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사악이 가장 창궐하게 대법을 박해하는 2002년에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내가 법을 얻은 과정은 사부님의 고심한 구도와 대법의 신기함을 체현했다.
법을 얻는 신기한 체험
어머니는 몇 십 년 동안 부체(附體)에 시달려 완전히 부체에 통제되어 얼떨떨했고 헛소리를 하셨으며 온몸에 병이 많았지만 어느 병원에서도 치료할 수 없었기에 자신과 가족에게 매우 큰 고통을 가져다줬다. 시누이가 먼저 대법을 얻어 어머니만 수련하게 하려고 했는데 뜻밖에 이 기연으로 나와 어머니는 운좋게 모두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사부님께서 몇 십 년 동안의 부체를 철저히 제거해주시자 어머니의 병도 다 나았고 지금 85세인데도 매우 건강했으며 나도 우주 중생이 주목하는 대법제자가 됐다.
2002년 11월, 시누이와 몇 명 수련생은 우리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전법륜’을 읽어줬는데 나는 예의를 지키느라 옆에서 그들이 읽는 것을 들었다. 그들이 책을 읽는 것만 들었는데 뜻밖에 대법은 내게 기적을 보여줬다. 첫날 저녁부터 악몽을 꾸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꿈에서 자신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칠선녀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봤고 ‘이것은 내가 맞나?’하고 생각했더니 즉시 큰 부처님 한분이 나타나더니 복숭아나무로 만든 큰 거울로 나보고 비춰보라고 해서 한번 봤더니 내가 대략 13,14세 나이의 모습이었고, 매우 아름다웠다. 수련생들은 어머니에게 7일간 법을 읽어줬는데 이 7일동안 나는 매일 저녁 꿈을 꿨고 꿈에서 다른 공간의 아름다운 모습을 봤다. 원래 경추부터 미골까지 뼈에 가시가 생겨 오른쪽 어깨를 들지 못했고 머리도 빗지 못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경추가 다 나아지고 어깨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직접 대법의 각종 신기함을 체험한 나는 대법을 수련하기로 결정했다. 수련생은 내게 ‘전법륜’ 한 권을 줬다. 처음에 법공부할 때 책의 글자가 매우 작았기 때문에 낮에 책을 읽어도 안경을 껴야했는데 저녁에 ‘전법륜’을 펼쳐보면 글자가 매우 크게 변한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편두통이 있어 아플 때 머리를 마구 벽에 박기도 해서 책을 볼 수 없고 학교를 다닐 수 없었으므로 3년 밖에 공부하지 않았는데 대법책을 볼 때는 유난히 편안했고 조금의 불편함도 없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법공부를 한 그날 저녁 내내 머리에 온통 ‘반본귀진(返本歸眞)’의 4글자가 떠올랐지만 당시 아직 무엇이 ‘반본귀진’인를 몰랐다. 이후에 수련생에게 물어봐서야 조금 알았다. 이튿날 수련생의 제의로 어머니는 집안의 ‘여우, 족제비, 고슴도치, 뱀’의 패쪽 및 기공책을 모두 버렸다. 버린 후 마음이 얼마나 후련했는지 말할 수 없었다.
간격을 타파하고 정체에 원용하다
반년 수련 후 나는 협조인을 협력해 진상자료를 보내줬다. 사부님의 경문 ‘심자명(心自明)’을 본 후부터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인도하시고 결정해주시는 것이므로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2003년 사스(SARS) 기간, 각 마을 입구에 사람이 지키고 있었고 큰 밧줄로 가로 막고 낯선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협조인은 나보고 마을 대법제자에게 진상자료를 보내주라고 했다.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마을로 들어갈 때마다 사부님께서는 입구를 지키는 사람을 다른 곳으로 가게 해주셔서 매번 막힘이 없었다.
