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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삼퇴를 권한 수련이야기

글/한국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1996년에 법을 얻은 대륙대법제자입니다. 한국에 온 후, 한국의 출입국관리사무소와 제주도에서 중국관광객들에게 진상했습니다. 6년 동안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가호 하에몇 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삼퇴시켰습니다. 오늘 나는 삼퇴를 권하고 중생구도 한 수련여정을 사부님께 회보하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합니다.

나는 예전에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수속 밟으러 오는 중국인들에게 진상했습니다. 그 후 제주도에 관광 오는 중국인들이 갈수록 많아졌기 때문에 그곳에 중국어를 하는 수련생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나는 중국어를 아는 수련생들이 이곳에 올 수 있는 사람이 적다고 생각했고, 혹시 있다하더라도 가정이 있어 몸을 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이곳에서 당분간 진상활동을 하려고 결정했습니다.

솔직히 나는 서울을 떠나기가 싫었습니다. 그 때 나는 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로 다른 곳에 가면 언어가 통하지 않아 불편할 것이고, 말이 통하는 다른 수련생과 함께 갈 수도 없는 처지였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나의 자녀는 서울에 있었고, 서울에 머물러 있으면 자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주도에 단 한 명의 중국인 대법제자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자 ‘그 많은 중국관광객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염두가 생겼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시기를 “오늘날 세인 중 많은 사람들은 모두 간단하지 않은데 특히 중국인이 그러하다. 나는 일찍이 말한 적이 있다. 중국인 중에는 세계 각 민족, 각 시기의 왕(王)이 중국으로 전생한 것이 허다하다고. ”(시카고 시 설법)

‘전법륜’에서 말씀하시기를 “불가는 사람을 제도함에 조건을 논하지 않고, 대가도 없으며, 조건 없이 그를 도와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련생들에게 아주 많은 일을 해줄 수 있다.” 진상을 하는 것은 고귀한 중국인들을 구하기 위한 것인데, 나는 어떻게 자신의 곤란과 우려로 이렇게 중요한 일을 지체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사(私)가 아닌가? 한동안 생각한 후 마지막에 나는 이곳에 와 진상하려고 결정했습니다.

나는 보통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5장 공법을 연마한 후, 식사를 마치고 공항에 가는데 아침 6시 40분부터 많은 수의 중국관광객이 몰려듭니다. 이로서 나의 하루 진상이 정식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소극적인 자세에서 정정당당한 진상활동으로 변모하다

웃음이 나겠지만, 처음에 진상할 때에 나는 마치 행동이 들키면 안 되는 도둑처럼 움직였습니다. 전체 관광단체에 진상할 때 일단 한사람이 일어나면 곧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일어나게 되는데, 이렇게 하면 진상을 할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을 건드리지 않기 위하여 그들이 한 두 명이 화장실에 가거나 혹은 몇 명이 단독으로 휴식을 취할 때 다가가 진상하고 삼퇴시켰습니다.

그 후 관광객들이 매우 많이 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이렇게 진상을 해선 안 될 것 같았고, 또한 이런 방식으로 진상을 하면 많은 관광객들이 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지? 대법제자는 사람을 구하러 왔고, 내가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도둑처럼 행동해야 하는가?’ 그 순간 나는 자신에게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정정당당하게 그들에게 진상했습니다. 그 후부터 나는 공항 로비에서 큰 소리로 그들에게 진상했습니다.

한번은 공항 경찰이 나에게 소리를 낮추라고 얘기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은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은 결례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낮은 소리로 진상했습니다. 결국, 어느 날 한 관광객이 나에게 “당신의 그렇게 낮은 소리로 말하면 누가 들을 수 있겠어요? 큰 소리로 다른 사람이 모두 들을 수 있게 하세요.” 나는 ‘이것은 나를 점화하는 것이 아닌가?’ 고 생각하고 나는 또 다시 높은 소리로 관광객들에게 진상했고 경찰 역시 진상을 명백히 안 후 다시는 나에게 주의를 주지 않았습니다.

