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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513] 막무가내이던 시어머니가 변했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시어머니는 만면에 웃음을 띠면서 나와 한담했다. “며칠 전, 나는 돈을 좀 가지고 마을의 암에 걸린 사람을 보러 갔어. 그녀의 남편은 예전에 나를 비판, 투쟁한 적이 있었는데 그녀 가족은 나를 보고 아주 감동했어. 지금 나는 너의 시아버지와 다투지 않고 너의 시아버지의 단점을 참을 수도 있어. 명절에 이웃들이 물건을 보내와도 공짜로 받지 않으며 방법을 대어 그들에게 물건을 돌려보내는데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지 않아. 나는 생각이 많이 긍정적이게 되고 기분이 많이 좋아졌단다.”

시어머니의 희귀하고 비참한 반평생

시어머니는 예전에 지극히 이기적이고 마음이 좁은 사람이었다. 적대감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고, 항상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말을 한다고 의심하였으며, 매일 불안해하고, 초조한 상태에 빠져 늘 고함을 지르며 말했다. 가족에 대해 무자비하고 수단이 악랄하며 냉혹하고 잔인했다. 밀가루 반죽 막대기로 대여섯 살밖에 안 된 외손자를 때리고, 딸이 한 일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밧줄을 하나 던져 주면서 딸보고 목을 매달라고 하였다. 늘 칼을 들고 시아버지를 쫓았고, 자신의 시어머니에 대해서도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욕했다. 불인(不仁), 불의(不義), 불충(不忠), 불효(不孝)를 그녀는 모두 가졌다. 수련하기 전, 남편한테서 이런 일을 듣고 나는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아이는 아주 전형적인 여섯 글자, “막무가내, 희귀”라고 말했다. 수련한 후에야 나는 알게 되었는데, 이는 중공의 당문화가 총명하고 재능 있는 시어머니를 이렇게 왜곡되게 만든 것이었다.

시어머니가 어릴 적에, 집의 재산을 몽땅 공산당에게 뺏겼고 아버지는 총살당했다. 어린 시어머니는 동냥하여 식구들을 먹여 살렸는데 심지어 돼지 사료를 먹은 적도 있었다.

젊었을 때 시어머니는 출신 성분이 지주(地主)인 남편에게 시집갈 수밖에 없었다. 비판 투쟁대회에서 시어머니는 늘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될 정도로 구타당했고, 집에 돌아와도 아무런 위로도 받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장년 때, 시어머니가 가장 애지중지 아끼던 아이가 중병에 걸렸지만, 출신 성분 때문에 휴가를 낼 수 없어 아이는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시어머니는 미치게 됐고, 아주 오래 지나서야 회복되었다.

중년 때, 시아버지는 갑자기 모함을 당해 잡혀가게 되었는데 시어머니는 정신병이 재발한 데다 중병에 걸렸지만,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해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후에 한의사 한 분이 약초를 캐주어 병이 나았다.

노년 때, 아들이 분가한 후 시어머니의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60여 년 동안 중공의 암흑 같은 통치하에서 안간힘을 쓰며 버텨왔다. 안팎으로 처한 어려운 상황은 시어머니의 마음을 왜곡시켰고, 그녀로 하여금 여성의 부드러움과 고운 품성을 잃어버리게 하였다. 머릿속에는 중공사당의 ‘거짓, 악, 투쟁’의 독소가 주입되어,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고 위선적이며 자기보다 약하고 무능력한 사람을 미친 듯이 업신여겼다. 농사일을 도와줄 사람을 찾기 위해 시어머니는 딸 하나를 바보에게 시집보냈는데 바보는 부려먹기가 쉽게 때문이다. 돈을 위해 다른 딸을 사기꾼에게 시집보냈는데 사기꾼이 자기에게 돈이 아주 많다고 했기 때문이다. 권세 있는 사람에게 빌붙기 위해 또 다른 딸을 핍박하여 바람이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은 약한 남자에게 시집보냈는데 남자 측 먼 친척이 고위 관리이기 때문이다. 딸들이 어떻게 살았을지 감히 짐작되지만 이럼에도 시어머니는 가만히 있질 않았다. 딸들에게 금목걸이, 금반지, 금귀걸이를 사내라고 하였고 사주지 않으면 딸들 집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소란을 피웠다.

