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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신사신법 정념정행

글/ 동북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정리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법을 실증하는 이 몇 년간 사부님의 보호가 있으셨기 때문에 모든 난관을 넘기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다음 자신의 수련 체득을 사부님께 보고하겠다.

1. 기쁘게 대법을 얻다

나는 1998년 7월 26일에 법을 얻었는데 법을 얻기 전에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다. 다리에 병이 있었고 허리디스크, 골다공증, 당뇨병 등 각종 질병이 있었고 온몸에 편안한 곳이 하나도 없어 매일 눈물을 흘렸다. 남들은 나보고 ‘십부전(十不全-중국 민간신화 인물의 이름, 신체에 각종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한번은 일이 있어 향(鄕)에 갔는데 건강이 좋지 않은 나를 보더니 향주임이 “글을 아세요?”라고 물었다. 글을 안다고 하자 그녀는 내게 ‘전법륜’ 한 권을 주고 한번 보라고 했다. 집에 돌아온 후 책을 펼치자 첫눈에 사부님 사진을 봤는데 어디에서 뵌 것 같기도 하나 생각나지 않았다. 앞 몇 장을 보고 졸렸으나 내려놓기 싫어 보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꿈에서 큰 나무 아래에 미륵보살이 앉아있고 주위에 수많은 아이가 있는 것을 봤는데 깨어난 후 온몸이 매우 가벼웠다. 내가 바로 사부님의 아이이고 이후에 얼마나 큰 어려움에 부딪히든 사부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전법륜’ 몇 강을 보고 매우 좋은 책인데 돌려주면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해 책을 베껴 쓰겠다고 했다. 책을 베껴 쓰는 이튿날 원래 잘 쓰지 못하던 중지가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딸은 “어머니, 저도 도와드릴게요!”라고 했고 온 가족이 모두 나를 지지했다. 책을 다 본 후 딸이 “어떠세요?”라고 물었을 때 나는 “사부님을 찾았는데 좋지 않을 수 있겠니?”라고 말했다. 딸이 “그러면연공해보세요.”라고 권했지만 “다리가 이래서(불구) 연공할 수 없지.”라고 했으나 낙심하지 않고 여전히 책을 베껴 쓰고 책을 봤다.

매일 책을 봤고 책을 볼 때는 집에 무슨 일이 있든 다 잊었다. 이후에 주임이 전화로 나를 위해 ‘전법륜’ 한 권을 구매했다고 하자 나는 매우 기뻤다. 이후로 매일 매우 절실하게 책을 봤고 이틀에 책을 한번 다 본 적도 있었다. 법을 머리에 새기고 싶었고 하늘에도 몸에도 온통 법이 있는 것 같았다.

이후에 연공장에 가기로 했고 어느 장 공법을 할 수 있으면 그걸 연마하겠다고 생각했다. 연공장은 집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있었으나 다리가 불편해 새벽 3시 반에 출발해야 했다. 남들이 걸으면 20분 걸리는 거리도 나는 2시간쯤 걸렸기 때문이다. 연마한 후 신체는 날마다 좋아지고 정신도 날마다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일용 잡화점 하나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손님이 없으면 책을 봤고 손님이 오면 물건을 팔며 법을 선전했다. 모든 사람이 다 대법을 연마하길 바랐기에 어떤 때는 법을 선전하고 연공을 가르쳐 주느라 장사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 남편은 “대법이 좋다고만 말하고 장사를 안 하면 안 되지.”라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비록 내가 일용 잡화점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고 모든 정력을 대법에 놓았는데도 물건은 갈수록 잘 팔렸다. 손님이 물건을 살 때 손님보고 혼자서 물건을 가져가고 돈을 카운터에 놔두고 가면 된다고 했는데 돈을 얼마 줬는지도 보지 않았다.

어느 날 큰아버지가 왔다. 그도 신체가 좋지 않아 대소변도 가리지 못했기에 그에게 파룬궁을 연마하는 좋은 점을 말해주고 그에게 책 한 권, 또 큰 고모와 고모부에게도 한 권씩 줬는데 이렇게 그들도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보도소에 책이 오면 모두 구매했고 사부님의 법을 전부 머리에 기억해두고 싶었다. 이후에 현지 법공부 팀에 참가했는데 시간을 절약하고 법공부와 연공을 많이 하기 위해 새 자전거 한 대를 샀다. 판매원은 내가 키가 크지 않고 다리도 불편해 보이는 것을 보고 탈 수 있느냐고 묻자 나는 몇 년 전에 타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비틀거리며 끊임없이 사부님에게 도와달라고 청하면서 무사히 집까지 왔다. 이후로 나는 자전거를 타고 법공부 팀과 연공장에 갈 수 있어 많은 시간을 절약했다. 나는 한시라도 법을 떠날 수 없었고 설령 잠깐의 시간이나마 책을 들고 법공부를 했다. 나는 법을 배우면서 베껴 썼고 사부님의 ‘홍음’을 다 외울 수 있었다. 이후에 집 근처에 연공장과 법공부 팀이 생기자 법공부하고 연공하는데 더욱 편리해졌다.

한번은 사부님의 신경문이 도착했는데 법공부 팀의 한 외지 수련생이 나에게 달라고 했다. 나는 이 2개 경문은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이라며 주지 않는 바람에 그 수련생은 낙담하며 갔다. 내가 법공부 팀에서 나오자마자 진흙탕에서 넘어졌는데 수련인에게는 우연한 일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안을 향해 찾았다. 자신이 수련생에 대해 차별심이 있고 일에 부딪혔을 때 남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지 수련생은 이곳에 아는 사람도 적은데 사부님의 경문을 얻으려면 얼마나 어려울까? 즉시 나는 “사부님, 제가 틀렸습니다.”라고 외치고 일어서보니 몸에 흙이 하나도 묻지 않았고 넘어지지 않았던 것 같았다. 이 법은 너무나 신기했다. 집에 돌아와 가족에게 말했는데도 옷이 깨끗한 것을 보고 믿지 않았으나 사실이라고 알려줬다.

