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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비고(悲苦) 속세의 눈물, 사존 구도의 은혜(상)

글/ 광둥 대법제자 리량(李亮)

[밍후이왕] 수련은 매우 엄숙한 일이다. 이런 고험은 줄곧 있으나 매번 나는 대법으로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하고 일에 부딪히면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의 좋지 않은 습관을 억제하고 좋지 않은 마음을 닦아버릴 수 있었다. 이렇게 되자 자신의 심성도 정말로 매우 크게 제고됐다. 후에 상관이나 기타 사람들이 비평하거나 자신을 원망하는 일에 부딪혀도 화내지 않고 웃고 지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명리를 아주 담담하게 봤을 때 어떤 일이든 모두 순리를 따르고 다투지 않고 따지지 않게 됐다. 정말로 신기했다. 자신이 심성을 제고한 후 주위 인간관계는 자연적으로 개선됐다. 특히 엄격하게 나를 비평하던 그 상사는 나의 커다란 변화를 보고 “너 같은 이런 완고한 성격을 고칠 수 있는 이 대법은 정말로 대단하다. 내게도 책을 좀 보여주라.”라고 했다. 이렇게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도 대법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 본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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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합니까!

이 인터넷 교류회를 빌어 18년 동안 대법을 수련한 자신의 심득과 체득을 말해보려고 합니다. 부당한 곳은 여러분이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허스.

18년 동안 대법을 수련한 나의 경력을 돌이켜보면 굴곡의 길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모두 사부님의 무한하신 자비로 마음을 다하여 보살펴주신 것이고, 매번 아슬아슬한 장면은 모두 사부님의 비할 바 없는 법력으로 위험에서 벗어나 무사하게 된 것이다. 매번 사부님을 회상하면 하늘가가 멀지 않고 세월이 춥지 않고 마음속에 광명과 지혜가 가득 찬 것 같았다. 지금 정법은 거의 종결 단계에 가까워졌다. 나는 더욱 노력해서 3가지 일을 잘하고 하나의 누락도 없이 모든 집착을 없애고 진정으로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

1. 비고(悲苦) 속세의 눈물, 사존 구도의 은혜

나의 일생에는 전설이 가득했다. 어머니가 나를 출산할 무렵은 화창하고 꽃피는 봄날이었다. 아버지가 군인이었고 당시 부대의 제도가 매우 엄격했기 때문에 부대 안에서 가족이 함께 살 수 없어 어머니는 할 수 없이 고모 집에서 출산을 기다렸다. 한번은 저녁밥을 먹고 어머니는 집 근처의 작은 길에서 산책하고 있는데 도포를 입고 손에 총채를 든 도사를 우연히 만났다. 그 도사는 어머니를 보더니 발걸음을 멈추고 어머니에게 “새댁, 내가 관상을 한번 봐주겠다.”라고 했다. 어머니는 “공산당원이에요. 미신을 믿지 않으니 가는 게 좋겠어요!”라고 하자 그 도사는 “다른 사람은 나를 청해서 관상을 봐 달라 하고 점을 쳐달라고 한다. 보통 받는 비용은 아주 높지만 새댁한테는 한 푼도 받지 않겠지만 반드시 들어봐야 한다.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라!”라고 했다. 그 도사가 굳이 봐주겠다고 해서 어머니는 인연을 따랐다. 그 도사는 눈여겨 어머니를 몇 번 보더니 “새댁, 금년에 큰 재난이 있을 것이요!”라고 했다. 어머니는 아주 불쾌해서 “임신하고 있는데 그런 불길한 말로 사람을 놀라게 하시네요, 그럼 말해보세요. 어떻게 막아야 합니까?”라고 했다. 그 도사는 “배 속의 이 아이는 내력이 대단하다. 그녀는 너의 위기를 막을 수 있다.”라고 하자 어머니는 더욱 어리둥절해졌다. 아직 출생하지 않는 이 아이가 어떻게 위기를 막을 수 있는 은인이 되겠는가. 도사는 “지금 이 운동은 살기가 있어 재난을 당하게 된다. 이 좋지 않는 직업만 포기하고 집에서 정성을 다하여 아이를 키운다면 모든 재난을 막을 수 있다.”라고 했다. 어머니는 더욱 얼떨떨해졌다. 어머니는 당시 국가 간부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공무원인데 어찌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직업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 도사는 어머니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고 중한 어조로 “생명을 가지겠는가 아니면 직업을 가지겠는가, 스스로 잘 생각해 봐라. 내가 말한 것은 참말이다!”라고 했다.

후에 어머니는 그 도사의 말을 무시하고 출산 후 한 달도 되지 않은 28일 만에 농촌으로 내려가 대약진, 인민공사 운동을 한다고 하면서 서둘러 젖 떼는 주사를 맞고 유모를 구해 나를 외할머니에게 던져주고 혼자서 운동하러 갔다. 모든 것이 도사가 예언한 것처럼 어머니는 운동하는 중, 신문에 어머니를 비평하는 글이 실려 매우 큰 정신적인 타격을 받았고 잇따라 혼자서 밤길을 걸을 때 묘혈에 빠져 넘어진 충격으로 단번에 미쳤다. 병이 아주 심해 가족도 알아볼 수 없어 성 소재지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아버지 가족들은 아버지를 부추겨 어머니와 이혼하라고 했다. 다행히 외할머니가 몇 달 안 된 귀여운 나를 안고 가서 아버지를 권유해서야 이 혼인이 유지됐다.

어머니의 병이 나은 후 직장에 복귀했는데 어머니는 당 문화의 독해를 매우 깊게 받아 일벌레고 강한 승부욕이 있어 몇 년 만에 또 직장의 장이 됐다. 그러나 1966년 문화대혁명 때 또 ‘주자파(走资派)’로 만들어 높은 모자를 씌우고 조리 돌리고 매 맞고 규탄당했다. 어머니는 한때 꽁하게 생각하여 자살하겠다고 야단이었다. 또 다행히 외할머니가 말렸다. 그러나 조반파(单位造反派)들은 또 우리 한집안 식구를 땔나무를 쌓아두는 농촌의 한 초가집에서 살라고 했다. 불행하게 나는 급성 전염성 뇌막염에 걸려 40도 고열이 나서 7일 내내 혼미했고 의사도 살수 없다고 했지만 나는 기적같이 살아났고 아무런 후유증(바보로 되지 않음)도 없었다. 어머니는 나를 돌봐줬기 때문에 그 엄혹한 투쟁을 피했다. 후에는 정상적인 일로 회복됐다.

나는 어릴 때부터 천목이 열려 다른 공간의 많은 정경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선인 선녀, 그리고 저령 귀신 같은 것, 그리고 예감공능도 있었고, 말한 것이 아주 맞아들었다. 외할머니는 자주 한 도관에 가서 100여 세의 도사를 공양했는데 나를 자주 데리고 가서 도사에게 관상을 봐달라고 했다. 도사는 어린 아이가 천목이 열리면 잘못하면 곳곳에 함부로 말할까 봐 경을 읽어 나의 천목을 닫아줬으나 이따금씩 좀 볼 수 있었다.

부모가 모두 지도간부였기 때문에 집안의 생활은 비교적 넉넉했다. 나는 군대에서 제대한 후 국가기관에서 공무원으로 배치되었다. 후에 소꿉장난하던 동창과 결혼하고 아들을 하나 낳았다. 보기에 행복하고 원만한 생활이지만 운명은 언제나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남편은 외국에 파견되어 일했는데 조난당하여 임지에서 죽었다. 그때 아들이 8살밖에 되지 않았다. 부부 금슬이 매우 좋았던 나는 한동안 극심한 고통 속에서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해 정신이 거의 붕괴될 뻔 했고 평소에 있던 병도 심해졌다.

사부님의 광저우 제3기 친수(親授)반에 참가하다

20세기 90년대 초, 당시 기공 열기가 이미 전국에서 근 20년 동안 성행했다. 기공계 내부에도 아주 복잡한 국면이 형성됐고 일부 가짜 기공, 허위 기공도 인간을 혼란시켜 사람들도 진짜 기공, 가짜 기공을 분간할 수 없었다.

가족과 친구들은 내가 빨리 남편을 잃은 고통 속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적지 않은 기공을 내게 소개해주면서 나보고 배우라고 했다. 나도 톈허(天河) 체육센터에서 개최한 전국 기공박람회에 참가해 일부 기공사가 현장에서 사람에게 병을 치료해주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그 기공사들의 생김새는 보기엔 좀 옹졸했고 대다수 얼굴이 까맣고 그들에 대해 나는 호감이 없었다. 게다가 사람에게 병을 치료해 줄 때 환자가 바닥에서 대굴대굴 뒹구는 모습이 매우 편안하지 않아 줄곧 어떤 문파에 가서도 기공을 배우지 않았다. 아마 인연이 없었을 것이다.