교육청장에게 삼퇴를 권하다

관광하러 온 중국인들 중에서 일부 간부들을 섞여 있는데, 내가 그들에게 진상하면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모두 “우리는 어떤 영문인지를 알아요.”라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삼퇴를 권하여 탈당시킬 때에도 그들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은 “네, 네”하며 매우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한번은 한 교육청 청장에게 삼퇴를 시킨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나는 그가 교육청장인 줄 몰랐는데 탈당시킨 후 그들의 일행인 한 사람이 나에게 “당신은 그가 누군지 아세요? 그는 우리청장입니다.”라고 알려주었습니다.

한번은 한 무리 현급 간부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각 현의 간부들로서 한국에 회의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입당하는 것은 생활을 하기 위한 것이고, 탈당은 살아남기 위한 것인데, 이는 두 가지 부동한 개념이다. 당신의 일을 잘해야 하지만, 또한 당신은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 그러나 한 사람에게 미래가 있으려면 반드시 불법(佛法)의 한 면에 서있어야 하고 반드시 공산당에서 탈퇴해야하며, 반드시 그것과 경계를 두어야 한다.”라고 말하자 한, 두 명을 제외한 기타 사람들은 모두 삼퇴했습니다.

당위서기에게 삼퇴를 권하다

어느 날, 한 청년에게 탈당을 권했는데 나는 청년에게 ‘당신은 삼퇴하면 평안을 찾을 수 있는 것을 아나요?’ 그는 순간 화내며 한바탕 저질스런 말을 쏟아냈습니다. 나는 웃으며 그에게 “청년, 나는 올해 70세이며 내가 당신 앞에 서서 밥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물을 요구한 것도 아니라 오로지 당신이 재난이 닥칠 때 살아남기를 바랄 뿐이다. 당신은 탈퇴하고 싶으면 탈퇴하고, 탈퇴하지 않으려면 안 해도 되는데 무엇 때문에 나에게 이렇게 사나운가? 현재 자연 재해가 그렇게 많은 것을 당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그는 웃었습니다. 나는 삼퇴는 당신이 미래로 걸어 나가는 유일한 하나의 길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탈당했고 그는 옆을 가리키며 “저분은 당위서기이며 당신은 빨리 그를 탈퇴시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다가가 웃으며 이 당위서기에게 “총리도 하나의 생명이고, 밥을 구걸하는 거지 역시 하나의 생명인 바, 재난에 마주쳤을 때 생명은 평등한 것이다.” 몇 마디를 하자 그 서기는 기분 좋게 탈당했고, 주위의 십 여 명 역시 당위서기가 탈당하자 모두 삼퇴를 성명했습니다.

610인원에게 삼퇴를 권하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손을 흔들며 나를 불렀습니다. 그때 나는 당신은 어떤 사람이든, 무슨 뜻이든, 당신이 나를 부르는 것은 바로 인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주위의 몇 명에게 삼퇴를 시키자, 그 중 한사람이 “그들 둘은 모두 당원입니다. 당신은 그들을 삼퇴시키세요.”라고 말한 후 자리를 떴습니다. 나는 그들 두 명에게 삼퇴를 시킬 때 중공의 ‘610’조직의 많은 사람들도 잇달아 탈당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 중 한사람은 방금 떠난 사람을 가리키며 “그가 바로 610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이 돌아 온 후 나는 그에게 알려주었고 “당신은 어떠한 일을 하든지 당신은 반드시 대법제자들을 선량하게 대해야 복 받을 것이다. 당신은 아는가? 이미 매우 많은 610의 책임자들이 모두 잇달아 탈당하고 있다. 당신이 예전에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든지 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당신들 매 개인에게 모두 기회가 있으며, 당신들은 이후 반드시 대법제자에게 잘해야 하며 공으로써 잘못을 되갚아야 한다.” 여기까지 이야기 하자 그 사람은 곧 얼굴이 붉어졌고, 마지막에 그들 몇 명은 모두 삼퇴했습니다.

