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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태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이전에 밍후이왕에 이런 소식 하나가 보도된 적이 있었다. 한 대법제자가 사당(邪黨)의 불법적인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법정에서 그는 이렇게 많은 공·검·법 경찰들이 온 것을 보고 속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가 구도하기를 기다리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즐겁게 법정에서 진상을 알렸다. 마지막 판사는 진상을 모두 명백히 알게 됐고 법정에서 소송을 철회했다.

여기에서 수련생의 심태가 아주 순정하다는 것을 쉽게 보아낼 수 있는데 오로지 중생을 구도하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진정으로 자신을 내려놓고 완전히 세인의 구도를 위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의 마음속에는 법정을 박해받는 악마의 소굴로 여긴 것이 아니라 중생을 구도하는 장소로 여긴 것이다. 다시 말해 그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사람을 구하겠다는 생각만 있었지 박해받는다는 개념이 없었다. 그가 법정에서 진상을 알린 목적은 사람을 구도하기 위해서이지 자신이 박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역사는 사악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법제자의 수련과 중생 구도를 위해 펼쳐진 것이다. 우리와 그러한 경찰의 관계는 박해받는 자와 박해하는 자의 관계가 아니라 구도하는 자와 구도 받는 자의 관계이다. 겉으로 볼 때 판사가 대법제자를 심판하고 있지만 다른 공간에서 그들의 진정한 자신 – 명백한 일면은 모두 대법제자가 진상을 알려주어 구도받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므로 비록 구세력이 안배한 이 연극은 대법제자를 박해하기 위해서지만 대법제자는 사부님을 따라 구세력의 안배를 전반적으로 부정해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법정을 중생 구도의 장소로 바꾸어야 한다. 우리야말로 주인공으로서 우리가 어디에 가든 그곳은 우리가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장소이고, 그곳 중생들은 우리가 구도해야 할 대상이다.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 마음속에 오로지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는 생각만 있을 뿐 박해받는다는 개념이 없다면 박해가 여전히 존재할 것인가? 우리 마음속에 박해받는다는 개념이 있을 때 사실 자신을 이미 박해받는 위치에 놓은 것이고, 세간의 표면 현상을 인정한 것이며 박해를 승인한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박해받는다는 개념이 없이 오로지 중생만을 생각할 때 사실 이미 자신을 신으로 여긴 것이고, 중생 구도의 사명을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연극의 연출은 두 가지 방향이 있는데 대법제자의 모든 행위가 어떻게 박해를 모면하기 위해서라면 사악이 주인공이 되어 대법제자가 박해를 받는 연극이 공연될 것이고, 대법제자가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할 때는 대법제자가 주인공이 되어 중생을 구도하는 한 차례 연극을 공연할 것이다. 도대체 어떠한 연극을 공연할 것인가 하는 것은 완전히 대법제자가 하기 나름이다.

우리가 박해를 아주 중하게 볼 때 이것이 바로 한 가지 집착심이 아닌가? 우리가 박해를 피하는 것을 첫자리에 놓고 중생구도를 부차적인 위치에 놓았을 때 이것은 아주 강한 이기심이 아니겠는가? 여기에는 박해받을까봐 두려워하는 마음, 자신의 해탈을 구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지 않은가? 평소 박해 받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모두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생각하지만 박해가 발생한 후 우리의 심태에는 흔히 변화가 발생하는데 더욱 많은 생각, 심지어 전부 생각은 자신이 박해를 피하는 것뿐이고 중생구도를 소홀히 한다. 개인이익을 엄중하게 건드릴 때 이기적인 심태가 주요 자리를 차지하는데 사악이 박해할 구실이 더욱 생기지 않겠는가?

사부님께서는 “두려움이 없다면 당신을 두렵게 하는 요소도 존재하지 않는다”[1]라고 말씀하셨다. 기점을 바르게 놓고 심태를 단정하게 한다면 우리는 신으로서 누구도 감히 박해하지 못하고 누구도 박해할 수 없다.

대법제자는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세간의 득실을 구하지 않고, 우리는 중생을 구도하는 신으로서 우리가 반(反) 박해를 하는 목적 역시 사람을 구도하기 위해서다. 중생구도야말로 우리의 사명과 책임이고, 박해는 다만 사악이 사람을 구도하는 것을 저애하는 연극일 뿐이다. 우리가 맡은 배역을 반드시 잘 완성해야 하는데 어떠한 외래 요소에 교란 받거나 흔들려서는 안 된다. 중생구도의 이 신성한 공연을 법정인간까지 하여 대법제자의 무량한 자비를 충분히 펼쳐 보이자.

개인의 얕은 깨달음으로서 교류하고자 하는데 의의가 있기에 여러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지적해 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 – 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자’

문장발표: 2013년 10월 1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0/15/2812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