1993년 4월, 파룬궁(法輪功)은 내가 사는 도시 광저우에서 전해졌다. 위대하시고 자비로우신 사부님은 ‘오양함곡 췌우초정(五羊銜谷,萃于楚庭)’의 길상 신화가 있는 아름다운 남국에 오셔서 공을 전하시고 설법하시자 양성(羊城)의 천지는 순식간에 밝아졌다. 남편의 생전, 한 전우는 1993년 10월 광저우 제1기 파룬궁 학습반에 참가했다. 1994년 1월, 마침 제3기 파룬궁 학습반을 개최할 때가 되자 이미 법을 얻은 그 부부는 나를 보러 왔는데 그들은 파룬궁은 고덕 기공이고 사부님의 실력이 대단하다고 하면서 지금 반을 개최하고 있는데 나보고도 가서 공을 배우라고 권했다. 이상하게도 아마 인연이 된 것인지 나는 곧 동의했다. 그날 저녁 나를 데리고 표를 사고 강의를 들었다.

처음으로 사부님을 뵙다

그날 저녁 광저우 총공회 강당에 도착했을 때 이미 사부님께서 설법하신 이튿날이었다. 강의를 하시기 전에 강당의 문 옆에서 ‘파룬궁’의 책, 사부님의 법상과 파룬 휘장을 판매하고 있어 나도 ‘파룬궁’ 책을 한 권 샀다. 많은 수련생이 줄을 서서 사부님의 사인받고 있는 것을 보고 나도 흥미진진해서 걸어가 줄을 섰는데 곧 강의할 시간이 된 것을 보고 마음이 급해 대오 앞에 끼어들어 사부님께 “리(李) 선생님, 저를 도와 사인 좀 해주세요!”라고 했다. 원래 사부님께서는 바쁘게 사인하고 계셨는데 나의 말을 듣고 머리를 들고 나를 한번 보시더니 “내 손에 아직 사인하지 못한 것이 이렇게 많고 곧 강의할 때가 됐다. 오늘은 사인해 줄 수 없겠다.”라고 하셨다. 가까이에서 사부님을 뵈었는데 마치 아주 낯익은 것처럼 아주 친절해 놀랐다. 사부님의 용모는 매우 인자했을 뿐만 아니라 영기가 넘쳐흘렀고 피부도 매우 보드랍고 매끈했고 아기의 피부보다 더욱 부드러웠고 아예 땀구멍이 있다는 것을 보아낼 수 없으며 불그레하셨다. 후에 법, ‘베이징(北京)국제교류회설법’을 배운 후에야 우리를 구도하시는 사부님께서는 우리 생명의 내원, 생명의 구성과 다르시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사부님께서는 43세라고 말씀하셨지만 보기엔 20여 세의 모습이었고 정말로 젊어 보였다.

강의 중 휴식하시는 시간에 그 전우는 대회의 근무 인원을 통해 역시 나의 책에 사인해 주시라고 사부님께 청했다. 나는 매우 기뻤다. 후에 법을 배운 후에야 사부님께서 출판하신 모든 책, 글자마다 모두 사부님의 법신이 있고 모두 같은 법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법을 전하시는 초기, 사부님께서는 중생을 구하시는 국면을 열기 위해 노고를 마다하시지 않고 수련생들을 위해 사인해주시고 병을 치료해주셨다 정말로 불은호탕(佛恩浩蕩)이로다! 회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우리의 좌석은 위층에 있어 사부님을 똑똑하게 볼 수 없었지만 사부님께서 설법하시는 목소리는 매우 침투력이 있어 마디마다 모두 우레가 치는 듯 나의 심령을 흔들었다. 당시 사부님께서는 일반 기공의 병을 없애고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뿐만 아니라 얕은 데로부터 깊게 인체 수련을 말씀하시고 물질의 존재와 각 공간, 생명 및 우주 등 심오한 법리를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사부님께서는 무량한 대지혜가 있었다. 설법하실 때 여태껏 원고를 사용하시지 않았으며 말씀하시는 것이 그대로 문장이 됐다. 설법하실 때 언제나 앉아 있는 수련생의 접수능력에 따라 수련생이 명백하도록 진정으로 법을 얻도록 설법하셨다. 설법하시는 중 수련생의 사상활동에 매우 주의하셨고 어떤 때 설법하시다가 갑자기 중단하시고 수련생 사상 속에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석해주셨다.

사부님꼐서 나의 신체를 정화해 주시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법을 좀 듣더니 혼혼하여 졸렸고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옆의 전우가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못했다. 연속 이틀 동안 이러했다. 신경쇠약이 있어 평소 집에서 잠을 잘 자지 못했으나 여기에서 아주 달게 잤다. 후에 사부님께서는 ‘전법륜(轉法輪)’에서 해석하셨다. 원래 내가 편두통과 신경쇠약이 있었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조절해야 하셨던 것이었다.

나흘째 나는 정말로 원기 왕성해졌다. 머리도 아프지 않았고 허리도 아프지 않았으며 병으로 인한 고통이 없었으며 온몸에 힘이 생겼다. 나는 전우에게 “사부님께서 ‘수련은 고생하고 소업(消業)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내일 차로 마중오지 않아도 된다.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가면 된다.”라고 했다. 내가 자궁내막증과 난소종양이 있어 원래 응석받이로 자라서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지금 다 나았으니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강의를 듣는 장소는 집과 좀 멀리 떨어져 있어 50여 분을 타야 했고 저녁에 자전거를 타도 무섭지 않았다. 가족들은 모두 신기해했다. 무슨 기공이 이렇게 신기한 것인가?! 단번에 나를 이렇게 강하게 만들었는가!

사부님께서 수련생들에게 천목을 열어주시다

후에 사부님께서 천목에 관하여 설법하실 때 여러분을 도와 천목을 열어주신다고 우리보고 손을 내밀고 파룬(法輪)이 손바닥에서 도는 것을 봤는지 물으셨다. 어떤 사람은 봤다고 어떤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보지 못했으나 손바닥이 매우 뜨거웠다. 그러나 후에 사부님의 머리 위에 백색의 투명한 빛의 거대한 기둥이 지붕까지 통해있는 것을 봤다. 처음에는 ‘극장에서 사부님을 위해 비쳐준 이동식 스포트라이트인가.’라고 생각하고 아래층의 무대 앞까지 가서 봤지만 천정에는 전등이 없었다. 다른 수련생에게 물어보자 모두 나보고 천목이 열렸고 사부님의 공기둥(功柱)을 봤다고 했다. 많은 수련생도 사부님의 공기둥을 봤기 때문이다. 다만 색깔이 금색 투명한 것이었다.

마지막 날, 사부님께서 설법을 다 하신 후 수련생들의 신체를 청리해주신다고 말씀하셨다. 전체 수련생에게 일어서라고 하시고 발 구르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먼저 왼발을 구르고 후에 오른발을 구르고 잇따라 두 발을 연속 쿵쿵 구르라고 하셨다. 당시 여러분이 발을 구를 때 사부님께서 많은 흑기 병기, 그리고 좋지 않은 부체 등 사람을 해치는 영체(灵体)를 청리해주시는 것을 본 것 같았다. 마치 더러운 쓰레기 같은 것이 사람 몸에서 흩어져 떨어지는 것과 같았다. 또 수련생 주위에 많은 사부님의 법신께서 바쁘게 수련생들의 신체를 청리해주시고 수련하는 모든 치지(氣機)를 넣어주시고 수련생의 머리 위에, 몸에 무슨 설비를 장치해주시는 것을 봤다. 마치 안정설로(安鼎設爐), 채약연단(採藥煉丹)과 같았다.

사부님께서 수련생들을 위해 지불하신 것이 너무 너무 많다

제3기 학습반 기간에 설법을 다 하신 후 사부님께서는 강단에서 대수인을 하셨다. 모두 매우 아름답고 보기 좋다고 하면서 배우고 싶다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이것은 우주 층층의 중생과 설법하고 있는 것이므로 집착하지 말라!”고 알려주셨다.

