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뉴욕 영문 대기원시보 사진기자에서 판매원이 되기까지

글/ 뉴욕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2010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법을 얻었다. 그리고 다섯 달 전에 뉴욕으로 자리를 옮겨 영문 대기원에서 일하고 있다. 그전에는 1년 동안 작은 도시에서 살면서 생활비를 아껴가며 인터넷 사진관 창업을 준비했었는데, 그곳에는 알고 지내는 대법제자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수련에 진척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제고하려면 다른 곳으로 이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마침 내게 법을 전해주었던 로스앤젤레스의 대법제자가 나에게 뉴욕으로 가서 그곳 대기원시보 사진기자로 지원해보라는 제안을 했다. 사실 지난 2010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진 일을 시작할 용기를 낸 것도 법을 얻은 덕분이었다. 나는 뉴욕 대기원에서 일하게 되면 개인 사업이나 대법에 대한 믿음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화로 면접을 했는데 편집장이 물었다. “왜 뉴욕에 오려고 하느냐?” 나는 대답했다. “수련상태가 멈춰 선 것 같다. 주변에는 알고 지내는 대법제자도 없다. 내 가까운 곳에 대법제자들의 모임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마음은 꼭 뉴욕에 가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라고 대답하고 나서 나는 뉴욕상황에 대해 몇 가지를 물어봤다. 편집장은 말했다. “당신이 꼭 이곳으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아마 정법시기에 당신은 뉴욕에 있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상황이 여의치 않더라도,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실 것이다.” 나는 면접을 받는 동안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내가 확실치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는 습성을 버리고, 사부님을 믿도록 편집장이 도와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시에 나는 반짝거리는 기회를 엿볼 수 있었다. 그 기회는 바로 영성이 있는 직장환경과 수련하고 법리에 대해 교류를 할 수 있는 일상적인 그런 특수한 환경이었던 것이다. 일반적인 다른 회사에서 면접할 때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정말 특수한 환경임을 깨달았다.

그 면접이 끝난 후 나는 고용담당자와 통화했다. 뉴욕에서 개인 사업을 계속할 수 있는지 등 여러 가지를 질문했다. 고용담당자는 “상황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뉴욕에 올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거기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고용담당자가 내게 말해 주려던 핵심도 편집장과 같았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리고 잘 될 것이라 믿는 것이었다. 뉴욕 대법제자들이 대단히 부지런하게 수련한다는 이야기를 진작부터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번 전화면접을 통해 뉴욕 대법제자들은 진정한 정체를 이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지만 내게 해준 말은 하나였기 때문이다. ‘함께 가자, 그리고 믿자’는 것이었다.

나는 뉴욕행 항공권을 샀다. 왕복이 아닌 편도 항공권이었다. 나는 아는 모든 사람에게 뉴욕으로 이사한다고 말했다. 영문 대기원에서 시간제로 사진기자 일을 하는 동안 더 넓은 시장에서 온라인 사진아트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안 된다는 말은 하지 말라 – 관념 뒤에 가려진 진상

처음 도착한 뉴욕은 일 년 중 가장 추운 시기였다. 이전까지는 뉴욕에 살아 본다는 건 꿈도 못 꿨다. 물가가 비싸고, 위험하고, 춥기 때문이다. 나는 남태평양 섬나라 괌에서 자랐다. 연중 여름 날씨인 곳이다. 난 추운 게 싫었다. 눈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어느 날 영문 대기원 사무실에서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느라 바쁜 사이 나는 큰 창문 밖에서 눈이 내리는 광경을 봤다. 눈이 온다는 걸 알아차린 건 나뿐인 것 같았다. 나는 사진을 찍기 위해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눈이 오는 걸 직접 보게 된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하늘에서 천국의 조각들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사진을 찍느라 바쁘게 돌아다니는 바람에 날씨가 얼마나 추운지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참 뒤에야 그걸 깨달았다. 자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뉴욕에 오기 전 가장 큰 고민이 추위였다. 그런데 그날 나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게 카메라로 눈이 내리는 모습을 촬영하고 있었다. 순간 감동의 눈물이 흘렀다. 어떤 강한 관념도, 무엇인가에 대한 혐오감도 그 뒤에 가려진 진상이 드러날 기회는 늘 있기 마련임을 똑똑하게 알게 됐다. 관념은 자신과 더욱 높은 진상 사이에서 단단히 가로막고 있는데 그래서 오히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추위 다음은 신문을 읽거나 신문에 관계된 일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신문이 너무 싫었다. 가정환경의 영향이었다. 신문에 실린 지식은 인생에 도움도 안 되고 해롭기만 하다고 여겼다. 신문에서 풍기는 종이냄새도 역겨웠다. 그러나 지금은 영문 대기원이라는 언론사의 일원으로 사진기자인 동시에 수련자다워야 했다.

