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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안으로 찾을지 말해보자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연공(煉功)해도 공이 자라지 않는 두 가지 원인이다: 고층차 중의 법을 모르고서는 수련할 수 없으며, 안으로 수련하지 않아 心性(씬씽)이 수련되지 않으면 공이 자라지 않는다. 바로 이 두 가지 원인이다.”[1]

그러므로 나는 이 두 방면에서 더 노력하려 했다. 첫째는 더 많은 시간을 들여 법공부를 했다. 법공부할 때 정신이 다른 곳으로 가지 않도록 주의했다. 다시 말해서 구절마다 표면 뜻을 알아야 했는데 매 글자 뜻을 파고드는 것이 아니다. 법의 깊은 층차에서의 내포는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시므로 파고들 필요가 없으며 파고들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마땅히 깨달아야 할 때면 법 배후의 불도신은 곧 우리에게 점화해주며 우리는 자연히 깨닫게 된다.

둘째는 안으로 수련하고 안으로 찾는데 주의했다. 나는 어떤 일에 부딪히든지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이런 수련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 점화를 주셨다.

어떤 때에 안으로 찾아야 하는가? 자신이 마음속으로 넘어가지 못할 때 마땅히 안으로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속으로 왜 이 일에서 넘어가지 못하는가 생각할 때 사실 이미 집착심이 조성된 것이다. 이때에 마땅히 자발적으로 자신에게서 찾아야 하며 자신의 집착심을 닦아버려야 한다. 만일 자신이 봉착한 이 일에서 혹은 모순에서 이미 태연하여 움직이지 않았다면 사실 족히 고비를 넘어간 것이며 더 찾을 필요가 없다. 더 찾는다면 매우 쉽게 사람의 일 속에 빠져버리게 된다. 이 방면에서의 법리가 명확하지 못해 나는 일부 방면에서 장기적으로 마난에 처하게 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일부 사상 업력의 반영에 있어서는 이리저리 찾을 필요가 없이 직접 깨끗이 제거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일부 깨끗이 제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관념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느 날 아침 내가 요리와 밥을 했다. 그런데 남편은 요리가 너무 간단하다고 화를 내며 문을 차고 나갔다. 평소에 또 나에게 요리책을 사다 주면서 요리를 배우라고 했다. 일부 수련생은 내가 마땅히 안으로 찾아야 하며 남편에게 더 많은 관심을 주어야 하고 맛있는 것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등을 말했다. 사실 내가 깨달은 바는 전혀 이런 게 아니었다. 우리 가정의 상황은 일반적이며 나의 요리솜씨는 일반적인 주부와 별다를 바 없고 이런 정도라면 괜찮은 것이며 속인상태에도 부합된다. 남편의 이런 태도는 사실 내가 마음을 움직이는지 보고 있는 것으로 내가 마음을 움직인다면 넘어가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에 마땅히 안으로 찾아야 한다. 왜 마음을 움직였는지, 무슨 집착심으로 이런 일이 조성됐는지, 그리고 찾은 후에 발정념으로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면 이 고비는 넘어간 것이며 더는 마음에 둘 필요가 없다. 아울러 고층차 수련은 무위를 말하며 누구에 대해서도 다 좋게 대하는 상태여야 한다. 고의적으로 그 누구에 대해 좋게 대하는 게 전혀 아니며 또 고의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 후 내가 마음에서 내려놓았더니 남편은 내가 만든 어떤 요리도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또 이런 것을 깨달았다. 수련인은 음식을 가려먹지 말아야 하며 무엇이 있으면 그것을 먹어야 한다. 그리고 나 역시 마음을 음식이라는 이런 것에 쓸 게 아니며 무엇이 있으면 그것을 해서 먹어야지 골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결과 사부님께서 나에게 대법의 신기함을 펼쳐주셨다. 즉시 내가 무엇을 하면 남편은 그것을 먹었고, 내가 고기를 먹지 못하여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하지 않았으며 가족은 모두 고기를 보기만 해도 속이 메스껍다고 하면서 고기를 전혀 먹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남편은 이전에 고기를 잘 먹어서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고기를 안 드세요?” 남편이 말했다. “무슨 원인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고기를 보기만 해도 속이 메스꺼워요.” 한동안 지나서 내 자신이 느슨해져 다시 음식에 대한 집착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남편도 다시 식탐이 생겼다. 게다가 밥을 먹을 때 이렇게 말했다. “왜 또 고기가 맛있지!” 사실 많은 방면에서 이러하다. 왜냐하면 우리 수련이 첫째이기에 만일 우리가 정말로 매우 잘 수련했다면 또 환경을 제약할 수 있으며 가족도 우리와 수다를 떨 것을 잊어버린다. 그러나 우리의 심성이 도달돼야 비로소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가족정을 반드시 내려놓아야 함을 모두 알고 있다. 만일 우리가 정말로 가족정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더는 부모와 아이를 그리워하지 않고 더는 자신의 가족에 대해 걱정하지 않으며 누구에 대해서든 모두 잘 대할 수 있고 자비로 사람을 대할 수 있다. 그들 또한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며 또 우리가 자신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책망하지 않을 것이다. 대법은 일체 문제를 제약할 수 있고 대법은 만능이다. 그러나 우리의 심성이 그 표준에 도달해야 비로소 될 수 있다.

