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동북 대법제자 심오(心悟)
[밍후이왕]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내가 차를 몰고 다닌 지도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때는 주변에 차를 몰고 다니는 수련생이 아주 적었기에 사람들은 모두 우리 집 조건이 좋다고 생각했다. 집이 여러 채 있고 상가도 여러 군데 있었으며 회사가 있고 또한 공업 구역에 30여 묘 되는 공업용 부지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다 내가 파룬따파 수련을 한 후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하사하신 것이다. 수련 전, 나는 채소시장에서 야채를 주워 생계를 유지했다. 법을 실증하는 가운데서 나는 돈의 진정한 가치와 용도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든 모두 대법의 자원이며 마땅히 중생 구도에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질병, 가난에서 건강, 부유에 이르기까지
법을 얻기 전에 나는 온 몸이 병마에 시달려 병력만 두껍게 한 무더기나 됐는데 미열이 지속하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와 남편은 모두 월급쟁이였는데 내가 1년 내내 병에 시달려 있었기에 늘 휴가를 맡고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어떤 때에는 한 달 월급이 7위안이었고 또 14위안일 때도 있었다. 남편도 직장에서 일자리를 잃고 몇 달 동안 월급을 받지 못했기에 나는 늘 2, 3살 되는 아이를 데리고 도매시장에 가서 야채를 주워 생계를 유지했다.
1996년, 법을 얻은 후 내 신체는 기적같이 좋아졌고 우리 온 가족은 지옥에서 천당으로 온 것 같았다. 이전에는 남편이 집안일을 도맡았지만 지금은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어 ‘퇴직’ 신청을 하고 생계를 유지할 길을 찾아 떠났다. 돈이 없어 남편은 집을 담보로 사업을 하기 시작했는데 사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식구가 혜택을 본다”[1]고 내가 수련한 후 남편의 사업은 특히나 순조로웠으며 가정생활도 풍족해졌다.
모든 것을 다 바치리라
1999년 ‘7.20’ 중공 사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대법제자는 세인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고 현지에도 큰 자료점이 있게 됐다. 그 때 나는 수련생에게 가서 진상자료를 가져 왔는데 매달 수련생에게 100위안, 200위안 정도의 돈을 주었으며 많을 때에는 500위안도 주어 ‘이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다. 수련을 하면서 심성이 무사무아로 승화되자 나의 ‘도달하고자 하는 요구’ 표준도 변했다. 모든 재산, 자신의 생명을 포함해 모두 대법에서 온 것이며 모두 대법 자원이기에 마땅히 전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로부터 나는 ‘내가 얼마를 지불했다’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았고 ‘아직 얼마나 많은 중생이 구도 받지 못했을까?’만 생각했다.
직장에서 근무연한을 돈으로 계산해 지불받고 퇴직한 후 나도 가정 자료점을 세웠다. 남편이 나에게 차를 사주었기에 운전하는 것을 배워 이때부터 자료점 행렬에 들어섰고, 수련생에게 소모품을 사주고 소모품을 배달해주는 행렬에 들어섰다. 남편은 그때 나에게 매달 5000위안의 생활비를 주는데 나는 모든 현금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사부님께서 마련해주신 모든 기회를 소중히 여겼다. 우리 도시든 다른 도시든 아니면 농촌 수련생이든 그들이 소모품을 사는데 돈이 필요하거나 혹은 소모품을 더 사려 할 때 돈이 부족하면 나는 온 힘을 다해 그들을 도와주었으며 어떤 때에는 모든 것을 다 바쳤다.
손에 돈 한 푼도 없을 때는 반찬 살 돈도 없어 집에 있는 춘하추동 옷 주머니와 사용했던 봉투를 다시 한 번 뒤져보는데 매번 돈을 좀 찾아냈다. 어떤 땐 몇 백 위안의 돈을 찾아내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나는 묵묵히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고 말했다. 어떤 때는 도저히 돈을 찾지 못하면 남편을 불러 함께 반찬을 사자고 한 후 그의 뒤를 따라가면 그가 돈은 내고 반찬을 사게 했다.
