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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의 행복한 일

글/정위(凈宇)

[밍후이왕] 우리 집은 하얼빈 근교, 한 마을에 있다. 마을은 100여 호로 별로 크지 않다. 그러나 인근 마을에서 우리 마을을 언급할 때는 모두 “그 마을은 다른 마을과 다르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그 마을은 우박도 내리지 않고 농작물이 잘 자라서 수확이 많다 ….”는 등등으로 말한다. 어쨌든 “마을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는 사람이 있어 복을 받은 것이다.”라고 한다.

작은 마을인데 ‘파룬궁(法輪功)’을 처음 수련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후에도 6명이 계속해서 집에서 수련하고 있었다. 파룬궁은 역시 귀중하고 좋은 것이라 버리지 않고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박해를 무릅쓰며 수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근래 들어 또 일부 사람들이 잇따라 대법 속으로 걸어 들어왔는데,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나는 7.20전에 파룬궁을 반년이나 연마했었다. 후에 붙잡힐까 봐 두려워 포기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로 나의 고모가 불치병에 걸렸다가 대법을 배운 후 몸이 완쾌됐다. 그래서 나는 대법 책을 숨겨놓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언제 대법을 배울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 마을에서 유능한 여자로 알려진 유명인이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크고 작은 무슨 일이든지 당당히 처리할 수 있다. 때로는 남자들이 하지 못하는 일도 나는 역시 잘할 수 있다.’

2005년 어느 날 갑자기 경추에 통증이 왔으나 처음에는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통증이 심해지면서 참을 수가 없을 정도가 되어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검진 결과 의사는 “이 병은 잠시 통증을 완화할 수는 있어도 근본적으로 치료가 안 되기 때문에 현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다만 약을 먹으면서 그 상태를 유지했다. 한동안 약물치료 등으로 몸은 바쁘고 번거로웠는데 그와는 반대로 몸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다. 후에 구들에서 내려올 때는 남편이 안아서 내려줘야 했는데 그럴 때도 목의 통증으로 신음을 냈다. 온몸은 다 쑤시고 팔을 들 수조차 없어서 세수도 할 수 없고 머리를 빗을 수도 없었으며 밥을 지을 수도 없었다. 승리욕이 강한 나였지만 마음속으로 ‘이래서야 어찌 살겠는가?’라고 생각했다. 자주 눈물로 얼굴을 씻었다.

이때 나는 사부님이 생각났고 대법이 생각났다. 마음속에 일념이 있었는데 ‘사부님께서 나에게 두 번의 생명을 주신다면…’ 어디에서 힘이 나왔는지 나는 단번에 높은 곳에 감춰뒀던 대법 책을 내려놓았다. 책을 품에 안을 때 어찌 된 영문인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나는 구들에 앉아 있었지만 팔을 사용할 수 없으니 책을 들 수가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한 획씩 썼다. 이튿날 신체는 큰 변화가 일어났으며 3일째 되는 날, 책을 손으로 들 수가 있었으며 일주일 후에는 신체는 기본적으로 완쾌됐다. 그런데 배 오른쪽에 달걀만큼 크고 딱딱한 혹이 만져졌다. 그게 무엇이며 어찌 된 영문인지를 몰랐지만 돈 걱정도 되고 해서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러나 법 공부한 후 무슨 병도 다 사라졌다. 온몸은 비로소 무엇이 진정한 가벼움인지 알 수 있었다. 마음속으로 대법과 사부님께 얼마나 감사드렸는지 모른다.

마을의 융원(永文)도 역시 대법이 구해줬다. 융원의 몸에는 병이 나보다 많았다. 그녀는 20여 세 때 허리와 다리의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잘 걷지를 못했는데, 걸어가다가 갑자기 주춤거리며 덥석 땅에 주저앉았으며 잠시 좋아진 듯하면 다시 일어나 걷고 걷다가 또 주저앉아 걷는 이런 상태였다. 이렇게 제대로 걷기조차 어려웠으니 일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웠는데, 만약 그녀가 대법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반신불수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는 또 신장병이 있어 소변은 볼 때 피가 흘러나왔다. “아, 우리 같은 농사꾼은 힘이 없어 일을 못해 가족을 먹여 살리지 못하면 폐인과 같다.” 그러므로 그녀의 남편도 그런 그녀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돈을 많이 들여 치료받게 했지만 낫지 않자 자주 그녀를 원망하고 욕해댔다. 그러자 살길이 막막한 그녀는 자주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다가 슬하의 어린애를 생각하며 ‘내가 죽는다면 계모가 올 것인데, 계모보다는 그래도 병이 있는 엄마가 낫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고 그 일념으로 지탱하며 마지못해 살아갔다.