일부 수련생은 이미 안으로 찾는 것을 속인 중의 기술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속인 중에 빠져 끝없이 찾고만 있다.

예를 들어보자. 수련생 갑의 남편은 갑이 자신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갑은 곧 안으로 자신을 찾았다. 그리하여 마땅히 갑절로 아내를 관심해야 되며 마음을 써서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과 자신의 정력에 관계됐고 심하게 말하면 자신의 집착을 확대시키는 꼴이 됐다. 물론 우리가 가족에게 관심을 갖지 말라는 게 아니며 법의 요구는 우리에게 우선 좋은 사람이 되라고 했다. 만일 우리가 한 일에 무슨 문제가 없다면 안으로 찾아 자신의 마음이 움직였는지를 보아야 한다. 속인이 뭐라고 말한다고 우리가 그대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안으로 찾는 것은 법리이며 법은 원용(圓容)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부님의 설법을 단면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며 또 사부님의 설법을 단장취의해서도 안 된다.

예를 든다면 수련생 갑에게 병업현상이 나타나 수련생 을과 병이 보러 갔다. 을과 병은 자신에게서 찾기 시작했는데 자신이 이전에 잘못한 일들과 많은 집착심을 들춰냈다. 나는 이런 정황은 안으로 찾는 게 아니라고 본다. 이는 자신이 어떤 경우에 마땅히 찾아야 하고, 어떤 경우에 찾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명확하지 못한 표현이다. 표면으로 보기에 자신에게서 많은 좋지 않은 일을 찾아냈다고 하나 아마 사상업이 뛰쳐나왔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안으로 찾음도 법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한다. 어떤 일에 있어서 많이 생각하면 사실 집착심으로 된다. 우리는 한 극단에서 다른 한 극단으로 가서는 안 된다!

또 하나의 문제라면 수련생이 마난에 봉착했을 때 주변의 일부 수련생은 그 수련생이 잘하지 못했다고 질책한다. 물론 수련생이 마난에 봉착할 수 있음은 아마 자신이 잘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되어 틈을 타게 했을 수 있다. 그러나 또 일종 상황은 잘하고 있는 수련생도 고험에 봉착할 수 있는 것으로 마난에 봉착했다고 수련생이 잘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다. 무턱대고 다른 사람을 질책하는 행위는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기 매우 어렵게 한다. 무책임하게 아무렇게나 말하는 일은 바로 수련생의 수련을 교란하는 것이다. 사람마다의 길은 모두 같지 않은 것으로 일의 인연관계를 볼 수 없고, 일의 본질을 볼 수 없으면서 마음대로 함부로 말하면 바로 나쁜 일을 하는 것이므로 절대 마음대로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법공부를 잘하여 법에서 안으로 찾아 자신을 제고할 수 있다면 더욱 세 가지 일과 중생구도를 잘할 수 있다.

개인적인 체험이고 층차에 제한이 있으므로 부족한 곳은 수련생들이 자비로 지적하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문장발표: 2013년 3월 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특별추천>정법수련에 관련해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3/5/2706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