아이 역시 대법제자인데 그도 저금통에 있던 돈을 꺼내주었다. 우리는 일각일각(一角一角: 1위안의 1/10)으로 반찬을 샀고 액수가 큰돈으로는 진상 소모품을 샀다. 아이는 대학에 간 후 생활비를 모두 아빠에게서 받아갔는데 그는 돈을 함부로 쓰지 않고 명품 브랜드는 더욱이 사지 않았으며, 돈을 절약해 사람 구하는데 썼다. 그때 나는 늘 아이가 돌아오길 기다렸는데(어떤 때 아이는 한 달에 한 번씩 집에 왔음) 올 때마다 아이는 돈을 조금씩 갖고 왔기 때문이다. 아이가 노트에서 평평하게 눌린 20, 50, 100위안을 나에게 줄 때 나는 모두 감격하며 ‘고맙다!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면 아이는 늘 “어머니, 왜 저한테 그렇게 정중하게 말하나요?”고 말하곤 했다. 내가 아이를 정중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사람을 구하는데 돈이 필요해 우리 세계 중생을 대신해 어린 수련생의 이해와 지지에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맛있네”
그때부터 나는 더욱 아껴 먹고 아껴 썼다. 어떤 때에는 구제 시장에서 옷과 양말을 샀고 10위안을 들여 구제 운동화를 산 적도 있었다. 나는 끓인 물을 마실 때가 적었고 생수나 음료수는 더 말할 나위 없이 마시지 않았으며 거의 수돗물만 마셨다.
한번은 내가 차고에서 수돗물을 받을 때 차고에 비어 있는 큰 페트병을 보고 그 병에도 물을 가득 받아 차 안에 놓았다. 그 병 안의 물을 마실 때 입안에 있을 때에는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넘기려고 하니 강한 플라스틱 냄새가 느껴져 이 병을 뒷자석 아래에 놓았다. 겨울이 됐을 때 물병의 물은 얼어 얼음덩어리가 됐는데 수련생들과 차를 몰고 법을 실증하러 갈 때 너무 목이 마르면 나와 수련생은 병 속의 얼음을 손으로 감싸 쥐고 녹여 먹었다. 물이 차서 플라스틱 냄새가 그리 강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이렇게 이 병의 물을 다 마셨다.
10여 년 동안 나는 줄곧 찬 수돗물로 머리를 감았다. 겨울이 되면 동북의 물은 뼈를 찌르듯이 찼지만 나는 이미 적응됐다. 찬물로 머리를 감으면 돈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도 절약할 수 있었다. 물 끓이는 시간이면 머리를 다 감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법공부하는 방식은 법을 외우는 것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평소 일분일초를 다그쳐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을 다 이용해 법을 외웠다. 법을 익숙하게 외운 후 차를 몰 때 수련생에게 외워주면서 수련생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하루는 남편이 나에게 “지금 사람은 정말 못됐어. 레인지 후드에서 나오는 기름도 회수하는 사람이 있다네”라고 말했다. 말하는 사람은 무심코 말했지만 듣는 사람은 주의해 듣는다고 나는 듣고 나서 회수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런 기름을 먹어도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우리 집 레인지 후드의 기름받이가 거의 찬 것을 보고 작은 사발에 부어 넣고는 그것으로 요리를 하면 돈을 절약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이런 기름으로 요리를 하니 국자에 모두 기름 거품이 뒤덮였으며 볶은 요리도 맛이 없었다.(아이는 이 기름으로 계란도 볶았음) 이후에 우리는 이런 기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어느 한 번, 나는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 집에 갔는데 교류 중에 그녀는 요 며칠 집안 식탁엔 짠지밖에 없었기에 남편이 이미 몇 번이나 그녀에게 늘 짠지만 먹어서는 어찌 되겠냐며 돈을 찾아 요리를 좀 사라고 했다고 말했다. 남편의 월급카드가 그녀에게 있기는 했지만 월급카드의 돈을 다 찾아 쓰면 어디에 돈이 있겠느냐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 수련생 주위에는 거의 모두 노년 수련생이기에 월급이 모두 낮아 다른 수련생보고 돈을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요 며칠 그는 CD와 필요한 소모품을 산데다 갑자기 프린터에 고장이 생겨 몇 번이나 수리했지만 수리하지 못했다. 진상자료와 CD의 정상적인 운행에 영향을 미쳐 세인들에게 배포하는 일을 그르칠까 염려되어 프린터를 하나 사다 보니 그의 집 자금은 잠시 부족하게 됐던 것이다. 나는 수련생의 말을 묵묵히 마음에 새긴 후 그때부터 3주 좌우 한 번씩 그녀에게 A4용지 2박스를 가져다줌으로서 그의 자금이 부족하고 시간이 없는 상황을 완화시켜 주었다.
한번은 한 수련생이 나에게 그가 A수련생 집에 가서 밥을 한 끼 먹었는데 밥 먹을 때 A수련생의 남편은 매달 3000위안의 생활비를 주는데 왜 끼니마다 배추쪼가리밖에 없느냐고 하면서 돈을 어디에 다 썼는지 모르겠다고 불평을 부렸다고 했다. 밥 먹을 때 A는 가끔 탁상에 있는 그가 만든 삶은 배추 요리를 가리키며 “드세요. 드세요. 맛있네, 맛있어”라고 말했지만 그 수련생은 전혀 맛이 없는데도 A는 맛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내 마음은 참으로 짠했고 누구에게도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매 사람마다 층차가 다르기에 상태, 감각, 입맛 등등도 다르다. A수련생은 기술 수련생일 뿐만 아니라 수련생에게 소모품 등을 사주거나 가져다주는 등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집의 돈을 모두 여기에 사용했다. 그에게 있어 맛있다는 것은 밥 먹는 시간이나 배고플 때 밥을 먹을 수 있기에 ‘맛있는 것’일 것이다.