융원은 2005년 4월 법을 얻었다. 한 달 후 그녀의 병은 완쾌됐다. 이전에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던 고약한 버릇도 모두 고쳤다. 그녀는 “아이가 장성해서 결혼하면 남편과 이혼하겠다.”고 그전에 자주 말했다. 지금은 아이가 아직 결혼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대법을 얻은 후 자신은 좋은 아내가 돼야 하는 것을 알게 됐고, 남편만을 탓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어 이혼하지 않았다. 남편은 아내가 건강해지자 기뻐하면서 역시 진정으로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 비록 그는 법을 배우지는 않지만 매일 대법이 좋다고 묵념한다. 이 가정은 헤어지지 않았고 반대로 화목해졌다.

이런 사례는 우리 마을에 아직 몇 개가 더 있다. 한 사람이 연공 하면 온 가족이 이익을 얻는다. 나의 아들과 며느리에 대해 말해 보겠다. 2009년 6월 어느 날 공장에 출근했을 때 둘째 여동생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 “큰언니, 일을 그만두고 빨리 집에 가 보세요.” 나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들과 며느리가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사고당했다.”고 했다. 나는 좀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고 일을 대충 정리한 후 집으로 돌아가 아들 며느리가 집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반나절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조금은 불안했지만 ‘무슨 일은 없을 거야, 대법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 온 가족도 보호해 주고 계시니. 특히 그들은 모두 진정으로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내가 대법을 실증하는 것도 매우 지지해주고 있으며 때로는 도와주기까지 하고, 호신부도 몸에 지니고 있으니 틀림없이 괜찮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이때 그들이 돌아왔다. 아들은 얼굴 피부가 좀 까졌고 아래턱은 두 바늘을 봉합했으며, 며느리는 온 얼굴에 상처로 찢어지고 입이 부어올랐다. 교통사고는 봉고차가 오토바이를 들이받아 그들을 6, 7미터나 떨어져 나가게 했다고 했다. 아들은 그때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다. 집에 돌아가 소염제를 바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체는 정말로 위험천만이었다.

