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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자

– 착실히 자신을 수련하여 사악한 마(魔)의 실질을 똑똑히 보아내자

글/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모 지역의 일부 수련생들은 한 항목에서 아주 큰 의견충돌이 생겼고 수련생 사이의 간격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중 한 수련생이 나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편지에는 수련생의 일시적인 사람 마음의 있었기에 그와 교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끄러움, 논쟁과 모순이 생길까 봐 두려워서 한동안 포기하였는데 계속 누군가 나에게 서약을 실현하지 않는다고 했고 늘 누군가 이 일을 제기하였다. 안으로 자신을 찾은 후, 나는 수련생에게 부족한 것을 보았을 때 먼저 자신을 닦고 심태를 잘 조절한 다음 태연하고 선의로 지적해 주는 것이 내가 닦아야 할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본 일부 문제를 써서 수련생에게 보냈다.

이 일이 많은 수련생과 연관이 있다고 여겼기에 조금 수정한 다음 밍후이에 보냈다. 부동한 의견과 방법 때문에 서로 간격이 생긴 수련생에게 참고되기를 바라며 부족한 부분은 자비롭게 지적해 주기 바란다.

1. 착실히 자신을 수련하여 모순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사악한 마의 실질을 똑똑히 보아내자

며칠 전, 수련생이 쓴 편지를 보고 나서 나는 신체가 불편해졌다. 가부좌할 때 흰색 건축물에 검은 물질이 역청같이 달라붙어 덮인 현상을 보았는데 다행히 범위가 넓지 않았다.

그래서 선의로 일깨워준다는 것은 자신을 불쾌하게 하거나, 반감을 느끼게 하거나, 괴롭게 하는 사람과 일을 볼 때 모두 자신을 닦아야 하고 되도록 비난하거나 논의하고 싶은 욕망을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을 닦아야만 비로소 수구 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무의식중에 업을 지을 수 있고, 이러한 업력은 자신의 수련에 인위적인 장애를 설치할 수 있으며, 신체적인 고통으로 감당해야 하거나, 심성에서 시끄러움과 교란을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충동으로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너무 많은 시끄러움을 가져다줄 수 있기에 그러는 것은 정말로 가치가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업력들이 많이 쌓이다 보면 틀림없이 수련생 사이, 정체 사이의 간격을 커지게 할 것이다. (매 대법제자의 수련이 잘된 일면은 쩐, 싼, 런에 동화되었기에 서로 포용하지만 제거하지 못한 여러 가지 부동한 사람 마음과 업력은 바로 간격을 조성한다.) 나는 다른 사람이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신은 아예 표면의 잘잘못을 보지 않는데 사부님과 뭇신은 이때 여기에 관련된 모든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이 일에서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을 닦았는지, 법을 크게 여기면서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 자신이 집착하는 인식이나 감수를 내려놓았는지를 봐야 한다.