나는 공익을 위해서 신문을 제작하는 일은 매우 필요하며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란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얼마 전 한 독자가 편지를 보내왔다. 중국정부와 6천만 달러짜리 계약을 포기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독자는 중국에서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자들이 탄압받고 있다는 내용을 우리 신문에서 읽은 뒤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모두 마음 속 깊이 감동받았다. 우리 매체는 사회에서 그토록 영향력 있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음 문제는 그때까지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외판영업’이었다. 영업을 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고 수입도 일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계속 외부로 나돌아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나는 사진팀 소속이었는데 사람들은 나를 보고는 “영업을 잘할 것 같다.”라고 했으며 급기야는 몇몇 임원들이 내게 “영업을 해보지 않겠느냐?”라는 질문을 해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마다 거절했다. 그러다가 결국 스스로 생각해보게 됐다. ‘계속 거절하는데 왜, 자꾸 같은 질문을 받게 되는 것일까?’

영업 팀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을 때마다 계속 다른 이유가 생기면서 영업을 하지 않겠다는 당초의 결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약간의 죄책감마저 들었던 것이다.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영업 팀의 인원보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영문 대기원에 입사했을 당시는 경기침체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한창이었던 시기였다. 뉴욕은 세계 각국 지사의 본보기가 돼야 했다. 신문에서는 사진이 중요하다. 그러나 영업은 더욱 중요하다.

나는 몇 년 동안의 노력을 통해 프로사진사 겸 작은 업체 사장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대법만 믿고 대법이 인도하는 대로 따르는 일이었다. 마치 고속열차처럼 내가 올라타거나 말거나 그것은 예정대로 출발하기 마련이다. 나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영문 대기원시보 일을 아예 하지 말까?’, ‘대법제자는 반드시 영문 대기원시보의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지 않은가?’, ‘수련은 세상 어디에 있든 할 수 있는데 왜, 하필 내 직업하고 맞지도 않은 일을 해야 하나, 설령 한다고 해도 맘에 내키지 않는 일을 하면서 그걸 계속한다면 성공할 수 있을까?’

결정을 내리기는 더욱 어려웠다. 뉴욕에 도착한 첫날, 사업상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날 모임에서 만난 한 비즈니스 전문가는 내 사업을 억대 고소득 사업으로 성장시켜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게다가 시범사례로 무료로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인터넷 창업 성공사례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던 나로서는 탐나는 제안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전문적으로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는 건 모든 예술가의 꿈이다. ‘대기원 영업을 할 것인가, 개인사업 확장을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둘 다 할 수는 없었다. 그때 영문 대기원에선 풀타임제의 전업직원을 요구했다.

나는 결정을 내리기에 전에 많은 동료수련생들과 교류했다. “개인 사업을 해라, 대기원 영업을 해라” 등등 사람마다 조언하는 내용이 모두 제 각각이었다. 각기 다른 층차의 수련생은 법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인식이 있었다. 나는 어찌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새로 온 영업직 관리인과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업팀에 들어가게 되면 매일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영업 업무에 대해서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업 관리자와의 교류는 내가 결정을 내리는 데에 도움이 됐다. 교류는 금방 관념의 제거로 바뀌었다. 사진작가로서의 경력도,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참가했던 경험도, 인터넷 사진관 사업을 확장해 자녀를 둔 엄마로서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생활비까지 탄탄하게 벌어들이겠다던 계획도 모두 내려놓게 됐다. 모든 관념, 장애,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생각을 떨어냈다. 영업 관리자는 영문 대기원시보가 성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내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그런 확고부동한 믿음 앞에서 내 집착들은 순식간에 아무것도 아닌 게 됐다. 그는 힘 있게 말했다. “당신이 영업팀에 들어오도록 돕는 것이 내가 당신과 당신의 생명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입니다.”

