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편집부의 문장 ‘연설하는 것은 난법이다’를 읽은 소감-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5월 5일 그날, 우리는 밍후이편집부의 문장 ‘연설하는 것은 난법이다’를 읽을 때 문장 어조의 엄숙함과 명확함에 놀랐으며, 이런 현상이 이렇게 보편적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나와 수련생들은 때때로 탄식했다. 만약 이 밍후이편집부 문장이 없었더라면 각지 이런 연설과 순회교류를 조직하는 사람과 요청받은 사람은 자신이 정체제고에 ‘온몸을 다해 지불’하는 줄로 알며, 연설자와 순회 교류자는 자신이 줄곧 ‘수련생을 도와주고’ ‘위덕을 건립하고 있다’라고 생각하며, 듣는 자는 자신이 ‘수확’이 적지 않고 ‘문제’를 해결했고 ‘제고’됐다고 생각할 것이며 스스로 난법 중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비가 너무 커서 내 마음은 정말 흔들렸다.
최근 밍후이왕에서 밀접하게 사부님의 평어 문장을 여러 편 발표하자 나도 매우 놀랐다. 그러나 그런 사오(邪悟)한 언행, 가짜 경문을 함부로 전하는 등은 우리와 관계없다고 생각했고 더욱이 다른 사람의 문제에 대해 놀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설하는 것은 난법이다’ 중의 문제는 우리 많은 사람도 모두 그 중에 있는 것이다.
고통이 가라앉은 후, 안을 향해 찾고 자신 및 현지의 몇 년간 비슷한 심성 상에서의 표현을 반성해보니 우리는 일부 교훈과 인식이 있었다. 수련생들께서 다음 문장을 참고하고 부적절한 곳은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1. 잘못을 정시해야만 사람 마음을 없앨 수 있다
편집부 문장이 나온 후 많은 수련생은 청성했다. 이미 시장이 없어졌기 때문에 문장에서 말한 난법 현상은 각지에서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일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그 폭로된 사람 마음을 없앴다는 것이 아니다.
수련은 바로 우리의 모든 사람의 집착을 없애는 과정이다. 만약 우리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정시할 수 없거나 마비되고 덮어 감추거나 거부하기만 하고 이 기회를 빌어 진정으로 안을 향해 찾고 우리가 잘못을 하게 된 사람의 집착을 없애지 못하고 이번의 보귀한 수련의 기연을 놓친다면 그럼 이런 사람 마음은 다음에 기타 형식으로 잘못을 범하거나 난법하는 근원이 될 것이고 사악에게 틈을 탈 것이며 사악이 철저하게 수련자를 훼멸하는 약점과 이유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일부 이 일에 관련된 수련생들, 협조인을 포함해 확실히 편집부의 문장에 대해 거부하는 정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사람은 편집부의 문장이 너무 심하게 말했고 ‘두 가지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교류 중 ‘역시 혜택을 받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자신과 현지는 문장에서 말한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어떤 사람은 자신은 ‘좋은 마음’이고 난법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어떤 사람은 맥이 빠지고 좌절과 타격감을 크게 느꼈다는 등등이다. 이것들은 우리 대법제자로서 있어야 할 올바른 상태가 아니다.
우리는 우선 밍후이 편집부에서 발표한 문장은 보통 교류문장이 아니며 우리가 의심하고 토론할 것이 아니다. ‘연설하는 것은 난법이다’ 문장에서 처음부터 “수련생 속에서 특별연설을 하거나 혹은 순회교류를 하는 것은 바로 난법(亂法)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문장 결말 부분에서 또 한 번 반복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런 중대한 문제에 대해 밍후이편집부는 사부님의 동의 없이는 이런 엄숙하고 명확한 글을 써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또한 이 일이 밍후이 편집부의 문장에서 말했을 때는 사부님께서 모든 이지적이지 못하고 난법에 참여한 수련생에 대한 자비이고 수련생에게 깨닫게 하는 기회가 있게 하는 것이며 고칠 기회를 주시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또 확실히 많은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편집부에서 말한 것이라고 저촉하고 변명하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만약 사부님께서 경문 형식으로 공개적으로 말씀하셨을 때는 이런 잘못을 저지른 많은 수련생은 고치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사부님의 자비와 고도(苦度)를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사부님의 고심과 아픈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비할 바 없이 소중히 여기시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우리는 선의로 ‘연설하는 것은 난법이다’ 문장을 볼 때 저촉, 반감, 변명했던 모든 수련생에게 우리는 꼭 이 저촉, 반감, 변명의 배후는 정말로 우리 자신이 아니고 우리를 훼멸시키려는 사악과 그것들에게 통제되고 이용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을 똑똑하게 구별해야 함을 일깨워 줘야한다.
