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明慧법회|비바람이 지나간 후 백화가 피다

글/ 안후이(安徽)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10기 중국대륙 대법제자 심득 교류를 빌어 자신의 수련 정황을 위대하신 사존께 보고하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1998년, 나는 대법과 인연을 맺는 행운을 가지게 됐고, 이 천만년의 기연을 아주 소중히 여겼기에 마음을 고요히 하고 착실히 수련하면서 더는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99년 사당이 공개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할 때 나는 파출소에서 ‘610’과 도리로 논쟁했기에 그들 눈에 든 가시가 되었다. 그들은 사흘이 멀다 하고 우리 집에 와 소란을 피우면서 사람을 못살게 굴었고, 나는 비록 마음은 대법에 있었지만, 너무 많은 것들을 집착했기에 환경의 압력에 굴복하여 2년 동안 수련을 중지했다. 2002년, 나는 다시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기세 드높은 정법의 흐름에 용해되어 “중생을 구도하고 돌아가는 발걸음 늦추지 말라” [1]의 사부님 말씀을 따르고 있다.

비바람 속에서 길을 서두르다

2002년, 우리 부근의 몇 개 향진(鄉鎮: 마을과 읍)에는 자료점(資料點:자료 만드는 곳)이 없었기에 어렵게 신경문(新經文) 한 편을 얻으면 모두 손으로 베껴서 전해보았다. 그래서 나는 도시의 잘 아는 노수련생을 찾아가 그들이 우리 고향에서 첫 번째 자료점 세우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몇 년 동안 자료점에서 견본을 가져오고, 소모품 구매, 복사에서 배포에 이르기까지 안팎의 모든 일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나 혼자서 했다. 제일 어려운 것은 자금이었는데 당시 사악이 특히 창궐해 자료점은 특별히 비밀을 지켜야 했기에 수련생의 자금 지원이 제한돼 있었다. 비록 우리 집이 몹시 가난했지만 그래도 나는 자주 남편 몰래 우리 집 돈으로 메웠다. 후에 사부님께서는 나를 두 번 도와주셨는데 한번은 내가 400위안을 주웠고, 또 한 번은 딸이 복권에 당첨되어 500위안을 받았다. 우리는 이 돈을 다른 가족들 몰래 자료점 운영에 사용했다.

제일 힘든 것은 시내에 가 견본을 가져오고 소모품을 사는 일이었다. 우리 집에서 대도시까지 거의 50km에 가까운데다 시내에서 이곳저곳 다니다 보면 왕복 노정이 100km나 된다. 일주에 한 번씩 다니는데 어떤 땐 50km 되는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가며, 가는 데 2시간 오는 데 2시간이나 걸린다. 어떤 땐 대량의 소모품을 가지고 삼륜차를 몰고 다니는데 그건 정말 또 다른 광경으로서 새벽에 별을 이고 문을 나서면 저녁에 어두워야 집에 들어선다. 또 손자를 봐야 하기에 어떤 땐 애를 한 명 데리고 가고 어떤 땐 애를 두 명이나 데리고 다닌다. 자료점의 돈을 나는 한 푼도 쓰지 않았는데 수련생들은 내가 힘들어하는 걸 보고 나에게 돈과 물건을 주었지만 나는 모두 받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왕복하는 도중에 찐빵 한 번 사 먹지 않았고, 따뜻한 차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목마르면 강물을 마시고, 배고플 땐 참았지만 몇 달밖에 되지 않은 손자를 대처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우윳가루를 가지고 다니면서 음식점에 가 더운물을 빌어 타 먹였다.

어떤 땐 가는 길에 스티커(不幹膠: 진상이 쓰여 있는 접착테이프)를 붙였고, 어떤 땐 길에서 ‘홍음’을 외웠으며, ‘홍음’, ‘홍음2’를 익숙하게 다 외우고 나면 ‘전법륜’을 외웠다. 그동안 바람이 불거나 햇볕에 타거나 비를 맞거나 자전거 타이어가 터지는 일을 밥 먹듯 했고, 손자는 햇볕에 타 머리에 땀띠가 났는데 작은 찐빵만큼 큰 부스럼이 났다. 2007년 섣달 그믐날 밤은 얼음과 눈으로 뒤덮였고 집집이 따뜻하게 모여 음식을 먹고 있었지만 나는 삼륜차를 타고 이불로 소모품과 손자를 씌운 후 찬비를 맞받으면서 얼음물을 건너가고 있었다. 밥 한술 먹지 못했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채 몇십 킬로미터 되는 어두운 길을 더듬으며 집으로 향했다…… 위험한 적도 있었는데 교통사고가 나 차가 망가졌지만, 사람은 다치지 않았고, 한번은 경찰 앞에서 자료를 땅바닥에 가득 흘렸지만 당황해 하지 않고 주운 후 떠나갔다.