나는 영업팀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번 일로 배운 게 있었다. 완전히 준비되지 않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준비를 너무 하다가는 너무 늦어진다. 준비가 지나치면 기회마저 지나쳐 버리게 된다. 준비가 완전치 못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 어려움에 맞서 실천하며 스스로 편안함에서 벗어나 어려움을 견디는 것이야말로 비로소 수련이었다. 결정을 내린 뒤에도 내려놓아야 할 것들은 여전히 있었다. 한편으로는 바른길을 걷고 있다는 점화가 계속 있었다.

영업팀에 들어간 후 수련에서 돌비맹진하다 – 사람의 사유를 내려놓다

영업팀에 들어가면서 수련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사람의 사유를 버리는 일에도 도움이 됐다. 어느 날 영업팀 관리자가 다음 며칠 동안에 거의 불가능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말하기 직전 편두통이 심하게 왔다. 눈이 빨갛게 충혈되고 누가 머리를 때리는 듯이 심한 통증이 왔다. 나는 팀 동료에게 “요 며칠 과로한데다 잠을 충분히 못 자서 그렇다.”라고 말했지만 일을 균형 있게 하지 못했으며, 다른 동료는 잘 견뎌내는 데 나만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 스스로 비참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팀 동료 두 사람이 내 사유가 다시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고 알려줬다. 그리고는 내 옆에 머물러주면서 내게 “잠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관념을 제거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도와줬는데, 팀의 한 동료는 “좋은 일이다. 사부님께서 당신을 도와 소업해주시는 것이다. 당신은 여기에 와서 정말 일을 빠르게 배우고 있다. 영문 대기원에 새로 들어온 사람 중의 최고다. 그러나 당신은 교란받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진정한 연공인으로서 마땅히 아주 높은 층차에서 문제를 보아야 하며 속인의 관점으로 문제를 볼 수 없다. 당신이 병이 있다고 여길 때 아마 병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것을 병이라고 인정할 때면 당신의 心性(씬씽)은 속인과 같은 높이로 되기 때문이다.”, “수련 중에서 소업해야 하는데, 소업은 곧 고통이다”

우리 팀은 불가능한 일을 이뤄내려 했다. 사람의 사유를 내려놓는 것을 배우는 게 정말로 중요했다. 서로 믿고 지지해주는 팀이 없었다면 관념을 완전하게 제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하게 바로 그 일 이후 한 건의 영업판매를 성공시켰는데 그 달에 많은 영업판매를 성사시켰다. 전체 팀 역시 그 달에 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렸다.

더 많이 내려놓아 집중력을 한층 더 끌어올리다

영업실적에서 기록을 경신하자 우리 팀 관리자는 5월의 목표를 4월 실적 두 배로 설정하고 이를 공지했다. 나는 영업팀으로 부서를 옮긴 후에도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인터넷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사진을 출력해주거나 아이폰 케이스를 판매했다. 한 번은 주문이 대량으로 들어와 상품을 포장하고 주문자와 연락을 주고받는 등 바쁘게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일을 계속할 순 없었다. 주문받은 물품을 큰 상자로 포장한 후 사무실을 나서면서 한 기자 동료에게 잠시 쉴 겸 함께 우체국에 다녀오자고 권했다. 우체국에 도착해 상자를 내려놓는 순간 ‘독립된 사업체를 갖고, 디지털 유목민으로 이곳 저곳을 여행하겠다던 꿈도 그 상자와 함께 떠나 보내는’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그 주문을 끝으로 개인 사업을 접기로 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이번 법회에서 발표할 원고에 대해 의논했는데 “내가 영문 대기원 영업팀에 풀타임 전업직원으로 들어오기 위해 비즈니스 전문가와 사업할 기회를 포기한 사실을 넣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서였다. 그 비즈니스 전문가는 내 개인 사업을 키워 억대의 고소득을 올려주겠다고 제의했었다. 바로 그때 그 전문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자신의 친구와 즐겁게 이야기하며 걷고 있었는데 바로 우리 옆에서 걷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알아챘으나 그녀는 나를 미처 못 본 상태였다. 나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그대로 모른 척 스쳐 지나가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동료 기자는 “법회원고에 그녀에 관한 내용을 넣으라는 점화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대로 걷고 있을 수 없어 멈춰 서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영업팀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내 수련은 놀랍도록 빨라졌다. 여러 가지 일들이 빠르게 발생했고, 스스로 재빨리 내려놓게 했다. 이것은 마지막 마무리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영업에 집중할 뿐만 아니라 진정한 대법제자로서 중생을 구도하라는 것으로 여겨졌다.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 인터넷 사진관을 폐업했다.

