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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와 시험

[밍후이왕] 어느 저녁 무렵, 두 초등학생이 잔디밭 큰 돌에서 숙제를 하는 것을 보았다. 비록 불편해 보이지만 그들은 진지했다. 갑자기 우리 수련인도 매일 ‘숙제’가 있지 않는가? 법공부, 연공, 발정념, 진상알리기, 이것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하신 ‘숙제’가 아닌가? 우리는 매일 백분의 백으로 질과 양을 보장하며 완성했는가? 매일 법공부를 했는가? 마음에 닿게 했는가? 5장 공법은 매일 단번에 다 했는가? 매일 4개 정각 발정념을 견지했는가? 발정념을 할 때 혼미하고 손이 넘어갔는가? 우리 신사신법, 경사경법을 말하고 있는데 매일 숙제를 완성하지 못하고 잘하지 못하면 어찌 경사경법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또 어찌 ‘시험’에 대면하겠는가?

나는 꿈에 자주 시험을 본다. 늘 준비가 잘 되지 않고 심지어 근본적으로 복습을 하지 않아 조급해하고 피동적이다. 깨어난 후 반성했다. 법공부도 하지만 마음에 닿게 하지 못했고 대충대충 임무완성 하듯 한다. 연공하지만 힘들고 졸리면 게으름을 피운다. 수련생은 나에게 “사흘간 고기를 잡고 이틀간 그물을 말린다(역주: 꾸준히 하지 못하고 하다 말다 한다는 뜻)”고 한다. 발정념을 할 때 혼미하고 손이 넘어진다. 밤에도 자주 잠들어 버린다. 자신이 평소 정진하지 않아 비로소 시험에서 ‘허둥지둥’하고 피동적이다.

사실, 우리는 평소 마난과 관을 넘길 때 구세력의 배치와 박해를 부정하는 외에 우리는 그것을 ‘시험’으로 삼아 보는 것도 좋다. 시험지를 보고 우리는 늘 도망가면 안 되지 않는가? 물론 다른 사람의 것을 베끼면 안 되고 더욱이 사람을 찾아 대신하면 안 된다. 하지만 나는 발견했는데 어떤 수련생은 갑자기 닥친 마난에 어찌 할 바를 모른다. 자신을 수련인으로 보고 용감히 대면하고 정념으로 관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둘러가려 하거나 안전한 곳으로 피하려 한다. 혹은 협조인을 찾아 방법을 찾고(의뢰심), 혹은 스스로 보기에 법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찾아 해결해 달라고 한다(숭배심). 어떤 수련생은 아예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말한다. 누가 깨달으면 누가 얻는다. 다른 사람이 있는 답안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심성에 도달하지 못하면 당신도 할 수 없다. ‘7.20’을 회상해보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베이징에 가야 하나 가지 말아야 하나요?” 답안을 알고 그는 그래도 가지 못했다. 그래서 마난을 직면해 마땅히 법을 사부로 모시고 법의 기점에 서서 깨닫고 수련해야 비로소 진정으로 법에서 제고할 수 있다.

문장발표: 2014년 8월 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8/9/2957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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