물론 이 역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여러모로 잘 평형해야 함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이 면에서 나 역시도 조금 소홀히 하고 있었기에 그 후부터 나와 A수련생은 법을 실증하러 나갔다가 돌아올 때 가족이 좋아하는 요리를 사가지고 왔다.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베푸신 은혜
아마도 사부님께서 우리가 사람을 많이 구하려는 이 마음을 보신 것 같다. 여러 번 수련생의 돈이 모자랄 때 속으로 가방에 돈이 없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조금이라도 찾아내려고 뒤적이면 또 몇 백 위안을 찾아낼 수 있었고 심지어 더 많은 돈을 찾아내기도 했다. 한번은 가방 안에 있는 돈으로 수련생과 여러 번 소모품을 사면서 다 썼지만 가방만 열면 또 돈이 있었다. 내가 속으로 어찌하여 이렇게 많은 돈이 있을까 생각하면 가방의 돈은 없어졌다. 나는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것이고 모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임을 깨닫게 됐다.
친구나 친척들은 남편을 찾아와 돈을 빌리기도 했는데 어떤 사람은 빌려간 후 갚지 않았다. 남편은 “이후에는 파룬궁을 하는 사람에게만 돈을 빌려줄 것이다. 파룬궁을 하는 사람만 신용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파룬궁을 하는 사람들은 돈을 빌리는 사람이 없었는데 한번만 예외였다. A수련생 집의 어린 수련생이 출국하는데 급히 10만 위안이 필요했다. 수련생은 몇 달 뒤에야 돈이 생기지만 그때면 때가 늦어 안 되기에 나에게 먼저 빌려줄 수 없겠냐고 물었다. 남편의 사무용 은행카드가 마침 나에게 있었지만 얼마 남아 있는지 몰라 그 수련생에게 “우리는 가는 길에 은행이 있으면 이 카드에 돈이 얼마 있는지 봅시다. 돈이 있으면 마땅히 빌려 줘야 하는 것이고 없으면 빌려주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되어 감에 따릅시다”고 말했다. 은행에 가보니 카드 안에 아직 10만 위안이 있어 나는 남편에게 의견을 물었고, 남편도 이 돈을 수련생에게 빌려주는데 동의했다. 얼마 되지 않아 수련생은 5만 위안을 돌려주면서 나머지 5만 위안은 2달 후에 갚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내가 이 5만 위안을 남편에게 주자 남편은 멍하니 “무슨 돈이냐?”고 물었다. 내가 OO 수련생이 빌린 그 돈이라고 말하자 남편은 아주 긍정적인 어투로 이런 일이 없다고 하면서 이 일을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또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신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그 수련생에게 나머지 5만 위안은 우리가 처리할 수 있다고 알려주면서 남편의 표정과 어투를 그에게 알려주었다. 우리는 모두 웃었고 그 수련생도 정말 사부님께서 우리를 돕고 계신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 5만 위안을 진상 소모품을 사는데 사용했다.
이후에 우리의 자금은 아주 충족했는데 남편은 나에게 200만 위안의 통장을 주어 나는 3개로 나누었다. 일부분은 정기 적금을 하고, 일부분은 재정 관리에 썼으며(지금은 하지 않는다), 일부분은 보통 예금 카드에 저금했다. 예금 카드의 돈은 각종 진상 소모품을 사는데 썼는데 그때부터 소모품을 사기 위해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게다가 남편이 매달 생활비 5천 위안을 주던 데로부터 1만 위안을 주어 집 수돗물에도 더운물을 설치해 나 역시 찬물로 씻던 나날을 끝마쳤다. 자료점이 곳곳에 세워지자 요즘에는 우리 도시, 타 도시, 농촌에 우리가 소모품을 사주지 않아도 됐다. 수련생들은 모두 자기 수입으로 법을 실증하고 세인을 구도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대법이 준 것이며 모두 사부님께서 하사하신 것이다. 나는 “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다”는 법리의 이 한 층차 표현에 대해 깨닫게 됐는데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모든 걸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제자는 미혹 중의 세인을 빨리 깨우는 것만이 소원이며 다른 구함이 없다. 우리 모두 마지막일수록 더욱 정진하자.
사부님의 크나큰 자비에 감사를 드립니다! 허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오스트레일리아 법회 설법’
(밍후이왕 제10기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 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2013년 11월 1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10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13/2811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