고부 사이는 얼음과 서리처럼 차가웠다

큰아들은 시어머니를 쏙 빼닮아 냉혹하고 이기적인데 시어머니는 뒤에서 아들을 저주하고, 큰 며느리와 여러 해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에 대해서도 시어머니는 마찬가지로 황당한 일을 한 적이 있는데 우리 결혼잔치 때 축의금을 사사로이 가로채 그 돈으로 자신의 금귀걸이를 사고는 우리에게는 거액의 빚을 떠넘겼으며, 남편에게 매달 40위안(약 6,500원)의 부양비를 내라고 하였는데 그때 남편은 월급이 고작 몇십 위안밖에 안 되었다.

내가 임신하여 시댁에 갔을 때, 임신반응으로 구토가 그치지 않고, 코피도 났지만, 시어머니는 무관심하였다. 그녀는 오로지 딸인지 아들인지만을 관심하면서 만약 딸이면 얼른 남을 주어버리라고 말했고, 늘 시비를 일으켜 남편이 나와 다투게 하였다. 아이가 태어나자 시어머니는 또 크게 한몫 챙길 기회가 생겼다. 축의금은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갔고, 친척 친구들이 보내온 물건들은 팔 건 팔고, 먹을 건 먹고, 쓸건 써버린 후 아기 옷과 용품만 나에게 남겨 주었다. 나는 화가 나서 말했다. 이건 어디 내가 아이를 낳은 것인가, 분명히 당신 어머니가 아이를 낳은 것이지! 남편은 말문이 막혔다.

이때부터 나는 더 이상 시어머니의 음침한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고, 그녀와 함께 한 테이블에서 식사하고 싶지도 않았다. 말 한마디도 섞기 싫어졌고, 시어머니를 지극히 혐오하였다. 시어머니는 남편이 그에게 효도하는 걸 믿고 막무가내였는데 우리 집에 오면 종래로 집안일을 하지 않았고, 식사할 때가 되어 밥이 없으면 식당에 갔다. 어느 한번 정월 보름에 나와 남편은 일이 있어 점심 한 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시어머니는 다리를 꼬고 앉아서 우리가 돌아와서 밥 짓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나는 시어머니가 오늘은 왜 식당에 가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이상해했는데 알고 보니 오늘은 명절이라 식당은 모두 문을 닫은 것이었다. 더욱 심한 것도 있었는데 어느 해 정월, 우리는 친한 친구들을 식사에 초대하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부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시어머니는 울고불고 난리 치면서 밧줄로 목을 맨다 하지 않는가 하면 우물에 뛰어든다 하면서, 남편과 모자 관계를 끊겠다고 위협하였다. 남편은 어쩔 수 없어 나, 아이와 함께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해서야 그녀는 그만두었다.

원래 나와 남편은 사이가 아주 좋았지만, 시댁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남편은 나와 다툰다. 나는 시어머니가 또 남편 앞에서 이간질했다는 것을 알고 화가 나서 남편과 이혼하여 괘씸한 시어머니한테서 벗어나고 싶었고, 남편도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매우 난처해했다. 나와 말다툼을 할 때 그는 늘 울면서 시어머니가 예전에 얼마나 고달팠다고 하소연하면서 내가 시어머니를 용서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 또한 당문화의 독해가 아주 심해 당한 그대로 똑같이 갚아주려 하면서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족 관계가 매우 딱딱했고, 마음속에 화가 가득해 건강에도 점차 적신호가 켜졌다. 또한, 시어머니 역시 꼬인 마음 때문에 온몸이 병으로 가득했는데 고혈압, 폐기종, 심장병, 위장염, 담낭염, 류머티즘 등등이었다. 돈에 인색하여 수중에 돈이 있어도 아까워서 약을 사지 않고 억지로 버텼고 도저히 못 버티면 아들에게 전화했다. 병고에 시달려 제대로 살지 못했다.

대법을 수련하고 과거의 원한이 얼음 녹듯 녹았다

후에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였는데 리훙쯔 대사님의 모든 저작을 삼가 읽은 후, 나는 이 18년 동안 시어머니에게 한 여러 가지 행위에 대해 반성하였고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파룬따파는 수련자에게 남을 선하게 대할 것을 요구하고, 각 방면에서 남을 배려하며, 모순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고, 덕으로 원한을 풀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나는 당문화에 부추겨져 시어머니와 날카롭게 맞서며 물러서지 않았는데 고대의 일반 부녀보다도 못했다.