또 어느 하루, 한 사람은 나에게 “내가 바로 파룬궁을 잡는 사람이다. 당신이 하는 일을 나는 집에 돌아간 후 우리 조직에 모두 이야기 할 것이며 우리는 당신을 체포할 준비를 할 것이다.” 나는 웃으며 그에게 “당신이 나를 잡으려면 우선 먼저 한국의 대통령에게 문의해야한다. 왜냐하면 이곳은 한국이며, 나는 한국의 영주권자이기 때문에 나는 한국의 대통령이 관리한다.” 그는 “그럼 안 되겠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나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진상을 알렸는데, 파룬궁은 무엇이고, 공산당은 무엇이며, 대법제자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 때문에 삼퇴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마지막에 나는 그에게 매우 엄숙하게 “당신은 귀국한 후 반드시 파룬따파 수련생을 선량하게 대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다시 계속하여 대법제자를 박해한다면 당신의 조상 모두가 당신에 의해 비참해지게 될 것이다. 당신은 아는가? 이런 양심을 잃는 돈을 절대 벌어서는 안 된다.” 그는 힘없이 “공산당이 나더러 하라고 하면 나는 한다.” 나는 “당신은 무슨 돈을 못 벌어서 그런 돈을 벌겠는가? 당신은 돌아간 후 반드시 빨리 대법제자를 석방해야 하는데 장래에 공으로써 잘못을 되갚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장래에 당신의 입장은 매우 비참해질 것이며 당신의 조상, 당신의 아내와 아이들 모두에게 번거로움이 생길 것이다!” 여기까지 듣고 그는 떠날 때 탈당하고 또한 나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두 손 모아 허스하는 소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중생들은 모두 연연이 있는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진상 중에 나는 이 한 점에 대해 매우 깊이 느꼈습니다. 어느 한번 한 야위고 키가 작은 소녀가 어머니를 따라 관광 왔는데 나는 그에게 “꼬마야, 너는 붉은 넥타이를 하니?” 그는 “할머니 나는 넥타이를 해요.” 나는 그에게 그럼 너는 탈퇴하고 꾸준히 ‘파룬따파 하오’를 묵념하면 인류가 도태될 때 너는 괜찮을 거라고 알려주자 그는 작은 손을 모아 나에게 허스하고 “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또 소녀 옆의 한 아이에게 진상할 때 그 아이는 듣지 않고 줄곧 휴대폰을 만졌는데 이 소녀는 그를 때리며 “너도 빨리 소선대에서 탈퇴해!” 이 아이는 그제야 반응하며 나의 진상을 들은 후 흔쾌히 소선대에서 탈퇴했습니다.

또한 단체를 인솔한 선생님도 매우 사악하게 나의 진상을 교란했는데, 나는 그에게 공산당은 무엇이고, 무엇 때문에 삼퇴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진상을 들은 후 묵묵히 머리를 끄덕였고, 모두 탈단, 탈대 하려 했습니다. 어느 한번 키가 조금 큰 아이는 말하기를 “나의 둘째 큰아버지는 파룬궁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너는 돌아간 후 너의 둘째 큰아버지에게 파룬궁을 박해하지 말라고 해야 하고 대법제자를 선량하게 대하면 너의 둘째 큰아버지는 곧 복을 받을 것이다. 만약 그가 계속하여 파룬궁을 박해한다면 장래에 그의 전체 가족, 그의 조상에 대해 모두 매우 불리할 것이다. 그는 “네, 나는 집에 돌아간 후 나의 둘째 큰아버지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한 무리의 아이들이 왔는데 그들 중 어떤 아이들은 붉은 넥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보고 나는 급한 마음으로 그들을 구하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십여 명의 아이들을 탈퇴했을 때 그들을 인솔한 3명의 선생님이 다가와 교란하자 당시 나는 일념을 견정히 하고 우선 사악을 해체하는 발정념을 했습니다. 나는 떨리는 소리로 그에게 알려주었는데 선생님, 쓰촨(四川) 대지진 때 아이들은 모두 공산당의 손에서 죽었습니다. 만약 당, 단, 대에서 탈퇴한다면, 이런 아이들이 큰 도태에 마주쳤을 때 곧 살아남을 것입니다. 당신은 공덕을 쌓으세요. 이런 아이들을 구해주세요! 나는 그들의 부모님을 대표하여 당신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말하고 나는 선생님께 허리 굽혀 경례를 드렸습니다. 결국, 3명의 선생님은 들은 후 머리를 돌려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나는 한 명 한 명, 이런 아이들에게 거의 모두 삼퇴를 시켰습니다. 그들이 떠난 후 나는 매우 후회됐는데 바로 그 몇 명의 선생님에게 삼퇴를 권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념으로 사악한 사람을 대하고 자비로 진상하다

