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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대법에서 15년 수련하는 과정에서 나는 심신에 큰 이로움을 얻었다. ‘진선인(眞善忍)’은 내 마음과 신체를 정화시켜 나에게 명리정(名利情)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게 하여 점차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관리자가 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어떠한 박해나 어떠한 비바람도 내가 대법을 결연히 믿는 발자국을 막을 수 없었다.

1. 각성

15년 세월은 짧다고 할 수 없으며 가히 한 세대 사람을 육성해 낼 수 있다. 어떤 때 나도 나에게 묻는다.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이 물욕이 흘러넘치는 오늘날 내가 어떤 사람이 됐을까?’

내 사업은 대형 투자자를 위해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관리회사로 지금까지 몇 천만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나 다만 투자자의 수요에 대해 제때에 보고만 했을 뿐 감독하는 사람이나 장부를 검사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신임 하나만으로, 한 대법제자에 대한 신임으로 이렇게 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아마 친구 천천(晨晨)의 부추김으로 회사의 유휴자금을 빌려 자신의 회사를 창업했을 것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나 남의 물건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긴 후 다시 회사로 돌려주었을 것이다. 지금 그는 이렇게 이미 해외투자 이민이 됐다. 아니면 아마 친구 란란(蘭蘭)처럼 다른 사람의 투자로 적자를 만들어 몇 년간 투자자의 자금을 날리게 하고 자신은 다른 회사를 운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옹색한 생활을 지내고 있다. 매년 가을이 되면 몇 십 근 감자를 캐고 채소로 무를 절여 1년 장아찌를 만들어 밥을 먹는다. 다만 어쩌다 녹색 채소를 사온다. 이것에 대해 자매들은 코웃음을 친다. “너는 손에 그렇게 많은 돈을 들고 있으면서도 이 정도로 지내니?” 나는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하면 마음이 편안하다.

파룬따파를 수련했기에 중공에게 박해당해 돌아온 후 남편은 이 갑작스러운 충격을 감당할 수 없어 사업 능력을 잃었다. 아이들은 비싼 학비를 내지 못하고 전 가족은 나 혼자의 월급에 의해 생활했다. 비록 회사의 자본 지표도 내가 만들지만 나는 나 스스로에게 더 추가할 수 없었는데 이것은 ‘진선인’ 원칙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15년 전 대법을 만나지 못했을 때 나는 아직 탐오부패를 모르는 상황에서 사회의 이 큰 염색항아리에 물들었다. 그때는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얻기 위해 우리는 매일 아첨하며 웃는 얼굴로 지냈다. 주변 사람들의 달콤한 말에 으쓱하고 그럭저럭 되는대로 살았으며 술잔이 왔다갔다 하는 이러한 즐거움을 행복으로 삼으며 고급 의류를 사들이는 것을 심심풀이로 했다. 정말로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때 말하는 어조도 매우 경솔했는데 마치 공중에 뜬 구름처럼 휘날렸다.

그때 아이들도 관계하지 않고 집을 여관으로 삼았다. 사업 중 매 하나의 프로젝트를 누가 따느냐에만 머리를 집중하고 오직 유아독존의 기세로 살았는데 사실 이미 위험의 변두리까지 걸어갔다.

바로 이때 나는 파룬따파를 만났다! ‘벼랑 끝에서 말고삐를 잡아쥐다(懸崖勒馬)’를 여기에 쓰면 가장 적합하다.

바로 사부님의 ‘당신이 오직 배우기만 하면 변한다’라는 말씀처럼 나는 매일 ‘전법륜’을 보고 자습하며 ‘대원만법’을 보고 연공하니 사부님께서 나를 관할하셨다. 나는 당시 다만 책속에서 말씀하신 이치가 너무 정확하다고 느껴 다른 것을 추구하지 않았다. 매일 진탕 마시고 놀았기에 배는 부풀어 있었으며 거기에 자궁에 종양이 자라나 몸에는 조그마한 힘도 없었다. 법공부하고 연공한지 한 달 좌우에 이런 병들이 약을 쓰지 않아도 사라져 진정으로 병이 없이 온 몸이 가뿐한 상태에 도달했다.

