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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문화를 숙청하자

글/ 신장(新疆)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번 내가 쓴 글에서, 업력이 마치 흑색금강석 같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당문화가 흑색의 자신을 만들었고 많은 관념과 나쁜 생각, 변이된 세계관과 가치관이 모두 그것에서 방출돼 나오는 것을 보았다.

언제부터 중공이 선전한 ×교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반응은 바로 파룬따파(法輪大法)다. 나는 거듭 중공이 사교임을 똑똑히 밝히려고 했지만 작용은 적었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내가 이미 세뇌됐기 때문이다. 그 소리는 완전히 나의 생각이 아니고, 그것은 세뇌된 부분이 방출한 것이다. 중공의 거듭된 선전을 듣지 않는다고 해도, 머릿속에는 세뇌됐고, 두려운 마음과 함께 결합해 그런 물질이 형성됐다. 이것은 비교적 뚜렷한 것이고, 더 많은 것은 쉽게 의식하지 못한다. 속인 마음이 많은 수련생은 대다수 당문화에 통제당하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진정 신사신법을 하지 못한다.

신을 믿지 않고 운명을 믿지 않는다

나는 열려서 수련한다. 신, 불, 사부님, 기타 생명체를 모두 볼 수 있다. 이치에 따라 마땅히 믿어야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믿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그 뿌리는 내가 아니지만 지금 나는 그를 통제하지 못한다. 이성적으로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만 그를 똑바로 알기 전에, 그가 나를 통제한다. 나 이쪽의 사상업력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사당이 모르는 사이에 주입한 것이다. 법을 얻기 전에 나의 상황은 마치 ‘진풍’과 비슷했다. 비록 중하지는 않았지만 좀 어리석었다. 속인의 일은 다 모르고 이해할 수 없었다. 법을 얻은 후 몇 년간 머리가 청성했을 때 그런 당문화는 짧은 시간 사이에 수업에서, 인터넷에서, 사람과의 교제에서, 모르는 사이에 나에게 주입되었다.

표현은 바로 구체적인 문제에서, 자신의 운명은 자신의 노력과 분투로 얻었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가지 못했다. 만약 생활과 일에서 잘 하지 못하면, 사상 속에서 이 사람은 노력하지 않고 수준이 낮다고 생각한다. 또 사상 속에서 늘 자신이 경사경법을 잘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수련생들은 마음속에서 복잡한 사람은 좋고, 간단한 사람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늘 약간의 원활함을 꾀하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유는 ‘속인이 보기에 정상으로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설마 다른 사람에게 속는가?’ 사실 이것은 이익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복잡함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하면 운명이 좋게 변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일반적으로 일마다 쉽게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을 개변하기 어렵다. 사실 이런 것은 당문화가 만든 것이다. 사람은 복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모든 것을 사부님께서 관여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자신의 관념(사실 사당이 만든 관념)으로 자녀(어린수련생)에게 이것저것을 배우게 하는데, 과외에서 불필요한 것을 많이 배워 법공부할 시간이 없게 한다. 그들의 머릿속에 나쁜 것을 주입하고 그들을 복잡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른 수련생은 오히려 기뻐하고 아이가 총명해지고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지금 사람이 알지 못하고 있는 사실은, 지금의 인류 도덕이 모두 지옥아래에 있으며, 만든 물건은 모두 지옥아래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무슨 좋은 것을 배울 수 있겠는가?

당문화와 나쁜 것을 보면 머릿속으로 주입돼도 완전히 느낌이 없는데, 많은 수련생은 자신을 분간하기 어렵다. 어린이는 더욱 분간하기 어렵다. 속인의 아이에서 우리는 보아낼 수 있는데 성적이 좋고 노력해 공부하는 어린이는 어릴 때 그런 영기가 완전히 없어지고 머리가 굳어진다. 많은 어린 수련생은 이렇게 속인 중에 망가졌다. 어른은 이상하게 아이가 이전보다 못하다고 느낀다.

많은 대학에 진학한 청년수련생은 이렇다. 본래 기술방면에서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할 수 있는데, 미래를 위해 자신에게 좋다는 학교를 선택했다. 그에게 지혜를 준 것은 그에게 속인의 생활을 더욱 잘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어떤 수련생은 궁핍하지만 아이는 현실에 어긋나게 비싼 대학에 보낸다. 설마 속인처럼 대학을 이용해 운명을 바꾸려는 것인가? 그것은 모두 대법의 자원이다. 자신이 빈 털털이가 돼 어찌 법을 실증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모두 운명을 믿지 않고 신이 모든 것을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닌가?

많은 사람은 정법이 빨리 종결되기를 바라는데 깊이 자신을 파헤치고 한번 자기를 보다보면 도대체 종결을 믿는가, 인류 여기에 큰 재해가 있는가를 믿는가? 만약 믿으면 왜 아직 소위 미래를 중히 보고 이후의 생활을 중히 보는가?

사실 깊이 파헤치면 내 사상은 믿지 않는 것이다. 내가 믿지 않는 원인은 바로 당문화-신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최소한 일부분은 믿지 않는다. 이 글을 쓸 때 나의 그 일부분이 해체되는 것을 보았다.

어떤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자신의 생각대로 해 주시지 않았다고 사부님을 원망한다. 이것도 당문화의 요소가 아닌가? 시건방지다. 사람은 가장 미미하며 더럽다. 어떤 이유로, 부처에게 자신을 어떻게 제도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일부 당문화의 단어가 있지만 여기서 단지 하나의 예를 들겠다. 이런 비슷한 단어는 아직 많다. 예를 들면 “온갖 고생을 견뎌내야만, 비로소 큰 사람이 된다.”

속인은 일반적인 고생에서 단련하고 사회의 복잡함에서 단련하여, 자신이 복잡하게 변했고 나쁘게 변했다(속인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받아들이는 것이 많으면 비로소 다른 사람보다 잘 살 수 있다. 사실 복잡하게 변했고 자신의 복을 전부 없애버렸다. 만약 자신이 자연스럽게 살면 본래보다 더 잘 살 수 있고 행복하다. 하지만 이런 불평한 마음을 가진 상황에서 복을 다 소모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도 행복하지 않다.

수련 후 이 한마디 말의 의미를 발견했는데 사람은 본래 고생이며, 고생에서 마음이 움직이지 말아야 하며, 자신을 단련해 더욱 좋게 변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큰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신이다.

이런 비슷한 단어는 아직 많고, 이런 단어가 형성한 의미가 사람의 머릿속에 주입돼 알게 모르게 사람을 개변시키고, 운명을 믿지 않게 하고, 수련을 믿지 않게 한다.

내가 지금 보기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이미 분간하기 어렵고, 많은 수련생은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여기고 아직 잘 모르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는 들 수 없다. 여러분이 ‘해체 당문화’를 들어보고 사상 중의 당문화를 똑똑히 찾아 그것을 제거하기를 바란다.

맞지 않는 부분은 수련생들이 자비로 수정해 주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4년 4월 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4/8/2897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