선량하지 못한 사람을 만났을 때 역시 그에게 진상했습니다. 나는 일반적으로 먼저 “노형(老哥) 동생, 나는 당신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지만, 나는 올해 70세이다. 나는 당신이 탈당했는지 묻고 싶다.” 일부 표현이 사악한 사람들은 이 말을 들으면 매우 분노하며 심지어 심하게 욕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곧 그에게 “나는 올해 70세이다. 내가 오늘 당신 앞에 서있는 것은 당신에게 밥을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또한 물을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며, 오로지 당신이 평안하게 대 재난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내심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자비로운 몇 마디에 매우 순조롭게 그들을 삼퇴시켰고, 게다가 그들은 거듭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예는 매우 많습니다.

각성한 소리

일반적으로 중국관광객은 단체로 제주도에 옵니다. 삼퇴를 권할 때 나는 정황에 맞춰 그들에게 진상하는데 공산당이 지주를 숙청한 데로부터 자본가를 숙청하고, 사청(四清), 삼반(三反), 문화대혁명, 6·4학생박해, 파룬궁 박해까지 이야기합니다. 나는 공산당은 창당한 이래 줄곧 인민을 학살하며 걸어 지나왔다고 알려줍니다. 중공을 반대하는 생각을 지닌 인사들에 대한 박해와 독이 든 식품을 퍼뜨려 전국의 인민들을 해치고 있다는 사실과 쓰촨 대지진 때, 많은 아이들이 죽은 이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당시 중공은 올림픽 때문에 지진 보고를 봉쇄했고, 오직 내정을 조금 알고 있는 고위관리들의 아이들만 살아남았다.’ 나는 아이들이 자연재해에 의해 죽은 것이 아니라 인재로 죽었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중국관광객들은 진지하게 들었고, 게다가 끊임없이 머리를 끄덕입니다. 어느 날 내가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가이드를 포함한 한 무리 중국관광객들이 나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 가이드는 “좋습니다! 좋습니다!”라고 높은 소리로 외쳤는데 이때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삼퇴를 시켰습니다 . 일반적인 정황에서 이런 중국관광객들은 대부분 모두 삼퇴에 동의합니다.

청년단체에 진상할 때였습니다. 그들에게 무엇 때문에 탈당해야 하는지 이야기 하자 그중 한 청년이 “할머니, 당신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압니다. 우리는 공산당이 인간성이 없다는 것을. 현재 80%의 백성들이 당신들의 편입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지지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삼퇴를 했을 뿐만 아니라 “나는 공산당을 가장 증오하며, 당신이 나에게 총을 준다면 나는 가서 그것에 쏠 것입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나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3년간, 제주도에서 3년간 진상했고 이 6년간 나는 약 12만 명에게 삼퇴를 하게 했고, 많을 경우 20일간에 6,000명을 삼퇴 시킨 적이 있으며, 하루에 가장 많이 탈당시킨 수는 420명이 됩니다.