이전에는 가정도 마치 작은 사회처럼 경제적 이익이 중심이 됐는데 아이들도 누가 돈을 주면 그를 좋아하며 상호 존중과 인륜, 가족정이 사라져 화목을 잃었다. 두 어른이 모두 밖에서 활동하기에 아이들은 어른들을 몇 년간 보지 못하면서 한 무리 나쁜 친구들과 사귀었다. 어린 나이에 연애를 하고 수업을 빼먹고 가출하며 학교에서 제명을 당할 뻔했다. 때리고 욕하며 타일러도 모두 아무런 쓸모가 없는 상황에서 나는 대법 법리로 아이들과 소통하려고 시도해 보았다. 금방 작은 수탉처럼 말대꾸를 하던 아이가 단번에 두부에 간수를 친 것처럼 머리를 숙였다. 나는 대법 법리가 일체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더욱 법공부하고 정진했다. 법리로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 잡았으며 가족을 관심하기 시작했고 가사를 잘 했으며 아이를 이끌어 나와 함께 법공부하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돌아와 지금 이미 우수한 좋은 학생이 됐다. 곧 뿔뿔이 흩어지려던 가정이 원래 궤도로 돌아왔다.

당시 직장에서는 개인이익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매우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 매일 구멍을 막기 위해 각종 번거로운 일을 상대해야 했으며 이 때문에 매우 피곤했다. 예를 들면 상대방에게 마땅히 장부를 결산해 주어야 할 것도 하지 못하고 상대가 입을 열어야만 한다. 돈이 없을 때는 상대방에게 주지 않고 있으면 준다. 당시에 상대의 돈을 꼭 불법 점유하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아마 기분이 나쁘거나 혹은 그 사람이 눈에 거슬리거나 어느 한 마디 말을 잘하지 않았거나 하면 바로 제멋대로 했다. 지금 보니 바로 폭력이며 일종 권력 발휘이고 ‘9평 공산당’에서 묘사한 것처럼 ‘깡패’와 ‘투쟁’식 나쁜 습관에 물들었던 것이다……그때 회사 내부에서 나는 어떠한 사람도 안중에 두지 않으며 다만 여러 필요에 따라 오늘 이 사람에 대해 좋게 대하고 내일 저 사람에 대해 좀 좋게 대할 뿐이었다.

어느 날 ‘전법륜’을 통독할 때 “불가(佛家)는 眞(쩐)・善(싼)・忍(런)에서 선(善)에 중점을 두고 수련한다. 선을 수련하기 때문에 대자비심(大慈悲心)을 수련해 낼 수 있는데, 자비심이 나오기만 하면 중생이 모두 고생스러움을 보게 되므로 곧 소원을 품어 중생을 널리 제도하려 한다. 그러나 진(眞)도 있고 인(忍)도 있는데, 선(善)에 중점을 두고 수련한다.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 이 한 법문은 우주의 최고 표준-眞(쩐)・善(싼)・忍(런)을 동시에 수련하므로, 우리가 연마(煉)하는 공(功)은 대단히 크다.” 여기까지 읽을 때 갑자기 일종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사부님께서 단번에 나에게 자비심을 열어주시어 나와 접촉한 모든 이런 사람들의 마음속 고통을 읽고 이해하게 됐으며, 이 프로젝트를 얻기 위해 그런 웃는 얼굴의 고통을 읽고 이해하게 됐고, 겸손해야만 하는 부하 직원의 고통을 읽고 이해하게 됐다. 그러자 눈물이 앞을 가렸으며 누구를 생각하나 모두 그들이 매우 고통스럽게 느껴졌으며 동시에 자신의 비애를 느꼈다.

이때부터 나는 전혀 딴 사람이 된 느낌이 들었는데 공중으로 부양하는듯 했으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심태로 일을 할 수 있었다. 바로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우리 많은 사람은 이 강당에서 나간 다음, 당신이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텐데, 보증코 당신의 세계관마저 전변(轉變)이 생길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알 것이며, 더는 그렇게 얼떨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것인데, 보증코 이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心性(씬씽)은 이미 따라 올라온 것이다.”

이로부터 직장에서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하겠는지, 할 수 있는지는 모두 대법으로 판단했다. 진선인에 부합되면 하고 진선인에 부합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 만약 어느 고객이 “당신이 내게 2만 위안의 편리를 주면 내가 당신에게 1만 위안을 줄게요”라는 식으로 제시하면 나는 대법제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느끼고 냉정하게 그에게 알려준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므로 이런 일은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내온 뇌물과 카드도 되돌려 보낸다. 나중에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그런 일을 부탁하면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2. 단체건설

회사관리에서 나는 ‘진선인’ 법리로 단체건설을 잘해서 완전한 비교평가 제도를 만들었으며 이 제도로 사람을 관리해 여유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단속하는 경쟁제도를 만들어 평균분배와 의뢰사상을 타파하고 일한 만큼 얻는 기회를 열었다. 동시에 회사 관리층에 존재하는 불량한 풍기를 바로 잡아 ‘향응 요구·횡령·불법 점유·금품 요구·남을 괴롭히는 것 등의 나쁜 작태’에 대해 그들에게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법리를 말해 주었고 생활상에서 매 한 사람을 관심하고 존중하며 그들의 고통을 위해 근심했다. 이렇게 하자 전반 단체는 화목하고 원융한 정체로 형성됐다. 한마음 한뜻으로 일할 뿐만 아니라 묵묵히 상호 부족함을 보충했다. 이것 역시 내가 사부님 설법에서 배운 관리방법이다.