며칠 동안 사부님의 학습반에 참가한 후 나는 마치 환골탈태한 것처럼 사람이 완전히 변했다. 하나는 신체가 정화되어 온몸이 가벼워졌고 병이 없게 됐다. 주요는 정신이 좋아지자 얼굴에 고민과 슬픔이 모두 없어지고 마음속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비록 당시 사부님께서 설법하신 많은 내용을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 사부님께선 너무 대단하시고 박대하고 심오한 도리를 말씀하셨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원래 간절히 찾던 생각해도 명백하지 못한 문제,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로 가려 하는가, 사람이 세상에 온 진정한 목적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사람이 왜 이렇게 고난이 많은가?’를 사부님께서 설법하실 때 모두 대답해주셨다. 사람의 진정한 생명은 우주 고층에서 온 것이고 사람이 세상에 내려온 진정한 목적은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수련을 위한 것이며 반본 귀진을 위한 것이다. 나는 마치 무슨 신기한 힘에 폭발되어 머리는 혈이 열린 것처럼 깨닫기 시작했고 전체가 텅 빈 것 같았다. 무슨 남편을 잃은 고통, 무슨 인생의 고생은 모두 사라졌고 마음속은 광명과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 암암리에 꼭 사부님을 따라 잘 연마하고 진정으로 인간 고해를 벗어나 자신의 진정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소원을 빌었다.

후에 노 수련생의 말에 의하면 사부님께서 파룬궁 친수(親授)를 개최하실 때 미리 많은 공, 그리고 큰 파룬을 내보내 회장을 꾸며야 하며 그리고 사부님께서 또 많은 작은 파룬을 내보내 수련생을 위해 신체를 청리해주시고 신체를 조절해주셔야 하며 또 사부님의 법신은 수련생을 위해 많은 일을 해주시며 그 공(功)이 돌아올 때는 모두 오염됐기 때문에 또 공을 씻어야 한다고 했다. 사부님께서 당시 이 공이 몸에 돌아올 때는 매우 힘들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듣고 속으로 매우 괴로웠다. 사부님께서는 전국을 돌아다니시며 반을 개최하셔야 했고 생활이 매우 간고하셨다. 보통 라면과 즉석 음식을 드셨다. 과거 수련 중 사부는 모두 제자가 공양하고 제자는 가장 좋은 물건으로 사부를 공양해야 했다. 그러나 자비하시고 위대하신 사존께서는 여태껏 제자에게 한 푼도 달라고 하시지 않았고, 다만 사람들의 선을 향하는 마음만 가지셨다.

기억엔 사부님께서는 법 중에, “나는 당신들만 위해서가 아니라, 나는 모든 생명을 위해 온갖 걱정을 다했으며 나는 모든 생명을 위해 거의 나의 일체를 소모하였다. 물론 이런 소모는 당신들이 이해하는, 그런 없어졌다는 것이 아니다.” [1]라고 말씀하신 것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제자는 어떻게 해도 사부님의 구도의 은혜를 보답할 수 없는 것이로다!!!

사부님의 광저우 제4기 전법(傳法)반에 참가하다

1994년 7월 19일~27일, 사부님께서는 광저우에서 제4기 파룬궁 학습반을 개최하셨다. 이번 학습반 때 마침 8살 아들이 여름방학 기간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도 표를 사주고 함께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다. 내가 일찍이 표를 샀기 때문에 자리가 매우 앞이었다. 아들의 좌석은 아래층 첫 줄이었고 나의 좌석은 두 번째 줄이었다. 이렇게 사부님을 똑똑하게 볼 수 있었다. 후에 주최 기관(성 기공협회)은 우리에게 성의 높은 간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해서 작은 걸상을 들고 와서 아들에게 옆에 앉아 설법을 들으라고 했다.

사부님의 이번 설법은 이전과 좀 달랐다. 제3기 학습반에서 사부님께서는 주로 기공의 형식으로 설법하셨고 많은 불교 이야기를 하셨는데 이번은 달랐다. 사부님께서는 시작해서부터 진정으로 고층차로 사람을 이끌고 사람을 구도하러 왔다고 말씀하셨으며 계통적으로 설법하셨다. 사부님께서는 “이전 몇 기 학습반에서 우리 광저우 수련생은 마치 내가 뭘 말하고 있는가를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아서 후에 나는 그들의 머리를 폭발시켜 지금 그들은 모두 내가 뭘 말하고 있는가를 알아들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금방 시작할 때 많은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전하시는 것이 우주대법이고 진정한 불법임을 몰랐고 많은 사람은 병을 치료하겠다, 천목을 열겠다, 혹은 이론을 들어보겠다는 등의 마음을 품고 들어 온 것이지만 후에 모두 어떻게 된 일인지 명백해졌고 어떻게 자신을 연마해야 하는가를 알았고 어떻게 자신의 심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는 여름이었기 때문에 강당 안에 사람이 많아 매우 더웠다. 어떤 수련생은 수업시간에 부채질하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생에게 부채질하지 말고 마음이 조용하면 자연적으로 시원해지고 청량한 바람을 느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또 여러분에게 일어날 때 의자를 ‘파파’ 소리 나게 하지 말고 수업시간에 지각하지 말라고 하셨으며 지각하면 다른 사람이 강의 듣는 것에 영향을 준다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 간곡하게 타이름이 마치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같았고 지금 회상하면 여전히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사부님께서는 멀리서 어머니의 심장병을 치료해주셨다

이번에 학습반에서 사부님께서는 또 여러분에게 신체를 청리해줬다. 모든 사람에게 한 가지 병을 생각하고 그리고 사부님의 구령에 따라 발을 굴러서 그것을 없애자고 하셨다. 사부님께서 구령을 부르시자 모든 사람은 일치하게 ‘쿵’ 굴렀다. 이때 아래 어떤 사람이 아직 잘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들으시자 사부님께서는 또 한 번 하자고 하셨다. “‘쿵’ 소리와 함께 여러분은 또 일치하게 발을 굴렀다. 후에 또 노 수련생들은 주의하라, 오늘 너희들은 덕을 봤다. 당신의 신체는 이미 청리해 줬다. 가족의 한 사람의 병을 생각할 수 있다. 오늘 내가 그들에게 병을 없애주겠다.”고 말씀하시자 나는 어머니가 심한 심장병이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생각했는가?”라고 물으시자 수련생들은 준비됐다고 대답했다. 순간 사부님께서는 됐다고 말씀하셨다.

후에 집에 돌아가 어머니에게 이 일을 말해줬다. 어머니는 그날 저녁 정말로 심장 부위가 좀 이상했고 빛이 지나쳐 간 것 같았고 가슴 속이 후끈후끈 했었다고 말했다. 후에 어머니는 병원에 가서 검사했는데 심장병은 정말로 다 나았다. 그러므로 어머니도 나와 함께 대법을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후에 또 대법을 고향까지 전했으며 현지 파룬따파 보도소의 책임자로 됐다.

사부님께서 내 아들에게 공능을 가지해 주시다

3, 4일 수업 후 사부님께서는 수업시간에 수련생에게 심득체득을 쓰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감수가 매우 깊었기 때문에 긴 체득문장을 썼다. 사부님께서 수업 사이의 휴식시간에, 나는 8살 아들을 데리고 무대 오른쪽으로 올라가 사부님께서 조용히 앉아 계신 걸 보고, 다가가 낮은 소리로 “리 선생님, 심득체득의 한 편의 문장을 썼는데 봐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말하고, 아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가져다 올렸다. 사부님께서는 매우 기뻐서 아들의 머리를 몇 번 만지시더니 “이 어린이, 좋다 좋아.”라고 하셨다.

후에야 사부님께서는 아들에게 매우 많은 것을 주셨다는 것을 알았다. 원래 아들이 공부하는데 매우 둔했고 자주 병도 걸렸다. 후에 신체도 매우 튼튼해졌고 공부하는데도 매우 총명해져 줄곧 반에서 우등을 했고 중점 중학교에 추천되어 입학했다. 그리고 아들이 평소에 법 공부하는 중 체득을 말할 때 대법에 대한 깨달음이 매우 깊었고 어린 어른 같았고 심성도 매우 잘 지켰다. 어린 나이지만 손해를 봐도 따지지 않았고 성격이 너그럽고 침착했다. 후에 내가 박해받아 감옥에 들어갔을 때 그는 혼자서 생활하고 공부했고 아무런 원망도 후회도 없었으며 중점대학에도 붙었으며 후에 또 성적이 1등으로 연구생이 됐다.

사부님, 감사드립니다!

