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진실하지 못함을 닦아 버리자

글 /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 사부님께서는 “이 우주 중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 眞(쩐)・善(싼)・忍(런), 그가 바로 불법의 최고 체현이며, 그가 바로 가장 근본적인 불법이다.” [1] “극히 높은 곳에 이르러 말한다면, 그것은 아주 간단하다. 왜냐하면 법은 마치 피라미드 모양과도 같기 때문이다. 극히 높은 층차에 이르면 세 글자로 개괄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眞(쩐)・善(싼)・忍(런)이며, 각개 층차에서 현현(顯現)하면 극히 복잡하다.” [1]라고 말씀하셨다.

여러 해 동안 수련하였지만 사실 흐리멍덩했고, 많은 일에서 명백하지 못했다. 수련한 후 사존님의 설법을 보면서 많은 법리를 깨닫게 되었지만 ‘쩐, 싼, 런’ 이 세 글자는 보기에 간단해 보이는 데다, 이 세 글자에 내포된 뜻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쩐, 싼, 런을 반드시 도달해야 할 표준으로 삼지 않았다.

오늘에야 비로소 쩐, 싼, 런은 우리가 반드시 해내야 하는 것으로, 진실하지 못하고, 선하지 못하며, 참지 못한다면 원만하지 못하고 새 우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타협하여 거짓말을 하거나, 악의없는 거짓말을 하거나,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거짓말을 하는 게 일종의 생활태도가 되어 버린다면 진실하지 않고, 거짓말하는 게 늘 자신에게 표현되어 나올 것이다.

(1) 법을 실증함에 진실해야 한다.

법을 실증하려고 문장을 쓰거나 예술작품을 투고할 때 반드시 진실해야 하는데 이것은 하나의 수련과정이다.

예를 들면, 문장을 쓸 때 당문화와 거짓말, 큰소리, 헛소리 등 진실이 아닌 것들이 늘 나에게 작용을 일으켰고 조짐을 보여주었다. 수시로 자신을 바로잡아야 했는데, 곡해, 과장 이런 것들은 모두 진실이 아닌 것으로 매번 문장을 쓸 때마다 진실하지 않거나, 과장하거나 곡해한 곳이 없는지 찾아보았다. 그것은 자신에게 있던 변이된 것들을 닦아 버리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공예 작품을 투고할 때 각 부품(실크 꽃 연방, 잎, 화분, 조롱박에 다는 술……)은 모두 수공 제작해야지 기존 부품을 사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온 상품으로 투고하면 뭐가 되겠는가? 만약 기성 부품을 샀다면 마땅히 부품의 어느 부분이 사온 것인지 주석을 달아야 한다. 이 때문에 나는 대충 대충하면 되고, 그렇게 진지할 필요가 없다는 변이된 사상을 애써 개변하여 진실 되도록 노력했고, 수공예품 작품을 투고할 때 매 부품 하나마다 모두 진정한 수공품이 되도록 노력했다.

(2) 생활 속에서 진실하지 못함이 폭로되다

자신이 진실하게 행한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수련해보니 여전히 진실하지 못함을 발견하였다.

예를 들어, 소모품을 사려고 시장조사를 할 때 여러 곳을 둘러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점점 거짓말에 습관 되어,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다음 날 당신 집에서 살게요.” 하지만 나는 다른 집의 것을 사버리면서 말한 대로 하지 않았는데, 빈 약속을 하는 게 이미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어떤 때는 시장조사 하는 것도 아니고, 살 생각도 전혀 없지만 “다음날 당신 집 물건을 살게요.”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주인이 소개하도록 한다. 상품에 대한 호기심을 만족하게 하고 스스로 흥미 거리를 찾아 외로운 마음을 달래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불법 운행 차량을 타고 편벽한 농촌에 갈 때였다. 나는 그 마을에 간 적이 없는데, 만약 기사가 나를 다른 곳에 데려가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안전을 위해 친척이 마중하러 나온다고 거짓말을 한다. 일상에서 이런 거짓말은 입만 벌리면 나오는 게 마치 밥 먹듯이 했다.

비록 이런 저런 이유가 있고, 악의가 없으므로 진지하게 찾지 않으면 정말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러 방면에서 거짓말하고 진실하지 못한 그림자가 있는데, 습관적으로 거짓말할수록 거짓말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3) 당문화의 독해를 제거하다

내가 언제부터 거짓말을 배웠는지 반성해 보니,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거짓말과 진실 되지 않음을 교육받았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때, 서술문을 쓰는 방법을 배우는데 제목이 ‘……의 한 가지 일을 기억하며’였다. 학생들 모두 경험하지 않았기에 써내지 못했다. 그러자 국문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그런 종류의 문장 작성법을 가르치기 위해 우리에게 스스로 상상을 해서 문장을 완성하라고 하였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선생님은 우리에게 위선을 가르쳤다. 누군가 수강하러 오면 수업했던 과목을 한 번 더 배우는데, 한 번도 안 배운 것처럼 위장하고는 학생을 뽑아서 거짓으로 질문을 던지게 했다.

이러한 당문화 독해 하에서 자랐기에 가짜를 만드는데 습관이 되어버렸고 거짓말, 빈말을 하는 게 매 세포 속에 깊숙이 침투되어 수시로 폭로된다. 만약 이러한 독해를 똑똑히 인식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몸에 배어있는 당문화의 여독을 인식하기몹시 어렵다.

(4) 진실하지 못한 배후에는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을 위하는 사심이 있다.

매번 자신이 거짓말을 한 배후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거나, 자신과 가족 혹은 이기적인 어떤 마음 때문이었다. 배후에는 모두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교활하게 덮은 게 있는데, 교활한 생명이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나는 생명은 무엇 때문에 ‘진실’해야 하는지를 조금 알게 되었다.

거짓말하고, 진실하지 않은 게 옳지 않음을 인식한 후 나는 자신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사존님께서는 “나는, 내가 원치 않는 말은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한 말은 꼭 참말이어야 한다.” [1]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반드시 원치 않는 말은 하지 않고, 한 말은 꼭 참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나는 싼(善)과 런(忍)도 행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자신을 비추어보니 원망은 선하지 않음의 표현이고, 화내고 안일을 구하는 것은 참지 못하는 표현이다. 이러한 것은 내가 지금까지도 완전히 고치지 못한 것들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존님 저작: ‘전법륜’

문장발표: 2014년 7월 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7/5/294221.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