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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사부님께서 법을 전수하던 초기에 병을 치료하신 신기한 일을 추억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파룬따파의 날이 또 다가온다. 리훙쯔(李洪志) 사존님의 몇 가지 지난 일을 돌이켜보며 기록함으로써 사존님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고 아울러 후세 사람들에게 남겨주고자 한다.

나는 사부님의 고향 창춘(長春)에서 온 대법제자이다. 박해가 시작되기 전, 창춘에는 많은 사람이 사부님을 알고 있었고 또한 사부님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나의 사촌 언니는 수련하지 않았었는데 한번은 교통사고로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외상은 오래도록 상처가 아물지 않아 아주 고통스러웠고 치료하는 동안 줄곧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어느 날 다른 사람이 사촌 언니에게 휠체어를 밀어주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게 됐는데 때마침 사부님을 만났다. 그들은 파룬궁 사부님이신 걸 알아보고 다친 상태를 말씀드리면서 사부님께 치료를 부탁했다. 그때 사부님께서는 일이 바빠서 얼른 가봐야 한다고 하시고는 엘리베이터에서 나와서 바로 가셨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사촌 언니의 상처는 급속하게 호전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쾌되어 정상으로 출근할 수 있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은혜를 널리 베푸셨는데 사람을 도와줄 때에도 남들이 알아주거나 감사해 할 필요 없이 모르는 사이에 도와주셨다.

나는 1994년 따롄에서 사존님의 설법을 들은 후 수련을 시작하였다. 따롄에서 설법하실 때, 하루는 따롄 보도소 소장이 전날 특별히 스웨덴에서 사부님을 찾아와 그의 아들 병 치료를 하러 온 외국인을 소개하였다. 이 스웨덴인의 아들은 소아마비 같은 병으로 정상적으로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때 그의 아들은 여전히 스웨덴에 있었고, 사부님과 이 스웨덴인은 따롄에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따롄에서 스웨덴에 있는 그의 아들의 병을 치료해 주셨다. 소장의 말에 의하면 그 후 스웨덴인이 아들에게 전화하자 아들은 이미 정상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또 사부님께서 프랑스에서 법을 전수하실 때 프랑스 주재 중국 대사와 만나 대사 부부의 병을 치료해 준 비디오를 보았다. 나의 인상 속에 사부님께서는 대화하실 때 이지적이고 온화하며 높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다만 간단명료하게 자신이 중국에서 법을 전수한 상황을 소개하시고 잠깐 대화하고 난 후 대사 부부의 병을 치료해 주기 시작하였다. 대사 본인은 어깨에 통증이 있어 팔을 위로 곧게 쳐들지 못했는데 사부님께서 그의 팔을 가볍게 두드리자 곧 곧게 펼 수 있게 됐다. 대사 부인은 다리에 질환이 있었는데 사부님께서 그녀에게 치료해주실 때 겉보기에는 손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즉시 나았다. 대사 부인은 놀랍고도 기뻐했다.

후에 96년도에 ‘광명일보’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신문에 게재된 한 편의 문장은 문화대혁명식의 근거도 없고, 사실도 아닌 대 비판식의 언어로 파룬궁을 욕하고 비난하여 수련생 사이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토론할 때 한 수련생이 말한 것이 기억났다. 북경 건강박람회에서 사부님께서 등이 굽은 사람의 병을 치료해주실 때 그는 바로 현장에 있었는데 아주 심하게 굽은 사람의 등이 즉석에서 펴지는 것을 보았다고 하였다.

후에 대법은 점점 더 널리 전해졌고 사부님께서는 거의 법을 전하심을 위주로 하셨는데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대법을 수련하여 심신이 이득을 보았다.

당시 북경에서는 파룬궁이 병 치료와 몸을 건강하게 한 효과를 조사하고 있었는데 우리 연공장의 수련생들은 모두 자신이 대법을 수련하기 전후의 심신 변화를 썼다. 후에 한데 모아서 파룬따파 수련 심득교류회도 열었다. 나는 수련을 비교적 일찌감치 시작하고 연공장의 보도원이어서 이런 재료를 정리하는데 참여하였기에 정체적인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나의 인상 속에 중국 지식인들의 건강상황은 모두 그다지 좋지 않았는데 장기간 심각한 만성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무슨 심장병, 고혈압, 당뇨병, B형 간염 등등이 있었고 많은 사람이 여러 가지 질병을 가지고 있었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대부분이 질병에서 벗어나 온몸이 가뿐해졌는데 효율이 백 프로였고 완쾌 비율도 아주 높았다.

우리 연공장에 80여 세 되는 할머니가 한 분 계셨는데 머리는 온통 새하얗고 행동이 느렸다, 그녀는 높은 층, 대략 6층에 살고 있었는데 중국의 층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이 많아 오르내리기가 몹시 힘들었다. 하지만 끈기있게 매일 내려와 거닐곤 하였는데 이는 그녀가 생명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활동 전부였다. 우리가 아래에서 연공하는 것을 보고 그녀도 따라 했는데 몇 개월 뒤 나는 그녀의 뒷목 부근에서 새하얀 머리카락이 회색을 띤 것을 보았다. 그것은 일부 머리카락이 이미 검어졌기 때문이다. 나의 인상 속에 가장 똑똑한 일은 어느 날 연공을 끝낸 후 나는 그녀가 연공장을 떠날 때 마치 무모한 젊은이들처럼 발걸음을 크게 내디딜 뿐만 아니라 조금도 느리지 않은 것을 보았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웃었다. 누가 몇 달 전에 그녀가 비틀거리면서 잘 걷지 못했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또 한 수련생이 있는데 내가 북경에서 직접 만나게 됐다. 대법을 수련하기 전에 16년 동안 반신불수였지만 대법을 수련하고 1년 좀 지나 자유롭게 걸을 수 있게 됐다. 당시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전면적으로 박해하기 전부터 일부 신문에서는 대법에 대해 공격하는 문장을 실었는데, ‘중국 경제시보’가 그중 하나였다. 일부 대법제자는 신문사 편집부에 찾아가 자신이 대법 수련 중에서 혜택을 본 상황을 얘기하면서 보도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하였다. 그때 ‘중국 경제시보’에 찾아간 수련생 중에 이 대법제자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장애인 카드를 갖고 가서 신문사 편집자에게 자신의 변화를 설명해주고는 편집자가 대법에 긍정적인 보도를 함으로써 종전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조성된 손실을 메울 것을 요구하였다. 편집자는 그 당시 즉시 설복되어 그녀를 위해 한 편의 기사를 실어주었다. 이것이 바로 ‘나는 일어섰다!’이다. 이 기사가 실리게 된 배경 이야기이다.

파룬따파 수련 중에는 불치환자가 회복된 사례도 있다. 우리 연공장에서 수련심득교류회를 열었을 때 한 유방암 말기 환자는 의사한테서 2달밖에 살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지만, 후에 대법을 수련하여 완전히 회복됐다고 발언하였다.

이런 일들은 온종일 말해도 다 말하지 못한다. 거의 모든 수련자에게 심신건강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온 체득이 있을 것이다. 대법은 병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불법수련이지만 객관적으로 수련자에게 매우 건강한 신체를 가져다주었다.

후에 출국하여 보니 다른 나라 국민의 건강상황은 중국처럼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중국의 보건 의료 시스템은 아주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중국 파룬따파 수련자와 그의 가족들은 사부님께 매우 감사해 하고 존경했다. 이것 역시 집권자가 질투한 이유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문장발표: 2014년 5월 1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5/11/2917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