또한, 지금 나는 자신이 누구와 맞지 않은 이것은 자신 수련 중의 일로서 절대로 본인의 기분을 더욱 많은 사람에게까지 확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 지역에서 누가 맞든 누가 틀렸든, 부동한 인식에서 시작하여 마지막에 어떠한 일 때문에 날카로운 대립을 형성하였다면 모순의 쌍방에게 모두 책임이 있는 것이다. 2007년, 모 지역에서 발생한 일이 바로 진실한 예이다. 당시 A 수련생 일에 대해 일부분 사람들은 그가 일을 휘저어 놓기에 특무라고 하면서 그를 배척하였고, 일부분은 그러한 수련생들이 그를 억울하게 했다면서 그를 지키려고 하였다. 쌍방은 모두 구세력의 속임수에 빠졌고 날카로운 대립이 형성되었다. 결과 그중에 참여한 모든 협조인(어떠한 생각을 지녔든지)전부 사악에 ‘모조리‘ 박해받았는데 교훈은 지극히 심각하였다. 지금 우리가 옆에서 볼 때 현지 수련생 사이의 간격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연루되는 수련생들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모순의 어느 한 쪽이든, 누가 맞고 누가 틀리든, 자신을 닦지 않는다면 자신의 주관적인 소원이 어떻든지 막론하고 이 모순의 소용돌이에 빠져 들어갈 것이다. 매 사람의 힘은 모두 자기도 모르게 이 무서운 소용돌이의 ‘마력(魔力)’과 파괴력을 강화시킬 것이다. 그는 마치 하나의 블랙홀처럼 그 안의 사람들은 모두 빠져나오기 어려워지고 업력과 간격 요소가 일정한 정도로 쌓이다 보면 이것을 빌어 사악은 정체를 파괴할 것이고 직접적인 박해의 구실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뛰쳐나와야 한다. 어느 한 쪽에도 빠져 들어가지 말고, 어느 한 쪽의 좋고 나쁨 – 다른 사람은 수련생 같지 않다거나,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한다거나 하는 이런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나 일을 생각하지 말고(염두가 나오기만 하면 먼저 제거해야 한다.) 평론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힘이 사악의 어떠한 요소에도 이용당하게 해서는 안 되고 반대로 우리는 마땅히 모든 복잡한 표상의 뒷면에는 틀림없이 구세력과 사악이 안배한 실질이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아내야 한다. 우리의 순정한 정념은 직접 그것들을 향해야 하는데 우리는 여기에서 벗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순정한 정념으로 현지 수련생 사이에 간격을 조성한 일체 사악을 제거해 버리고 철저히 사악의 파괴와 안배를 부정해야 한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사부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썼을 때 전신의 모공이 늘어나고 온몸이 흔들렸는데 나는 왜 내가 쓰기 전에 교란과 저애가 그렇게 많았는지를 즉시 깨닫게 되었다.) 이는 넓은 범위에서 말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수련 각도에서 볼 때, 속인의 이치로는 ‘그가 잘못한 것을 나는 왜 말하면 안 되지.’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속인 경계의 이치일 뿐 우리는 대법수련생이므로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안으로 찾아 자신을 닦으라고 요구하셨다. 설사 정말 다른 사람의 잘못이더라도 이 일에서 우리는 무엇을 닦아야 하는가? 그 당시 자신의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심태, 화나서 참기 어려운 상태 등등을 닦아야 한다. 만약 머릿속이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만 가득하다면 우리는 자신을 닦을 공간과 기회를 가지기 어려워진다. 그렇게 되면 우리를 화나게 하거나 만족스럽게 하지 못하는 그러한 일들이 늘 우리 앞에 나타나거나 표현될 것이다.

전통문화에는 이런 말 한마디가 있다. “조용히 앉아 자신의 잘못을 많이 생각해야지, 한담하며 남의 잘못을 논해서는 안 된다.” 우리 오늘의 수련은 과거와 다르지만 우리는 자신이 정체를 위해 걱정하고 책임진다는 것으로 자신의 사람 마음을 덮어 감추면 안 된다. 또한, 자신의 쟁투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나무라는 마음을 제거할 수 있는 한 번의 소중한 수련 기연을 잃어서도 안 된다.

설령 말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온화하게 한 다음 선의로 수련생에게 지적해주어야만 비로소 좋다.

자신의 표준을 너무 낮게 정하면 안 되는데 대법제자는 무량의 중생이 바라는 자비 · 이지 · 지혜의 왕이지, 인간 속에 미혹되어 ‘세상의 불합리한 모든 것에 분개하고 증오하는’ ‘악플러(악성 댓글자)’가아니다. 이러한 일에 부딪혔을 때 하나의 위대한 부처나 보살이 여기에 있다면 어떻게 대할 것인지 생각해 보라. 더욱 높은 각도와 표준에 서서 생각해 본다면 아마 그러한 것들은 전혀 당신의 생각이 아닐 것이고, 자신과 중생을 해치려 하고 훼멸하려는 마성 물질은 보다 쉽게 제거될 것이다. 언제든지 모두 자신을 닦을 수 있으면 구도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중생일 것이다. 사실 우리는 다른 때에도 모두 해냈기에 다시 한 번 법으로 비추어 착실하게 수련하면서 승화하자. 그것이야말로 우리 중생의 희망과 행복이다.