이후에 협력하던 것으로부터 자발적으로 협조하여 우리 지역 협조인이 됐다. 협조하는 과정이 바로 자신을 연마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깊게 체득했고 나의 많은 사람 마음을 폭로했다. 처음에 안을 향해 자신을 찾을 줄 몰라 수련생들과 간격이 컸는데 지금은 일에 부딪히면 대법으로 대조하고 자아를 내려놓을 수 있고 무슨 일이든 어떻게 해야 대법을 위해 책임지는 것이고 어떻게 해야 사부님께서 가지시려는 것을 원용하고 수련생을 더욱 잘 협력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 수련들과 정체를 형성했다. 이 과정은 바로 대법 중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 잡고 승화시키는 과정이었다.
2007년부터 수련생은 나에게 법공부를 적게 하고 일할 때 사람 마음으로 한다고 했으나 당시 진정으로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을 바로 잡지 않았다. 그 결과 모순은 사부님의 ‘호주 수련생에 대한 설법’을 배울 때 집중적으로 폭발했다. 설법을 다 배운 후 여러분이 함께 교류할 때 한 수련생이 나보고 “조금도 법에 있지 않아요”, 다른 한 수련생은 “모두 사람의 마음입니다”라고 했고 또 다른 한 수련생은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수련생은 나보고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속인 때 나는 낯을 가리고 자존심이 매우 강하며 아주 체면을 차리고 다른 사람에게 지적당하는 것이 아주 두려웠다. 그날 속으로 몹시 괴로웠고 수련생 집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울었으며 집에 돌아와 크게 울었고 다시는 수련생들을 만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머릿속에 “문제가 있으면 안을 향해 찾는 이것은 대법제자와 속인의 근본적인 차이”[1]라는 것이 떠올라 즉시 자신을 침착하게 했다. 그러나 당시 나는 아직 진정으로 안을 향해 찾을 줄 모르고 명을 추구하는 마음, 체면을 차리는 마음을 제거하지 못했으며 자아를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에 수련생에 대해 강렬한 원망심이 생겼고 이후로 나와 수련생 사이에 큰 간격이 생겼다.
2013년 초에 이르러 이런 간격을 타파하고 수련생과 정체를 형성하겠다고 결심했다. 도대체 어떻게 타파하겠는가? 오직 법에서 답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대량으로 사부님의 설법을 배웠다. 법공부하고 법에 대조하면서 점차적으로 안을 향해 찾는 것을 배웠고 매번 다른 사람과 모순이 발생할 때 다시는 다른 사람을 보지 않았고 조건 없이 안을 향해 자신을 찾고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포용해주는 것을 배웠다.
한번은 팀에서 교류회를 열었는데 한 수련생이 내게 독선적이고 사업하려는 마음이 있다고 지적해줬지만 마음은 매우 평온했다. 나는 매우 부드럽게 수련생에게 “또 있어요?”라고 했더니 나의 태도에 수련생이 놀라서 “이 두 개만으로 부족해요?”라고 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저에게 아직 무슨 좋지 않는 점이 있는지 지적해달라는 것입니다. 오늘 모든 수련생 앞에서 잘못을 승인하겠습니다. 전에는 수련생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라고 했다. 수련생은 “당신의 잘못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알아요? 한 협조인이 잘 해야 정체를 잘 이끌 수 있어요. 우리 팀이 지금 왜 이렇게 됐죠?”라고 했다. 그 뜻은 나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당시 수련생의 언어는 매우 날카로웠으나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사부님께서 자비하십니다. 수련생에게 저의 부족을 지적해주고 우리가 함께 제고하게 하셨기에 이 체면을 차리는 마음, 다른 사람이 지적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을 없애겠습니다. 정말로 나의 결점을 지적해준 수련생에게 감사드립니다. 이것은 정말로 법을 위해 책임지는 것이고 나를 위해 책임지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내가 천천히 끊임없이 자아를 내려놓고 다른 수련생을 생각했더니 수련생들도 변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수련생들과의 간격을 철저히 타파했다.