2. 호법(護法)의 길에 들어서다

‘4.25’, 대법제자 만여 명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갈 때 보도원이 내게 전화를 걸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겠다고 하자 나도 가겠다고 했다. 기차역에서 표를 사고 차에 오르지 않았는데 베이징 수련생에게서 문제가 이미 해결됐기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고 당시 형세가 매우 긴박해 남편은 매우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내가 베이징에 가겠다고 하자 몹시 화를 냈고 아무리 말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문 앞에서 2시간 넘게 기다린 후에야 문을 열어줬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나와서 감히 연공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줄곧 연공장에 있었다. 어느 날 연공하는데 어깨가 매우 아파 팔을 들 수 없자 연공만 해서는 안 되고 파룬궁의 ‘진선인(眞善忍)’ 요구대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잘못이 없기에 마땅히 성 정부에 가서 정부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라는 진상을 알려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4, 5명 수련생이 함께 성 정부에 갔는데 경비원이 내게 “뭘 하러 오셨습니까?”라고 물었다. 내가 “지도자를 찾아 파룬궁의 상황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좋은 공법인데 왜 연마하지 못하게 합니까?”라고 하자 그는 “이것은 상급에서 결정한 일입니다.”라고 하면서 성 정부에서는 우리를 상대하지 않았다. 나는 성 정부 앞에서 온 하늘에 파룬이 돌고 있는 것을 봤고 파룬이 나를 데리고 갔는데 어떤 경찰도 이 한 장면을 봤다. 나는 사람들에게 파룬궁은 잘못이 없다고 진상을 알렸고 좀 걸어가다가 알렸으며 끊임없이 알렸다. 어떤 수련생이 이미 대형 버스에 붙잡힌 것을 보고 나는 그들에게 잡혀가서는 안 된다고 내려오라고 하자 대부분 수련생이 다 뛰어내렸고 내리지 않는 수련생도 있었다. 그때 수련생들은 모두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느낌이었고 형세가 매우 두려웠기 때문에 남편은 두려워했고 놀라서 기절까지 했다. 딸은 “아빠가 기절하셨는데 엄마는 왜 아직 돌아오지 않아요?”라고 했고 사람을 부탁해 곳곳에서 나를 찾아다녔다.

99년 7월 20일, 이날 수련생들은 예전처럼 성 정부 밖에서 접견을 기다리고 있는데 오후 3시에 장쩌민, 뤄간 집단은 수중의 특권을 이용해 TV 방송을 통해 정식으로 파룬궁을 연마하지 못하게 한다고 알렸다. 순식간에 TV, 라디오, 신문에같은 논조가 천지를 뒤덮는 듯했다. 이후로 끊임없이 파룬궁에게 죄명을 뒤집어씌우고 모함했으며 대법제자를 비인간적으로 잔혹하게 박해했다. 수련생들은 ‘설마 중공이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사람들을 적대시할까?’라고 생각했으며 이것이 진짜라는 것을 전혀 믿을 수 없었다.

성 정부에 가도 소용없다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 수련생은 즉시 베이징으로 가는 기차표를 샀고 정부에게 파룬궁은 잘못이 없고 파룬따파는 정법이며 사부님의 결백함을 되돌려주고 대법제자에게 수련환경을 돌려줘야 한다는 대법제자의 마음을 알려야 한다고 했다. 당시 우리집은 일용 잡화점을 운영하는 내 수입에만 의존해 가정을 유지했기 때문에 가지 않았고 갈 수 있는 수련생에게 차비를 제공했다.

그 당시 아직 자료점이 없었기에 또 돈을 꺼내서 경문을 복사해 수련생에게 줬다. 버스를 탈 때 법을 선전했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속인에게 알렸다. 우리 집에 온 파출소의 경찰에게 신체가 좋지 않아 연공한 것뿐이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내가 베이징에 갈까 봐 두려워 나의 주민증을 가져갔다.

2001년 10월, 우리 40여 명은 대형버스를 타고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 차에서 가부좌하다가 천목으로 한 남자아이가 파룬에서 떨어진 것을 보고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감했다. 길이 매우 엄하게 봉쇄됐는데 도중에 한 외지 젊은 처녀가 경찰의 체포를 피하기위해 허베이성 위톈(玉田)현에서 차창으로 뛰어내렸지만, 여전히 경찰에게 붙잡혔고 이후 박해를 받아 죽었다고 했다.