수련자가 한때 잘못을 한 것은 무섭지 않지만 무서운 것은 우리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올바르게 대하지 못하고 안을 향해 찾지 않으며 사람 마음과 사악을 구분할 수 없는 지혜가 없고 용기가 없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똑똑하게 구분하지 않고 그것들을 자신으로 여기면 그것들은 보호받아 남아있게 된다. 그 결과는 최종적으로 그것들에게 훼멸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가지시려는 것이 아니고 이것 또한 무량한 중생이 기다리고 있는 결말이 아니다.
우리는 마땅히 청성하게 정법은 질서 있는 것이라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몇 개월간, 밍후이왕은 끊임없이 사부님의 평어문장 및 밍후이 편집부의 문장을 발표하고 각종 난법 현상(일부 현상은 일부 지역에 이미 존재함)을 폭로했다. 왜 지금에 와서 집중적으로 폭로하는가? 이것은 사부님께서 정법노정이 이 단계에 이르렀고 집중적이고 대량적으로 우주 중의 최후의 난법하는 생명과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이런 사악은 대법제자의 없애지 못한 사람 마음의 틈을 타는 것이고 이지적이지 못한 상태에 있는 수련생의 각종 난법하는 언행을 통제해 이런 수련생을 훼멸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그런 사악을 훼멸하고 제거해 대법제자가 청성해지고 교훈 중에서 안을 향해 찾으며 완고하고 강렬하게 집착하는 사람 마음을 없애고 제고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매번 평어문장을 발표하시는 것과 편집부에서 발표되면 대량적으로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사악을 소멸하는 것이다. 많은 수련생은 모두 뚜렷한 감각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사악이 훼멸되기 전에 필연코 건드려지고 반항의 표현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연설하는 것은 난법이다’를 봤을 때 저촉하고 반감하고 변명하려는 생각이 생기는 것이다. 사실 그것들이 우리 사상 중에 반영되는 것이므로 우리는 절대로 그것들을 자신으로 여겨서는 안 되고 우리는 꼭 안을 향해 찾고 그것들을 정시하고 그것들을 똑똑히 구분하고 단호하게 그것들을 제거해야한다. 그러면 우리가 제고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2. 사람을 숭배하는 것은 연설하여 난법하는 현상이 싹 트게 하는 두터운 ‘토양’
안을 찾는 과정 중에 우리는 ‘숭배심’은 이런 난법 현상을 형성하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밍후이편집부의 문장이 발표되기 이틀 전에 현지에서 금방 외지 수련생이 와서 ‘순회교류’회를 열었고 회의장에 근 100여명이 참가했으며 마주보고 칭찬했고 아첨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박수였다. 어떤 수련생은 현장에 이상한 감각이 있고 이런 방식은 법에 있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나 모두들 박수를 치자 수련생도 부끄럽지만 박수를 치지 않으면 안됐다. 이후 외지 수련생은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이 쓴 것을 칭찬해주는 수련생에게 줬다. 그가 내려온 후 우리는 현지 수련생이 외지 수련생에게 강렬한 숭배심이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런 올바르지 않는 장은 수련생에 대한 영향과 움직임이 무서운 것이고 우리의 당시 처음 생각과는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현지에 이전에 비슷한 상태와 많은 수련생의 사람 마음이 움직여진 후 나타난 비참한 교훈이 눈앞에 생생했다.
단독적으로 숭배 받는 외지 수련생과 이 일을 교류했는데 그 수련생은 승인하지 않았으며 우리보고 마음을 크게 먹지 못하고 박해의 그림자를 너무 심하게 받았으며 두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우리가 외지 수련생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과정을 서술할 뿐이다. 이로 인해 왜 전국 각지에서 그렇게 엄중하고, 그렇게 큰 면적으로 연설하여 난법하는 현상이 나타났는지 인식했다. 근본적으로 봐서 우리 수련생이 아직도 다른 사람에 대한 숭배심에 있기 때문이다.
