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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시시각각 자신이 수련인임을 생각하라

글/ 베이징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존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올해 들어 수련 중 번거로움이 끊이지 않고 조용한 생활을 교란했다. 특히 최근 상반기 동안 번잡스런 집안일 때문에 정상적으로 법공부하고 연공을 할 수 없었다. 장기적으로 이렇게 되면 속인과 혼동될 것이라 조급해 할 때 머리에 갑자기 한마디가 떠올랐다. ‘매 시각(時刻)마다 자신이 수련인임을 생각하라.’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를 일깨워주시는 것임을 알았다. 그리하여 나는 바쁘더라도 노력하여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하고, 시시각각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고 시간을 내어 법공부를 잘하고 3가지 일을 잘했다. 아래는 나의 약간의 수련체득이다. 비록 글은 올해 적었지만, 독립적으로 체득한 것이 아니라 일부의 일들은 처음부터 말하려 한 것이다.

1. 두려움을 닦아버리면 일에 부딪혀도 당황하지 않는다

나는 담이 작고 연약하게 태어났음에도 경찰이 되었다. 동료들은 나에게 경찰이란 직업이 적합하지 않다고 했으나 줄곧 퇴직할 때까지 견지했다. 1996년 연말 45세이던 그해 다행히 법을 얻어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이란 바로 사람의 모든 집착을 없애는 것이지만, 처음에 나는 수련이란 바로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라고 인식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많은 사람이 연공만 하면 담이 커지는데 무엇 때문인가? 단지 당신들 자신의 요소뿐만이 아니라 당신들이 알고 있는 그 한 면이 있기 때문에 담도 커진 것이다.”[1] 개인 수련단계에서 나는 법공부를 중시함으로써 이후의 수련에 확고한 기초를 닦아 놓았다. 그리하여 사악이 대법을 박해한 13년의 험악한 환경 속에서 조사정법하고 세인을 구도했다. 비록 그동안 수많은 위험에 부딪혔지만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 아래 위험한 상태를 벗어나면서 줄곧 평안하게 걸어왔다.

사람마다 수련의 길은 다르지만 수련 과정 중 모두 여러 가지 난관과 고험에 부딪힐 수 있다. 내가 부딪힌 고험은 기타 수련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고험 속에서 나는 단련되고 승화되면서 점차적으로 두려움을 연마해 없앴다. 그리하여 갑작스러운 마난에 직면하여 탄연하게 대할 수 있었고, 일에 부딪히면 당황하지 않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나의 곁에 계시기에 나는 사부님 말씀대로 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2006년 여름, 우리집 근처에 사는 한 수련생이 박해를 당해 모 구치소 경찰에게서 얻은 초보 수준의 정보를 정리해 밍후이왕에 보냈다. 그 후 좀 더 상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그 경찰의 집에 갔더니 공교롭게 방금 집에서 나갔다고 하여 전화로 연락을 했다가 감청 당했다. 며칠 후 내가 시장 보러 갈 때 사악이 대로에 포진하고는 나를 미행했다. 길거리에 한쌍의 남녀 특무가 이야기하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곤 그 여자 특무가 길을 물어보는 척 하면서 나를 감시하였다. 상황을 파악한 나는 특무에 관한 사부님의 설법이 생각났다. “설령 당신이 특무라 해도 당신 역시 사람의 마음이 있을 것이므로, 나는 당신을 보통사람으로 여기고 당신의 직업을 보지 않는다.”[2] 이 설법에 대해 내가 인식하기로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특무도 구도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자비롭게 그녀에게 진상을 알리면서 천멸중공(天滅中共), 삼퇴보명(三退保命)도 함께 알리곤 그녀를 도와 탈퇴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제안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했다. 그녀를 통제하지 못하도록 다른 공간의 사악을 제거했으므로 사악은 당시 나를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경찰차 한대가 원외에 멈춰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당시 사복 경찰이 복도와 엘리베이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른채 습관적으로 경찰차를 향해 발정념을 했다. 집 앞에서 아직 들어가지 않았는데 남편이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와 나에게 던지라고 했다. 아래층에서 엘리베이터 버턴을 눌러주는 사람이 한 사복경찰을 데려와선 우리 집을 찾는다고 했다. 사복경찰이 우리집 주소를 밝히며 우리집을 임대(집이 좁아 아예 임대할 집안이 없다)하겠다고 거짓말하는 것을 듣고서야 경찰차가 나를 감시하러 왔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엔 좀 긴장했지만 곧장 안정된 마음으로 미소를 띤 채 여유롭게 사복경찰을 대했더니 그는 즉시 ‘장가의 갓을 이가가 쓴 것’처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잊은 것 같았다. 몇 분 후 사복경찰은 자신에게 기회를 주면서 위층의 사복 경찰에게 “내려와라! 그녀가 아니다.”라고 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하에 평안하게 이 관을 넘겼는데, 이는 내가 처음으로 특무, 사복 경찰과 접촉한 것이었다.