후에 수업시간에 공을 가르쳐 주실 때 사부님께서는 특히 강단에서 내려오셔서 내 옆에서 연공동작을 바로잡아 주셨다. 당시 마음속에는 말할 수 없는 감동으로 눈물이 났다. 사부님께서 마침내 많은 중생 사이에서 인연 있는 제자를 찾으신 듯한 느낌이었다. 그날 저녁 꿈에서 사부님의 신체가 매우 신성하고 높고 컸다. 마치 높은 산 같았고 자신은 사부님 몸속의 개구쟁이, 어리고 어린 영해(嬰孩) 같았다. 그때 삼계의 제일 상층까지 봤는데 역사 고층 공간에서 내려와 사람을 구도하려는 불, 도, 신을 많이 봤다. 그들은 구도의 이 일을 위해 매일 회의했고 쟁론이 그치지 않았다. 마치 지반을 쟁탈하는 것처럼 지구 그 지역은 그들의 인종이 있어야 하는 곳이고 그 사람들은 그들이 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마치 사부님께서 삼계에 내려가시는 것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삼계는 그들이 구도하면 충분하고 사부님 이렇게 높은 신이 구도하시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 사부님께서 하시려하는 것은 더욱 큰일이다. 우주의 법을 바로잡는 이렇게 큰일이다.

내가 금방 법을 배웠기 때문에 잘 이해하지 못해 이 꿈이 무슨 의미인지를 몰라 그렇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 후에 법을 깊게 배우고 수련한 후에야 명백했다. 이 특수한 시기에 법을 얻고 수련자가 된 것은 사부님과 얼마나 큰 인연인가! 하늘에서 모두 사부님과 서약을 서명한 것이고 조사 정법 하러 온 것이다. 그러므로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로 된 것은 얼마나 영광스럽고 그 책임은 또한 얼마나 중대한 것인가!

사부님을 뵙고 법을 얻은 이 시간은 내 인생 중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됐고 이후 내가 수련하는 신념을 증가시켰다. 후에 비록 커다란 마난과 고통에 부딪혔을지라도 수련을 포기하지 않고 확고하게 걸어왔다.

2. 실수(實修)하고, 느슨하지 않고 환상을 깨고

사부님께서는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해 내어야 수련이로다” [2]라고 말씀하셨다.

수련하기 전에 나는 언제나 자신이 마음이 착하고 비교적 대범하고 탈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성심으로 부모와 시부모에게 효도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자신은 남편이 살아있을 때보다 시부모를 더욱 잘 보살펴드려 친정어머니마저 질투해 “넌, 너희 시부모님께 너무 잘한다. 이제는 너희 시동생에게 맡기고 이제 너 자신의 가정을 꾸릴 생각을 하라”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에게 “시부모님이 얼마나 불쌍해요, 백발의 사람이 머리 검은 사람을 먼저 보내는 것이 순리인데 남편을 대신해 효도를 좀 드리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요.”라고 했다. 평소에 친구들에게도 인색하지 않고 잘 배려해 주었다. 직장에 한 여 동료가 임신했는데 집이 멀어 점심시간에 휴식할 곳이 없어 그녀는 배가 커서 테이블에 엎드려 휴식하고 있는 것을 자주 봐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어, 그녀에게 우리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점심시간에 휴식하라고 했다. 나의 집은 직장과 10분 거리로 매우 가까웠다. 이런 일은 매우 많아 며칠을 말해도 모두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대법수련에 들어선 후,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법의 수련자에 대한 요구에 대조하면 자신은 너무 차이가 많다는 것을 느꼈고 자신이 세상일에 대해 집착이 매우 깊고 집착심이 매우 많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쟁투심, 허영심을 닦아버리다

장기적으로 사악의 당 문화의 세뇌를 받아 나의 쟁투심은 비교적 강했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무슨 일을 해도 언제나 뭇사람의 이목을 끌기를 좋아하고 이기려고 하여 자신을 괴시하려고 했다. 이것은 수련 중 없애야 하는 좋지 않은 마음이다. 그러면 사부님께서는 마난과 격렬한 모순 중에서 이 마음을 없애는 안배를 해주시는 것이다.

기억하건데 한번은 직장의 상사가 갑자기 나를 불러 1시간 동안 훈계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는 나에게 상사는 내게 죄명을 하나하나 씌워줬다. 상사의 동의도 없이 몰래 스스로 매체를 찾아 문장을 발표하고 이름을 날리려고 한다느니, 원고료를 벌려고 한다느니…… 상사를 무너뜨리려고 한다느니 등. 당시 고험이 왔다는 것을 의식하고 절대로 화내지 말자고 생각했다. 최근 정말로 신문사에 문장을 써 주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상사는 신문을 내 앞에 내던지면서 “아직도 변명하는데 이름까지 발표됐다.”고 했다. 내가 보니 한 보도의 서명란(落款处)의 정부 통신원의 이름 뒤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제야 그날 이 통신원이 한 활동의 정황을 알아보려고 내 사무실로 찾아와 그에게 자료를 좀 제공해줬다는 것이 생각났다. 뜻밖에 그가 문장을 발표할 때 감사하다고 나의 이름까지 써 넣었던 것이었다. 나는 이 정황을 또 상사에게 해명했지만 상사는 믿지 않았고 줄곧 거기서 화를 냈다.

당시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도 생각났고 자신이 이기려고 하는 습관이 비교적 강하여 마땅히 마난 중에서 이 마음을 없애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매우 편안하지 않았고 억울해 눈물이 갑자기 나왔다. 평소에 직장에서의 나의 표현은 언제나 우먼파워의 모습이었고 도리에 입각하여 끝까지 논쟁하였고, 여태껏 항복한 적이 없었다. 상사도 나의 이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울자 계속 말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무엇이 참음인가(何爲忍)’에서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번에 나는 억지로 참은 것이고 수련인의 요구와는 아직 먼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이전의 자신에 비하면 심성이 조금 제고됐다.

그러나 수련은 매우 엄숙한 일이다. 이런 고험은 줄곧 있으나 매번 나는 대법으로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하고 일에 부딪히면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의 좋지 않은 습관을 억제하고 좋지 않은 마음을 닦아버릴 수 있었다. 이렇게 되자 자신의 심성도 정말로 매우 크게 제고됐다. 후에 상사와 기타 사람들이 비평하거나 자신을 원망하는 일에 부딪혀도 화내지 않고 웃고 지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명리를 아주 담담하게 봤을 때 어떤 일이든 모두 순리를 따르고 다투지 않고 따지지 않게 됐다. 정말로 신기했다. 자신이 심성을 제고한 후 주위의 인간관계는 자연적으로 개선됐다. 원래 동료들은 내가 고자세를 취한다고 생각해 평소에 나를 상대하기 싫어했고 상사도 나에게 일을 시키기가 힘들다고 고민했다. 지금 동료들은 모두 나와 마음을 나누고 친구로 지내며 특히 엄격하게 나를 비평하던 그 상사는 나의 커다란 변화를 보고 “너 같은 아가씨는 원래 남들의 주목을 끌기 좋아하고 명리를 추구했다. 속담에 말하기를 강산은 바꾸기 쉬워도 타고난 본성은 바꾸기 어렵다는 것인데 지금 넌 성격까지 고쳤다. 무슨 신기한 힘이 개변하게 했는가!”라고 했다. 그녀는 내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다는 것을 알고 “너 같은 이런 완고한 성격을 고칠 수 있는 이 대법은 정말로 대단하다. 내게도 책을 좀 보여주라.”라고 했다. 이렇게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도 대법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나는 원래 명리를 추구하고 허영심이 강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사악한 당 문화의 세뇌로 나도 모르게 오염되었다. 중공 사악의 조직 체계는 언제나 그것들의 독제 권유와 인민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정신적 물질적 장려 조례를 만들어냈다. 무슨 선진공작자, 정신문명 적극분자, 공회 적극분자 등등…… 명목이 많았고 가지각색이었다. 국가의 재력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또 사람을 나쁘게 만들었으며 사람들을 유혹하여 조그마한 이익, 명을 위하여 다투게 하고 싸우게 했다. 사실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국가 공무원은 납세자가 부양하는 것이므로 마땅히 자신의 직위에서 책임지고 열심히 일해야지, 근본적으로 초과의 무슨 장려가 없다. 이렇게 나쁜 환경 속에서 당신이 앞다투지 않으면 당신은 낙오된다는 것을 표명하는 것이고 직장에서 남에게 무시당하고 승진하기도 매우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매번 연말 표창 때 나는 이런 표창장에 연연해 일할 때 마음을 다하여 노력했기 때문에 이전에는 해마다 많은 표창장을 받았다. 그러나 수련한 후 이 영광을 마음에 두는 허영심도 닦아버려야 할 좋지 않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 마난은 매우 괴상하게 왔다. 아들이 갑자기 4월 만우절에 나의 직속상관을 우롱했다. 그에게 일요일에 직장에 나가 잔업 하라고 했고 위의 상관이 통지한 것이라고 속였다. 사실 근본적으로 이런 일이 없었다. 그 직속상관은 자신이 속은 것을 알자 나에 대해 노발대발했다. 내가 시켰다고 우겨댔다. 내가 아무리 해명해도 그는 믿지 않았다. 이 일은 줄곧 연말 여러 사람이 투표하여 나를 ‘선진공작자(先進工作者)’로 뽑았을 때까지도 그는 여전히 앙심을 품고 있었다. 그는 또 그 허황한 일을 말했다. 상사도 존중하지 않는다는 죄명을 씌웠고 억지를 부려 내가 선진공작자로 평가되는 것을 반대했다. 이것은 나를 도와 집착심을 없애주는 것임을 알고 여러분에게 차분하게 ‘제 잘못입니다. 제가 아이를 잘 교육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아이를 잘 훈계하겠습니다. 저는 이번에 선진공작자의 조건에 부합되지 않으니 저의 이름을 추천하지 말아주세요.”라고 했다. 평소에 나는 나의 직속상관과 매우 좋은 관계였기 때문에 한동안 지난 후 나의 직속상관은 아주 미안해서 “내가 과했다. 밥 사주고 사과하겠다.”라고 했다. 괜찮습니다. 내가 잘하지 못한 것인데 마땅히 아들을 대신해 사과해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사실 법 공부를 통해 사람에서 벗어나 진선인(眞善忍)의 법리로 일을 가늠할 줄 알았고 사람과 사람 사이는 당신이 심성만 제거하면 무슨 관, 무슨 난도 모두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이 넘고 싶은가 싶지 않는가에 달렸고 넘고 싶으면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후에 사건의 발전도 매우 신기했다. 그 직속상관도 나에게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달라고 해서 봤다.