차주는 개인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남편은 밖에서 일하다가 소식을 듣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차주와 따져 보겠다고 했다. 나는 전화로 남편에게 “애들 교통사고 일로 오지 마세요. 내가 집에서 처리하면 돼요.”라고 했다. 우리 집은 ‘쩐싼런(眞善忍)’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는데 당신이 돌아오면 뭘 하는가. 그러면 오히려 다른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고, 당신이 와서 할 일이 뭐가 있느냐며 오지 말라고 설득하여, 남편은 내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아주버니를 불러 차주를 만나게 했다. 차주는 “아들은 어떠냐, 병원에 갔느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면서 아들은 집에 있는 링거를 좀 맞고 상처를 소독하면 된다고 말해 줬다. 그러자 내 말을 들은 차주는 개인적으로 해결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때 아주버니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화나서 말했다. “제수씨, 왜 그렇게 말하세요!” 나는 말했다. “나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번거롭게 하지 않아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들의 오토바이 수리비만 받으면 돼요.” 그러나 봉고차 주인은 내게 믿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오토바이를 수리하는데 350위안이 든다고 한다. 나는 그 돈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생각했는데 ‘나는 연공 인이니 그럼 내가 오토바이 수리비를 대자.’ 오토바이를 자세히 살펴보니 예상외로 수리비가 별로 들 것 같지가 않았다. 앞 범퍼가 좀 휘고 앞유리가 깨진 것 외는 손볼 곳이 없었다. 오히려 봉고차 앞이 세숫대야만 한 큰 흠이 생겼다. 그리고 아들 며느리도 크게 다치지 않았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남편과 그 형은 오토바이가 완전히 부셔졌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완벽한 것을 보고 내게 “제수씨 집안은 정말로 복이 있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은 특별히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법의 ‘쩐싼런’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마을의 신위(가명)는 20여 세로 비록 나이가 많지 않지만 10세 때부터 대법수련을 했다. 지금 촌에서 결혼하게 되면 여자 측에 적어도 20만 위안의 예물을 해줘야 한다. 그런데 신위는 결혼할 때 시댁 집이 어려워 아들을 어렵게 키운 것을 알고 그리 많은 예물을 요구하지 않았다. 남자 측에서도 여자 측에 미안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녀는 결혼할 때 겉치레를 하지 않았으며, 결혼 후에는 시어머니가 진 3만 위안의 빚을 갚아 주기도 했다. 이렇게 좋은 여자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그녀의 시할머니는 신위 친정엄마에게 말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다 우리 집이 좋은 사람을 며느리로 맞았다.”고 한다고 전하면서 “당신의 집안은 정말로 좋아요.”라고 거듭 말했다. 시댁의 시할아버지는 더욱 대법을 지지하고 인정한다. 나는 한평생 무엇도 믿지 않고 오직 파룬궁만 믿는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생생한 실증적 사례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누가 믿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 마을 사람들은 대법을 다 인정한다.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 8명에서 10명이었는데 그 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법을 얻었다. 아직 TV에서 유언비어를 날조하는 것을 믿는 마을 사람에게 우리는 이런 일을 이야기해준다. “‘텐안먼 분신자살사건’도 가짜인데 중공정부를 믿을만한 가치가 아직도 있는가!”

그러나 단순히 ‘파룬따파가 좋다’고만 알고 있으면 안 된다. 사부님께서 사람을 많이 구하라고 하셨으니 그러면 우리는 많은 사람에게 진상을 똑똑하게 알려야 한다. 우리 마을의 형님은 노 수련생으로 법에 대해 상당히 확고하다. 박해가 시작된 지 그 몇 년, 형님은 채소를 팔며 진상을 알렸다. 그녀는 정정당당하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어느 마을 사람이라고 말하고 주변의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진상을 전부 알렸다. 우리는 그런 형님을 따라 배워서 함께 소책자, 션윈 CD 등 각종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집집이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우리 마을 사람에게 다 알린 후 우리는 또 다른 인근 마을로 가서 알렸다. 우리는 우리가 체험한 사례를 들려주며 대범하게 여러 사람에게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알려줬다.

또 흐리멍덩한 사람이 우리를 해치기 위해 고발하려고 해도 우리가 만류하면 고발하지 않았다.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멀리서 여기까지 와서 우리가 무엇을 바라겠는가, 단지 여러분이 복을 받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한다. 솔직히 말하면 좋은 사람을 해치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나는 이 ‘어림없는 일’을 말해 보겠다. 한번은 몇몇 경찰이 우리 마을의 형님을 납치하려고 형님 집으로 차를 타고 들이닥쳤다. 그러나 경찰이 자동차를 형님 집 정원 입구에 세워 놓고 출입문을 찾으려고 했으나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경찰이 소리를 지르며 “왜, 이 집은 앞문을 옮겼는가?!”라고 말했다. 이런 경찰의 거동을 보게 된 이웃 사람이 재빨리 형님에게 전화로 알려줬다. 형님은 ‘나의 마음은 똑바르고, 경찰은 나쁜 일을 하면 안 되고, 좋은 사람을 붙잡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결과 경찰은 그녀의 정원 앞에서 뱅뱅 돌기만 하면서 출입 대문을 찾지 못하고 반나절이나 있다가 헛수고만 하고 그만 돌아갔다.

지금 부근 마을의 사람은 다 우리 마을에 적지 않은 사람이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어느 장소에서 ‘파룬따파(法輪大法)’ 진상자료를 줍게 되면 “이것은 모모 마을에서 배포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시간이 길어지자 많은 사람은 모두 진상자료 보기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우리 마을의 행복한 일을 그들은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장발표 : 2013년 5월 2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언행으로 법을 실증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5/27/2742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