바로 며칠 전에 ‘파룬따파를 박해하는 장쩌민을 청산하는 국제조직’의 ‘중국 현 정권 정권자에게 박해원흉을 체포하라고 정식으로 알린다.’를 공고할 때 수련생들은 적극적으로 자발적으로 협력했다. 이전에 몇 장씩만 가져갔는데 지금 한 가방씩 가져갔다. 수련생은 나를 이해해주고 생각해주며 나의 부담을 감소해주려 했고 동시에 될수록 내게 번거로움을 적게 가져다주고 법공부하는 시간을 더 많이 주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전에 근본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정말로 자아를 내려놓은 후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을 체득했고 원래 모두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수련생을 구출하다
2008년 시누이가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다른 한 수련생과 납치됐다. 수련생들과 교류한 후 내가 가서 석방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석방을 요구하는데 가족의 협조가 있어야 했는데 시누이의 남편과 자녀들은 관여하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시누이의 큰 오빠를 찾아가 그보고 함께 가자고 했다. 사실 이 사건을 통해 그와 그의 가족에게 진상을 알리고 그들이 자신의 위치를 배치하고 그들을 구도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사당 문화의 영향을 너무 크게 받아 석방 요구로는 희망이 없다면서 협력하지 않고 나보고 혼자 가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려서야 그는 진상을 똑똑하게 알았고 협력하겠다고 했다. 형수도 우리와 함께 가겠다고 하자 그녀의 친정어머니는 “간다면 둘째 숙모(나를 가리킴)의 말을 들어야 한다. 자네 여동생은 잘못이 없다.”라고 했다. 나는 “내가 어떻게 하라고 하면 그렇게 해요.”라고 했다. 당시 속으로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 나는 대법제자다. 나는 주역을 맡아야 한다.’라는 일념만 품고 있었다.
우리가 구치소에 갔는데 경비는 “며칠 안됐는데 사람을 석방하라고? 적어서 보름이 돼야 하네.”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고 누구도 결정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국가보안대대 부대장이 이 일을 책임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사람은 우리 지역에서 악명 높은 악인이었다. 우리가 국가보안대대로 찾아갔는데 국가보안 부대장이 마침 다른 방에서 다른 사람과 말하고 있었다. 나는 선한 마음으로 그 배후의 사악을 해체하고 그의 지금 표현은 모두 그가 아니고 나는 그를 구도하려는 것이라고 확고히 마음을 먹었다. 좀 지나 그는 건너왔는데 굽실거리며 태도가 매우 좋았다. 우리보고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큰 오빠가 시누이가 납치됐다는 것을 말하고 나는 그에게 우리 몇 사람의 신분 및 시누이 가정 상황을 말해줬고 그에게 대법 진상을 말해줬다. 그는 줄곧 머리를 끄덕이고 “이 공법은 정말로 좋다.”라고 했으며 웃으면서 내게 무슨 요구가 있는지 물었다. 나는 좋은 대답만 바란다고 했다. 그는 “무슨 대답인데요?”, “석방해주세요.”라고 했다. 그는 좀 생각해봐야 하겠다고 하자 나는 “그건 당신의 한 마디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어떻게 할 건가요. 빠를수록 좋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이틀 후에 어때요?” “그럼, 그렇게 하죠. 이틀 후에 사람을 데리러 오겠습니다.”라고 했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시누이의 딸과 사위를 불러와 그들보고 이틀 후에 함께 시누이를 데리러 가자고 했다. 두 아이는 원래 대법을 매우 인정했는데 이번에 시누이가 일이 생기는 바람에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진상을 진일보 똑똑하게 알리자 그들도 명백해졌다.