2011년 여름이 지나 가을에 접어들 무렵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한 택시 기사에게 삼퇴를 권했더니 동의했는데, 막상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알려줬을 때는 받아들이지 않고 도리어 탈퇴하지 않겠다고 했다. 5분 거리라 그에게 진상을 똑똑하게 알려줄 시간이 부족해서인지 택시 기사가 나를 ‘고발’ 한 것이었다. 내가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다 드린 뒤 야채를 사러 가다 CCTV실 당직과 경찰이 무슨 말을 주고 받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런데 당직이 나를 발견하곤 쳐다보니까 그들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당시 다른 사람과 말을 나누던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사악이 나를 박해하러 왔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날 동네 야채 시장에는 인근 주민들이 많이 와 야채를 사는 데, 내가 진상화폐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곳으로 그동안 많은 사람을 구도한 곳이었다. 그래서 ‘사악은 절대 이곳에 와서 나를 박해해서는 안 된다. 세인이 대법제자가 박해당한 것을 보면 감히 대법이 구도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발정념을 하면서 그들을 빨리 가라고 했으나 마음이 완전히 온정하지 않아 사부님께 그들이 빨리 가도록 가지해 달라고 청했다. 내가 야채를 다 산 뒤 사람들 속에서 나오자 과연 경찰과 경찰차는 이미 사라져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수련 중 마난은 이렇게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 다니지만 우리의 정념이 족하고 신사신법하면 사악은 우리를 박해할 수 없는 것이다.

금년 4월 중순경, 내가 베이징 지역 정각 저녁 7시 발정념을 다했을 때였다. 갑자기 인민 경찰 세 명이 우리집에 들어와 익명의 사람이 내가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고발했다며 파룬궁을 연마하는 지 물었다. 내가 진상을 알리려하자 남편이 고함을 지르며 막아 남편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순리에 따랐다. 그때 경찰이 전용 카메라로 나를 찍으려고 해 나는 살짝 비켰다. 이 과정에서 나는 두려움은 없었고 다만 그들을 구하지 못해 유감이 남았다. 진상을 알리지 못하는 이상 발정념으로 그들을 빨리 가라고 했으나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이 빨리 가게 해달라고 사부님께 청하자 과연 경찰은 조금 있다가 바로 돌아갔다. 그러나 경찰이 떠난 후 발정념을 멈추자 경찰은 집 재산을 몰수하겠다고 남편을 위협했다. 그때 나는 사람 마음이 조금 움직였지만, 곧장 사부님의 법이 떠 올랐다. “하나의 부동(不動)이 만(萬)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3] 나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남편과 아이에게 다시는 경찰이 오지 않을 테니 마음 놓고 방안에 들어가 자라고 했다. 과연 경찰은 다시는 번거롭게 하러 오지 않았다.