시시각각 사부님의 법신이 바로 곁에 있으므로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우리 40여 명은 전부 베이징 경찰에게 잡혀갔는데 나는 경찰에게 “정부가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파룬궁은 억울함을 받았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 사부님의 결백을 회복시켜주세요.”라고 말했다. 경찰이 우리보고 바닥에 앉으라고 하자 나는 단식하고 경찰에게 이름을 알려주지 않자 몇 명 수련생도 말하지 않아 우리는 베이징에서 5일간 더 있었다. 또 이름을 물어볼 때 “난 대법제자고 지구에 살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나를 빼고 모든 수련생은 한 번씩 고문, 구타를 당했고 경찰은 마지막에 나를 방으로 데려갔다. 나는 경찰에게 “내가 당신 어머니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이고 원래는 장애인이었고 신체도 좋지 않았지만 지금 이렇게 먼 곳에 와서 청원하고 정부에게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은 잘못이며 파룬궁은 진선인을 연마하는 것이므로 잘못이 없다는 한마디를 말하려는 것뿐입니다.”라고 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그들은 원래 가방에서 뒤져간 몇백 위안을 다시 집어넣었다. 이후에 또 한 악한 여경이 모든 사람의 몸을 수색하고 가방을 모조리 뒤졌는데 이번에 내 돈을 가져갔다. 우리를 현지로 돌려보내겠다고 할 때 나는 그들에게 베이징에 오고 싶었고 구경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하자 그들은 “노부인, 이 소원을 실현해 드리죠.”라고 말하고 경찰차로 천안문 주위를 한 바퀴 돌 때 나는 창문을 열고 광장을 향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라고 마음속 말을 외쳤다. 돌아올 때 우리는 수갑을 채운채로 돌아왔고 한 구치소로 보내졌다. 우리보고 일하라고 했으나 할 수 있었어도 나는 하지 않았다. 이후에 그저 돌아왔는데 가는 시간을 포함해 13일이었다.

3. 정념정행으로 소굴을 뚫고 나가다

마음속으로 시시각각 법을 생각하다

2001년 설을 쇠기 전에 집안에서 닦고 물건을 정리하느라 방이 난장판이 됐는데 현지 파출소의 펑(馮)씨 경찰이 우리 집에 오더니 나보고 파출소에 한번 갔다 오라고 했다. 잠깐이면 된다고 해서 면바지에 헌 신발에 매우 초라한 모습으로 파출소에 갔는데 도착해서야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나이 든 몇 명 대법제자가 이미 거기에 있는 것을 봤다. 이렇게 우리 몇 명은 세뇌반으로 납치됐다.

인성이 조금도 없는 사악한 경찰이 모두 세뇌반으로 전근해 왔고 그들은 뺨 때리기, 수갑으로 매달아 놓기, 밤낮으로 잠 못 자게 하기, 신발 뒤축으로 발가락을 짓밟기, ‘걸어놓기(上大挂)’,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하는 등 각종 잔인한 수단으로 대법제자를 괴롭혔다. 사부님의 법신이 내 곁에 있고 대법제자는 가장 바른 것이며 누구도 나를 때리고 박해해서는 안 되며 내가 바로 당신들을 구도하는 신이라고 시시각각 생각했다. 단식하기로한 나는 그때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먹지 않았고 밤낮으로 법을 외우고 연공만 했으며 ‘전법륜’의 목록이 조금씩 다 생각났다. 마음속으로 시시각각 법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나에 대해 악행을 감히 부리지 못했고 오히려 나를 존중했고 내가 연공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동안 기본상 잠을 자지 않았는데도 졸리지 않았다. 섣달그믐에야 나를 풀어줬다.

두려움이 없자 사부님께서 도와주시다

2002년에 ‘3.5’ 파룬궁 진상 TV 삽입 사건이 발생하자 사당을 크게 뒤흔들어놓았고 장쩌민은 몹시 놀랬으며 대법제자에 대해 용서하지 말고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시 우리 시의 수련생이 최소 5천여 명이 납치됐다. 파출소의 호적관리원은 당황스럽게 우리 집에 와서 “진상 삽입하는데 참여했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했다. 가기 전에 그녀는 “어떤 시기입니까, 제발 연마하지 마세요.”라고 했으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날 집에서 ‘밍후이주간’을 보고 있는데 파출소 경찰 몇 명이 오더니 강제로 우리집 벽에 쓴 ‘진선인’ 세 글자를 긁어 없애느라 벽을 난장판으로 만들었고 또 나를 파출소로 끌고 가려하자 남편이 화를 냈다. 나는 “화내지 마세요. 잠깐 있으면 돌아옵니다.”라고 했다.

그들은 나를 2층에 가둬놓고 두 경찰이 나를 지키게 했다. 그들을 잠들게 한다고 발정념을 하자 그들은 정말로 잠이 들었다. 파출소 2층에서 내려오는데 당황해 발정념하는 것을 잊는 바람에 파출소에서 나오고 교차로에 들어서자 이미 거기에 한 젊은 경찰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내게 “잠깐이면 집으로 간다고 하는데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는지 봅시다.”라고 말했다. 그때 오가는 사람이 많아 달아나고 싶었지만, 유랑 생활을 하는 그 길을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달아나지 않았다. 그가 많은 경찰을 불러냈는데 그중 한 사람은 “그녀를 때려죽여라!”라고 했다. 나는 “좋은 사람을 잡아갑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라고 외치자 그들은 나를 방으로 들고 와 하룻밤 수감했지만 나를 때리지는 않았다.

이튿날 내게 사진을 찍어줄 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쳤는데 경찰도 따라서 외쳤다. 이후에 계속 법을 외우고 연공하자 그들은 “자꾸 끝도 없이 이럴 겁니까?”, “연마하지 않으면 병이 재발합니다. 연공하는 것은 건강을 위한 것입니다.”, “그만 연공해요. 국장이 왔어요.”, “누가 오든 연마할 것이고 반드시 연마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들은 나를 어쩌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튿날 아침 나를 풀어줬다.

파룬궁을 연마해 신체가 좋아졌고 ‘진선인’대로 사는 것은 전혀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반 과정 중에 두려움이 조금도 없었다. 잘못이 없는데 뭘 두려워하겠어요? 사부님께서는 “당신이 두려워하면 그놈은 붙잡을 것이요 생각이 바르면 사악은 무너지리라.” [1]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정념이 강하고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사부님께서는 나의 마난을 없애주셨다.

