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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名)을 다시 말함

글/ 모수밍(未署名)

[밍후이왕] 나는 밍후이왕에서 ‘명을 말함’을 쓴 저자다. 이 글을 쓸 때 사상이 성숙되지 못했다. 한동안 지나서 많은 이치를 알게 되어 다시 이 글을 써 수련생과 교류하려 한다.

무엇이 ‘명’인가? 마음속으로 다른 사람이 자신이 좋다고 말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스스로 반성하면 알 수 있는데,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다른 사람이 자신이 좋다고 말하는 것을 바라며 자신이 나쁘다고 하면 기뻐하지 않는다. 명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아첨하고, 칭찬해서 행복하다. 명이 없으면 혹은 명을 잃어버리면 압박당하고 억제당하며 고생한다. 다른 사람의 아첨과 칭찬에서 출발하거나 혹은 압박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억제에서 출발해 자신의 행위를 닦는 것은 모두 명을 구하는 것이다. 나는 명은 상명(上名), 중명(中名,), 하명(下名)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절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단지 요점을 표현하기 위해 시도한다.

‘상명’을 구하는 것은 노력해 자신을 닦아 사람마다 부러워하는 높이, 지위에 도달해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고 아첨하게 하는 것이다. 사회적인 표현은 많은 사람이 사장이 되려하고, 지위가 있으려 하고, 두각을 나타내려 한다. 이것이 바로 명을 구하는 것이다. 홍루몽에 “옛날 장상(將相)은 지금 어디 있는가. 황량한 무덤과 한 무더기 풀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바로 상명을 구한 사람을 말하는 것인데, 사실 꿈과 같다. 어떤 수련생의 수련은 실질상 상명(上名)을 구하는 것이고 장래 사람마다 존경하고 누구나 자신이 좋다고 말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공산당이 무너지면 대법제자는 자연히 큰 이름을 떨칠 것이다. 전 세계 사람마다 모두 부러워할 것이다. 이것도 상명인데, 대법제자에 대해 큰 고험이다.

‘중명’은 바로 존비(尊卑)이다. 누가 위이고 누가 아래인가 하는 문제다. 사회적으로 심지어 가정에서도 순서의 문제가 있는데 바로 존비이다. 존(尊)은 우선의 권리를 향유하고 비(卑)는 압박당하고 억제당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존(尊)을 구하고 비(卑)를 피한다.

‘하명’은 바로 명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사람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파악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매우 고생스럽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은 이것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 명을 잃은 한순간 사람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하다.

명을 닦는 것은 두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하나는 마음속의 문제인데 아주 자연스럽게 표현되고 완고한데 사람은 모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련인은 조심하지 않으면 속인 중의 올가미로 돌아가기 쉽다. 또 하나는 ‘하명’을 닦는 것은 아주 고생이다. 작은 명을 잃으면 괜찮지만 큰 명을 잃으면 살지 못한다.

진수자(真修者)는 명에 집착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진정으로 명리정(名利情)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표면의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고, 마음속에서 자신을 실증하는 행위를 구는 것이 더는 없을 것이다.

이상은 약간의 심득이며 수련생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문장발표: 2014년 8월 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8/8/2957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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