이런 마난을 겪으며 나는 단련되고 제고되면서 위험에 부딪혔을 때 다시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2012년 8월, 어느 가구 도시를 지나는데 판매원 두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들을 구도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지금 천재와 인재가 얼마나 많아요, 베이징 ‘7.21’의 홍수에 죽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했더니 그들도 “그래요, 지금 재난이 너무 많아요.”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재난이 올 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읽으면 생명을 보전할 수 있다면서 반드시 기억하라고 했다. 그들을 보니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 삼퇴를 권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들을 생각하니 안타까워 이튿날 다시 진상을 똑똑히 알리러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뒷날에는 막상 바빠서 갈 시간이 없었다. 사흘 후 내가 그곳에 갔는데 기분이 좀 이상해 보니 경찰이 순회하고 있어서 경솔하게 움직이지 않고 근처 슈퍼마켓에 갔다. 돌아올 때 쇼핑 카트가 고장 나 어떻게 집에 갈까 속상해 하다 갑자기 ‘그들을 구도할 좋은 기회다. 다시 그들을 찾아가자. 그리고 거기서 가족이 오기를 기다리자’라고 생각했다. 그들 앞에 갔을 때 나를 알아 본 A판매원이 가구성 보안에게 보고하러 간 사이 나는 시간을 다그쳐 B판매원에게 진상을 알렸지만 거절했다. 나는 “당신을 위해 말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이에 A판매원이 보안을 데리고 왔다. 원래 처음 만났던 날 고발했기 때문에 만약 뒷날에 내가 갔다면 아마 박해를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 뒷날에 가지 못하도록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셨던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명백해지자 나는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말을 걸었지만 재미없는지 가버렸다. 가구성에 앉아 가족을 기다리면서 곳곳에 보안과 사복경찰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보안이 멀리서 나를 홈쳐볼 뿐만 아니라 청소부도 특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사당의 18대를 앞두고 베이징 가구성까지 이렇게 사악한 줄 몰랐다. 쇼핑 카트가 그렇게 고장이 난 게 사부님께서 베이징이 이렇게 사악하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시어 사악을 없애라고 하시는 것이구나. 그래서 나는 태연하게 특무 옆에 앉아서 발정념을 했다. 조금 뒤 특무들은 잇달아 떠났지만 마지막 한 특무가 줄곧 잠자는 체 하다가 핸드폰으로 장난을 하다가 결국 핸드폰을 들고 나갔다. 그런데 그가 핸드폰을 쥔 동작이 특별해서 시선이 끌렸는데, 갑자기 그가 몰래 내 사진을 찍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몰래 찍힌 일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나는 누구도 나를 찍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나를 몰래 찍은 특무나 경찰은 모두 나의 영상이 찍히지 않았을 것으로 믿는다. “대법제자의 정념(正念)은 위력이 있기”[4] 때문이다.

2. 시시각각 자신이 수련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라

올 4월 경찰이 우리집에 와서 나를 박해하려다 못했다고 88세 된 어머니에게 알려줬다. 아마 어머니는 걱정하셨는지 일주일 후 갑자기 뇌혈전으로 넘어져 입원했다. 하지만 심하게 다골증을 앓던 어머니는 대법의 은덕으로 뼈도 부러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주 빨리 말을 했고 걸을 수 있게 되어 9일째 퇴원했다. 후에 어머니는 넘어지는 찰나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읽었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퇴원한 어머니는 도우미가 돌보는 걸 싫어해 내가 그 일을 떠안게 되어 어머니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렇게 하니 규칙적이었던 내 생활이 완전히 교란 당했다. 법공부, 연공, 진상 등 세 가지 일이 모두 영향을 받았다. 사람을 구하는 관건적인 시각에 집에 붙잡힌 채 어쩔 수 없이 사람을 구하지 못하니 마음이 매우 조급해져 어머니와 가족이 귀찮아졌다. 왜 이런 방해가 생기는가? 나는 안을 향해 찾았지만 왜 그런지 원인을 찾지 못했다. 다만 마음속으로 나의 그런 마음을 부정했지만, 또 완전히 부정하지 못해서 말하면서도 원망과 귀찮아 하는 게 들어있었다. 내가 조급해 하고 번뇌할 때 갑자기 한마디가 내 머리에 반영됐다. 시시각각 자신이 수련인 임을 생각하라. 사부님께서 일깨워 주신다는 게 느껴졌다.