이틀 후 우리는 먼저 국가보안대대에 갔는데 경비는 “오늘은 일요일이라 근무하지 않습니다. 괜히 온 것이 아니에요?”라고 했다. 당시 속으로 ‘오늘 꼭 수련생을 데려갈 수 있다. 만일이란 없다. 모든 것이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고 생각했다. 좀 지나 과연 한 책임자가 왔다. 나는 남편보고 수속을 밟으라고 했다. 남편은 벽판에 시누이와 다른 한 수련생 두 명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달려 내려와 다른 한 수련생을 도와 서명해야 하는지 물었다. 나는 서명해야 한다고 했다. 구치소에 사람을 데리러 갔을 때 구치소 사람은 이렇게 빨리 석방됐느냐며 매우 놀랐다. 당일은 11일이었다. 수속 과정 중 납치된 다른 한 수련생의 가족도 왔다. 사부님께서는 정말로 교묘하게 배치하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순조롭게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의 구출이 이렇게 순조로운 것은 자신이 신사신법하고 두려움을 내려놓은 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수련생이 납치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수련생들이 함께 교류할 때 모든 질책, 원망을 내려놓고 정념으로 수련생을 가지해주는 동시에 장시간으로 발정념해서 사악을 해체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을 석방하라고 요구하러 갔을 때 수련생들은 발정념하고 가지해줬다. 동시에 납치된 수련생 본인도 사악에게 협조하지 않고 정념이 매우 강해 우리가 강한 정념의 장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대법의 기적이 나타났다.
각종 방식을 이용해 중생을 구도하다
나는 사람 돕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수련 전에 다른 사람을 도와 혼례식과 장례식 등을 치려줬고 자주 참가했다. 수련 후 나는 이 특수한 신분을 이용해 중생을 구도했다. 매번 결혼이나 장례를 치를 때 사람이 비교적 많았기에 수련생과 함께 협력하여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했다. 매번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고 이 몇 년간 이런 방식으로 많은 중생을 구도했다.
기억에 한번은 한 수련생의 아들이 이튿날에 결혼하는데 전날 저녁에 나를 찾아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수련생은 치른 혼례가 친정집에서 마음에 들지않을까봐 걱정했고, 더욱 중요한 것은 며느리가 수련하지 않기 때문에 아들 혼사에 영향줄까 봐 걱정했던 것이데, 수련생이 아직 사돈집에 진상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나보고 사돈 집안에 진상을 알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당시 그녀 말을 듣고 기분이 좀 좋지 않았다. 속으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아직 진상을 알리지 않았느냐며 수련생에 대해 불만이 있었지만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에 수련생을 도와주겠다고 승낙했다. 사돈 어른들은 혼례식에 매우 만족해했다. 나는 그들의 십여 명 친척이 있는 자리에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시켰고 당시 호텔의 직원도 삼퇴시켰다.
나는 원래 직장의 앙가 문화공작대 대원이었는데 수련 전에는 앙가 문화공작대에서 십여년 동안 앙가춤을 췄고 선두에 섰었다. 앙가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앙가춤을 출 때 선두에 서는 사람은 팀의 영혼이고 공연을 잘하려면 선두에 선 사람이 잘 이끌어야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앙가팀은 많은 사람을 접촉할 수 있으므로 대법을 수련한 후 이런 방식으로도 중생을 구도하려고 생각했다. 공연할 때 주위 관중도 매우 많고 또한 우리 공연팀은 현지에서 유명해 개업하거나 각종 이벤트를 할 때 자주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하곤 했기에 이렇게 되면 더욱 많은 중생을 접촉할 수 있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 나는 이런 형식을 이용해 많은 중생을 구도했다. 앙가팀 성원이든 공연할 때 주위 관중이든 주최측 사람이든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모두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시켰다. 이런 방식을 통해 많은 중생을 구도했다
우리가 앙가춤을 출 때 대법제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공연할 때마다 신의 상태에 이른 느낌이었고 몸은 가볍고 관중의 눈빛은 모두 내 몸에 집중되는 것 같았다. 많은 속인은 내 공연을 보면 마치 가볍게 나는 듯 매우 아름답다고 했다. 우리 직장 주임은 우스개소리로 “가볍게 날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인데”라고 했다. 한번은 한 가게에 갔는데 사장이 “당신을 알아요. ○○ 앙가팀의 선두 아니에요? 해마다 공연을 보는데 바로 당신을 보려고 가는 겁니다. 당신은 정말 잘 춰.”라고 했고 또 나이가 얼마되는지 물었다. 60세라고 하자 그는 매우 놀랐다. 그는 자신의 노친과 동갑인데 왜 훨씬 젊게 보이냐고 물었다. 나는 기회를 이용해 그에게 진상을 알리자 가게 주인은 매우 명쾌하게 삼퇴를 했다. 당시 그의 아들도 가게에 있어 그의 아들보고도 탈퇴하라고 하자 가게 주인은 아들에게 “이모의 말을 들어라.”라고 했다. 그리하여 그의 아들도 삼퇴했다.
