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아주 깊이 은폐되어 있던 질투심을 파내다

글/ 스쟈좡(石家莊)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수련생의 문장을 보았을 때, 어떤 대법제자는 내원이 아주 높아 사부님께서 역사상 줄곧 지켜주고 계셨다는 것을 알고는 허탈한 느낌이 희미하게 들면서, 왜 나에게는 이런 복이 없을까하고 한탄했다. 닫혀서 수련하는 나는 무슨 느낌 같은 게 극히 드물었고, 사부님의 점화도 극히 드물게 느껴졌다. 매번 어렵고 고통스럽게 관을 넘길 때에도 모두 스스로 깨달아가면서 마지막에는 관 역시 엉성하게 넘었다. 매번 사부님께 빌었지만 사부님의 점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실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무엇인가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했다. 특히 최근 3년 가까이 가정관이 너무 커서 관을 넘지 못하고 있을 때, 집착을 찾지 못했거나 수련해 나갈 수 없을 때 사부님께 빌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자 심지어 일종 원망하는 마음까지 생겨났다. 지금에서야 사실 그것이 아주 깊이 은폐된 질투심의 표현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수련인은 사부님께서 지켜주고 계시는데, 사부님께서는 예전에 “당신이 한 덩이 강철이라면 절대로 당신으로 하여금 한 덩이 쇠가 되게 하지는 않는다.”[1]라고 말씀하셨다. 한 생명의 근기, 오성, 무엇을 성취해 낼지는 사부님께서 가장 명백히 정확하게 보신다. 실제에 부합되지 않는 비교나 추구는 사실상 질투로 인해 생겨난 한 가지 욕심인 것이다.

생명에는 층차가 있어서 저층생명이 자신의 경지를 초월하지 못하면 영원히 고층생명과 그의 경지를 이해할 수 없다. 신에게는 사람의 관념이 없기에 부동한 층차의 불, 도, 신 모두 자신의 ‘집’, 다시 말해 자신이 위치한 층차가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이는 생명의 층차가 가져온 상태로서 바로 부동한 층차의 생명은 모두 부동한 층차 중의 법의 표준에 부합되어야 한다. 이 각도에서 말할 때 질투심 역시 일종 탐욕으로 끝없이 구하는 마음-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것을 얻으려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층차 보다 높은 생명, 혹은 자신보다 좋은 생명을 부러워할 때는 이미 자신보다 층차가 낮은 생명을 못마땅해 하거나 경멸하는 게 아니겠는가?

과거에 나는 왜 그런지 늘 딸의 장점은 보아내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늘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딸이 무엇도 안 되고, 무엇도 해 낼 수 없으며, 사사건건 어느 한 가지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 자신이 누구보다 낫다고 여기고,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안하무인이고 오만무례하였다. 여기까지 쓰자 몹시 죄책감이 든다.

나는 줄곧 나 자신에게 물었다. 이렇게 여러 해 수련해 왔는데도 왜 상서롭고 자비로운 심태가 없는가? 매일같이 늘 하나의 분주한 상태에 처해 있었고, 매일매일 무엇인가 쟁취하려 하고 있고, 마음에 항상 무슨 일을 담고 있으면서 늘 평온하지 못했다. 이것을 업신여기지 않으면 저것이 눈에 거슬리고, 사당(邪黨) 통치하에 나타난 사회의 여러 난잡한 현상에 대해 마음깊이 혐오했다. 생활 속에서도 항상 불평을 하는데 이것이 안 좋고 저것이 맞지 않으며, 이 일은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하고, 저 일은 마땅히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이다. 눈은 항상 다른 사람의 잘못을 주시하기에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아무리 좋고 아무리 옳은 일일지라도 나는 여전히 결점을 찾아냈다. 이처럼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불복하는 질투심으로부터,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마음, 원망, 미움, 쟁투, 과시, 오만, 자부심 등 각종 사람 마음이 혼합해 파생(派生)되어 나왔다. 이렇게 많은 사람 마음, 이렇게 많은 흑색물질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으니 어찌 상서롭고 자비로운 장이 있을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우주중의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신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무슨 이유로 사람을 업신여긴단 말인가!

질투심 자체가 바로 생명이 법을 이탈한 표현이다. 질투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치게 하고, 발광하게 하며, 이성을 잃게 만든다. 질투는 사람으로 하여금 조금도 거리낌 없이 일체를 훼멸하게 만드는데 자신을 포함해서이다. 구세력은 어떤 사람이 대법제자가 된 것을 보고는 속으로 앙심을 품었다. 자신도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되지 못했는데 어떤 수련생은 너무나도 쉽게 얻었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하여 파괴적인 방법으로 대법제자를 ‘고험’하는데 사실은 바로 자아 훼멸이다. 사탄은 원래 천사였지만, 하나님의 배치에 불복하여 자신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반란을 의도하였기에 아래로 떨어져 타락하여 악마가 되었고, 신공표(申公豹)는 질투 때문에 최후에 북해 눈에 밀어 넣어졌다. 질투심의 위험이 얼마나 크고 심각한지 가히 보아낼 수 있다.

조금씩 질투심을 파내자 평화로워지면서 분노가 없어지고, 원망이 없어졌으며, 부러움이 없어지고, 열등감도 없어졌고, 기쁨과 흥분도 없어진 것 같았다. 과거에 나를 건드리던 물질들이 모두 나의 본질을 건드릴 수 없었고, 어느 것이 진정한 나이고 어느 것이 관념인지를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때 사람의 표면에 조금 닿기는 하지만, 순간 지나가버리고 평온해진다. 나는 사부님의 가지 하에 집착의 뿌리를 찾아내고 파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뉴질랜드법회설법”

문장발표: 2014년 3월 1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3/12/288630.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