마주보고 뒤에서 책임지지 않고 수련생을 칭찬하는 것은 정말로 수련생을 해치는 것이고 정말로 수련생의 몸에 부패물질을 던져주는 것이라고 인식했다. 아마 수련생도 처음에는 경각하고 자신을 일깨웠겠지만 부패물질을 던진 사람이 많을수록 견디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이것은 정말로 마난이다. 표면적인 고통이 아니고 오히려 사람에게 즐거움과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것이므로 법에 있지 않고 문제를 보면 매우 쉽게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 이 몇 년간 직접 이런 실례를 매우 많이 봤으며 처음에 일부 수련생은 모 방면에서 잘 했지만 교류와 연설함에 따라, 수련생의 더욱 많은 숭배심과 의뢰심에 따라 수련생은 갈수록 이지적이지 못하게 됐으며 점차적으로 아무런 의견도 받아듣지 못하게 됐고 점차적으로 강렬한 자아를 표현하게 됐다. 또 다른 수련생보다 낫다는 마음, 명을 추구하는 마음, 비교하려는 마음, 쟁투심(혹은 줄곧 없애지 못한 사람 마음이 사악에게 강화되고 확대하게 된 것)이 생겨 자신 혹은 자신 지역을 ‘선전’하고 ‘큰일’을 하는데 열중하게 됐으며, 외지 수련생을 ‘지도’하고 ‘도와주는’ 과정 중에서 잘 모르는 외지 수련생의 눈빛 속에서 도취되어 수련생들의 숭배하는 눈빛과 아첨하는 말속에 빠지게 됐다.
사부님께서 ‘전법륜’ 중에서 우리에게 똑똑하게 “명리심이 일어나자마자 그의 心性(씬씽)은 실제로 떨어져 내려왔다.” “이 명리심이 중할수록 속인 중에 떨어지는 것도 더욱 심하며 그의 공도 따라서 떨어진다. 최후에 그가 완전히 떨어져 내려왔을 때 공도 주지 않아 아무런 공도 없다”라고 알려주셨다. 우리는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더라도 그 속에서 자신을 착실하게 연마하지 않고 사람 마음과 마성을 마음대로 내버려둔다면 공이 높이 자라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떨어진다고 인식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心性(씬씽)이 얼마만큼 높으면 공도 그만큼 높은데,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다”라고 말씀하셨다.
벌써부터 수련생은 매번 이렇게 떠들면 사실 모두 법에 손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이미 인식했다. 듣는 자는 밖으로 추구하는 마음이 생기고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을 찾았다고 생각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에 대조해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을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게 되며, 또 수련생을 숭배하고 의뢰할 때 사부님과 대법을 잊었고 사부님과 대법이야말로 한 생명이 진정으로 본질을 개변하고 제고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잊게 된다. 또 ‘교류하는 수련생’은 갈수록 이런 ‘순회교류’에 열중하고 이런 ‘순회교류’와 이런 숭배하고 찬양하는 장면과 ‘효과’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갈수록 밍후이 편집부의 문장에서 말한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이 길은 훼멸의 길이고 구세력의 사악한 안배고 대법제자의 아직 없애지 못한 사람의 숭배심, 명리심 등 마음을 이용해 대법제자를 훼멸시키려는 수단이다.
명리심이 생기고 공이 떨어질 때 이것이 바로 마난 중에 있는 것이 아닌가? 사악에게 틈을 타서 사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강화하고 무지 중에 난법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대법제자를 훼멸시키려는 악독한 수단이다. 이것은 다른 더욱 심한 박해가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 매 수련생은 정말로 우리가 난법하는 사람의 숭배심, 명을 추구하는 마음 등을 중시하고 없애야 한다. 모든 관념을 내려놓고 밍후이편집부의 이 ‘연설하는 것은 난법이다’ 문장을 중시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여러 번 읽어보라. 문장 중에서 수련생은 매우 똑똑하게 말했다. “여러분들이 사부님께서 우리 대법제자를 위해 쓰신 ‘맹격일장(猛擊一掌)’, ‘영원히 기억하라(永遠記住)’, ‘수련자 금기(修者忌)’, ‘법정(法定)’을 잘 공부하고, 가장 좋기는 암송해 자신과 대조할 것을 일깨워준다.”
이렇게 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어왔고 이렇게 많은 경험과 교훈이 있는데 우리는 정말로 응당히 성숙해져야 하며 무슨 상황이든지 우리는 모두 서로 협조하고 조사정법하며 중생을 구도하는 발걸음을 멈춰서는 안 된다. 견지해야 할 것은 법을 잘 배우고 안을 향해 찾아 수련하는 원칙을 잊지 말고, 단체 법공부하고 서로 교류하여 함께 법에서 제고하는 교류환경을 보호해야 하며 전문적인 연설 순회교류 등 난법행위를 금지해야 하며, 각종 집착과 사람 마음을 없애야 한다.
연설하는 각종 상태의 수련생 중에 중공에 특수한 배경이 있는 사람도 있다. 대법제자가 모두 이지적으로 법중에서 수련한다면 중공 특무와 그 배후의 사악은 암암리에 그것들의 그런 나쁜 일을 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문장발표: 2013년 5월 2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5/23/27436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