사진을 뜻하는 ‘포토그래픽’은 그리스어로 ‘빛으로 그린다.’라는 뜻이다. 사진사로서 나는 언제나 최고의 빛을 찾으러 다녔다. 아침 햇살을 보려고 일찍 일어나고, 해가 지는 순간, 가장 아름다운 황금빛 노을을 포착하기 위해 기다리곤 했다. 그러나 이제 더는 빛을 찾으러 다닐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됐다. 내가 빛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대법제자가 되었고 이제 사람들이 와서 나를 찾았다. 내가 안에서 변하니까 외부의 환경이 갑작스럽게 변했다. 개인수련을 위해 법 학습을 하는 공간이었던 지하철은 사람들이 나와 만나 정법하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시선을 떼지 못하던 어린 소녀, 한 주에 4번이나 마주친 한 쌍의 연인, 격려가 필요했던 젊은 사진작가까지 내가 법 학습을 하려고만 하면 이들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페이스북이나 이메일, SNS를 통해 나와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내가 그냥 사진사였을 때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들이었다. 이런 일들은 모두 진상을 알리는 기회가 됐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나는 사부님의 설법을 한층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2010년 뉴욕법회 설법’ 중에서 말씀하셨다. “중생을 구하는 일은 바로 당신들이 해야 하며, 비단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은 반드시 잘해야 한다. 사부에게 해 주는 것이 아니다. 중생을 구도한다고 말하지만, 또한 전적으로 그들만을 위해 하는 것은 아니며, 당신들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구도한 그러한 중생은, 당신이 진상을 알린 그러한 사람들을 포함해, 그런 생명은 장래에 모두 당신, 거대한 우주 중의 어느 한 부분 중생으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원만에 이르게 하고 있으며, 당신은 당신 자신을 성취하고 있는데, 당신이 이러한 것들이 없다면 당신도 그 왕이 되지 못하며, 당신 또한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당신 또한 그처럼 위대한 위덕을 세우지 못하는데, 바로 이런 관계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반드시 잘해야 한다.”

중생 구도야말로 진정으로 자신을 완성하는 것이다. 나는 스탠포드 대학 출신이지만, 스스로 빛남을 너무 나타내지 않으려고 처신했다. 사회로부터 높은 기대를 하지 않도록 은둔자처럼 되도록 몸을 피하며 살았다. 어쩌다 가끔 사진사로서 아름다움과 빛을 추구하며 예술작품을 창조하는 일을 위안으로 삼았다. 그러나 대법제자로서 더는 자신의 휘광을 감출 수 없음을 알게 됐다. 그 휘광은 스스로 발산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알아차린다. 내가 구하려는 사람들일수록 그 빛을 더욱 잘 알아차린다. 사부님께서 ‘정진요지 2 – 최후의 집착을 제거하자’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당신들이 잘 수련한 그 부분으로 하여금 더욱 순수(純正)한 광염(光焰)을 뿌리도록 하라.” 우리가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선량함과 빛이 장차 드러날 것이다. 중생들은 점차 이를 느낄 수 있으며, 더욱 우리에게로 올 것이다.

나는 ‘뉴욕 영문 대기원에 오기 전부터 나름대로 대단히 부지런한 대법제자로 스스로 이런 제고를 이뤄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오직 견정한 단체, 수련자들의 모임, 영업팀에서 더욱 빠른 제고가 가능했던 것이다.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대법제자일 때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그리고 정체일수록 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이것이 뉴욕의 역량이다.

신사신법을 통해 나는 관념을 제거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으며, 진정하게 나 자신이 더욱 밝게 빛나도록 할 수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이 길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2013년 뉴욕 법회 발언고 선정)

문장발표: 2013년 5월 2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해외법회 발언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5/25/2744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