정을 닦아버리고 자비심을 연마해내다

수련하기 전에 나는 정에 대해 집착이 심했다. 특히 가족에 대해 나도 이전에 정에 시달려 신체가 허약하고 병이 많았다. 어릴 때에 외할머니가 키워주셔서 나는 외할머니에 대한 정이 매우 깊었다. 그러나 내가 입대한 후 갑자기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외할머니를 보지도 못해 마음속으로 줄곧 유감스러웠고 슬펐다. 결혼한 후 남편도 내게 매우 잘해줬으며 내 말을 거의 모두 들어줬지만 남편은 내가 35살 되는 해에 젊은 나이에 죽었다. 이 일 때문에 울어서 몇 번이나 쓰러졌고 병에 걸려 반년 동안이나 출근할 수 없었다. 후에 또 아이를 끔찍하게 사랑했다. 줄곧 보모를 두고 그를 돌보게 했고 직장에서 무슨 야외 활동이 있어도 아들을 돌보기 위해 거의 빠질 수 있으면 모두 빠졌다. 후에 상사는 야외 활동이 있을 때 내가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아들과 함께 나오라고 했다. 직장에서 유일하게 내가 이런 특수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수련 후 이런 사람의 정에서 나온 위사위아(爲私爲我)의 마음은 모두 없애야 하는 것이었다.

수련하기 전에 누구든지 죽은 남편의 이름만 말해도 속으로 견딜 수 없어 눈물을 참지 못했다. 법 공부를 통해 인간세상과 삼계도 모두 신이 만들어낸 미혹된 매우 낮은 공간이고 떨어진 사람이 고생하고 업을 갚고 수련하여 돌아가게 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세상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모두 생생세세 업력의 윤보이고 모든 정은 마력(魔力)이고 환상이다.

수련 후 법리는 비록 명백했지만 진정으로 이 정을 내려놓자면 정말로 뼈에 사무치는 고통의 과정이었고 어떤 때는 반복했다. 한번은 내가 가족에게 갑자기 남편의 생전 이야기를 하다가 참지 못하고 또 눈물을 흘렸다. 9살 아들(당시 그도 대법을 배웠음)은 오성이 매우 좋았다. “엄마, 엄마는 전생에 큰 장사꾼이었고 많은 아내가 있었는데 아빠는 그 생에서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아내였어요. 엄마가 나가서 장사하고 몇 년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아 아빠는 병에 걸렸고 엄마를 보고 싶어 눈물을 한없이 흘렸고 후에 죽었어요. 이생에 아빠는 눈물을 되받으러 온 것이고 임대옥(林黛玉)처럼 평생 눈물을 흘리게 하려는 것이에요. 속지 말고 다시는 울지 말아요.”라고 했다. 당시 듣자 나는 매우 놀라 아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외할머니가 가르쳐준 것이니?”라고 하자 그는 “내가 생각해낸 것이에요.”라고 했다. 인간의 모든 것은 거짓이고 진상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업력윤보며 누가 누구에게 빚을 졌으면 모두 갚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모든 고통, 모든 어려움, 질병도 포함해서 모두 인연관계가 있는 것이다. 아들도 깨달았는데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이 환상의 정은 벌써 내려놓았어야 했다.

자신이 노 수련생이고 더욱 많은 사람이 대법을 얻고 구도되게 하기 위해 보도원을 하기 시작했다. 보도원을 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아침, 저녁의 여유 시간이면 공원 연공장에 가서 무보수로 공을 가르쳐줘야 했고 특히 주말, 명절 공휴일 때, 보도원은 모두 대법 보도소가 없는 곳에 가서 법을 전하고 보도소를 건립해야 했다. 어떤 곳은 길이 멀어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보통 조건이 있는 수련생은 자비로 비행기를 타고 왕복했다. 나도 자주 외지에 가서 법을 전하고 보도소를 건립했다. 집에 다만 아들과 보모를 남겨. 언제나 마음에 걱정이 많았다. 기타 보도원은 나의 속마음을 보아내고 “걱정은 속인의 정이다. 진정한 수련자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고민이 없고 언제나 즐거워하는 것이다. 우울한 눈빛을 봐라, 아들을 걱정하고 있지?! 잘 연마하라!”라고 했다. 그날 저녁에 가부좌하는데 자신이 마치 높은 산에서 가부좌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아들의 웃음소리를 듣자 눈을 뜨고 보니 아들이 산비탈의 늪가에서 놀고 있었는데 마음속으로 매우 걱정했다. 아들은 ‘휙‘ 하더니 정말로 물에 빠졌다. 마음속으로 매우 급했고 산에서 뛰어 내려가 아들을 구하고 싶었다. 바로 이때 사부님의 법신이 아들을 구하셨고 모두가 무사했다. 가부좌 출정(出定)후 깨달음이 많았다.

법 공부를 통해 사람은 제각기 운명이 있고 사람의 운명은 모두 신이 안배한 것이고 우리가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수 없다. 가족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아들도 대법을 연마하는 사람으로 사부님께서 보호하고 계신데 걱정할 것이 뭐냐?! 자신이 사람의 정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법리를 명백히 인식한 후 점차적으로 ‘정’을 내려놓자 마음도 가뿐해졌고 즐거워졌다.

언제나 밖에 나가 법을 전했기 때문에 아들을 돌보기 위해 집에 보모를 청했다. 일반 집은 보모에 대해 경계가 심해 이것저것 두려워했다. 주로 사적인 마음이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보모가 물건을 가져갈까 봐 아이를 괴롭힐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나는 수련자였기에 손해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처음에도 보모가 집안의 영양제를 훔쳐 먹는 것, 고향 사람을 집으로 데려와 음식을 해먹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안 후 화내지 않고 다만 차분하게 보모와 말했다. 평소에 보모와 한집안 식구처럼 대했기 때문에 입고 먹는데 여태껏 인색하지 않았고 보모의 의견은 모두 받아주었다. 보통 젊은 보모는 얼마 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일하러 가려고 해서 나는 일자리도 소개해줬다. 내 집에서 있던 보모는 모두 나를 따라 대법을 배웠기 때문에 보통 떠나갈 때 나는 언제나 1000원 되는 녹음기, 사부님의 설법, 녹음테이프, 연공 테이프, 그리고 ‘전법륜’ 등 대법 서적을 보모에게 사줬고 그녀들에게 잘 연마하라고 부탁했다. 집안의 보모는 거의 1년에 한 번씩 바꿨다. 친구는 집의 보모를 주마등처럼 빨리 바꾼다고 형용했지만 나는 마음에 두지 않았고 가고 남는 것은 인연에 따랐으며 매번 보모에게 이렇게 대했다. 우리 직장의 동료들은 내가 아끼지 않고 투자하고 보모를 너무 예뻐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들은 모두 나와 인연 있는 사람이고 마땅히 자비롭게 대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보모에게 이렇게 대했을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 정원의 바닥을 쓰는 아줌마, 아저씨에게도 모두 이렇게 대했다.

