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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퇴만 하면 사망하지 않는가?

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추실(秋實)

[밍후이왕] 오전에 한 노년 수련생의 집을 방문했다. 우리는 다 한 지역 수련생이지만 법리의 차이 등 원인으로 2년 전부터 그 수련생은 단체 법 공부에 참가하지 않고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일체 활동을 중지했다. 단지 집에서 자신을 ‘착실히 수련(實修)’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와 만날 기회가 적었다. 이번에 방문하니 며칠 만나지 않아 그와 친근해졌다. 물론 그는 이전처럼 끊임없이 자신이 ‘심층의 법리’를 깨달은 후에 전문적으로 집에서 착실히 수련하는 도리를 말했다. 진상을 알리는 것은 다 법을 파괴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해치고 자신을 해친다고 말했다. 이런 것과 일부 관념은 매번 그와 만날 때, 그가 사오(邪悟) 한 것으로 반드시 말하는 것이다. 그와 교류하고 쟁론해도 듣지 않는다. 그리하여 더 쟁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상을 알리는 이 한 점에 관해 나는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바로 삼퇴(三退)의 작용이다.

이번에 그는 진상을 알리고 삼퇴 하는 일을 말했는데 이런 것을 말하면 소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부정적인 작용을 한다고 말했다. 몇 년 전 그는 한 손위 친척을 삼퇴 시켰다고 한다. 이 친척은 삼퇴 한 지 얼마 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또 한 노년 수련생이 손아래 친척에게 삼퇴를 권했다. 이 노년 수련생이 친척 중에서 위엄과 명망이 있었으므로 그 친척은 흔쾌히 삼퇴를 받아들이고 또 수련생을 도와 다른 친척 한 분을 삼퇴 시켰다. 그러나 그 손아래 친척은 삼퇴 후 1년도 되지 않는 시간에 뜻밖에 요절해, 노년 수련생은 한때 곤혹스러워했다.

이런 현상은 있다. 그러나 결국 극히 적다. 사람마다 인연은 다 극히 복잡한데 어찌 천편일률로 볼 수 있는가? 이런 현상이 나타남은 확실히 그 심층의 근원이 있다. 우리는 어찌 표면 현상에 의해 삼퇴를 탓하면 되는가? 내 생각에 사람은 복잡하고 사망 원인은 더욱 번잡하다. 사람마다 업력과 인연 등이 구체적으로 다르고 삼퇴의 심태가 다르고 삼퇴의 표현도 다르고. 그리하여 아마 각종 결과가 있을 수 있다. 어찌 개별적인 사례로 삼퇴를 권해 사람을 구하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가? 무엇이 사람을 구하는 것인가? 구도되는 사람이 중공의 희생자로 되지 않는 것이고 그의 생명이 빛나는 미래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확실히 많은 사람은 이 때문에 역시 세간에서 큰 선과(善果)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우리가 기점을 바로 잡으면 우리의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아울러 밍후이왕을 보면 삼퇴 후 복을 얻은 사례가 허다하다. 많은 사람은 재난에서 상서로움 조짐을 보였고 장사도 불티나게 잘됐고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좋은 소식이 찾아오고 가정 모순이 완화됐다. 우리는 이런 대량의 사례를 아랑곳하지 않을 수 없으며 단지 개별적인 사례로 왜곡해서는 안 되고 자신이 나가서 진상을 알리지 않는 이유로 삼으면 안 된다. 또 이런 사유로 나오지 않는 이는 그것을 집착심을 제거하지 못하는 구실로 삼으면 안 된다.

법리에서 우리는 마땅히 인식해야 하는데 속인은 삼퇴를 했어도 대법을 수련한 것과 차원이 다르다. 설령 대법을 배운 사람도 정진하지 않고 일부 근본적인 집착심을 철저히 닦아버리지 않으면 여전히 나이가 되면 사악에 틈을 타 육신이 사망하는 문제가 존재할 수 있다. 하물며 단지 삼퇴를 한 속인이랴? 사부님의 ‘호주 수련생에 대한 설법’에서 나는 이해했는데 한 속인이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하면 그는 바로 미래에 속하고, 인류 대도태가 오기 전에 그는 남게 된다. 만약 한 생명이 중공 사당이 좋다고 하고 우주 대법을 반대하면 대도태 때 도태될 대상이며 오직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 사부님께서는 여태껏 한 속인이 삼퇴만 하면 이 사람이 세간에서 보험에 든 것처럼 육신이 사망하지 않는다고 하시지 않았다.

동시에 죽음에 대한 개념은 마땅히 더욱 깊은 한 층의 인식이 있어야 한다. 속인 육신의 사망은 이 생명이 진정으로 죽는 것과 구별해야 한다. 만약 이 생명이 진정으로 진상을 알아 내심에서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법을 옹호하면, 설령 어떤 원인으로 육신이 사망해도 이 사람의 진정한 생명은 죽지 않는다. 그는 틀림없이 좋은 귀속이 있고 절대 지옥에 떨어지지 않으며 역시 대도태 때 남길 수 있는 생명이다. 반대로 되면 백 분의 백 지옥으로 떨어지고 줄곧 진정한 생명이 사망할 때까지 그렇다.

그 외 나는 인식했는데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킬 때 말을 조심해야 하고 너무 과하게 말하면 안 된다. 단지 삼퇴 하면 복을 받을 수 있고 평안을 보장할 수 있으며 천멸중공 때 사당에 희생자로 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한다. 사람에게 삼퇴를 하면 죽지 않는다는 오해를 주면 안 된다.

본문은 그런 수련생을 겨냥해 말하는 것이고, 대법제자의 사이트를 빌어 일부 유사한 관점이 있는 수련생과 진일보 교류하고자 하며 동시에 이런 수련생이 법 공부를 많이 하기를 바라고 법으로 자신이 ‘깨달은’ 법리를 법으로 옳고 그릇을 가늠하며 자신이 다른 공간에서 온 교란을 받아 흐리멍덩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빨리 깨어나라, 사부님께서는 최근 ‘가짜 경문을 돌려보는 것이 바로 난법(亂法)이다’의 평어에서 이미 명확히 말씀했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며 다음 일보는 온다고 하면 바로 오게 된다.” 다시 걸어 나오기를 바라고 사부님께서 하라는 3가지 일을 잘하고 사람을 많이 구하고 세간에 내려오기 전의 서약을 지키자.

문장발표: 2013년 5월 2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5/26/2743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