그리하여 나는 수련인의 표준대로 일했고 바쁜 시간에 시간을 잘 안배하여 “잠깐 쉼에도 자아 성찰하고 정념을 더하며”[5]했다. 매일 저녁 12시에 발정념을 다한 후 법공부를 새벽 2시까지 했다. 그렇게 법공부를 하게 되면서 점차 마음가짐을 바로 잡고 그 원인에 대해서도 명백해 졌다. 나는 전생과 금생에 어머니에게 너무 많이 빚이 있었다. 정법을 결속하기 전 반드시 빚을 다 갚아야 하고, 또 이런 환경에서 자신을 연마하고 귀찮아하는 마음, 조급한 마음, 원망심 등 좋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없애고 인자하고 자비한 마음가짐을 연마해내야 한다. 빨리 빚을 갚기 위해 나는 어머니에게 매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읽으라고 했고 매일 예년 션윈 만회와 션윈합창단의 연출을 보게 했다. 의사는 어머니가 반년이 지나야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단 1달 만에 스스로 생활할 수 있었다. 속인들은 이렇게 연로한 사람이 이처럼 빨리 회복되는 것은 정말로 너무 드문 일이라고 했다.

어머니의 병이 빠르게 회복하자 해외에서 살던 여동생과 아이, 또 외조카, 조카 모두 5명이 거의 동시에 베이징에 놀러와 집에 있던 사람까지 10여 명이 함께 밥을 먹었다. 비록 나는 집에 돌아가 살았지만, 매일 많은 그릇을 설거지해야 했고, 여러 사람의 밥을 해야 했고, 간식까지 한가득 사야 했다. 매일 한 끼를 해결하면 다음 끼를 준비해야 했다. 또 하필이면 어머니 집 화장실 물이 새 아랫층 노인이 찾아와 빨리 해결하라고 했다. 나는 노인을 안심시켜 드림과 동시에 또 사람을 찾아 수리해야 했는데 집안이 엉망진창이었다. 번거로운 일이 한 가지 한 가지 잇따라 생겼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어떻게 고생 중의 고생을 겪는가?”를 말씀하신 그 실례와 같았다.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은 모두 내가 관리해야 했는데, 바쁘고 힘들었지만 가족들은 오히려 화를 내고 내게 불만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시시각각 내가 수련인 임을 생각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여러 일들을 대하며 다투지 않았는데, 점차 인자한 마음을 연마해내자 모든 문제는 순리롭게 해결됐다.

그 기간에 나는 집안과 바깥 모두 구분하지 않고 대법의 은덕으로 여러 장소를 이용해 사람을 구하는 일을 지체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입원했을 때는 병원에서 청소원과 환자의 가족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으며 평소 만나는 이웃, 배달부, 인테리어 업자 등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나가서 물건을 살 때도 시간을 다그쳐 진상화폐를 사용했고 각 마트 판매원과 고객에게도 삼퇴를 권했다. 집 근처 마트에서는 1년 동안 40여명의 판매원을 탈퇴시켰다. 얼마 전 그곳의 판매원이 “많은 사람을 구했군요. 공로가 대단하겠지요?”라고 물었다. 나는 “우리의 수련은 바로 자신을 구도하고, 다른 사람을 구도하고, 많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온 사명은 바로 사람을 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거기까지 말하자 나는 갑자기 옆에 새로 온 판매원이 생각났다. 평소 그들에게는 진상을 알릴 기회가 없었는데 지금이 마침 좋은 기회이므로 놓치지 않고 그들에게도 진상을 알려 매우 빨리 그 중 한사람을 탈퇴시켰다(다른 한 사람은 어디서도 들은 적이 없었다).