이렇게 6년 동안 300여 번 왕복하면서 3만 킬로미터 되는 노정을 빗속에서 오갔다. 자신을 위해 돈 한 푼 쓰지 않았고, 강물도 적지 않게 마셨으며 고생도 적지 않게 하고 괴로움도 적지 않게 당했지만 조금도 원망하거나 후회한 적이 없었다. 마음은 아주 편안하고 행복했는데 조사정법은 모든 대법제자의 제일 큰 소원이기 때문이다!

소굴에서 벗어나 오다

2008년 여름, 나는 시험에 참가하는 꿈을 꾸었는데 시험 감독관은 성이 양 씨였고, 그는 시험 시간이 45분이라고 선포했다. 3일 후 나는 악경에게 납치되어 구치소로 갔는데 길에서 나는 ‘사부님 시름 놓으세요. 제자는 절대로 대법에 먹칠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맹세했다.

나를 지키는 경찰은 성이 양 씨였는데 그는 나에게 감옥 규칙을 외우라고 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그에게 ‘홍음-대법이 몸을 떠나지 않으니 마음에 眞善忍(쩐싼런) 있네 세간의 대나한(大羅漢) 신도 귀신도 몹시 두려워하네’[2]를 외워 주었다. 그가 나에게 문제를 물어도 나는 여전히 홍음과 대법을 외웠다. 그는 다른 두 죄수보고 나를 끌고 가 사진을 찍으라고 했지만 나는 머리를 돌렸기에 찍히지 않았다. 나의 신체는 줄곧 건강했지만 신체 검사할 때 의사를 깜짝 놀라게 했다. 혈압이 280이고 심장 박동수가 ‘과학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뛰었다. 의사는 “바로 입원해야 합니다.”고 말했지만 사당의 악도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면서 “죽지 않으면 사람을 내보낼 수 없다.”고 했다. 한번은 성에서 악인이 와 나에게 물을 때 나는 여전히 홍음을 외우고 대법을 외웠다. 후에 그는 “계속 배울 것인가?”고 묻자 “배우겠다!” “계속 연마할 것인가?” “연마하겠다!”고 나는 답했다. 나는 속으로 당신은 나를 심문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발정념 하여 악을 제거했는데 그러자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고 질문은 결국 흐지부지 그만두게 되었다.

막 구치소에 들어갔을 때 우두머리가 나를 때리려 하자 나는 위엄 있게 “당신은 자격이 있습니까? 감히 칠 수 있습니까?”고 말하자 그녀는 즉시 움츠리며 돌아갔다. 그 후 누구도 감히 나의 손가락 하나도 건드리지 못했다. 내가 끊임없이 발정념 하고 대법을 외웠기 때문에 같은 방에 있던 범인들은 “당신은 뭘 중얼거리나요?” 하고 물었다.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주었는데 범인들이 진상을 알고 삼퇴 한 후 그 기뻐하는 모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내가 글 쓸 줄 모르기에 그들은 온 벽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써주었고, 한 노년 범인은 ‘파룬따파하오’를 외워 병이 나았다. 그가 기어코 나를 엄마라고 부르려 하자 나는 “리 스승님께서 당신의 병을 제거해 주셨습니다. 당신은 마땅히 리 스승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우리 둘은 다 60이 넘었으니 자매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단호하게 “나는 리 스승님에게 감사드리겠지만 그래도 당신을 엄마라고 부를 겁니다.” 하고 말했다.

그동안 나는 더욱 확실하게 사부님께서 나를 지켜주시고 점화해 주신다는 걸 감수했다. 나는 늘 높고 큰 4명의 호법신을 보았는데 손에 법기를 들고 나와 함께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들은 모두 화난 모습이었다.

사부님의 배치로 마침내 나를 석방하여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하지만 사악은 단념하지 않았는데 나를 대문까지 데리고 간 후 경찰은 “계속 연마할 것인가?”고 물었다. 내가 “연마하겠다!”고 답하자 그들은 나를 감방에 데려갔다가 또다시 대문까지 데리고 와서는 “계속 연마할 것인가?”고 또 물었다. 내가 여전히 “연마하겠다!”고 말하자 다시 나를 감방으로 데리고 갔다. 마지막으로 나를 대문 앞까지 데리고 왔을 때 나를 데리러 문밖에서 기다리던 남편은 나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순간 나는 정에 움직여 작은 소리로 “연마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말이 나오기 바쁘게 바로 깨닫고는 큰 소리로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고 보충했지만, 이 일 초 동안의 과실은 나에게 영원한 후회로 남았고, 지금도 나는 시시각각 그것을 보완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경찰은 차로 나를 십여 리 밖에 있는 버스정거장까지 데려다 주었는데 나는 구치소에서 전후 45일간 머물러 있었다. 집에 돌아온 후 사부님께서는 내가 자료점을 하는 데 너무 바쁘게 보내다 보니 법 공부를 잘하지 못했기에 사악이 빈틈을 타 박해한 것이라고 점화해 주셨다. 그제야 나는 그 네 법신이 왜 화났는지를 알게 됐다.