이후 다시는 상사가 자신의 향락만 고려하고 직원을 초개처럼 여기는 그런 행위가 없었다. 직원 가족들은 말한다. “현재 어디에서 이렇게 좋은 직장을 얻겠어요, 전 회사는 한 집안 같아요.” 회사 직원들도 “당신은 우리 상사가 무엇을 배웠는지 알면 이해될 것”이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사실 이것은 ‘진선인’이 모두의 마음을 정화하고 사무환경을 정화해 단체 및 가족이 불법(佛法)을 들은 복이며 대법 위덕의 결과다.

3. 관리방법을 개변하다

도덕이 일일천리로 아래로 미끄러지는 오늘날, 고객 중에서 출현한 문제는 기이하고 다양하나 중점은 오직 하나인데 그것은 바로 이익이다. 회사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때 과거의 일관적인 방법은 무력으로 정복하는 것이었다. 대문을 봉쇄하고 전기를 내리며 공안이 둘러싸고 때리며 다시 듣지 않으면 폭력배들을 불러와 간단명료하게 문제를 해결한다. 그 결과 일이 숨 돌릴 새 없이 일어나 고객 중에서 매우 많은 모순이 잠복되었으며 일부 사람들은 뒤에서 회사와 대립을 형성하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위협하기도 했다. 고객들 사이에서도 사흘이 멀다 하고 작은 이익 때문에 닭싸움처럼 다투어 늘 110에 신고한다. 전반 환경은 사람들을 우려하게 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은 일과 결합되어야 한다. 당신이 일을 함에 어떠한 어려움에 부딪혀도 당신은 모두 자신의 心性(씬씽)에서 찾아야 한다. 당신이 자신을 볼 수 있고, 번거로움에 부딪혔을 때, 나 자신이 왜 이럴까?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가? 혹은 나의 출발점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혹은 어떻게 된 것인가? 하고 이렇게 생각한다면, 다시 말해서, 당신은 평소에 연공인의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할 수 있고 자신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자신의 사업 방법이 틀렸다고 인식했다. 대법제자의 순정함을 체현해 내지 못해 자신 주변의 반영을 관계하지 않았다. 이런 방법은 얼마나 그런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병사가 천하를 다스리는 식’인가. “강제는 사람마음을 개변할 수 없다.”[1] 더는 ‘투쟁’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이는 ‘진선인’ 원칙에 부합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관리자들과 함께 고객에게 깊이 들어가 그들의 수요와 문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그들과 회사가 대립된 마음의 매듭을 찾는 동시에 자신을 끊임없이 닦고 단체에 존재하는 문제를 개진했다.

좌담회와 개별면담 방식을 취해 법에서 수련해낸 진실하고 너그럽고 도량이 큰 평온한 심태로 그들과 이성적으로 경영하고 성심을 담아 사업 중의 존재하는 부족함과 실수를 검사했다.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매우 좋은 효과를 거두었다.

이후 어떤 고객이 개인이익이 손해를 받았다고 여겨 폭력배들을 데리고 위협해도 나는 의연히 성실한 태도로 상황을 말했다. 게다가 그들에게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는데 상황은 이처럼 확실하니 서로 맞서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일도 원만한 해결됐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일처리 중의 어투, 선한 마음, 도리(道理)를 더하면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 명령은 영원히 할 수 없다!”[2] 그렇다, 우리가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할 때 아주 쉽게 소통하고 공통적인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

현재 관리자들도 소통하는 방식으로 앉아서 고객에게 모순을 화해하고 문제를 해결한다. 내가 그들에게 진보했다고 칭찬하면 그들은 말한다. “당신이 교육한 것으로 우리도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있어요!” ‘진선인’의 법리는 관리방식을 개변했을 뿐만 아니라 관리자들도 개변했다.

15년 수련경험을 되돌아보면 대법이 나를 개변했고 내 직장환경을 개변했다. 오염된 일체를 정확한 궤도에 되돌렸다. 나는 대법에서 수련해낸 자비로 직원을 대하고 고객을 대했으며 신변의 매 한 사람을 대했다. 이곳 중생도 모두 화목하고 즐거우며 고요하고 평화롭다. 정말 ‘불광이 널리 비추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강제로는 사람의 마음을 개변할 수 없다’[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청성’

문장발표: 2013년 1월 1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신 수련생마당>안으로 찾아 심성을 제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7/2660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