올 7월, 한 친척이 갑자기 질병을 앓아 어머니가 입원했던 부대병원으로 보냈더니 병실에서 간호사가 기록부를 들고 환자의 현황을 파악했는데 그 중 하나가 신앙에 관한 문제였다. 나는 이것도 반드시 대법과 관련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의 모든 일은 모두 법을 위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7.20’ 직전이어서 나는 간호사에게 “신앙이란 무얼 말하나요?”라고 물었다. 간호사는 “기독교를 믿는가?”라고 했고 친척은 “아니요, 믿지 않아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라고 했다. 수간호원이 “공산당을 믿어요?”라고 물었다. 나와 친척은 이구동성으로 “믿지 않아요! 믿지 않아요!”라고 했다. 나는 “우리 어머니가 2달 전에 입원했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왜 지금은 이런 걸 물어봐요?”라고 했더니 그녀는 모두 파룬궁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이것은 진상을 알리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파룬궁은 진(眞), 선(善), 인(忍)을 연마하는 것이고 공산당은 가(假), 악(惡), 투(鬪)를 한다. 누가 올바른가? 누가 사악한가? 이것은 똑똑하지 않는가? 지금 여러분은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다.”라고 했다. 간단한 몇 마디였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에게 구제될 초석을 깔아놓았다. 며칠 후 나는 그 병실의 간병인을 탈퇴시켰다. 그 간병인은 허난 주마뎬(駐馬店) 사람인데 1975년, 허난 주마뎬에 홍수가 났을 때 그녀는 7살이었는데 그녀에게 깊은 공포를 남겨줬다고 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비가 오면 무서워했고 시종 재난을 피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마침내 구제된 그녀는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린 것 같았다.

8월말 해외에서 온 친척들이 하나둘 떠나고 어머니도 스스로 집안일을 할 수 있게 됐다. 몇 달 동안 바쁘고 힘들었던 일도 끝나면서 생활은 예전의 안정된 모습으로 회복됐다. 그제야 나는 우리가 경험한 어떠한 일이든 모두 그렇게 보귀하고 매우 드문 수련의 기연(機緣)이고 모두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우리의 수련제고를 위해 안배해주신 것임을 체득했다. 만약 기회를 틀어쥐고 자신을 잘 연마하지 않았더라면 그것은 정말로 큰 손해다. 최후일수록 수련의 기연은 갈수록 적어지고 매번의 기회는 다시는 없을 것이다.

3. 신통의 정념으로 사악의 창의서를 제거하다

2010년 신년기간 우리 집 정원에 본지 명의로 찍은 사악한 창의서가 붙어있어서 매우 놀랐다. 밍후이왕에서 기타 지역에 이런 정황이 있음을 본 후 우리가 관할하는 지역에서는 나타나지 말라고 발정념했으나 나타난 것이다. 안을 향해 찾으니 내 마음 속 깊이 다른 형식의 두려움이 은폐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바로 사악한 창의서가 우리 지역에 나타나면 어떻게 제거해야 할지 두려웠기 때문에 발정념으로 그런 일이 나타나지 말라고 했던 것이었는데 무엇이 두려울수록 더욱 온 것이었다.

사악한 창의서가 나타난 후 수련생에게 알려줬더니 그녀가 가서 찢어버리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뜯어버리지 못했고 그것은 도리어 더욱 단단하게 고정됐다. 나는 바람에 그것이 떨어지라고 발정념했더니 과연 광풍이 불어대고 폭우가 쏟아졌지만 광풍과 폭우도 그것을 없애버리지 못했다. 후에 사악한 창의서를 찢어버린다 해도 사악은 또 다시 붙일 것이므로 내가 ‘중공이야말로 사교다’라는 쪽지를 붙여 사악을 제거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원내외 도처에 CCTV가 설치되어 있었고 사악한 창의서는 바로 CCTV 센터의 문앞의 벽에 붙어있었다. 나는 사부님께 부근에 사람이 없고 CCTV카메라가 나를 보지 않게 가지해 달라고 청했다. 과연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져 나는 순조롭게 사악한 창의서에 ‘중공이야말로 사교다.’ 쪽지를 붙여놓았다.

