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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시심을 재차 버리다

글/ 랴오닝(遼寧)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존께서는 “과시하는 자체가 바로 아주 강한 집착심이고 매우 좋지 않은 마음이며, 수련인이 제거해야 할 마음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이 과시심이 수련 중에서 버리기 가장 어려운 하나의 마음이었다. 그것의 표현은 간혹 아주 강했고 간혹 아주 깊이 숨겨져 있어 쉽게 발견하지 못했다.

이 몇 년 동안 나는 진상자료를 만드는 것을 책임졌고 매일 인터넷에 반드시 접속해야 했다. 밍후이왕을 제외하고 간혹 둥타이왕(動態網)의 일부 뉴스 혹은 속인의 권력투쟁을 보고 팀 내 수련생에게 자주 알려준다. 어떤 사람은 정말 듣기 좋아하고 매번 나에게 묻는다. 나는 자신이 보는 견해로 수련생 중에서 제멋대로 말하는데 마치 자신이 무엇이나 다 아는 듯했다. 이 기간에 간접적으로 나에게 형세가 좋게 변해도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의를 주는 수련생이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았고 아마 그에게 질투심이 있을 것이라 여겼다.

법공부를 꾸준히 하면서 나는 무엇 때문에 자신이 이런 속인의 것을 전하기 좋아하는지 천천히 인식했다. 이것은 일종 무슨 마음인가? 사존께서는 ‘과시심리’ 한 문장에서 “또 어떤 사람이 주워들은 소식을 전해 그가 그에게 전하고 그녀가 그녀에게 전하는데, 흥미진진하게 거기에서 말하는 것이 마치 그의 소식이 빠르다는 듯하다. 우리 이렇게 많은 수련생이 모두 그보다 알지 못하며, 다른 사람은 그보다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듯한데, 그는 이미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자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는 잠재의식 중에 곧 이런 과시심리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주워들은 소식을 전해서는 뭘 하는가?”[1]라고 말씀하셨다. 사존의 법을 대조하고 나는 자신은 마땅히 이런 과시심을 닦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사람마음을 버리는 것은 어렵다. 진정으로 착실히 수련하지 않는다면 그 물질은 버리지 못한다. 주위에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는 수련생과 노년 수련생이 비교적 많기에 팀에 무슨 일이 있기만 하면 모두 나에게 무슨 생각이 있는지 물어본다. 간혹 여러 사람에게 발정념을 하라고 통지해도 그들은 어떻게 발정념을 해야 하는지 몰라 내가 그들에게 적어준다. 심지어 나 한사람의 말이 여러 사람을 대체하기도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또 이런 과시심리가 조장됐고 나도 의견을 발표하기를 즐겼다.

어느 날, 사존께서는 수련생의 입을 빌어 나를 일깨워 주셨다. 이 수련생은 우리 법공부 팀에 온지 며칠 되지 않았고 평소 그가 나에게 준 인상도 아주 좋았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나는 당신이 수련을 한 것이 착실하지 않고 표면의 것을 추구하며 근본적으로 제고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어요”라고 말했다. 이 일장연설은 나를 심하게 반발하게 했다. 듣기 좋은 말을 많이 들었고 또 자신이 법을 많이 외웠으며 세 가지 일도 아주 잘했다고 여겼기에 갑자기 이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정말 편치 않았다. 오랫동안 버리지 못한 완고한 마음이 남김없이 죄다 폭로되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회상해보니 어떤 마음을 버릴 때 뼈에 사무치는 아픔이 있었던가? 이 과시심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 먼저 이것은 자아에 집착하는 사심이다. 그것의 존재로 다른 사람의 작은 장점을 보지 못하고 완전히 타인을 고려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얼마 전에 대열에서 떨어진 한 수련생을 도와주는데 몇 달이 지났고 비록 내가 한 말이 대부분 법에 있었지만 그 수련생의 상태는 좋아졌다 나빠졌다 했으며 마지막에는 우리가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나의 그 자아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 것이 아닌가? 오직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만 보고 수련생의 장점을 보지 못하며 그녀를 많이 격려하지 못했다. 수련생이 따라오지 못하게 했는데 이것은 작은 문제인가? 생각해보니 완전히 무사무아(無私無我)한 사람에게 어떻게 과시심이 있겠는가?

또 예를 들면, 속인에게 진상을 알릴 때 자신의 마음을 많이 버리지 못했기에 효과가 늘 좋지 못하고 어떻게 노력해도 예상한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고 탈퇴시키지 못했다. 지금 나는 사존께서 무엇 때문에 늘 우리에게 자신을 잘 수련해야 사람을 구하는 것이 비로소 힘이 있다고 강조하셨는지 알게 됐다. “법을 실증하는 가운데서 흔히 잘하고 잘 못하고는 모두 자신이 조성한 것이다.”[2]

또 이 과시심은 사실 자신을 실증하는 일종 마음이다. 팀에서 평소에 늘 수련생이 자신이 오늘 얼마나 되는 사람을 구하고 어떻다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사실 법리에서 우리는 모두 안다. 진정으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사부님이시고 우리는 단지 말을 하고 뛰어다닐 뿐이다. 사부님께서는 “수고는 당신 수련의 일부분으로서 당신은 방법을 생각해 당신이 구도할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3]라고 말씀하셨다.

이 몇 년 간 비록 세 가지 일을 모두 하지만 근본적으로 제고해 올라왔는가?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 다른 사람의 잘못을 전문적으로 보는 마음을 표현하지 않은 날이 없지 않았는가? 이것이 수련인가? 잠재의식에 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수련생을 위해 무엇을 했다고 표명하려 생각한다. 자신을 과시하는 사람은 또 수구(修口)하는 것이 쉽지 않고 말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서 수련생과 주위 수련환경에 영향을 준다. 과시심은 정말 너무 위험하다!

오늘 얕은 인식을 쓰는 목적은 오랫동안 버리지 못한 과시심을 되도록 빨리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법에 있지 않은 곳은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9-씬탕런방송 토론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 설법11-20년 설법’

문장발표: 2014년 5월 2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5/26/2926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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