정정당당하게 걸어나가야

2006년 6월, 경찰차 두 대가 오더니 일용잡화점에 들어와 다짜고짜 나를 납치하려고 했다. 내가 협조하지 않자 강제로 나를 차에 끌어 올렸다. 나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 사부님의 결백을 회복시켜 달라! 파쩡첸쿤(法正乾坤), 셰어쵄몌(邪惡全滅)!’를 외쳤다. 그들은 지난번에 나를 ‘전향’ 시키려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 또 나를 세뇌반으로 납치했다. 차에서 내린 후 나보고 걸어가라고 했으나 걷지 않자 작은 두목 같은 한 경찰이 억지로 나를 2층까지 업고 올라갔다.

세뇌반에서 누구도 나를 상관하지 못했기 때문에 매일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대법노래를 부르는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진상을 알리는 외에 한마디 말도, 쓰지도 않았다. ‘난 대법제자다. 사부님께서 관할하시고 있고 누구도 나를 박해하고 때려서도 안 된다.’라는 일념이 매우 확고했으므로 정말로 맞지 않았다.

처음에 단식했는데 이후에는 단식하지 않았다. 밥 먹는 것은 육신을 보장하는 수요인데 대법제자가 왜 단식해야 하는가. 먹을 것은 먹고 마실 것은 마셔야 하며 사부님께서 대법제자는 주역이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여기에서 정정당당하게 법을 외우고 연공하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은 식비를 냈지만 나는 내지 않았고 사악한 경찰이 대법을 모욕하는 TV를 틀어놓자 발정념으로 소멸했더니 TV 영사막이 하얗게 됐다. 이후에 여기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고 나가서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정념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번 밖으로 나가려다가 잡혀 들어왔다. 한 노 교수 수련생이 함께 건물에서 뛰어내리자고 했으나 나는 건물에서 뛰어내리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걸어나가겠다고 했다. 어느 날 한 여경이 “당신 병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집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즉시 침대에 누웠다. 그래서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심장병, 고혈압 등이 있다고 하자 그들은 나를 놔주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파출소 사람은 내게 “어르신 알아요? 세뇌반으로 보내는 길에서 놔주려고 했는데 우리를 미워하는 모습을 보고 놔주지 않았어요.”라고 했다. 내가 아직도 원망심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21일 동안 고생했다는 사부님의 점화라는 것을 알았다. 평소 나는 원망심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환경에 이 마음이 폭로되자 발정념으로 이 좋지 않은 마음을 철저히 제거했다.

“대법제자는 잘못이 없다, 집으로 돌아가겠다!”

어느 날 수련생 A 언니가 전화에서 일이 있어 우리집에 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집 앞의 큰 나무가 갈라진 것을 보고 이 흔치 않은 상황이라 즉시 경각했다. 오늘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할 것 같은데 수련생이 오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다급히 길가에 가서 그녀를 맞이했는데 한참 기다렸는데도 오지 않아 그대로 돌아왔다. 금방 집안에 들어왔는데 A 언니와 그녀의 아들이 따라서 들어왔다. 속으로 빨리 일을 마치고 그들보고 가라고 했는데 갑자기 경찰들이 쳐들어왔다. 내가 “왜 이러세요. 그들은 제 친척입니다.”라고 했고 우리 셋은 즉시 입장하고 발정념을 했으며 키 큰 경찰이 내 손을 내리누르고 입장하지 못하게 했으나 나는 속으로 발정념 했다. A 언니의 아들은 사악한 경찰에게 뒤로 수갑을 채워진 채 공안국 제3구치소에 납치해갔는데 그 날 저녁 박해를 받아 죽었다. A 언니는 시 공안국 제3 구치소에 납치됐고 나는 현지 파출소에 납치됐다가 나중에 역시 제3구치소에 수감됐다.

이 구치소는 어두컴컴했고 공포스러웠다. 나는 A 언니와 같은 감방에 수감됐는데 함께 단식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자신을 생각하지 않았고 줄곧 모자를 위해 발정념(그 때 A 언니 아들이 이미 박해해 죽었다는 것을 몰랐다)하여 다른 공간에서 경찰을 조종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흑수, 난귀, 공산사령을 제거했다. 나는 감방에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외쳤고 마음속으로부터 힘껏 외쳤는데 저녁 8, 9시에 비교적 조용해 나의 외침은 유난히 쟁쟁했다. 온 건물을 흔들었고 잠자던 사람들도 깨어났다. 경찰은 “외치지 마세요. 뭘 하고 싶으면 하시고 발정념하고 싶으면 하세요.”라고 했다. “대법제자는 잘못이 없고, 가장 바른 것입니다. 왜 여기에서 박해를 받아야 합니까?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라고 했다.

구치소에서 나는 죄수복을 입지 않았고 줄곧 단식했다. 내게 음식물을 주입하려 할 때 죄수가 “이 할머니는 꽤 선량한데 주입하지 말고 스스로 먹는 것을 지켜봅시다.”라고 했다. 나는 언제나 선한 마음으로 그녀들을 대했고 사부님의 ‘홍음’을 외워주고 대법이 신체를 건강하게 하고 병을 없애는 신기한 효과를 말해주었으며 대법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는데 모두 20여 명이 삼퇴했고 그중 한 사람은 부 성장의 처제였다. 그들은 나를 시 대형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사했는데 검사 결과에 놀란 그들은 18일 후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후에 A 수련생은 세 번째 비인간적인 음식물 주입으로 박해당해 죽었고 죽을 때까지도 아들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이 사건은 나를 몹시 괴롭게 만들었다. 만약 그날 내가 길가에서 줄곧 그들을 기다렸다면 이런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제3 구치소를 뚫고 나온 후 내가 일이 있어 수련생 집에 갔는데 A 수련생이 나 때문에 죽었고 내가 특무라고 하면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한동안 누구 집에 가도 나를 환영하지 않았고 벽에 부딪혔다. 이후에 설명하지 못하게 하면 설명하지 않았다. 이것은 구세력이 대법제자를 갈라놓는 것이고 속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사부님께서 아시고 있으므로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매일 변함없이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고 할 일을 했다.