신기한 연공음악

매일 진상할 때 첫 비행기 시간을 맞춰나가야 하고, 저녁에는 가장 마지막 비행기를 보내야 진상 활동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2년간 한 수련생이 운전하여 나를 바래다 주었는데, 집에 돌아오면 늘 12시가 됐고 빨리 식사한 후 발정념하고 한두 시간을 잤습니다. 아침에는 3시가 조금 넘어 일어나 연공하는데, 어느 하루는 너무 피곤하여 깨어나 시간을 보니 십분 만 지나면 연공을 시작할 시간이었습니다. 사부님께 “사부님, 제가 십 분만 자고 다시 일어나게 해주세요.”라고 요청했는데 신기하게도 십 분이 지난 후 연공음악이 자동으로 울렸습니다. 매우 듣기 좋은 소리, “제1장 공법, 불전천수법,….”음악 소리를 듣자 나는 깨어나 연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사부님께서 일마다 나를 가호하고 계시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나는 삼퇴를 시킬 때,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일단 삼퇴 효과가 좋지 않을 때 나는 바로 머리를 돌려 자신을 찾았고, 어느 염두가 틀렸고 어느 문제를 잘못 생각했는지, 어떤 말을 잘 못했는지 하는 것을 찾았고 그런 후면 사부님께서 가지해 주시어 더욱 많은 중생들을 구하게 했습니다. 나는 다만 인간 세상 이 층면의 중생들에게 진상하며, 진정한 일은 사부님께서 주도하신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몇 년간 끊임없이 진상활동을 견지하는 중에 나는 법공부와 마음 수련의 중요성을 체험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진상하고 중생을 구하는 과정에서 나의 정념, 지혜와 중생에 대한 자비는 모두 대법 중에서 수련해 낸 것이라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잘 알기에 진상 중 여유 시간이 생기면 나는 매일 반드시 법 공부했습니다. 오직 법 공부를 견지해야만 정념을 유지할 수 있고, 모순에 마주쳤을 때 진정으로 안으로 자신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법공부하고 마음을 조용히 할 때, 늘 자신이 법속에 들어 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또한 자신의 신체가 매우 방대하고 자신의 공간장이 매우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심성관을 넘고 공동으로 승화하다

어느 하루, 나는 한 수련생과 작은 모순이 생겼는데 그녀는 나에게 “오늘은 진상하러 가지 말고 집에서 교류합시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우리 사이에 아무런 모순도 없으며, 일체는 모두 법속에 있으니 모두 법속에서 해결합시다. 우리는 중생구도에 영향 끼쳐서는 안 되며 사람을 구함에 이렇게 급한데, 집에 앉아 교류하고 싶지 않습니다. 만약 교류하고 싶으면 일이 없을 때 다시 교류합시다. 당신은 기분이 안 좋으면 안가도 되지만, 나는 반드시 가야합니다.” 결국 그날 나는 공항에서 만나는 사람을 거의 하나도 남기지 않고 삼퇴시켰고, 순식간에 100여명을 삼퇴시키기도 했습니다.

수련생과 모순이 생겨 심성관을 넘을 때,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바로 제주도에 처음 왔을 때였습니다. 제주도에서 진상을 돕기 위하여 한 수련생은 제주도에 집 하나를 세내어 빌렸고 나와 그 지역의 한 수련생은 각자 방 하나씩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공항까지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가 차로 나를 공항까지 왕복으로 태워주며 진상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는 협조가 매우 잘 되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이 수련생의 급한 성격과 서로 간의 언어 소통 문제 때문에 모순은 갈수록 더 커졌고 심지어 그는 나를 서울로 돌아가라고 할 정도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나는 ‘이곳에는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수련생이 오직 나뿐인데 만약 내가 가면 매일 이렇게 많은 중국인들은 어떻게 하지? 누가 가서 그들에게 진상하고 삼퇴 시킬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돌아가도 되지만 그렇게 되면 가장 상심하실 분은 사부님이실 것이며 나는 사부님께 심려를 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 이 중생들이 구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중국대륙 대법제자들은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렇게 잘하고 있는데 나는 요만한 심성관도 넘을 수 없는가? 반드시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교류를 할 수 없었고, 내가 돌아가지 않자 그는 간단한 중문을 써서 내게 보여주며 나더러 서울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어느 한번 나는 그에게 밥을 지어드리며 간단한 한국어로 그에게 식사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밥을 먹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화까지 냈습니다. 나는 한평생 이렇게 큰 억울함을 당한 적이 없었고 그때 나는 정말로 참을 수 없어 마음속으로 “사부님, 나는 오직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이곳에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에 그는 나에게 욕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여 샤워도 하지 못했습니다. 매일 공항에서 진상하고 나면 옷과 머리가 모두 땀으로 흠뻑 젖어있는데 집에 돌아와 샤워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때 나는 다른 수련생과 교류했고 제주도가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든지 진상할 수 있기 때문에 제주도를 떠나려했습니다.