이 모든 것은 원래 사부님께서 하시는 것이고 나는 다만 사부님의 보호와 가지하에 손만 움직이는 중에서 자신의 위덕을 수립할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과시심과 환희심이 생겨 수련생에게 나의 ‘정념’과 ‘신통’을 자랑했다. 그 결과 이틀도 되지 않아 사악에게 틈을 타 쪽지가 떼어지고 사악한 창의서는 여전히 단단하게 그 자리에 붙어있었다. 그러면 붙인 사람 스스로 뜯으라고 하자. 그러면 세인을 구도할 뿐만 아니라 사악한 창의서를 붙인 사람도 구도될 수 있다. 나는 창의서를 주택 관리소에서 붙인 것이라 생각하곤 관리소 소장을 찾아가(벌써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사악한 물건을 없애라고 하자 그들이 붙인 것이 아니라 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주민위원회 주임(그에게도 벌써 진상을 알렸다.)에게 물었더니 그도 붙인 것이 아니라고 하여 날마다 사악한 창의서를 향해 발정념을 했더니 아주 빨리 그것이 없어졌다.

금년 3월 타지역에서 사악한 승낙카드가 나타났다. 그래서 나는 우리 동네에는 나타나지 말라고 발정념하며 정체로 사악을 제거한다고 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베이징 소위 ‘반사교’ 협회 창의서가 나왔는데 내용은 예전과 비슷했다. 그 중에는 사람들에게 은행에 가서 진상화폐를 교환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미 사람들 모두 진상을 알기 때문에 사악한 선전은 작용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수련생의 말에 나도 그것을 인정하고 상관하지 않았다.

이전에 내가 진상화폐를 사용할 때 가게 주인은 내가 손으로 쓴 진상화폐 문장이 아름답고, 화폐마다 내용이 달라서 사람들이 보기 좋아한다고 했는데 어떤 사람은 프린터 한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주 빠르게 진상화폐를 거절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은 사악한 창의서가 중생을 독해하는 게 명백했다. 반드시 그것을 없애버리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어떻게 제거하겠는가? 이전처럼 그렇게 글을 적어 붙이는 게 아니라 철저히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법 중에서 “당신이 거기서 발정념만 하고 가서 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수련이라 할 수 있겠는가?”[6]라고 말씀하셨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법공부 할 때 사부님께서 점화해 주셨다. “당신은 이런 소원만 있으면 된다. 진정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사부가 해주는 것이지 당신은 전혀 해낼 수 없다.”[7] 나는 재차 이 말을 이해했다. 갑자기 사부님께서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나는 줄곧 대법제자의 능력이 대단히 크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이 좀처럼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을 볼 수 없게 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정념의 작용 하에서, 당신 신변의 일체와 당신 자신에 모두 변화가 발생할 수 있는데, 당신은 여태껏 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6]라고 말씀하신 게 생각났다.

그렇구나, 나는 왜 사부님의 말씀대로 신통으로 사악을 제거할 수 있다는 걸 한번 해보지 않았는가? 나는 집에서 확고하게 사악한 창의서에 대해 발정념을 하면서 반드시 그것을 없앨 수 있다고 믿었는데, 예전에도 발정념으로 없앴기 때문이다. 이튿날 외출할 때 불현 듯이 창의서가 없어졌는지 확인하게 되었는데 과연 없어진 것이었다. 이것으로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부동한 층차의 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법시기 사부님과 같이 걸어온 대법제자는 이미 신통이 충족하게 구비되어 있는데 다만 우리가 사용할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수련체득을 다 쓴 후 나는 갑자기 금년 2012년은 확실히 평범하지 않고 사부님의 정법의 노정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수련 상태에서 보면 바로 수련의 속도가 빨라졌고 법이 우리에 대한 요구가 더욱 높아졌으며 시간도 더욱 긴박해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순서에 따라 규정대로 걸어간다면 사부님의 정법노정을 따라가지 못해 문제가 나타날 것이다. 최근 1년 동안의 수련경력을 통해 사부님께서 우리에 대한 요구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8]는 것을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정법수련이 곧 결속될 시각에 반드시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여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하고 용맹정진하며 하루 빨리 자신의 서약을 실행하고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겠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미국서부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캐나다법회설법’

[3]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미국중부법회설법’

[4]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대법제자의 정념(正念)은 위력이 있다’

[5] 리훙쯔 사부님의 시가: ‘홍음2-이지 각성(理智醒覺)’[6]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20년설법’

[7]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8]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밍후이왕 제9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2년 11월 25일
문장분류: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9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25/2648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