성심의 정념, 하나의 정토

우리 이 지역의 백성들은 북방지역의 사람들처럼 그렇게 열정적으로 손님을 대하지 않았고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이 집에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친척, 친구가 와도 보통 근처의 식당에서 밥을 대접하고 먼 곳에서 온 사람도 호텔에 방을 잡아주어 접대했다. 우리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 형식은 수련생이 함께 단체 법 공부하고 단체 연공하는 것이다. 단체 연공은 공원에서 할 수 있는데 단체 법 공부는 수련생 집에서 해야 했다. 만약 가족 모두 수련자면 괜찮지만, 가족이 모두 수련하지 않는다면 매우 번거로웠다. 가족은 수련생이 집에 와서 법 공부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법 공부팀을 건립하는 것도 보도원의 비교적 골치 아픈 일이었다.

나는 결손가정이고 비록 부모가 나와 함께 살았지만 모든 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었다. 내게 2채의 집이 있었다. 하나는 금방 사서 장식한 집이지만 나는 모두 꺼내서 법 공부하는데 사용했다. 매주 일요일마다 새집에서 어린 대법제자가 법 공부하고 연공장을 건립했다. 주위에서 사는 몇십 명의 어린 수련생은 매주 내 집에 와서 법 공부하고 연공했다. 그러므로 많은 외지 수련생이 나에게 와서 어떻게 어린 수련생의 법 공부팀을 건립했는지, 경험을 교류했다.

내가 보도원을 할 때 일하는 외에 또 공을 가르쳐줘야 했고 또 대법의 일부 선전 자료를 만들어야 했다. 예를 들면, 파룬따파의 가로 액자, 파룬따파를 소개하는 천의 질, 광고와 전단 등등. 자금이 필요하면 나는 매번 주동적으로 돈을 냈다. 해마다 지역에서 전개한 대법 수련생의 심득교류의 활동의 장소 임대와 수련심득체득회의 자료를 프린트하는 것도 자금이 필요했는데 내가 알기만 하면 주동적으로 자금을 내놓았다. 사당은 TV에서 대법은 재물을 긁어모은다고 하는데 정말로 사당은 악독하기 짝이 없다. 진정으로 연마하는 제자는 사존과 대법의 구도를 받았고 모두 감사할 줄 안다. 높게 말해서 우리는 모두 법을 위해 온 것이고 조사정법 하고 세인을 구도하는 것은 우리 사전의 큰 소원이고 우리는 모두 대법의 하나의 입자이고 자신의 모든 것은 대법이 만들어 준 것이고 오늘의 복도 모두 대법이 준 것인데 그럼 법을 전하기 위해 자금을 내놓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대법을 위해 지불하는 것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 배금주의가 만연되어 있는 현실에서 오로지 이익만 추구하는 사당의 탐관들에 대해 우리는 한 무리의 명을 추구하지 않고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불가사의한 ‘바보’ 집단이다.

3. 정념으로 반박해하고 불로 달구어 진금을 보다

대법은 비할 바 없는 위덕과 무한한 자비의 힘이 있기 때문에 수련인은 법 공부한 후 신체가 병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주요로 수련을 통해 심성, 도덕수양이 전면적으로 제고됐고 여러분이 모두 좋은 사람, 더욱 좋은 사람이 되어 아주 좋은 사회적 효과를 얻었다. 그러므로 대법은 우리 지역에서 6, 7년 동안에 아주 빨리 전해졌으며 만 명으로부터 몇십만 명으로 발전됐다. 거의 모든 공원과 공공장소에 모두 연공장이 있었고 큰 공원에는 3, 4개 연공장이 있었다. 주말에 큰 연공장에서는 만 명 이상의 사람이 단체로 연공한 장면은 매우 장관이었다.

사부님께서는 ‘홍음-난중불난(難中不亂)’에서 “정법을 전(傳)함은 어렵고도 어렵구나 만마(萬魔)가 가로막나니 험난 속에 험난이 있구나.”라고 말씀하셨다.

중공 사당은 대법을 전하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로 막았다. 1996년 ‘광명일보’가 파룬궁에 대해 힐문(詰問)한 후부터 1999년 천지를 뒤엎는 듯한 박해까지 줄곧 매우 사악하고 공포한 어릿광대 역을 하고 있다.

마난 속의 고험

1997년 7월부터 잔혹한 독재자 장쩌민은 개인의 질투와 편집으로 인해 선량한 파룬궁 민중에 대해 박해하기 시작했다. 그는 손에 거머쥔 권력을 이용하여 국가 선전기구를 협박하여 곳곳에서 요언을 날조하고 파룬궁을 모함하고 테러, 간격과 증오를 만들었다.

진수(眞修) 대법제자로서 어떻게 이 마난을 대하는가? 우리가 대법을 굳게 믿는가? 믿지 않는가?, 엄격한 고험에 대해 확고한가? 확고하지 않는가?! 사부님께서는 그 한동안 많은 경문을 발표하셨다. 1999년 5월 8일 사부님께서는 ‘진성을 보다(見眞性)’, 1999년 6월 2일 또 ‘나의 약간의 소감’, 1999년 6월 13일에 ‘위치’와 ‘안정(安定)’, 1999년 7월 13일에 ‘미신을 다시 논함’ 등 경문을 발표하셨다.

그러나 어떤 수련생은 여전히 미혹되어 동요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의 정치에 참여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사당에게 박해당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공이 정권을 탈취한 후 사람을 괴롭히는 운동은 여태껏 멈춘 적이 없었고 두려워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그들은 사람의 기점에 서서 사람을 지키고 근본적으로 대법과 중생을 구도하는 고도에서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고 대법과 사부님께서 모욕당하는데 대법제자가 나와서 말하지 않고 대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아직 대법제자인가? 하물며 우리가 호법하는 방식은 평화적이고 이성적인 것이다.

우리가 중앙과 도시 지도자에게 쓴 편지는 바다에 돌을 던진 것처럼 회답이 없었다. 그러나 신문 매체에서 또 끊임없이 사악한 정보를 내보내고 중생을 속이고 독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정황이 매우 엄중하다는 것을 생각하고 여전히 정부에 선하게 해명하려는 태도를 품고 7월 21일 아침 일찍 우리 지역의 대법수련생들은 자발적으로 성 정부, 시 정부에 가서 청원[上訪]했다. 그날 간 사람이 매우 많았다. 대략 만 명 이상이었기 때문에 정부는 매우 긴장했고 많은 진압 경찰이 와서 사람을 잡았다. 많은 사람은 각 파출소로 잡혀갔다. 사람이 너무 많아 어떤 사람은 공장에 잡혀갔고 어떤 사람은 교외로 잡혀가 해산당했다. 나도 잡혀 대형버스에 실려 아주 먼 교외에 가서 해산당했다.

6월에 눈 내리다

많은 사람이 청원한 후 직장에서는 나에 대해 엄격히 감시하고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우리 상관에 의하면 정부는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십 번이나 상무 위원회를 열고 대책을 연구했다고 했다. 마치 큰 적을 대하는 듯이 기분을 매우 긴장하게 만들었다. 이튿날 오전 내가 마침 관련되는 기관 간부에게 강의하고 있는데 소재지 파출소의 경찰이 갑자기 습격해 와서 나에게 아직 수련생과 연결한다고 나를 동사무소의 파출소로 잡아갔다.

파출소에서 그들은 강제로 내게 사부님과 대법을 모욕하는 중앙TV의 대목을 보게 했다. 나는 끊임없이 경찰에게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진실한 정황을 말해줬다. 이렇게 하면 문화혁명 때 하는 그런 짓이고 TV에서 말한 것은 모두 거짓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또 “당신들은 이렇게 거짓말을 믿고 좋은 사람을 납치하면 자연의 이치에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당신들도 내가 젊어서 남편을 잃은 과부고 몸과 마음이 매우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는가, 만약 파룬따파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몸과 마음이 오늘처럼 건강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진선인’의 법리로 좋은 사람이 되었다. 설마 국가에서 좋은 사람이 많은 것을 두려워하는가? 사람은 자주 ‘두아’가 억울하다고 하는데 나는 두아보다 더 억울하다.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것은 천하에 몹시 억울함이고 6월에도 눈이 내릴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당시 파출소의 회의실 안의 천정에 달라붙게 설치한 에어컨에서 정말로 하얀 빙정(氷晶)이 내려왔고 마치 휘날리는 눈 같았다. “보세요. 정말로 6월에 눈이 휘날린다. 나는 억울한 것이다. 빨리 나를 놔주라.”라고 했다. 그들은 소장을 불러 와서 보라고 했다. 소장은 “수련생들은 모두 당신이 잘 수련했다고 말했고 또 공능도 나왔다고 하는데 과연 정말이구나.”라고 했다. 그는 우리 직장의 상사에게 전화했다. 그리하여 우리 상관은 차로 나를 집에 돌려 보내줬다.