2. 자비로 관용하는 것이지 방임이 아니다

보내온 편지에서 말한 현지 B 수련생이 변호사를 청한 일과 일부분 수련생들이 그가 법에 있지 않다는 여러 가지 표현에 대해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현지 수련생들은 누구도 우리와 말한 적이 없었기에 다른 사람의 ‘불량행위’에 대해 방임한다는 것은 더욱이 말도 안 된다. 지난번 답장에서 나는 자신의 진실한 생각을 말했는데, 타향의 일에 대해 우리는 참여하지도 않고 간섭하지도 않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우리가 참여하기만 하면 나쁜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관적으로 나는 자신이 ‘공평을 주장’한다고 여겼는데 이것 역시 우리 몇 년 전의 심각한 교훈이므로 나는 다시는 실패의 경험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 속에서 우리는 누구도 다른 수련생의 진상을 보지 못하고, 보이는 것은 모두 사람 속의 표현이나 사람 마음이며, 끝없는 대법 속에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걷는지도 우리는 똑똑히 볼 수 없다. 수련생마다 모두 자신의 길이 있는데 평평하든 험하든 모두 그들의 원인과 도리가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상태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며, 다른 사람의 길을 이해하고 끝없는 우주 중에서 부동한 생명의 거대한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서로 수용하는 그것은 우리가 마땅히 닦아야 할 ‘과목’이고 새 우주의 우리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다.

수련생의 교류문장 ‘가장 순정한 선으로 수련생을 대하자’에는 아래와 같은 한 단락 말이 있다.

“왜 구세력은 감히 대법제자를 박해하는가. 그것은 그들이 일부 대법제자가 잘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잘못된 일을 하였으며, 수련생답지 못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지 않는가? 그들은 용서할 수 없다고 여겼기에 이러한 대법제자를 대립 면으로 끌고 가 그들에게 이지적이지 못하게 많은 나쁜 일을 하게 하였다. 그러면 구세력은 이러한 대법제자를 훼멸할 수 있는 더욱 많은 약점을 찾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대법제자의 이지적이지 못한 여러 가지 표현은 마침 구세력 자체의 오래된 역사적인 안배일지도 모르지만 오늘날 그들은 부정할 힘이 없을 뿐이다. 우리는 사악이 우리의 수련생을 훼멸하려는 일체 안배를 절대 승인해서는 안 되는데 이른바 번지르르한 이유로 대법제자를 훼멸하려는 구세력의 결과가 무엇인지 우리는 아주 똑똑히 알고 있지 않은가?”

“법을 학습하면서 나는 사부님께서는 어느 한 대법제자도 떨어뜨리려 하지 않으시고, 한 가닥 희망만 있어도 그들에게 모두 기회를 주며, 심지어 박해에 참여한 악인에게도 모두 재차 그들한테 기회를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물며 대법을 얻은 생명에 대해서는 어떠하시겠는가?”

수련생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의 대법제자가 대표하는 무량한 중생과 거대한 우주체계를 소중히 여기며, 모든 대법제자가 오늘날까지 걸어오기까지 사부님께서 하신 거대한 지급과 감당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어려움과 역경에 처해있을 때 우리는 다른 수련생이 어떻게 대해주기를 바라는가. 이해해주고 알아주며 관용해주고, 처지를 바꾸어 고려해보면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보게 되었을 때 이렇게 선의로 이해해주고 정념으로 도와주며 일깨워주어야 한다.

허스

문장발표: 2013년 6월 2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6/25/27577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