평소 나는 매우 엄격하게 대법제자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했고 매번 공연하러 갈 때 만약 사람이 많아 차에 다 타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나는 혼자서 걸어갔다. 우리 공연팀 사람들은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모두 진상을 명백하게 알고 있었으며 대법을 인정했고 거의 모두 삼퇴했다.
한번은 두 가족의 주임과 함께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는데 차에서 젊은 운전기사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 중 한 주임은 젊은이에게 “기억해요, 우리는 모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알고 그녀가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것을 알아요.”라고 했더니 젊은 기사도 매우 기뻐서 삼퇴를 했다.
우리 팀에 취고수가 있는데 위암에 걸려 위 3분의 2를 절제했다.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시켰고 그는 대법을 매우 믿었다. 그리고 또 그에게 일부 진상자료와 ‘홍음’을 보여줬다. 이후에 그에게 물어봤는데 지금 신체가 매우 좋아졌다고 했고 이후로 그는 나를 보기만 하면 ‘파룬따파하오’를 말했다. 그의 아내도 삼퇴를 했다.
우리가 중생을 구도하려는 소원이 있기만 하면 사부님께서 배치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 직장에 중년 부부가 있는데 아내는 사당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아 대법을 매우 거부했고 여러 곳에서 여러 차례 대법을 비방했고 대법에 좋지 않는 영향을 줬다. 수련생들이 그에게 진상을 알려도 전혀 듣지 않았다. 수련생들은 조급해했고 어떻게 그들을 구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수련생들이 그들을 구하려는 자비심이 있는 것을 보고 사부님께서 묘하게 배치해 주셨다.
우리 집은 1층이다. 어느 날 저녁 12시 발정념하고 있는데 바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와 커텐을 거두고 보니 한 대머리가 창문 밖에서 흔들거리고 있는 것을 봤다. 나는 그를 상관하지 않고 계속 발정념을 했다. 좀 지나 또 바깥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튿날 아침에 밖에 나가보니 가방, 모자, 핸드폰, 신발 등이 이리저리 바닥에 널려 있었다. 이때 마침 한 수련생이 날 찾아왔는데 지갑에 있는 돈과 신분증을 보더니 그녀 직장 동료 부부의 신분증이라고 했다. 아내가 바로 앞에서 말했던 그 진상을 모르고 대법을 반대하는 사람이었다.
나와 수련생은 물건을 주어 그들 집으로 찾아갔는데 집에 아무도 없어 직장으로 그 아내를 찾으러 갔다. 그녀가 마침 조급해 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온 목적을 알리자 매우 감동했다. 그녀는 확인해보고 가방의 물건이 하나도 적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 그녀 남편이 술에 취해 집을 찾지 못하고 우리 집 정원에 물건을 내던지 것도 몰랐던 것이다. 부부 둘은 매우 감동해 내게 자꾸 돈을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받지 않겠다고 했고 이후에 또 한턱내겠다고 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들은 대법제자의 선량함을 봤고 나도 기회를 이용해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켰다. 이렇게 두 생명은 위대하신 사부님의 자비로운 배치 하에 구도됐다.