나는 오늘부터는 진심으로 시어머니에게 효도할 것이라고 남편에게 정중히 선포하였다. 남편은 듣고 나서 아주 기뻐하면서 “나 이 풀무 속의 쥐가 드디어 해를 보는 날이 왔네. 응? 이상하네! 당신은 왜 갑자기 이렇게 좋게 변했지?”라고 했다. 나는 아주 진지하게 남편에게 말했다. “왜냐하면, 파룬궁은 ‘쩐(眞)、싼(善)、런(忍)’을 말하고, 수련인에게 다른 사람을 진실하고, 선량하며, 너그럽게 대해야 한다고 했어요. 하물며 당신 어머니는 나의 시어머니인데요.” 남편은 듣더니 말했다. “당신이 어머니에게 잘하기만 하면 나는 당신이 연공하는 걸 상관하지 않겠소.” 이 전에 남편은 중공의 거짓 선전을 믿고, 또 중공의 수련인에 대한 박해가 두려워 내가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을 매우 반대했었다.

그 후 나는 직접 시부모님을 집에 모셔와 한동안 머물게 하면서 극진히 대접하였다. 풍성한 식사를 준비해 그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옷과 모자와 신발을 사 드렸으며, 나의 금은 장신구를 시어머니에게 주었다. 생활용품을 집으로 보냈고, 계절이 바뀌면 도와주며 햇빛에 말리고 빨래를 해주었다. 시어머니의 침대가 불편한 것을 보고 시먼스 침대를 사서 보냈고, 시부모님이 생활용수를 얻기 어려운 것을 알고 비용을 들여 사람을 구해 물을 길어다 주었으며, 시부모님이 친척 집에 가면 나는 선물을 준비해 드렸다. 시부모에 대한 세심한 배려에 남편마저 감동하면서 “내가 무슨 덕이 있어서 당신처럼 시부모에게 잘하는 아내를 얻었는지 모르겠소, 진심으로 당신에게 감사드리오.” 나는 “감사드리고 싶으면 나의 사부님께 드리세요. 수련하기 전에 나도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잖아요.” 남편은 웃으면서 인정하였다.

이 모든 것을 믿지 않는 시어머니는 내가 갑자기 180도로 변하자 처음에는 나에게 무슨 의도가 있는 줄로 의심하면서 고마워하지 않았고 여전히 냉담하게 나를 대했다. 나는 그녀에게 파룬궁은 나에게 많은 도리를 가르쳐 주었는데 사람은 다투고 빼앗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고 덕을 쌓아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시부모에게 파룬궁의 진상을 알려 주었고, 그들과 함께 진상 CD, 션윈 문예 야회를 보았으며, 사부님의 설법녹음을 들었다. 이전에 쌓인 깊은 원한 때문에 시어머니는 나에 대해, 파룬궁에 대해 여전히 반신반의해 하였는데 나는 내가 한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느 해 정월, 시어머니가 고질병이 발작해 일어나지도 못한다는 것을 듣고 추운 날씨에다 길이 미끄럽고 차가 막히는 것을 무릅쓰고,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모셔갔다. 가는 길에 나는 늘 차에서 내려 눈을 치우고 얼음을 깨면서 갔는데 한 시간의 노정이 예기치 않게 세 시간이나 걸렸다. 나는 녹초가 되어 곧 쓰러질 것만 같았고 시어머니는 마침내 감동되어 진심으로 말했다. “오늘 네가 정말 수고했어.” 나는 이 기회를 틈타 대법진상 호신부를 시어머니께 드리면서 파룬궁이 병을 치료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신기한 효과가 있음을 얘기하면서 그녀에게 중공의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하였다. 시어머니는 호신부를 받으면서 말했다. “공산당이 나쁘다는 건 나도 깊은 체득이 있지. 나는 파룬궁이 좋은지 안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네가 파룬궁을 연마하고 나서부터 우리에게 이렇게 잘하는 걸 보면 이 공이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

그때 시어머니는 약을 먹지 않고 온 저녁 성심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만 외웠는데 이튿날 그녀는 뜻밖에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 후로 시어머니는 다시는 허세를 부리지 않았으며, 집안일을 뺏어 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어머님이 변하셨어요.” 시어머니는 “이건 너한테서 배운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파룬궁의 감화 하에 우리 고부 사이는 마침내 화해하였고, 무릎을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무슨 얘기나 다 할 수 있는 모녀가 되었다.

