두라도 있으면 모두 부정하고 빨리 청리했다. 반드시 자신이 백분의 백으로 신사신법하게 해야 계속 일을 할 수 있다.

“자신이 잘 수련했다고 인식하는 마음”은 나에게 줄곧 교란이 컸다. 하지만 어떻게 제거해야 하는지 모르고 이것이 바로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8월 3일 그날 ‘정진요지3-유럽법회’ 이 경문을 배울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련생의 각종 사람 마음이 내 생각에 없다고 느꼈고, 나는 그들보다 잘 수련했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이 나오자 나는 틀렸다고 생각했다. 본성의 자아는 어떻게 생각할까? ‘겸손’ 두 글자가 머릿속에 나타났다. 이때 나는 또 이틀 전에 신생망에서 모의천하(母儀天下-황후라는 의미: 역주)가 어질다는 것을 보았는데, 겸손의 고귀함을 느꼈다. 나는 깊이 겸손의 상태를 체험했는데, 일종 깊은 안정감(安實感)으로 아주 평화롭고, 아주 온건하며, 아주 성실하다.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나를 지옥에서 꺼내 순정한 대법으로 나를 조금씩 씻어주셨다. 나의 모든 것은 위대하신 사부님, 위대한 대법이 부여한 것인데,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잘 수련했다고 여기는 것은 사람의 각도에서 문제를 보는 것으로, 곧 가소로운 사람 마음이다. 8월 5일 수련생의 ‘착실한 수련과 협조’를 본 후 겸손에 대해 더욱 깊은 체험이 있다. 지금 다시 수련생의 글을 보니 수련생의 빛나는 점을 볼 수 있었고, 역시 자신의 부족한 면도 볼 수 있었다. ‘자신이 잘 수련했다고 인식하는 마음’은 자주 나오지만 매번 나는 그것을 잡을 수 있고 그것을 제거할 수 있다.

8월 9일 아침, 나는 이전에 일부 10여년 수련한 노수련생이 생각났는데 아직 집착심이 한 무더기 있으며 일이 있으면 사부님께 구했다. 정말로 그들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정말로 사부님께 죄송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 일을 생각하니 나의 각도는 완전히 변했다. 그들이 줄곧 이런 무거운 사람 마음을 품고 걸어오면서 길에서 많은 마난과 곤란을 만났는데 걷는 것이 아주 힘들고 고생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법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의지력과 대법에 대한 확고함은 정말로 소중하다. 그들이 걸어 나올 수 있어 정말로 존경스럽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한줄기 열기가 줄곧 나의 온몸을 관통했다. 몇 분이 지나도 열기가 줄곧 통하고 있었다. 나는 겸손으로 ‘자신이 잘 수련했다고 인식하는 마음’을 이겼다는 것을 알고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경언’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문장발표: 2014년 8월 1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8/12/2959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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