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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깨달음에 대한 약간의 이해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모든 사람은 수련 중에서 각종 문제, 번거로움, 어려움에 부딪힌다. 어려움 속에서 어떤 때 갈피를 잡지 못해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흔히 두서를 찾지 못하거나 많은 문제 중에서 관건적인 요소를 찾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흔히 아주 괴롭다.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지 못해 장기간 난관에서 걸어 나오지 못하고 믿음에 좌절이 생기며 심지어 소극적으로 나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어려움 속에서 어찌할지 모른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봉착한 각종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지 알려주셨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생들이 난(難) 속에서 일의 원인을 보아내기란 아주 어렵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며 마음을 조용히 하고 대법(大法)으로 가늠해 보면 곧 일의 본질을 보아낼 수 있다” [1]라고 하셨다. 인간 세상 속의 어지러운 현상이 많고 세간은 또 사악의 박해 압력이 줄곧 존재하며 모든 수련생이 인간의 몸으로 수련하고 칠정육욕에 싸여 있으며 가정, 직장, 사회에서 오는 많은 모순이 있기 때문에 정말 복잡하다. 이 때문에 표면적인 일에 이끌릴 때가 많아 각종 가상에 미혹되어 문제의 실질이 보이지 않는다. 문제의 구체적인 상황에 맞춰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이 번거로움이나 어려움이 오래가게 된다. 보기엔 아주 노력하는 것 같지만, 흔히 별 효과가 없다. 돌파하고 싶지만 일시 돌파하지 못해 어려움 속에서 정말 고통이 말이 아니다.

여기에서 나의 약간의 체험을 말하겠다. 며칠 전 한 수련생이 모 부서에서 그를 찾아 지금 거리에 자료가 아주 많다고 나에게 알려주라고 했다. 무슨 뜻인가? 나에게 주의하라고 귀띔한 것이다.

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다른 사람이 다 아는 것이 아닌가? 보호해야 하는가? 등등 바로 내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왜 움직였는가? 두려움 때문에 나 자신에게 일이라도 생길까 봐우려됐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마음이 줄곧 안정되지 않았다. 그 두려운 마음이 은근히 반복적으로 나타나 안절부절못했다. 지금이 ‘7.20’ 기간이어서 형세가 긴장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하고 사이트를 보니 박해 사례가 이전보다 많았다. 이것이 모 부서에서 내 동창을 찾아 알린 이유인 것 같았고 순리인 것 같았으며 나에 대한 교란이 정당한 것 같았다.

며칠 간 줄곧 이 상태여서 마음이 아주 괴로웠다. 한편으론 세 가지 일을 하고 싶었다.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로서 우리의 책임과 사명이 모두 그 속에 있다. 다른 한편으론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다른 사람이 이미 나를 언급했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끊임없이 법공부하고 끊임없이 밍후이왕에서 발표한 교류문장을 보고 어떻게 이 문제를 대해야 할까 사고하다가 어제서야 마음의 미혹을 풀었다.

내가 주목받게 된 것은 형세가 긴박해서가 아니고 무슨 외부 형세 변화 때문인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이 항목을 할 때부터 두려움이 생겨 많이 하면 나에게 번거로움, 어려움을 주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착오적인 인식 때문에 일을 많이 하면 많이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는 이것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주 중에서 가장 바른 일, 좋은 일을 많이 할수록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다 유익한(물론 자신에게 유익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이런 이치라는 뜻) 것인데 오히려 좋지 않은 일이 많아지겠는가? 이것이 구 우주의 이치에 부합된 것이 아닌가! 마치 예수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그것은 과거 우주 이치에 국한된 것이지만 우리가 배운 것은 우주 대법으로써 사람 구하는 그런 박해 받는 과거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배치하셨다. 많이 할수록(물론 일을 하는 것을 수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사람을 많이 구할수록 길은 점점 넓어져야 하고 각 방면에서 마땅히 점점 순조로워야 맞는 것이다.

여기까지 분석하고 나는 자신의 두려운 마음 때문에 내가 주목받게 됐고 내가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이 잘못돼 무의식중에 낡은 이치를 승인해 내 심리가 안정되지 못하고 아주 큰 곤혹이 나타난 것이며 가장 바른 일을 하면서 마음은 오히려 태연하지 않고 정정당당하지 못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다.

내가 안절부절못하던 요 며칠 나는 아내(수련생)에게 화를 냈다. 아내의 두려운 마음 때문에 나도 따라서 두려워졌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 문제가 더 복잡해지고 환경도 더 엉망으로 변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내 마음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여기까지 쓰니 이렇게 많은 세월 동안 나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진정한 바른 깨달음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모두 두려운 요소를 섞어 문제를 사고하고 일을 하고 법공부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문에 엄격하게 말하면 그것은 모두 바른 깨달음이 아니다. ‘7.20’ 전의 깨달음과 비하면 모두 두려움이라는 바르지 않은 요소를 갖고 있다. 왜 바르지 않은가? 내가 두려움을 갖고 문제를 사고하고 대하고 처리했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으로 주위 모든 것을 대할 때가 많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만약 한 생명이 진정으로 중대한 문제에 관련하여 어떠한 관념을 갖지 않고 문제를 가늠할 수 있다면, 이 사람은 정말로 자신이 자신을 주재(主宰)할 수 있다. 이런 청성(淸醒)은 지혜이며 일반인의 이른바 총명(聰明)과는 다르다”[2]고 알려주셨다. 내가 줄곧 두려움을 가지고 문제를 가늠했으니 어찌 바르게 깨달을 수 있었을까?

이 사건을 빌어 나의 많은 부족한 점을 찾았다. 내가 앞으로 수련에서 철저하게 이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고 아무 관념도 가지지 않고 문제를 보고 진정하게 바르게 깨닫고 정법정각(正法正覺)의 대 지혜를 수련해 낼 수 있었으면 한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2-이성’[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문장발표: 2014년 8월 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8/1/2954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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