모두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신 것

2009년 10월, 어느 날 아침 7시쯤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밖을 내다보니 파출소 사람이었다. 소리로 들어보니 몇 명되는 것 같아 문을 열어주지 않고 그들을 조종하는 다른 공간의 흑수, 난귀 및 공산사령을 제거한다고 발정념을 했다. 파출소 사람은 줄곧 밖에 서 있었고 나는 방에서 해야 할 일을 했다. 책을 봤다가 발정념을 했으나 마음은 안정치 않았다. 이렇게 대치하고 있는데 오후에 남편이 돌아왔다. 그들이 떠나지 않았던 것은 남편을 기다렸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경찰은 나를 잡아갔고 또 제3 구치소에다 수감했다. 사악한 경찰은 나에 대해 불법 노동교양을 선고하려고 신체 검사해보니 혈압이 220이었고 실명했다고 했고 실명한 사람을 잡아와서 뭘 하느냐며 나를 놔줬다. 그러나 5일 후 과시심과 환희심 때문에 또 경찰에게 잡혔는데 이번에는 악명 높은 여자 교도소에 수감됐다. 당시 정념이 충분했기 때문에 신체검사 결과 혈압이 220이 되자 교도소에서는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다. 경찰은 불만을 품고 나를 또 시 교도소 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사했다. 각종 신체검사 결과 역시 불합격이었고 그들은 여전히 불만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때 이미 저녁 11시였기 때문에 나를 구치소에 수감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두 번 주사 놓고 저녁에 주사 두 번 놨는데 그중 하나는 수면제였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승인하지 않았고 이 약들이 모두 악인 몸에 가라고 발정념을 했다. 마음속으로부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외쳤고 그녀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한 여경은 두목이었는데 주사를 놓는 과정 중에 억지로 내 외투를 벗기려 했지만 나는 협조하지 않았다. 나는 또 조수들에게 누가 도와주면 지옥에 간다고 말하자 주위 사람들은 놀라서 그녀를 돕지 않았다. 한 여경이 “난 두렵지 않다. 난 홀몸이다.”라고 했고 한 남자 경찰이 “자식이 없다는 말을 하지 마라, 내 새 옷도 그녀들에게 찢겼어.”라고 했다. 나는 법을 외우고 연공했고 대부분 시간은 발정념을 했다. 이렇게 사부님의 보호아래 나는 또 집으로 돌아왔다.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 [2] 집으로 돌아온 후 그들이 내게 무슨 주사를 놓았는지 언제나 정신이 멍했다. 한번은 자료를 가지러 갔는데 자전거를 타는데 똑바로 가지 못했고 비틀비틀했고 말할 힘도 없었으며 계단을 오를 힘도 없었다. 겨우 집에 들어오자 기절했는데 대소변이 마려운 느낌이라 침대에서 바닥에 굴러떨어진 후 될수록 스스로 기어서 화장실에 가려고 했으며 가족의 도움을 받지 않고 집에서도 대법을 실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된다. 다른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 없다.”라고 생각했다. 집안사람들은 나보고 병원에 가라고 말하고 싶지만, 또 감히 내 앞에서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나는 “빨리 낫게 하려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읽는 것이 무엇보다 나아요.”라고 했다. 몸이 좀 좋아지자 나는 미용실에 갔는데 한 작은 다리를 건너다가 미끄러져 떨어졌다. 동북의 11월 날씨는 매우 추웠다. 나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외쳤다. 몸에 힘이 없어 소리가 나지 않아 속으로 ‘난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제자다. 사부님 살려주세요.’라고 생각하자 천천히 몸에 힘이 느껴졌고 1시간 후에 조금씩 기어 일어나 한 걸음 한 걸음 미용실에 가서 파마했다. 이 기간에 몸에 힘이 없어 목소리가 작았지만 나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2명을 삼퇴시켰다. 미용실 사람은 나보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라고 했으나 나는 괜찮다고 했다. 수련생 집에 가서 자료를 가져오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저녁 9시가 됐다. 집안사람들은 집안을 다 뒤졌다. 나를 보더니 “이런 몸으로 나가서 뭘 해요? 얼마나 사람을 걱정하게 하는지 알아요?”라고 했다. 사실 신체가 좋지 않은 동안에 사부님의 법신은 줄곧 내 곁에 있었고 한밤 중에 연공하라고 나를 깨우셨으며 법공부할 때 내게 읽어주셨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자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사부님의 비할 바 없는 자비로운 고도(苦度)에 감사드린다.

4. ‘9평’을 전하고 삼퇴를 권하다

2004년 연말 ‘9평공산당’이 나오자 정법 노정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이전에는 대법은 박해당한 것이고 대법은 정법이며 사부님의 결백을 회복시켜주고 중공사당은 이유 없이 박해한다고 알렸지만, 지금은 진상을 명백하게 안 사람들에게 중공의 각 조직에서 탈퇴하도록 권했다.