‘작은 꽃’이 서로 다투어 피어나다

걸어 나오는 노수련생이 점점 많아지고, 일부 능력이 있는 신수련생이 들어오게 되자 자금과 일손 모두 충족해졌다. 나는 수구에 대해 비교적 주의하는 일부 수련생과 함께 ‘꽃’을 피우는 일을 상의했다. 그들이 동의하자 나는 그들을 도와 자료점을 하나씩 세웠고 각자 분담을 명확하게 했지만 서로 모르게 했다. 사이트에서 자료 다운을 책임진 사람, 진상자료 인쇄를 책임진 사람, CD 굽는 것을 책임진 사람, 호신부 제작을 책임진 사람……

우선 나는 자신의 교훈을 그들에게 들려주면서 자료를 하는 모든 사람은 반드시 법 공부, 심성제고를 첫 자리에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운행에 있어 모든 자료점은 모두 나와 단독 연계를 하도록 규정했고, 소모품은 내가 제공해주고 자료도 내가 내보내어 자료점의 안전을 담보했다. 이렇게 하면 법리와 속인의 이치 두 방면에서 ‘누락’을 막아주어 사악에 어떠한 빈틈도 주지 않기에 전체 자료 ‘생산라인’은 평온하고 정상적으로 생산에 투입돼 자료 품질과 수량을 모두 담보할 수 있었다.

동시에 우리는 더욱 편벽한 향진을 도와 자료점을 세워주었다. 젊고 기력이 왕성하며 아주 견정한 노수련생 몇 명이 장기간 외지에서 일했는데 우리의 도움으로 그들도 타향에서 ‘작은 꽃’을 피우게 됐다.

첫 연주를 하다

차츰 우리 집에 오는 수련생이 많아졌는데 자료 가지러 오는 사람, 교류하러 오는 사람, 자칭 ‘충전’하러 온다는 사람, 어렵게 난을 겪고 있는 사람……삼삼오오, 10명, 8명 매일 끝이 없었다. 나는 이렇게 걸어나가지 못하면 어쩌지? 하고 좀 곤혹스러웠다. 금방 나는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한 악단이 합주하고 있었다. 내가 켜는 얼후(二胡)는 새것인데다 그것도 첫 연주를 하게 됐다. 깨어난 후 나는 ‘줄을 켜다, 줄을 켜다’라고 하는 것은 바로 어떤 사람은 연주하고, 어떤 사람은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아닌가? 바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 연주하는 사람이 바로 협조인이 아닌가? 그렇다. 사부님께서 나를 이 위치에 서라고 하시면 나는 그렇게 하겠다.

하루는 진상을 알고 3퇴를 한 촌 간부가 나에게 “내일 위에서 사람이 오는데 당신은 준비하고 있어요.”라고 알려주자 나는 집에 있는 자료를 이전했다. 이튿날 시, 현, 진에서 5, 6명이 왔는데 그들 중 몇몇은 웃으면서 나를 둘러싸고 한담하였고, 몇몇은 이 방 저 방에 가 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나만 혼자서 큰 소리로 말했고, 그들은 오히려 모두 심사받는 것 같았다. 반나절이 돼서야 “당신이 공산당을 그렇게 모질게 대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잖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우리는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아요. 중공이 그렇게 많은 쩐싼런(真善忍)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을 박해해 죽였는데 누가 모진가요?”라고 말했다. 떠날 즈음 그들이 나에게 무슨 어려운 점이 없느냐고 위선적으로 묻자 나는 “제일 큰 어려움은 바로 당신들이 우리 파룬궁을 연마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고 말했다. 마지막에 그들은 모두 웃으면서 돌아갔고 후에는 다시 오지 않았다.

지금 정법은 마지막 관건 시기에 이르렀다. 모든 중국대륙 대법제자는 모두 자신을 협조인으로 여기면서 현지 정체에 융합하여 사악이 공격할 틈이 없는 무너뜨릴 수 없는 철벽을 만들기 바란다. 대법제자는 모두 하나가 열을 상대하고, 하나가 백을 상대해야 하는데 자신의 최대 능력을 다해 많은 사람을 구함으로써 사부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원용하기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3-관감’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위덕’

(밍후이왕 제10기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 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2013년 11월 1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0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13/282149.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