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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투심, 집착심 등 집착을 버린 체험과 깨달음

글/ 광둥(廣東) 대법제자

[밍후이왕] 중공의 ‘투쟁철학’에 중독되어 나는 쟁투심, 질투심, 자신을 실증하는 마음이 모두 아주 강했다. 10여 년의 마난(魔難) 중에서 나는 법을 스승으로 삼고 많은 집착심을 버렸다. 나는 당초 수련생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할 때 폭발하던 데서부터 참고 반박하지 않았고 다시 무조건 자신을 찾았다. 심지어 큰 소리로 질책을 받아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되도록 ‘당신이 나를 좋다고 말해도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당신이 나를 나쁘다고 해도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하여 나는 몇 가지를 종합했다.

1. 나는 다른 사람이 나의 잘못을 지적하면 간혹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이 손상됐다고 느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잘라버리는 것은 자신이 아니요 모두가 미혹 속의 어리석음이로다”[1]를 생각했다. 그렇다! 그것은 내가 아니다! 내가 그것을 버리면 나는 더욱 체면과 자존심이 있는 것이 아닌가?

2. 다른 사람이 자신의 결점, 착오를 말할 때 기뻐하지 않으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입을 막으려 생각하고 종이로 불을 감싸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이 앞에서 말하지 않더라도 배후에서 말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가? 그가 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은 말하지 않겠는가? 자신을 덮어 감추려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자신을 속이는 것과 같고 진(眞)을 하지 못한 것이다!

3. 간혹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이 사실과 부합되지 않거나 혹은 보는 견해가 옳지 않아 억울하고 분하면 나는 불복하고 심지어 화를 낸다. 사부님께서는 “물론 우리는 선의(善意)로 해명할 수 있으며, 사정을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모두 관계가 없다. 그러나 당신이 너무 집착하면 역시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자신에게 정말 억울함을 당하면 틀림없이 빚을 갚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일종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는 채찍으로 간주하고 이후에 더욱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4. 늘 자신을 검사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무량하게 포용할 수 있는가? 진선인(眞善忍)을 중요한 표준으로 했는가? 예를 들면 간혹 뭇사람들 앞에서 비난을 받았을 때 자신이 소리를 내지 않으면 마치 무기력하고 모욕을 당한 것 같고 다른 사람이 깔볼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가장 큰 선의의 참음은 일종 강대한 에너지이며 모든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 업신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반되게 여러 사람들이 탄복한다.

집착심에 대해 오직 그것을 발견하고 그것의 면목을 똑똑히 보아야만 그것을 제거할 수 있다. 세 가지 일을 하는 중에서, 모순 중에서 가장 쉽게 집착심을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을 닦아 버릴 수 있다.

두려운 마음을 버린 체득과 깨달음

나는 사악에게 5차례 붙잡혔고 사악은 전화로 나를 감시했다. 나는 전화소리를 듣기만 해도 두려워했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어도 두려워했다. ‘두려움’은 무엇인가? 법공부를 많이 하면서 나는 ‘두려움’은 법리가 똑똑하지 못하고 중공의 박해를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박해로 간주했다는 것을 체득했다. 때문에 사람의 방법으로 박해를 반대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박해는 구세력의 배치 때문에 조성된 것이다. 그것은 대법제자에게 일사일념을 배치하고 우리의 일사일념은 오직 그것의 배치에 부합되기만 하면 박해를 받는다. 때문에 우리는 사상에서 그것을 청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사일념을 바로잡고 또 행동에서 구세력의 일체 배치를 부정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진정한 박해는 걸어 나와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하라고 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하고 끊임없이 반박해 중에서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다.

나는 또 ‘두려움’은 사람마음이 바르지 않고 인간세상의 안일한 생활에 미련이 남아 생사를 내려놓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체득하고 깨달았다. 대법제자로서 사람 생명의 의의는 바로 반본귀진(返本歸眞),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두려움’은 자신의 배역을 바르게 놓지 않은 것이다. 대법제자는 조사정법, 구도중생의 주인공이며 가장 바른 몸으로 제일 바른 일을 해야 한다. 속인마저도 ‘평생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지 않으면 한밤중에 문을 두드려도 놀라지 않는다’란 말이 있다. 선악은 보응이 있다. 또 나는 구도중생 하는 대선(大善)의 일을 하고 있다. 무엇 때문에 사당의 나쁜 인간을 두려워하는가? 이것은 대법제자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대법제자는 사부님과 정법 신의 보호가 있는 외에 사부님께서도 우리의 일체 능력을 충분하게 주셨다. “당신이 발정념만 하면 천군만마라 해도 사악한 것들은 모조리 흙이 되어 버리고 전부 소멸되는데, 아무것도 아니다.”[3]

사실 이 일체는 모두 신사신법(信師信法)의 문제다. 오직 법공부를 강화하고 발정념을 강화하고 끊임없이 안으로 찾고 자신을 잘 수련하고 정념정행하면 두려운 마음은 적어지고 세 가지 일을 잘 할 수 있으며 법을 실증할 수 있고 역으로 신사신법의 정도(成度)를 제고할 수 있다.