나는 사당의 당문화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 몇십 년간 사당이 사람을 죽이는 역사가 담긴 책 내용을 대체로 보고 무슨 영문인지 속으로 매우 당황했고 감히 계속 보지 못했으며 감히 나가서 ‘9평’을 배포하지 못했다. 파룬궁이 정치에 참여한다고 말할까 봐 두려워 한동안 연공도 하지 않았는데 그 때 정말로 이해하지 못했고 감히 나가서 진상을 알리지도 못했다. 어느 날 밤이 깊었는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안 된다. 법공부를 해야 한다. 법을 떠나서는 안 된다. 이렇게 좋은 신체는 법이 준 것이기에 파룬따파는 가장 바른 것이다. 모든 사악한 것은 대법 앞에서 모두 그것의 원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9평’은 중공 사당의 본질을 폭로했을 뿐이고 사당이 건립된 후부터 지금까지 한 사악한 일면을 전부 폭로한 것으로 감히 폭로하지 못하는 모든 사건의 시간, 장소, 참여한 사람들을 똑똑하게 폭로한 것으로 가짜가 하나도 없다. 중공사당의 위선적인 장식을 찢어내고 사람들에게 그것의 진면목을 보게 했을 뿐이고 사실을 확대시킨 것이 아니다. 대법제자는 다만 파룬궁은 무엇이고 중공사당은 무엇이란 것을 사람들에게 진실한 말을 했을 뿐인데 어찌 정치에 참여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관계를 똑똑하게 바로잡은 후 두려움이 다 없어졌고 예전대로 나가서 진상을 알렸다. 한번은 일용 잡화점 물건을 구매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한 사람이 부르는 것을 듣고 멈춰서 보니 길 맞은편에서 한 노부인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건너가 “저를 불렀어요?”라고 하자 노부인은 “네.”라고 했다. 노부인은 “자신도 영문을 잘 몰라요. 여기에서 한참 기다렸어요.”라고 했다. “당원입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녀는 “노 혁명분자고 지하당원이기도 합니다. 올해에 87세입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보고 탈당하라고 권했으나 지금이 매우 좋다고 하면서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9평’에서 본 중공사당의 사람은 죽이는 역사로부터 ‘문화대혁명’ 때 많은 사람을 죽이고 중공 사당이 한 나쁜 짓을 말해주고 그녀에게 “사당이 아직도 좋아요?”라고 묻자 노부인은 “그럼, 당신 말대로 탈퇴하겠어요.”라고 했다. 버스가 오자 차에 오르기 전에도 노부인은 “탈퇴시켜주는 것을 잊지 말아요.”라고 손을 흔들며 말했다.

이 일은 사부님께서 격려해주시는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중생은 모두 대법제자가 삼퇴해주길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부인을 삼퇴시킨 것은 내가 처음으로 사람을 삼퇴시킨 것이었고 이후로 다시는 두려워하지 않았고 곳곳에서 사람들에게 파룬따파가 좋다고 알렸으며 중공의 당, 단, 대 조직에서 탈퇴하고 자신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라고 권했다!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면 보통 이렇게 말했다. “몸은 건강하십니까? 목숨을 보전하는 방법을 알려드리죠. 벽이나 돈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라고 쓴 것은 정말입니다. 마음에 기억해두고 늘 읽으면 행복을 얻게 됩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손해 보지 않습니다. 지금 관리면 독직하는 지경이 됐고 중공을 건립하는 그 날부터 한 차례 또 한 차례 운동, 3반, 5반, 반우파, 문화대혁명, 6.4 천안문 민주화운동, 파룬궁 박해운동에 중공은 무고한 백성 8천여만 명을 살해했고 온갖 나쁜 짓을 다 했기 때문에 사람이 다스리지 않으면 하늘이 다스리게 됩니다. 그것과 한패라면 모두 따라서 소멸될 것입니다. 학교에서 들었던 당, 단, 대에서 탈퇴하세요. 당신이 그 조직에 가입할 때 주먹을 쥐고 혈기를 향해 그것을 위해 평생 분투하고 생명을 그것에게 바치겠다는 독한 맹세를 했기 때문에 그것의 조직에서 탈퇴해야 독한 맹세를 풀 수 있고 목숨을 지킬 수 있습니다. 당신이 평안해야 가족이 행복한 것이고 평안해야 돈을 벌 수 있고 큰돈을 벌 수 있지 않겠어요?”라고 하면 대다수 사람은 다 탈퇴한다. 나는 또 “많은 사람이 저를 압니다. 수련하기 전에 일용 잡화점에서 일할 때 병이 발작하면 쓰러지곤 했는데 파룬궁을 연마한 후부터 병이 다 나았다는 것을 여러분이 다 알고 있죠. 대법이 안 좋아요?”라고 하면 탈퇴하지 않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2010년 10월 어느 날, 아침에 수련생 집에 법공부를 하러 가는데 첫눈이 내린 뒤라 날씨가 추웠고 큰바람에 눈보라가 휘날렸으며 길이 매우 미끄러웠기 때문에 법을 외우면서 갔다. 큰 비탈길에서 제발 넘어지지 말라고 생각하자 꼭대기에서 단번에 비탈 밑으로 내려왔고 자가용 차 옆에 넘어져 쓰러졌다. 시간이 얼마 지나서 깨어나 보니 이미 원래 자리에 있지 않았고 일어나 앉아보니 두 사람이 내 뒤에 있는 것을 봤다. 비록 좀 멍했지만 갑자기 삼퇴보평안(三退保平安)의 일이 생각나 그들에게 평안을 보장하고 재난을 피해야 하려면 사당의 각 조직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알려줬더니 그 둘은 삼퇴에 동의했고 이름을 내게 알려줬다. 돌아가는 길에서 한 노인을 만났는데 그도 탈당시켰다. 노인은 “넘어져 쓰러지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어떻게 남에게 탈당시켜 줄 수 있어요?”라고 했다. 나는 사부님의 보호가 있으므로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다고 했고 대법제자는 좋은 사람이 장래 대도태 시기에 도태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웃더니 정면에 있던 키 큰 젊은이를 가리키면서 “그를 한번 탈퇴시켜 보세요.”라고 했다. 나는 젊은이에게 어디에 가입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자 젊은이는 어디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붉은 삼각건을 두른 적밖에 없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를 탈퇴시켰다. 이렇게 모두 4명을 탈퇴시켰다.