자비롭게 가족을 대하다
법을 얻기 전에 남편의 형제자매들이 시부모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와 남편은 노인을 봉양하는 책임을 졌는데 그들은 오히려 노인의 돈(사실 노인은 아무런 돈도 없다)을 탐내는 것이라며 이 일을 직장에 고소했고 법정까지 고소하며 떠들썩했다. 남편의 형제자매는 번갈아 우리 집에 와서 야단을 쳤고 물건을 깨뜨리기도 했다. 아주버님은 식칼을 들고 나를 죽이겠다고 해서 나는 놀라서 심장병까지 생겨 문 두드리는 소리만 들어도 바닥에 쓰려지고 손발이 차가웠다. 그리하여 나는 남편의 형제자매들에 대해 매우 큰 원한을 품고 있었다. 법을 얻기 전에 나와 시누이는 8년이나 왕래하지 않았고(시누이가 먼저 법을 얻고 이전의 잘못을 깨닫고 먼저 내게 사과했다), 아주버님 및 시동생과 11년간 왕래하지 않았으며 평생 죽을 때까지 그들과 왕래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들은 내게 너무 큰 상처를 줬기 때문이다.
법을 얻은 1년 후 2003년 4월에 시동생이 직장에서 의외의 사고로 사망했는데 직장 지도자는 남편에게 상태가 위중해 간호를 해야 한다고만 알려줬다. 당시 소식을 듣고 나는 속으로 지금 대법을 수련했기 때문에 대법의 요구대로 해야 하고 그들을 만나고 가정 관계를 잘 평형시켜 법을 실증하고 그들을 구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법을 얻은 초기부터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나와 주변 이 친척들의 인연은 대법으로 인해 우리가 한 가족이 됐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내가 남편에게 시동생을 보러 가겠다고 할 때 그는 가지 못하게 하는데도 내가 단호하게 가겠다고 말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남편과 함께 떠났는데 큰아주버님과 큰형님, 시누이 및 시동생 딸도 갔다. 우리는 같은 기차를 탔는데 오르기 전에 나는 속으로 꼭 사부님의 요구대로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1]를 해내고 그들과 만나고 꼭 심성을 지키겠다고 했다. 기차에서 식사할 때 나는 자발적으로 음식을 큰아주버님과 큰형님에게 주고 “배고픈데 좀 드세요!”라고 했다. 큰형님은 얼굴을 돌리고 나를 상대하지 않았고 큰아주버님은 흥하고 콧소리를 내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간에 음식은 먹어야 해요.”라고 말하고 음식을 그들 앞에 놓았다. 당시 마음속으로 매우 평온했고 화를 내지 않았다.
남편, 큰아주버님, 시누이 등이 줄곧 울고 있어 나는 줄곧 그들을 위로했다. 내 침대 정면에 있는 한 승객은 우리 한 가족이 왜 이러는지 몰랐다. 한담할 때 나는 기회를 빌어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예전의 가정 분쟁, 그들이 어떻게 나를 대했는데 지금 대법을 배웠기 때문에 내가 그들을 이렇게 잘 대하는 것이지 아니면 평생 그들과 왕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알려줬다. 그는 즉시 불가사의하고 내가 매우 대단하다고 법을 배워 원망을 내려놓고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을 잘 대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도중에 동서의 남동생도 기차에 올라와 나는 자발적으로 그와 인사했다. 동서 때문에 그의 태도는 그다지 좋지 않았고 미지근했다. 그가 어떻게 나를 대하든 꼭 대법의 요구대로 하겠다고 했다.