사실, 이 수련생은 성격이 급한 것을 제외하고 다른 방면에서는 모두 매우 정진했습니다. 그가 혼자일 때 그는 밥을 짓지 않고 늘 솥에다 감자를 삶아 소금을 뿌려 먹거나 혹은 라면을 끓여 드시며 대충 끼니를 해결한 후 진상하러 나갔습니다. 그는 매일 저녁 나를 공항에서 집으로 데려다 주었고 늘 저녁 11시, 12시가 되면 그는 다시 운전하여 신문을 배포하러 나갔습니다. 제주도에 170에서 180명 정도의 학생이 다니는 한 학교가 있었는데, 그가 학교장에게 진상한 후 학생들이 체육시간에 파룬궁공법을 배우도록 허락받았습니다. 그 후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우리 사이의 모순은 마침내 해결되었고 현재 우리 둘은 협조가 매우 잘되고 있습니다. 내가 진상하면 그는 신문을 배포하고, 신문을 모두 배포한 후에는 나를 도와 발정념을 합니다.

현재 이 수련생은 어떤 일에도 화내지 않으며, 누구를 보든지 모두 허허 웃습니다. 비록 언어가 통하지 않아 중국관광객에게 진상하지 못하지만, 그는 5일간 7천여 부의 신문을 배포할 정도로 정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협조가 잘 되자 진상효과 역시 매우 좋아졌습니다. 그의 협조로 최근 40일간에 나는 약 1만 명을 삼퇴시켰습니다.

내심 깊은 곳으로부터 수련생들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만약 이런 수련생들의 협조가 없었다면 나와 같은 노인이 말이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며 중생구도는 더욱이 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 제가 하는 것도 많이 부족합니다. 제주도에 오는 중국관광객들은 하루에 몇천 명에 달하는데 나는 하루에 겨우 2~300명만 탈당시키기 때문에 마음속에는 줄곧 매우 힘들고 조급했습니다. 왜냐하면 매일 모두 그렇게 많은 중국인들이 나의 진상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며, 그래서 그들이 구도될 기회가 더 있을지 걱정되었습니다. 나는 오직 하나의 일념으로 자신의 최대 능력을 발휘하여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려 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정도의 문화수준으로 예전에 공공장소에서 말하는 것을 가장 꺼려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 명의 조사정법하는 대법제자로서 중생구도를 위해 나더러 얼마나 오랫동안 이야기 하라고 해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관광객들이 많을 때 천천히 말하면 안 되며 중생구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매일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 진상하는 과정에서 나는 진상 할수록 더욱 잘합니다. 특히 중생들이 진상을 명백히 하고 삼퇴를 성명할 때 나는 내심으로 그들을 위해 기뻤는데 그들이 구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상은 내가 진상하고 삼퇴를 권하는 과정의 일부 수련이야기입니다. 만약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여러분들이 자비로 지적해주기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여러분 감사합니다!

(2013년 미국 서부 국제 법회 발언고)

문장발표: 2013년 10월 2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해외법회 발언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0/21/2815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