그날부터 수련인은 법에서 연마해야 하고 일에 부딪히면 절대 속인의 경험에 따라 추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면 그때 당신은 바로 속인이고 수련인이 아니기에 속인은 속인의 이치에 부합되어야 하고 넘어질 때면 넘어지는 것으로 내가 ‘넘어지지 말자.’라는 생각이 없었다면 넘어져 쓰러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리라는것을 깨달았다.

작년 사당의 제18차 전국대표대회 전에 길에서 현지 파출소의 한 경찰을 봤는데 “저희는 다시는 어르신을 상관하지 않습니다. 뭘 하고 싶으면 뭘 하세요. 안전을 좀 주의하시면 됩니다.”라고 했다.

나는 접촉했던 경찰에게 모두 대법 진상을 알려줬고 천멸중공(天滅中共), 삼퇴보평안(三退保平安)을 알려줬으며 그들에게 목숨이 없으면 아무것도 쓸데없다고 알려줬으며 파룬궁은 도덕을 중시하고 선한 일을 하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가장 좋은 법이며 파룬궁을 배우는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알려줬다. 또 좋은 사람을 붙잡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겠는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당신들은 원래 나쁜 사람이 아니고 모두 사당에게 속았고 이용당했습니다. 중공은 천리에 어긋난 짓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하늘이 곧 그것을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우리 사부님께서는 대법을 전하시고 사람을 구하는 것이고 우리는 진상을 빨리 세인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다시는 사당을 위해 목숨을 바쳐 일하지 말라고 알려주는 것이고 만약 선한 충고를 듣지 않고 계속 나쁜 일을 한다면 사당과 함께 멸망되는데 당신 생각엔 가치가 있나요? 대법제자는 당신들의 아무런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것이고 다만 진상을 당신에게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이 진상을 명백하게 알고 사당 조직에서 탈퇴하겠다고 동의하면 당신의 목숨은 구제될 수 있는데 이것은 얼마나 큰 좋은 일입니까! 어디에 가서 찾아요? 당신은 위험이 하나도 없고 당신이 알고 내가 알 뿐입니다.” 비록 그들은 태도를 표명하지 않아도 난 낙심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들은 여러 번 나를 박해했지만,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고 미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구도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수련인은 적이 없다. 당신들은 오로지 사람을 구원하는 몫이 있을 뿐” [3], “대법도(大法徒)는 중생이 구원받을 유일한 희망이네” [4]라고 알려주셨기 때문에 그들을 포기할 수 없다.

션윈 CD를 배포할 때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한번 보세요. 이것은 중화 5천 년 신전(神傳)문화를 더한층 발양하는 것입니다. 무료로 배포합니다. 매우 좋습니다.”라고 했다. 사람들이 다 갖고 싶어 했는데 대다수가 기사였다. 하루에 적어서 6, 7개 배포할 수 있었고 많을 때는 10여 개 배포할 수 있다.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일은 기본상 매일 했고 어떤 어려움도 내가 중생을 구도하는 중요한 일을 막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인연 있는 중생을 만여 명 탈퇴시켰다.

5. 신사신법하고 대법을 확고하게 믿다

마난에 부딪히면 신사신법 해야 하고 정말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한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 [5]라는 것을 해내야 한다. 이것은 입으로만 해서는 안 되고 진정으로 마음을 움직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실 사부님께서 계시므로 누구도 대법제자를 건드릴 수 없다.

2007년 5월 9일, 나는 시 대형 법회에 참가했다가 또 납치됐다. 당시 50여 명이 갔는데 거의 다 사악한 경찰에게 납치됐다. 나는 경찰차에 납치되자마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외쳤더니 차 안 수련생도 따라 함께 외쳤다. 한 파출소에 끌려간 후 나를 수갑으로 매달아 놓아 두 손목이 조여 깊은 자국이 남았으나 당시는 아프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매우 편안했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두려움이 없는 것을 보시고 대신 감당해주신 것이다. 이후에 제3 구치소에 수감됐는데 심장병이 있고 고혈압이 220이나 된다는 검사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18일간 수감했다가 집으로 돌려보내 졌다. 내가 어디에 있든 큰 파룬이 나를 따라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시시각각 곁에서 보호해주셨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오자 주민센터 주임은 화가 나 우리집에 왔다. “이번엔 또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말해보세요.”, “별일 없어요. 그저 산책하는데 잡아갔어요.”, “그렇게 먼 곳에 가서 산책한다고요. ‘5서’를 써야 합니다. 여기에서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받아줄 곳이 있습니까?” 동사무소 주임이 간 후에야 두려움이 나왔고 그녀가 파출소 경찰을 불러 나를 잡아갈까 봐 걱정했다. 즉시 모자를 들고 집을 떠나려고 했는데 여동생이 “내가 여기 있는 한 누가 감히 언니를 박해하면 목숨을 걸고 싸울 거야.”라고 하자 집을 떠나지 않았다. 얼마 후 내 눈꺼풀이 축 늘어져 눈을 감은 것처럼 됐는데 눈꺼풀을 아무리 올리려 해도 올라가지 않았다. 물건을 볼 수 없게 된 동시에 머리는 송곳으로 찌르는 듯 아팠다. 할머니와 고모(모두 50여 세에 실명했다)처럼 되면 안 된다고 걱정이 들었지만 ‘아니다. 난 대법제자고 사부님께서 계시다.’라는 생각을 품고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청했다. 사부님께서 배치한 길만 가고 기타 배치는 다 승인하지 않는다고 계속 발정념을 했다. 책을 볼 수 없으면 눈까풀을 파헤치고 봤고 아무리 어려워도 대법제자는 법을 떠날 수 없으므로 법공부를 견지했다. 자전거를 탈 때 길이 잘 보이지 않을 때 가지 해달라고 사부님께 청하면 눈앞에 흰빛이 보여 흰빛을 따라갔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매일 진상 알림을 견지하고 진상자료를 수련생에게 전해줬다. 비록 오가는 차량과 행인이 많았지만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정말로 신기했다.