차에서 내린 후에야 시동생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이때 동서도 직장의 두 지도자와 함께 달려왔다. 이때 온 가족은 울음바다가 됐고 아예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나서서 바깥과 접촉하는 모든 일들을 처리했다. 동서 직장의 지도자는 나와 이 가족과의 원한을 잘 알았다. 이전에 이 가족이 그렇게 나를 괴롭혔는데도 관건적인 시각에 내가 여전히 그들을 생각해주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장례식을 치르는 기간 매일 저녁 나는 동서 옆에서 그녀를 위로해줬다. 그녀가 가장 어려울 때 꼭 그녀를 도와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에게 “이전에 내가 잘못한 곳이 있으면 양해해줘, 우리는 한 가족이잖아. 이후에 자주 왕래하자”며 사과했더니 그녀도 울면서 “그때는 우리가 잘못했어요. 우리 대신 효도를 드리는데도 형님을 원망했어요. 지금 매우 후회해요. 우리가 십여년 왕래하지 않았는데 뜻밖에 제가 가장 어려울 때 형님이 어머니를 홀로 나두고 저를 보러 올 줄 몰랐어요.”라고 사과했다. 장례식을 치르는 과정 돈쓰는 일 외에도 어떤 일을 처리해도 나는 모두 선두로 뛰어다녔고 그녀가 생각하지 못한 많은 일들도 모두 그녀를 도와서 처리해줬다. 그녀는 큰 감동을 받았고 그녀도 내 몸에서 대법제자의 모습을 봤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매우 화목했고 그들 집에 무슨 일이 있든 그녀의 딸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든 나는 전력을 다하여 도와줬고 설을 쉴 때마다 나는 그들 온 가족을 청해 한턱냈다. 동서의 가족은 큰 감동을 받았고 대법의 진상도 알게 됐다.
장례식을 치르는 기간 자발적으로 큰아주버님을 찾아가 좀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내가 오자 그는 풍자하고 헐뜯고 원망하는 말로 나를 훈계하기 시작했는데 정말로 뼈에 사무쳤다. 마지막에 우리 둘의 원한은 영원히 해결할 수 없고 나를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속으로 ‘온 이상 이 관을 꼭 넘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다”[2]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가 어떻게 나를 대하든 웃으면서 “이전에 어쨌든 모두 제 잘못이에요. 사과할게요. 큰아주버님의 마음이 시원치 않다면 때리고 욕해도 되요. 대법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뵙지 않고 이번에 오지 않을 겁니다. 지금 대법을 배웠기에 대법의 요구대로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자 큰아주버님도 화를 푸셨고 “됐다, 지나간 일은 더 꺼내지 않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며칠 되지 않았는데 그는 로비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흉악스럽게 나에게 “너만 보면 화나서 못견디겠다.”라고 했다. 당시 나는 전혀 마음의 준비가 없었다. 그러나 사부님의 “장래에 어쩌면 당신이 가장 체면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이 당신의 뺨을 두어 번 때려 당신으로 하여금 망신을 당하게 할지도 모르는데, 당신이 이 문제를 어떻게 대하는지, 당신이 참아낼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 당신이 참아낼 수 있지만 마음속으로 내려놓지 못한다면 이 역시 안 된다”[2]라는 설법이 생각났다.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걸어가 큰아주버님에게 “저를 어떻게 대해도 괜찮은데 지금은 때가 아니고 중요한 것은 내일 동생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자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돌아온 후 안을 향해 찾았다. ‘그가 왜 이렇게 나를 대하는가? 내 마음이 아직 순정하고 자비롭지 못하고 마음속에 아직 내려놓지 못한 물건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왜 이렇게 나를 대하는가.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번에 제고하도록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했다. 이 기간에 나는 자발적으로 큰아주버님과 큰형님을 찾아 소통하고 그들의 각도에서 그들을 보살펴주고 관심해줬다. 심성이 제고됨에 따라 점차적으로 큰아주버님도 화를 내지 않았다. 이후로 설마다 아이보고 물건을 사서 그를 보러 가라고 했고 그의 아들 결혼식도 우리가 도와서 차려줬다.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해줬고 큰형님과 그의 아들도 삼퇴했다. 큰아주버님은 원래 사당의 깊은 영향을 받았지만 그도 내 몸에서 대법의 아름다움을 봤다.
이 사건을 통해 나는 생생한 진상이 됐다. 직장 동료들은 우리의 가정분쟁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가족을 대한다는 것을 알고 내가 진상을 알리지 않아도 그들은 모두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 직장의 무장부장, 노조 대표에게 많은 수련생들이 진상을 알렸지만 그들은 다 듣지 않았는데 내가 다 탈퇴시켰다. 그들은 법을 배운 후 나의 변화를 알기 때문이다. 나는 또 이전에 가정분쟁을 조절하는 파출소 소장 및 경찰도 모두 탈퇴시켰다.