시어머니가 변하자 자손들이 효도하다

하지만 당문화의 독해가 너무나 깊었던 시어머니는 예전에 자신을 비판 투쟁했던 마을 사람들을 극도로 미워했고, 시아버지의 냉혹함과 무정함, 아들이 이기적이고 불효한 데 대해 마음속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동시에 공산당의 고압적인 사람 다스리기는 그녀의 마음속에 깊이 박혀 그녀는 온종일 초조하고 불안해하며 공포 속에서 지냈는데 문화대혁명이 또 한 번 올까 봐 두려워했다. 시어머니가 고통받는 것을 보고 나는 일반적인 말로는 소용이 없고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반드시 그녀로 하여금 진정으로 중공의 사악한 본질을 보게 하고 고통의 근원을 알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시어머니와 함께 ‘9평 공산당’ CD를 보고, ‘인과응보’에 관한 진실한 이야기를 들었으며, ‘신전문화(神傳文化)’의 진술과 ‘윤회전생’ 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시어머니에게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비판하고 투쟁한 까닭은 공산당의 부추김을 받았기 때문이며 사실 그들도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알려주었다. 시어머니에게 과거의 은혜와 원한을 포기하고 관대한 태도로 그들을 용서하라고 하면서 이렇게 하면 그 자신도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을 거라고 하였다.

점차 시어머니도 이해했다. “그래, 사람은 확실히 나쁜 일을 하면 안 돼. 원래 나를 괴롭혔던 사람들은 하나도 좋은 결과를 얻은 사람이 없어. 그들은 지금도 예전처럼 가난하고, 후손들도 출세한 사람이 없지. 어디 우리 집 같이 아들과 손자들이 모두 출세했겠어. 현재 마을 사람들은 또 나를 질투하기 시작했는데 보아하니 내가 그들을 용서해야겠어.”

동시에 나는 시어머니에게 시아버지와 큰아들에 대한 원망도 포기하라고 권하였다. 왜냐하면, 공산당의 홍색 공포 밑에, 냉혹함은 시아버지의 부득이한 자아 보호이고, 이기적인 것은 아들의 무지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나는 ‘감자의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다른 사람의 잘못 하나를 가슴에 품으면 마치 몸에 감자 하나를 짊어진 것과 같아 많이 품을수록 몸의 부담은 점점 가중해진다고 알려주었다. 그녀에게 시아버지, 그들의 좋은 점을 많이 생각해 보라고 하면서 “날 보세요, 얼마나 좋아요. 다른 사람이 나를 해친 일들을 기억하지 않으니 매일 즐겁잖아요.” 시어머니는 “나는 그렇게 못 하겠어, 왜냐하면 너는 수련인이니까.” 나는 “그건 하기 쉬워요! 좋지 않은 생각이 나타날 때마다 어머님은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세요, 몇 번만 외우면 이런 생각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시도해 보기로 약속했는데 이때부터 가정 관계는 많이 개선되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결국 속인으로서 몇십 년의 당문화 독해를 한두 번에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사회에서 많이 오염돼 가끔 집으로 돌아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옛 버릇이 되살아나 시아버지를 때리고 욕하며 다른 사람을 저주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도 신체가 불편할 때 둬 번 외우고 신체가 좋아지면 잊어버린다.