정과 색욕심을 제거한 체득과 깨달음

나는 비록 양성(兩性) 관계에서 실제로 착오를 범하지 않았지만 색심이 아주 심했다. 색심을 버리기 위하여 관련된 사건이 나타났다.

젊고 아름다운 한 대법제자가 우리 법공부 소모임에서 법공부를 했다. 나는 아름다운 수련생이 참여하니 법공부 소모임에 ‘광채’가 증가한 느낌이 들었다. 간혹 그녀는 내 발언이 아주 좋다고 칭찬하고 내가 밍후이왕에 투고한 문장을 아주 잘 썼다고 말했다. 나는 듣고 즐거워하지는 않았지만 편안함을 느꼈다. 그녀에게 어떠한 번거로움이 있으면 나는 기꺼이 도와주었고 간혹 나는 그녀를 도와 발정념을 했는데 한 번 하기만 하면 몇 시간씩 했다. 심지어 온 밤 하기도 했다. 그녀는 아주 감격해 했다. 세 가지 일을 할 때도 손발이 척척 맞았는데 여기에는 아주 심한 정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와 그녀는 이성이기에 정이 있으면 색이 있는 것이고 모순도 발생했다. 한 번은 그녀는 나와 다른 남자 수련생 A의 앞에서 그녀가 만난 모든 수련생 중에서 수련생 A의 심성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그녀의 칭찬을 듣는데 습관이 된 나는 이것 때문에 며칠 괴로웠다. 간혹 그녀는 수련생 A를 배웅해 좀 걷겠다고 말하면 나는 매우 질투했다. 한 번은 그녀는 내 발언은 보고를 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나는 듣고 너무 대조적이어서 마음이 더욱 괴로웠다. 이후에 그녀는 이 법공부 소모임을 떠났고 나는 마음에 베어도 끊어지지 않는 그리움에 거의 헤어나지 못했다.

무엇 때문에 이러한가? 나는 법공부를 하면서 장시간 이 문제를 사고했다. 심지어 한 번 앉기만 하면 하루였고 앉아 고심했다. 며칠을 사고했는지 모른다. 나는 마침내 알았다. 이것은 정과 색 문제에서의 득과 실 문제였다.

정과 색은 무엇 때문에 사람이 이렇게 강렬하게 추구하게 하는가? 정은 구우주가 사람에게 배치한 일종 즐거움이고, 얻으면 기쁘고 편안하며 잃고 싶지 않는데 잃으면 고통스럽다.

어떻게 해야 정과 색욕심을 버릴 수 있는가? 오직 정과 색이 생기는 원인과 정과 색을 추구하는 위험성을 명백히 알아야만 내심으로 정과 색을 버릴 수 있다. 수련인으로서 나는 사부님의 정과 색욕을 버리는 모든 설법을 보고 또 보았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들이여, 색욕은 수련인에 대해 반드시 넘어야 할 관(死關)이라고 나는 벌써 말했는데, 속인의 이 정에 너무 지나치게, 너무 심하게 이끌린 것이다. 요만한 일마저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는데, 보아하니 구세력이 애당초 이런 이들을 대륙의 감옥으로 배치했어야만 비로소 고칠 수 있는 것인가, 그런가? 그런 엄혹(嚴酷)한 환경에서 당신은 또 어떠할까. 너무 안일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4]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속인 생활의 아름다움, 안일을 추구하는 것은 정과 색의 마음이 만들어지는 전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나는 정과 색을 추구하는 집착심은 수련인에 대한 피해가 특히 심하며 수련인의 생사의 관[死關]이라는 것을 알았다. 수련인으로서 정과 색이 가져온 것을 집착하면 가벼우면 감옥에 들어가고 중하면 떨어져 수련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명백히 알았다. 때문에 나는 시시각각 자신을 경계하고 자신을 단속하고 그런 무욕무구(無欲無求)의 경지에 도달하고 수련인의 높은 경지에 도달하겠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의 시: ‘홍음2-고집을 버려라’

[2] 리훙쯔(李洪志)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3] 리훙쯔(李洪志)사부님의 저작: ‘각지 설법11-20년 설법’

[4] 리훙쯔(李洪志)사부님의 저작: ‘각지 설법5-2004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4년 3월 1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3/17/2888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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