나와 남편의 쌍방 친척에게 거의 다 진상을 알렸고 삼퇴를 해줬는데 그들 중에 억만 부자 및 각 업계의 지도자도 있었다. 남편의 삼촌은 이미 80세고 원래 노 공안이었는데 사당의 ‘무신론’의 영향을 너무 깊게 받았다. 우리는 이미 20여 년간 만나지 않았다. 사부님의 배치 하에 그는 우리 집에 왔다. 오기 전에 전화로 그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는 믿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그에게 진상을 알리자 심지어 책상을 두드리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가 이미 세상을 떴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주 어머니에게 약을 사드렸고 어머니가 스스로 생활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그가 집에 들어와 어머니를 보더니 “더 젊게 변하셨네, 직접 눈으로 확인했어”라고 했다. 사실 앞에서 그는 철저히 대법을 믿었다. 그가 올 때 ‘속효구심환(速效救心丸-심장약)’을 먹고 있었고 반가방 약을 지고 왔고 심한 심장병, 당뇨병, 전립선 등 있었으며 줄곧 숨이 찼는데 우리 집에 온 후 3일째부터 숨이 차지 않게 됐다. 십여 년 귀가 멀어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았는데 그가 삼퇴하고 따파하오(大法好)를 읽자 나흘째 귀가 좋아졌다. 대법의 신기함을 보고 그는 자발적으로 대법책을 보겠다고 했고 공법을 배웠다. 그가 떠날 때 꼭 대법책과 모든 물건의 돈을 주겠다고 했다. 그는 “불법을 청하시는데 돈쓰기 아까워하면 진심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가 집에 돌아간 후 줄곧 법공부를 하고 연공했다. 언제나 입원해야 했었는데 지금 신체가 매우 좋아졌다. 그의 아들, 며느리가 그를 집으로 데려가려 왔을 때 직접 노인의 변화를 보고 모두 삼퇴했고 진상을 알게 됐다. 그의 아들이 갈 때 많은 대법 진상자료를 가져가면서 그들 친구 동료들에게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그는 작곡가이기 때문에 그의 많은 친구는 사회에서 매우 신분이 있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아직 수련하지 않으나 그는 직접 대법의 아름다움을 봤고 대법을 아주 믿었으며 자주 다른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고 진상자료도 배포했다. 2011년 남편의 큰 외삼촌의 팔순 잔치에서 나와 남편은 협력해 잔치에 참가한 100여명을 탈퇴시켰다. 그 중 큰 외삼촌의 아들은 부대 단장이고 큰 외삼촌 가족 중 많은 사람은 부대 군인인데 그들을 모두 삼퇴시켰다. 그리고 또 사촌 동생의 동료, 동창도 모두 삼퇴시켰는데 그 중 시장, 공안국 지도자, 유명한 사람 등도 있었다. 온 잔치 분위기는 상서로웠고 화목했으며 모두들 나와 남편을 매우 존중했다.
십 여년 간 대법 수련 중 위대하신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하에 드디어 안전하게 걸어왔다. 가장 큰 체득은 바로 한 대법제자로서 언제든지 에누리 없이 백분의 백으로 사부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잘 수련하지 못하면 개인문제가 아니고 대법제자는 수많은 중생의 생사존망과 관계되고 있기 때문에 이후 꼭 법공부를 많이 하겠다. 지금 중생을 구도하는 긴박감을 더욱 절실히 느낀다. 정법 최후의 단계에 나는 꼭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수련을 처음과 같이’[3]를 해내고 더욱 많은 중생을 구하겠다.
이상은 본인이 구술하고 수련생이 기록하고 수정하고 정리해 준 것이다. 대필 수련생이 지불한 고생에 감사드린다! 맞지 않는 곳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지적해주고 바로 잡아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정진요지-대법(大法) 산동 보도소에게’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13년 대뉴욕지역법회 설법’
문장발표: 2013년 11월 1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0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13/2816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