길에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외치기도 했는데 어떤 때 “감히 여기에서도 외칩니까? 잡히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까?”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실명됐어요. 대법이 저의 눈을 치료할 수 있어요. 누가 저의 눈을 치료할 수 있으면 누가 좋다고 말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기회를 이용해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했다. 어느 날 아침 태양을 마주하고 연공하는데 눈 안이 빨갛고 큰 파룬이 돌고 있는 것을 봤다. 파룬이 눈을 조절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얼마 후 눈을 떠보자 눈꺼풀이 정상이 됐고 눈도 정상으로 회복됐다. 이 모든 것을 직접 본 이웃들은 모두 놀라서 “파룬따파는 정말 좋다.”라고 했다. 자신이 두려움이 있어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에 이 마난을 초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공할 때 여러 번 방해를 받은 적이 있다. 어느 날 창문 틈으로 강한 바람이 들어왔는데 내가 창문과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는데 제발 중풍에 걸리지 말라는 바르지 못한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 이튿날 아침에 진짜 입과 눈이 비뚤어진 가상이 나타나는 바람에 법공부할 때 눈을 헤치고 봐야 했고 밥을 먹을 때 입을 잘 쓰지 못해 입을 헤치고 밥을 넣어야 했다. 일념이 옳지 않아 이 마난을 초래한 데다가 또 시간에 집착하고 빨리 나아지길 바랄수록 회복이 더욱 느렸다. 제때에 이 모든 것을 부정하지 않는 탓으로 20여 일이 지나서야 좀 나아졌고 반년 만에야 완전히 회복됐다.

한번은 연공하고 있는데 심장병이 발작하는 가상이 나타났고 아파서 거의 쓰러질 정도가 되자 사부님께 빨리 도와달라고 외쳤다. ‘난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제자다. 사부님의 배치만 듣고 기타 배치를 모두 승인하지 않는다.’라고 발정념하고 꾹 참고 견지했다.

또 한 번은 연공할 때 당뇨병 가상이 나타났지만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고 바지에 오줌을 싸고 바닥에 흘러내렸어도 움직이지 않고 연공을 끝까지 했다.

올해 섣달 그믐날 메스껍고 머리가 아프고 침이 흐르고 다리가 아픈 등 가상이 나타났고 진짜로 목숨을 가져가려는 느낌이었지만 즉시 경각했고 나는 대법제자고 사부님께서 상관하시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구세력에게 “구세력아 들어라, 내가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발정념하고 진상을 알리는 것을 박해하는 모든 사악한 요소를 몌(滅)!, 몌! 몌! 전부 소멸한다!”라고 했다. 가족들은 걱정해 나를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시키겠다고 했으나 나는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므로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고 남편에게 “여보, 꼭 건강한 아내를 되돌려 주겠어요!”라고, 딸에게 “꼭 건강한 엄마를 되돌려 주겠다!”라고 했다. 관건적인 시각일수록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신사신법 했고 철저히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 나았다.

시간이 있으면 법공부하고 법을 외웠다. 2개월 전에 어느 설법을 배우려고 하면 어느 설법이 즉시 머리에 떠올랐고 책을 펼쳐놓은 것처럼 똑똑하게 그 한 페이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매우 신기했는데 이런 현상은 연속 며칠 지속됐다. 법공부를 많이 하라고 사부님께서 격려해주신 것이었다.

이 몇 년에 많은 마난을 겪었고 연속 8번이나 납치됐으나 여태껏 신사신법에 대한 정념을 동요한 적이 없었고 시시각각 정법시기 대법제자로 자신을 요구했으며 정념정행으로 자신의 사전 서약을 실행했다. 이후로 더욱 노력해서 3가지 일을 잘하고 시시각각 법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최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더욱 많은 중생을 구하고 사부님과 중생의 간절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

이상에 만약 법에 있지 않은 곳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허스(合十)!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시가: ‘홍음2-두려울 것 뭐냐’[2] 리훙쯔 사부님의 시가: ‘홍음2-사도은(師徒恩)’[3]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각 지역 설법7-시카고시 법회 설법’[4] 리훙쯔 사부님의 시가: ‘홍음3-유일한 희망’[5]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정진요지2-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자’

(밍후이왕 제10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3년 11월 1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0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15/281173.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3/12/8/14354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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