결국, 재작년 하반기에 시어머니는 지병이 재발하였다. 나와 남편은 그녀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보름 동안 정성껏 간호하면서 우리 돈을 몇천 위안 썼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5백 위안(약 8만 2천원)을 꺼내어 의료비에 보태라고 했지만, 남편이 (그 돈을) 갚지 않았다는 이유로 온갖 트집을 다 잡고 소동을 벌였다. 하지만 그 5백 위안도 병원에 있을 때 우리가 시어머니에게 드린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당시 나는 아주 화가 났는데 ‘이 노인네가 정말 은혜를 모르구먼. 아들딸들이 몇이나 있어도 모두 당신을 돌보러 오지 않는데, 나는 돈도 내고 고생도 했지만 감사해 하기는커녕 오히려 나에게 성질을 내다니.’ 하지만 나는 그래도 참아냈으나 남편이 견디지 못했다. 시어머니가 돌아간 후, 그는 나에게 시어머니의 무리함을 따지지 말라고 권했다. 나는 “당신은 시름 놓으세요, 나는 여전히 예전과 같을 거예요. 왜냐하면 나는 수련인이고 표준이 있으니까요.” 그 후 나에 대한 시어머니의 태도는 옛날로 되돌아 가 나와 아는척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래도 예전과 같이 그녀를 관심했다. 작년 하반기에 시어머니는 폐기종이 또 도졌는데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남편더러 시어머니를 모셔 오라고 하였고 몇 천 위안이나 써서 전면적인 검사를 하고 증세에 맞게 약을 써서야 완화되었다.

연말에, 나는 또 시어머니에게 우리 집에서 설을 쇨 것을 제안했고 그녀가 약을 한 줌 한 줌씩 먹는 것을 보고 나는 간절히 말했다. “무릇 약이라면 모두 30%는 독이 있는 데다 또한 돈도 쓰고, 치료될지도 불확실해요. 오직 성심껏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기만 하면 병을 제거할 수 있는데 어머니의 신체상황을 보니 성심껏 외우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시어머니는 자신이 성심껏 외우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나는 시어머니와 비슷한 병이 있는 환자 몇 명을 예로 들면서 일 년 내내 성심껏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자 신체가 건강을 회복했다고 알려주었다. 시어머니는 마음이 동했고 나는 또 시어머니에게 권했다. “둘째, 어머님은 나쁜 성질을 고쳐야 해요. 만사를 스스로만 옳다고 여기지 말고,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며, 지나치게 따지지 말고, 나한테 도리가 있다 해서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안 돼요. 이렇게 하면 자신의 신체를 망쳐요. 어머님의 병을 보세요, 어느 하나가 화로 인한 것이 아닌지요? 만약 늘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 우리의 신체는 당연히 건강해질 것이고, 만약 마음속이 항상 우울하고 짜증 나면 여러 가지 질병들도 당연히 뒤따라 올 거예요. 만약 건강한 신체가 없다면 자손이 아무리 효도하고 돈이 아무리 많아도 어머님은 행복하지 않을 거예요.”

시어머니는 감동되어 말했다. “나는 네가 하는 말만 듣기가 좋아, 네가 나를 나무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데 네가 진심으로 나를 위해서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 그래, 내 신체를 위해 내 성질을 고쳐야지.” 시어머니는 정말 변했는데 그래서 문장 시작 부분의 그 장면이 나타난 것이다.

후에, 시댁의 동생들은 내가 시부모를 이렇게 섬기는 것을 보고 하나같이 질세라 모두 시부모에게 효도하였다. 큰아들도 우리를 따라 배워 시어머니에게 세숫물을 떠다 받치고, 시어머니를 도와 손톱을 깎아 드렸으며, 큰 며느리도 함께 앉아 속마음을 얘기하고, 시어머니를 도와 신발을 만들어 드렸다. 손자들은 더구나 뒤처질세라 자주 시부모를 모시고 여행을 다녔기에 시어머니는 늘 웃느라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 항상 아들딸들에게 말했다. “마을에 나처럼 즐거운 사람이 없을 거야.내 며느리와 손자며느리들은 나에게 얼마나 잘하는가. 내가 평생을 고생했는데 생각밖에 늘그막에 이렇게 복을 누릴 줄이야.” 딸들은 “지금 우리 집이 이렇게 화목하고 번창하는 건 형님이 파룬궁을 수련한 덕분이에요. 그녀가 우리의 나쁜 점을 얼마나 많이 포용했는데요. 만약 그녀가 성심껏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라고 알려 주지 않았다면 어머니의 신체도 이렇게 건강할 수 없잖아요.”라고 했고 시어머니도 “맞아. 너희도 형님을 따라 좀 배우거라.”라고 말했다.

문장발표: 2014년 5월 1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5/17/2914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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