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많은 수련생들이 어떻게 “속인(常人)의 관념을 근본적으로 개변해야 한다”[1]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이 방면에서 작은 체득이 있어서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약간의 개변이라도 하려면 우선은 그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면, 내가 한 수련생과 말하고 있는데 그 수련생의 속인 친척이나 친구가 찾아왔다. 수련생이 속인 친척, 친구에게 진상을 다 알리고 나서 속인과 함께 느슨해져 아이를 학교에 보내더라도 좋은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좋은 전문 기술을 배워 좋은 일자리가 생겼고 사람 속에서 발붙일 곳이 있게 되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런 말은 속인과 예의로 하는 말이 아니라 내심 깊은 곳에서 베일을 벗고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수련생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말이 나와 다름을 발견했고, 처음에는 내가 잘못된 것으로 여겨 너무 모든 것을 수련으로 여기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최대한도로 속인상태에 부합되어야 함은 마땅히 속인의 관념을 좀 남겨야 하는 것인지, 왜냐하면 이런 현상이 한두 수련생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나는 단지 자신에게서 찾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을 보게 했는지 찾는다. 주변에 있는 수련생은 모두 진상 알리기를 매우 잘하고 있는데, 사람을 구도하는 일을 잘하면 된다고 가볍게 생각했으며 수련의 길이 다르니 아마 수련생은 그렇게 수련하는 길이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수련생에게서 심한 병업의 가상 교란과 법공부할 때 졸음 등의 현상이 나타났다. 나는 이 일에 관련해 참답게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평소 사람의 관념으로 보는 인식과 거꾸로 갔다. 사람이 좋다고 여기는 것을 나는 거꾸로 나쁘다고 여겼고, 처음에는 이런 사유방식으로 거꾸로 사고하여 억제했고 나중에는 관념으로 형성돼 나오는 생각은 사람의 관념과 상반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많은 수련생이 허다한 문제에서 근본적인 인식이 속인과 일치하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나는 이것이 바로 수련생들이 의식하지 못한, 늘 근본적으로 개변해야 하는 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해로 우리는 무엇이나 마땅히 가장 잘 할 수 있으나 속인이 여기는 좋고 나쁨의 그런 인식과는 근본적인 구별이 있다고 여겼다. 그렇지 않으면 단지 사람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며, 단지 대법의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속인과 구별될 뿐, 사상관념이 자신의 과거와 속인과 같고, 근본적으로 개변하지 않았다. 우리의 수련은 바로 이런 관념을 개변해야 하고 이런 근본적인 것을 개변해야 한다.
동시에 이 일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많은 마음이 반영됐다. 예를 들면 가정에서 장구한 계획을 세울 때 수련생은 정법에 대한 시간관념이 없고 이런 것은 분별하기 어렵다. 우리는 정법시간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등으로 많은 마음을 덮어 감추고 있다. 일부 사람은 근본적으로 신을 믿지 않는 마음마저 덮어 감추었다. 그리고 무엇이나 다 잘 배치해놓았으니 뒷근심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스스로 배치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의식하지 못하는 등이다. 그럼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만약 구세력이 구실로 잡았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마난이 오면 늘 진정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찾았다 해도 매우 표면적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신의 근본적인 집착을 수호하는 기점에서 찾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인식의 기점은 사람 속에서 좋은 것이라야 좋은 것이다. 찾으려는 건 무엇이 자신이 사람 중에서 얻어야 할 좋은걸 가로막고 있는 것인가 이며, 당신이 이때에 극력으로 수호하려는 건 속인이 추구하는 것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이때 당신이 찾아낸 집착은 사실 근본 집착을 수호하는 것이며 사실은 바로 당신이 마땅히 닦아버려야 할, 내려놓아야 할, 개변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 말에서 한 가지 일에서 많은 뿌리의 것이 줄줄이 따라 나온다. 우리는 늘 이런 근본적인 사람의 것에 통제되기 때문에 우주의 진상을 볼 수 없고 법공부를 해도 법리의 나타냄을 볼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뿌리에서 바로 잡아야 하는 바, 한마디 말, 한 가지 일을 하더라도 우선 근본에서 속인과 같은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제자: 제자가 반복적으로 『전법륜』을 통독함에 정법부분에 관련된 내포를 깨닫지 못하는 감을 항상 느끼는데, 오성이 너무 부족한 원인이 아닙니까?
사부: 당신이 『전법륜』 속의 글자에서 오늘날 내가 당신에게 정법 하라고 하는 일이 있는지 보아내려고 생각하면 당신은 영원히 보아내지 못한다. 대법을 수련하는 한 제자로서,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로서 당신이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전법륜』 속에서 당신은 곧 인식할 수 있으며, 법리에서부터 당신은 알 수 있다. 비단 이 단계까지 인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고 어떻게 잘할 수 있는가는 당신이 계속 책을 보면 다음 단계의 일을 볼 수 있으며, 당신에게 점화해 줄 수도 있다. 아직 이런 것들뿐만이 아니다. 최후의 단계에서도 여전히 당신에게 점화해 줄 수 있다. 당신이 아무리 높게 수련했어도 모두 여기에 있다. 대법제자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두 여기에 있다. 당신이 표면의 글자를 찾으려고 한다면 당신은 뒤집어 넘겨도 찾아내지 못한다.”
내가 최근 ‘전법륜’을 법공부하면서 본 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위에서 하신 말씀이다. 법공부할 때 마음이 조용하여 한 가닥의 잡념도 없을 때 나는 무엇이 법‘공부’를 하는 것인지 체험했다. 과거에는 ‘전법륜’의 표면 법리의 기초에서 작은 일부 법리에 대한 함의를 보게 되었던 데로부터 지금은 통맥(通脈)처럼 정체적으로 대면적으로 포함돼 있고 또 동시에 3층의 부동한 법리가 나타남도 있었다. 아울러 법에서 깨닫지 못하던 문제는 평소 생각하여 자동적으로 저장되었고, 다시 법공부할 때 생각지도 않았으나 한 번의 법공부 중에서 전부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나의 이해로 근본적인 개변이 있어야만 비로소 큰 변화가 있고 비로소 이런 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법공부를 잘하는 것은 단지 법공부에 그치는 게 아니라 중생구도의 일을 더 잘할 수 있음이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할 수 있는 청정지역을 찾는 게 아니라 마음이 깨끗해야 함이며, 또 수량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질이 높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전법륜’에서 표면 법리를 초과하여 깨달은 것은 그 누구와도 해석한 적이 없으며, 또 단순히 수구하려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입 밖에 내면 그 뜻이 아니고 담담하여 아무런 뜻도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일부 상태는 기세 드높은 표현이 아님을 알게 됐고, 왜냐하면 나는 이때에 이런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자신이 법속에서 깨달아야 하고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공이 자라야 하는 것이며, 갈수록 조용해짐도 의도적으로가 아니라 바로 이런 하나의 상태인 것이다.
최근 2년간 나는 “해 내어야 수련이로다”[3]와 사람의 근본적인 것을 개변하는데 큰 공을 들였다. 사람의 것을 내려놓은 고통을 겪은 후에라야 법속에서 얻어지는 달콤함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를 해내면 법공부에서 하나가 돌파됐고, 법속에서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체는 가장 좋은 것임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이상은 사람의 관념을 개변하는데 관련된 작은 인식이며 잘못된 곳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논어’[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3-대뉴욕지역법회 설법’[3] 리훙쯔 사부님의 시: ‘홍음-착실한 수련’
문장발표: 2014년 3월 2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3/26/2890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