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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느끼지 못한 ‘구하는’ 마음을 닦아버리자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 경지가 제고됨에 따라 사람의 관념과 집착심에 갈수록 민감해져 때로는 나오기만 하면 바로 그를 붙잡아 제거해 버린다. 그러나 때로 일부 습관성 인식과 관념은 아직 의식할 수 없다. 바로 의식할 수 없기에 비로소 교란과 번거로움을 불러온다.

한번은, 한 수련생과 교류를 할 때 그가 끊임없이 기침을 하고 기색도 좋지 않은데 전형적인 감기증상이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왜 그래요?” “기침은 내가 구해 온 것입니다” “어떻게 구해 온 것이죠?” “어제 삼륜차를 타고 화물을 실으러 갔어요. 그날은 매우 추웠어요. 차에 탄 화물 주인이 말했어요. ‘이런 날은 쉽게 감기에 걸리지요.’ 나는 그때 자신도 화물 주인을 따라 말했다. ‘그러네요, 이런 날은 쉽게 감기에 걸릴 거에요.’ 이 한마디에 곧 재채기를 하더니 콧물도 나고 아주 괴롭네요.” 교류 중 그 수련생은 인식했는데 감기는 업력에서 오는 것이고 이것은 날씨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 아닌가? 정념으로 그것을 부정하자 증상이 빨리 사라졌다.

일부 장사를 하는 수련생이 자주 이렇게말한다. “내가 이 가게를 여는 것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한 것이 아니고 수련인은 이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주로는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말은 표면상 맞는 것 같지만 꼼꼼히 생각해 보면 ‘구하는’ 한 점이 보인다. 당신이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구세력은 바로 틈을 타고 그는 당신의 행위는 사람의 한층의 이치를 위배했다고 인식하고 당신이 돈을 벌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돈을 밑지게 한다.

장사하는 많은 수련생은늘 죽지 않고 살만큼 장사가 된다. 내 생각에 일부 인식을 바로 잡지 못한 것이 아닌가? 대법제자는 복이 있다. 만약 마음이 바르고 염두가 바르면 속인의 이 층차의 이치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어떤 수련생은 말한다. “내가 이 가게를 내면 업종의 특징에 따르면 첫해에는 손해를 보고, 둘째 해에는 본전이고, 셋째 해부터 돈을 벌기 시작한다.” 이 말이 맞지 않는지 알고 마음속으로 부정하지만 부정하는 정도가 약하고 ‘절반 인정’하는 태도다. 특히 장사가 되지 않을 때 이 설은 근거가 된다. 이런 숨어있는 구하는 마음은 구세력이 도리어 똑똑히 본다. 그 결과 수련생의 장사를 교란해 설상가상이다.

대법제자는 사람을 구하는 것을 제1위에 놓는 것은 맞다. 그러나 돈을 버는 것이 바로 이익지심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돈은 안정한 생활을 유지하고 법을 실증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 사악의 경제적 박해에 구실을 주면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돈이 많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우리는 돈이 많을수록 사람을 구하는 항목은 갈수록 쉽게 전개할 수 있고 세인에게 진상을 알려도 할 말이 있다.

한 수련생이 한번은 다른 한 수련생이 소업하는 것을 보고 얼떨결에 말했다. “당신 보세요. 나는 적게 소업해요.” 그 결과 집에 돌아간 후 온몸이 아프고 며칠간 고생했다. 표면에서 보면 수련생이 말한 것이 수구(修口)하지 않는 것이지만 실제로 관념을 바꾸지 못했다. 자아의 각도에 서서 사람 마음으로 수련생의 상태를 가늠했다.

수련생과 함께 교류할 때 흔히 이런 말을 듣는다. “보세요. 몇 년간 당신은 늙지 않네요. 아직 이렇게 젊어요.” 그때 상대방은 겸손하게 말한다. “아니예요, 역시 늙었어요. 보세요, 머리도 희고 눈도 침침해요……” 내 생각에 수련생의 이런 속인식의 겸손은 바로 제거해 버려야 한다. 이런 인식은 쉽게 ‘노화(老)’를 불러올 수 있다. 그는 더욱 당신을 늙게 만들고 주름이 많게 하고 머리가 희게 하고 눈이 멀게 한다……우리 이 법문은 성명쌍수의 공법이고 우리는 ‘노병사(老病死)’의 마를 자신의 공간장에서 제거해 버려야 한다. 우리의 생명이 대법 중에서 끊임없이 고에너지 물질로 대체하고 갈수록 젊어지고 갈수록 아름다워져야 한다.

몇 해 동안 나는 늘 핸드폰을 가슴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한번은 한 수련생이 말했다. ‘핸드폰은 전자파가 있어서 신장에 좋지 않아요.” 나는 말했다. “어찌 알았어요?” 그 수련생은 말했다. “나는 이전에 핸드폰을 옷 주머니에 넣어 다닌 결과 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웠어요.” 나는 법에서 말씀하신게 기억났다. 대법제자 과학자가 실험을 했는데 손으로 만졌던 세균도 다 죽어버린다고 했다. 그러나 당신이 핸드폰을 어디 놓으면 세균을 죽일 수 있겠는가? 당연히 안 된다. 게다가 우리의 손과 몸은 다 에너지가 강하고 손이 닿은 물건은 다 빛이 난다. 우리의 신체는 끊임없이 대법에 동화되고 핸드폰의 전자파는 보잘 것 없다. 그러나 “당신이 병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병을 구해올 수 있다.” 그러면 핸드폰을 지니고 다닐 때 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운 느낌이 들 것이다.

정신과 물질은 일성이기에 어느 한 층의 이치를 인정하면 그 한 층의 이치의 상태는 바로 자동적으로 나타난다.

몇 해 동안 사악의 박해는 틈만 있으면 파고든다. 우리가 인식상에서 약간의 바르지 않는 인식이 있다면 곧 번거로움을 불러온다. 예를 들면우리 지역의 수련생이 악한 경찰에 납치당해 혹형에 견디지 못해 마음을 어기고 ‘삼서’를 섰다. 이때 어떤 수련생은 말한다. “만약 나라면 때려 죽여도 쓰지 않을 것이다.” 내 인식에 수련생의 이런 구함은 쉽게 박해를 불러온다. 어떤 수련생은 병업관을 넘기지 못해 입원했다. 어떤 수련생은 말한다. “나라면 아파서 죽어도 입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설은 역시 일종의 ‘구함’이다. 아주 위험하고 쉽게 사악의 한 차례 ‘검증’을 불러올 수 있다.

단지 주변의 몇 가지 본 사례와 개인의 약간의 인식을 글로 적어 교류해 본다.

문장발표: 2013년 6월 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6/1/2747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