정념으로 81일의 감금을 벗어나오다

이튿날 출근할 때 시 공안, 국가보안은 또 나보고 파룬궁의 골간이라고 하면서 나의 거주에 대해 감시하겠다고 하면서 나를 그들의 한 비밀 장소로 납치해 갔다. 그 곳은 한 작은 거리의 2층 별장이었다. 나는 2층에 갇혀 있었고 두 명의 경찰이 감시했으며 아래층에 또 두 남자 경찰과 밥을 하는 젊은 보모가 있었다. 그들은 우선 나에게 신문매체가 찍은, 대법과 사부님을 모욕한 대목을 보라고 했다. 나는 그것은 모두 거짓이라고 했다. 후에 그들은 나보고 내가 아는 모든 대법제자의 명단과 일부 활동 정황을 말하라고 했다. “당신들은 나보다 더 똑똑하게 대법의 정황을 알고 있다. 우리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은 모두 정정당당하고, 모든 활동은 모두 공개적인 것이다. 금년 이래 당신들은 연공장에 경찰을 파견해 감시하고 등기하지 않았는가? 나보고 뭘 말하라고 하는가?”라고 했다. 그들은 아무것도 캐내지 못할 것 같아 그대로 포기했다.

후에 그들은 신문매체들이 각지 보도원을 인터뷰한 것을 틀어놓고 나보고 보라고 했다. 내게 “다른 사람을 봐라 얼마나 하는가, 정부와 반대로 하지 않는데 왜 당신은 이렇게 완고한가?!”라고 했다. “내가 완고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도덕과 양심을 지켜야 한다. 분명히 좋은데 양심을 숨기고 거짓말하는 것은 나쁜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물며 대법과 사부님께서는 나를 구하셨고 나의 큰 은인인데 사람이 어떻게 큰 은인에게 더러운 물을 뿌리겠는가! 그것은 사람이 해야 할 짓이 아니다.”라고 했다.

어느 날 그들은 갑자기 한 도시 TV방속국의 사람을 불러왔는데 나를 인터뷰하려는데, 나보고 긴장하지 말고 마음대로 말하라고 했다. 나는 경각심이 들었다. 중공 사당은 본래부터 교활하고 전문적으로 가짜 뉴스를 만드는데 능숙하기 때문에 아마 그들이 틀어준 많은 배반한 보도원의 화면도 모두 위조한 것이고 대중을 기만시키는 것일 지도 모른다. 나는 절대로 그것들의 음모가 목적을 달성하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다급할 때에 좋은 생각이 떠올라 가부좌하고 두 손으로 허스 하고 “찍어라, 이 모습이면 여러분이 나의 진실한 태도를 보아낼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 그 여 두 경찰은 다급히 달려와 나의 다리를 잡아당겼지만 그녀들이 아무리 당겨도 움직이지 못했다. TV방송국 사람은 떠들썩한 장면을 보자 화내면서 “아직 준비도 안 됐는데 우리보고 와서 찍으라고 하니. 뻔뻔스럽다!”라고 말하고 노기등등해서 갔다.

그들은 후에 또 철학을 공부한 두 젊은 경찰을 불러와 나와 철학을 말하고 인생을 말했다. 목적은 역시 나를 전화시키려는 것이었다. 나도 그들과 중국의 전통문화, 고금중외의 수련문화, 노자, 공자, 불학, 예수에 관하여 말했다…… 그들은 나의 넓은 지식에 감동, 탄복해서 “지식의 시야가 정말로 넓고 어떤 것을 말해도 모두 이치에 맞아요.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당신을 스승으로 삶으려고 해요.”라고 했다.

후에 그들의 이른바 ‘정위’도 왔는데 나를 만나자마자 “우리가 당신에 대해 얼마나 잘 대하는가, 황제를 대하는 것처럼 전문적으로 사람을 청해서 당신을 돌봐준다.”라고 했다. “누가 이런 자유가 없는 보살핌이 필요하겠는가! 당신들은 좋아하겠는가?!”라고 하자 그들은 할 말이 없었다. 마지막에 아주 큰 소리로 나를 훈계했다. “당신은 공산당원이고 공무원이기 때문에 중앙과 일치해야 한다. 자신의 앞날을 위해, 아이의 앞날을 위해 당신에게 여전히 권하는데 포기하라.”라고 했다. “당파든 정부든 역사는 언제나 진보해야 한다. 이전에 문학혁명을 하는 것처럼 강제,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되고 쩍 하면 사람을 괴롭히는 운동을 해서는 안 되잖나. 조금의 도리도 없고 그릇된 일인데 왜 나를 협박하여 하라고 하는가?! 당신들도 명석한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 남이 말하는 대로 자기도 따라 말하고 남의 장단에 춤추지 말라. 중공이 이렇게 많은 운동을 했는데 한 번이라도 정확한 적이 있었는가? 후에 모두 억울한 죄명을 벗겨주지 않았는가!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도 후에 좋은 결과를 봤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라고 했다. 그들은 나를 설득하지 못할 것 같으니 화나서 갔다.

이렇게 되자 오히려 나를 그다지 관여하지 않았다. 나는 매일 방안에서 연공했고 가부좌하고 대법 경문을 외웠다. 어떤 때는 주방에 가서 젊은 보모를 도와주고 친구로 사귀었다. 나는 또 그녀에게 내 집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주고 이후에 우리 집에 놀러오라고 했다.

나를 감시하는 한 여 경찰의 아이가 좀 지능 지수가 낮아 유치원의 꼬마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갑자기 상사는 그녀보고 출장가라고 했는데 마침 그녀의 남편이 출장 중이었기 때문에 나보고 며칠 아이를 봐달라고 부탁해 나는 응낙했다. 그녀가 출장에서 돌아온 후 아이를 데려가 유치원에 보내려고 하는데 그 아이는 울며불며 나를 떠나가기 싫어했다. 그녀는 매우 감동하어 “파룬궁을 배우는 사람은 모두 매우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우리도 방법이 없고 어쩔 수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당신은 우리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해야 한다. 앞으로 큰 복이 올 것이다.”라고 했다.

후에 소위 민감한 날, 10월 1일이 지나서야 나를 놔줬다. 내가 헤아려 봤는데 그들은 나를 81일 동안 가뒀다. 나온 후 그 보모는 정말로 우리 집에 찾아왔다. 나는 반갑게 그녀를 접대했고 그녀를 데리고 공원에도 놀러 갔다. 떠나가기 전에 나는 그녀에게 파룬따파는 사람을 구도하는 정법이고 우리 대법 수련자는 모두 사람을 선하게 대하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라고 신신당부했다.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고 무사히 돌아오다

나는 원래 직장에서 한 부문의 책임자였지만 지도자는 내가 감금당하고 있는 기간에 나의 업무를 나의 상사보고 처리하라고 했다. 직장으로 복귀했는데도 지도자는 원래의 일을 안배해주지 않았고 나보고 잡일을 하라고 했다. 직장의 동료들은 이상한 눈길로 나를 봤고 대다수 사람은 나하고 말도 감히 하지 못했다. 문화혁명 때 흑오류(黑五類) 대우와 비슷했다. 중공 사당의 투쟁철학 정신의 독소는 줄곧 민중을 독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 어제, 아직도 친밀한 친구, 동료였는데 눈 깜박할 사이에 ‘정치’ 풍파 때문에 결국 얼굴이 바뀌고 ‘계급적’이 되어 버렸다. 나는 중국 정치의 사악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눈치를 마음에 두지 않았고 정상적으로 법 공부하고 연공했고 마땅히 뭘 해야 하면 뭘 했다.

후에 일부 수련생은 나를 찾아와 “외지 어떤 수련생은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고 어떤 수련생은 천안문광장에 가서 ‘대법’ 현수막을 든다고 했다. 우리는 마땅히 가야 하는가, 가지 말아야 하는가?”를 상의했다. 어떤 수련생은 확고하고 착실하게 수련하고 꼭 베이징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비록 사부님의 설법에서 어디에 가서 법을 실증해야 하는가를 명백하게 말씀하지 않았지만 베이징은 사악 세력의 소굴이므로 거기에 가서 법을 실증하고 반박해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고 깨달았다.

그날 저녁, 꿈을 꿨다. 많은 대법제자가 단정하게 옷을 입고 즐겁게 가지각색의 꽃차를 타고 가는 것을 봤다 “어디에 가려는 건가?”라고 묻자 그들은 “베이징에 간다!”고 했다. 나는 또 “베이징에 가서 뭘 하는가?”라고 묻자 그들은 “법을 실증하러 간다!”고 했다. “듣기엔 거기로 가는 길은 매우 어렵고 사악한 마가 사람을 잡는다고 한다.”라고 했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다는 듯이 “사마(邪摩)가 두려울 것 뭐냐, 사부님의 새끼손가락으로 비틀기에 부족한 것이고 정념은 사악을 억제할 수 있다. 우리는 즐겁게 가고 안전하게 돌아온다!”라고 했다. 후에 나는 수련생과 이 꿈을 함께 교류했는데 여러분은 모두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신 것이고 베이징에 가서 법 실증하는 것은 옳은 것이라고 깨달았다. 우리도 즐겁게 가고 안전하게 돌아오자.

2000년 5월 말, 대략 7, 8명 수련생은 함께 베이징에 가기로 약속했다. 나는 10일간 휴가신청서를 쓰고 직장 사무실의 테이블에 놓고 몰래 갔다. 두 수련생이 먼저 웨양(岳陽)에 가서 우리를 기다렸다. 몇 명의 수련생은 후에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에서 모이기로 했다. 우리 함께 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은 다만 4명뿐이었다. 길에서 여러분은 모두 두려운 마음이 없었고 정상적으로 여행하는 것처럼 즐거웠고 유쾌했으므로 매우 순조로웠고 사악이 막는 것에 부딪히지 않았다.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는 깊은 밤이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아는 베이징 수련생에게 전화해 역전에 마중 나올 수 있는지 물었다. 마침 그녀가 출장 가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순조롭게 우리를 마중했다. 그녀는 매우 기뻐서 우리에게 “오늘 저녁은 매우 희한하다. 하늘에 밝은 무지개가 하나 있었다. 정말로 귀인이 오는 것이로구나.”고 했다.

이튿날 우리 현지 몇 명의 수련생은 함께 모였고 또 몇 명의 외지 수련생을 만나 모두 20여 명이었는데 두 사람씩 하나의 현수막을 들었다. 내용은 모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와 ‘대법은 정법이다’ 등이었다. 천안문으로 가는 그날 마침 ‘6.1’ 어린이날이었기에 광장에 사람이 많았다. 우리 20여 명 수련생은 하나의 원으로 에워싸고 동시에 현수막을 들고 일치하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정법이다!’를 외쳤다. 목소리는 매우 크고 사방에 울려 퍼졌다! 경찰차가 다가왔을 때 우리는 이미 함께 한참 동안 외쳤고 구경하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있어 경찰은 한참 동안 끌어당겨서야 우리를 경찰차에 올렸다. 차에서 우리는 계속 구호를 외쳤다.

천안문파출소에 도착하자 철문 안에 베이징에 와서 현수막을 든 전국 각지에서 온 수련생으로 가득했다. 그들은 보통 악한 경찰의 협박에 청원 등록부에 등록했기 때문에 각성 주경(駐京)사무소에서 데려갔다. 우리는 오기 전에 사악의 안배에 협력해서는 안 된다고 상의했으므로 우리 이번의 수련생은 등록하는 것을 모두 거절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난폭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악한 경찰은 우선 몇 명의 남자 수련생을 그들의 사무실에 데려가 심문했다. 수련생의 고함소리가 들리자 악한 경찰이 사람을 때린다는 것을 알았다.

후에 그들은 나보고 들어가라고 했고 우선 나보고 등록부에 글을 쓰라고 했으며 쓰면 직장의 지도자에게 통지해 데려갈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자신이 한 일은 자신이 책임을 진다. 어떤 사람도 연루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쓰지 않겠다. 우리는 정부를 신임해서 개인적인 염원을 표현하려 하고 죄도 짓지 않았다. 당신들은 빨리 우리를 놔줘라.”라고 했다. 그들은 나의 말을 듣지도 않고 수갑으로 나의 손을 등 뒤로 채웠다. 한 악한 경찰이 큰 몽둥이(약 10CM의 굵기)를 들고 정면으로 나를 때렸고 다른 한 명의 악한 경찰은 발로 나를 찼다. 나는 갑자기 들이닥친 고문에 어리둥절했고 두 눈에 불꽃이 번쩍였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혼미 중에 나는 갑자기 예수가 십자가에 박힌 장면이 보였다. 지금 ‘나는 예수가 아니고 대법제자다!’라는 것을 의식했다. 마음속으로 ‘사부님, 저를 살려주세요.’라고 외치자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나는 다급한 가운데 좋은 생각이 떠올라 크게 외쳤다.

“경찰이 사람을 때렸다! 경찰이 사람을 때리는 것은 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악한 경찰은 정말로 멈췄다. 악독하게 “파룬궁을 연마하는 당신은 왜 이러나, 다른 사람은 맞으면 모두 우리가 그들을 도와 소업해준다고 하며 우리보고 감사하다고 하는데. 당신은 어찌 반항도 하나?”라고 하자 나는 당당하게 “우리의 소업은 중생이 짓는 죄를 대신하지 않는다. 당신들은 경찰로서 마땅히 자각적으로 인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데 어찌 함부로 맨주먹인 선량한 백성에 대해 악행을 부릴 수 있는가!”라고 했다. 그들은 할 말이 없어 정말로 나의 수갑을 풀어줬다. 이때 손목을 보니 수갑을 채운 곳은 이미 뼈가 드러났다. 그들이 사용한 수갑은 납작하고 뾰족한 그런 수갑이었다. 테러분자를 대처하는 그런 것 같았다. 이때 나의 얼굴은 이미 부어 변형됐고 두 다리는 모두 울혈의 상처이었지만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 지금 사부님의 법신이 나를 대신해 감당하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일 많은 수련생이 잡혀 들어왔다. 그들 몸에 있는 돈은 모두 악한 경찰이 수색해 가져갔다. 한 수련생의 말에 의하면 그녀에게 몇천 원이 있었는데 모두 악한 경찰이 가져가버렸다고 했다. 다행히 우리는 준비한 바 있어 한 푼도 가지고 오지 않았고 신분증도 가져오지 않았다. 매일 많은 사무처의 악인이 사람을 데려가고 사람을 찾았지만 정말로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 이 한 무리의 사람은 이미 안에서 3일 동안이나 단식했다. 많은 수련생은 안에서 연공하고 가부좌하고 경문을 외웠다. 6월 4일 이날 저녁에 파출소의 한 우두머리가 오더니 대표와 면담하겠다고 했다. 악한 경찰은 나를 가리키면서 “나와!”라고 했다. 수련생은 또 나를 불러다 때릴까 봐 손에 손잡고 나를 둘러쌌다. 이때 두 악한 경찰은 미친 개처럼 나를 향해 덮쳐들었다. 나의 머리카락을 잡고 밖으로 끄집어 당겼다. 단식을 3일 했기 때문에 나의 신체가 매우 약해졌다. 바로 이때 나는 또 사부님이 생각났다. 모든 힘을 다하여 크게 “사-부-님” 하고 외쳤다. 목소리는 컸다. 온 장면을 모두 진감했다. 악한 경찰은 손을 놨다. 이때 그 경찰 우두머리가 걸어오더니 내게 “오늘 저녁에 우리는 당신들을 모두 놔주겠으니 집으로 돌아가라. 오늘 저녁에 당신들은 다시 천안문에 가지 마라, 오늘은 ‘6.4’다.”라고 했다.

이렇게 우리는 이렇게 뚫고 나왔다. 수련은 정말로 신기하구나, 정말로 꿈에서 즐겁게 가고 안전하게 돌아왔다. 먼저 부모님 집에 가서 며칠 있으면서 연공하고 상처를 치료하고 10일의 휴가가 끝나 직장에 출근했다.

그러나 이번에 직장에 돌아온 후 연달아 행정처분을 받았다. 면직당하고 제명(除名)하지 않고 당(黨)에 두고서 2년 동안 관찰하고 하위 부서로 파견됐다.

(계속)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스위스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홍음-착실한 수련’

(밍후이왕 제9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2년 11월 29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제9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29/264814.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3/1/11/13707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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