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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닦아 안으로 찾은 신기한 변화

글/대륙 대법제자 위칭

[밍후이왕] 12월 17일 나는 평소와 같이 2013년 신년달력을 인쇄했다. 컴퓨터에 인쇄설정을 해놓고 법 공부를 하러 갔다. 얼마 후 종이를 보충하려고 가보니 인쇄된 달력 표지 가장자리가 꺼멓게 나왔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점검을 해봤는데 프린터기의 카트리지 헤드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카트리지 헤드를 꺼내 확인해 보니 아직도 잉크도 충분하고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 같아 부품에 묻은 잉크를 닦아버린 후 다시 한 장을 시험 삼아 인쇄를 해 봤으나 역시 표지 가장자리에 약간의 잉크가 묻은 흔적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 정미(精美)하게 사람을 구하는 진상달력인데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프린터를 정지시켰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처음에는 순조롭게 인쇄가 잘 되다가 갑자기 이렇게 된 것은 단순히 프린터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선 먼저 안으로 찾아 심성을 닦은 후 프린터를 수리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내 심성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기술이 있는 수련생에게 수리를 부탁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수리를 부탁하고 기다리는 중에 사부님께서 “일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아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법리의 요구에 따라 다시 한번 안으로 자신을 찾아보았다. 인쇄를 하는 과정에서 어떤 사람이 마음의 교란을 주었는가를 찾아보았다. 바로 그 순간 나의 신체가 좀 불편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이것은 바로 병업의 교란이 아닌가? 그리고 프린터의 카트리지 헤드를 점검하는 중에 동료 수련생과 남편 때문에 두 번이나 화가 났었다. 그들과 말다툼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너무 억울함이 북받쳐 올라 억지로 참았다. 사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심성을 제고시켜 흉금을 크게 만들어 주시려고 한 좋은 기회였는데… 나느 비록 그들과 다투지는 않았지만 심성을 제고시키지 못했음을 알았다. 이때 나는 “수련 인이여/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찾으라/ 갖가지 사람마음 많이 제거하고/ 큰 고비 작은 고비 빠뜨릴 생각 말라/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를 외웠다.(홍음3 –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법을 외운 후 나는 평온해졌다. 그 때 남편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에게 동료인 누가 사망했다고 말했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참으로 더욱 괴로웠다. 그와 우리 두 집은 40여 리 떨어져 있지만 사이가 아주 좋았다. 그런데 그들을 아직 구하지 못한 상태여서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아픈 마음이 오르내리며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이때 나는 ‘쩐싼런(眞善忍)’은 변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법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나는 ‘쩐싼런(眞善忍)으로 구성된 생명이니 변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 어떤 생명, 어떤 일이라도 다 나의 마음을 교란할 자격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비로소 조용해졌다.

마침 시간이 되어 침실로 들어가 12시 발정념을 했다. 그래도 계속해서 두 가지 일이 생각났다. 아직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발정념을 하면서도 남편과 옳고 그름을 따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점심도 먹지 못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여러 해 동안 이미 이런 습관을 양성헸기 때문이었다. 발정념을 마치고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은 나의 신체 상태를 알고 있으면서 나를 화나게 했다. 나는 당신과 다투지 않고 간신히 참고 있었는데 또 당신은 나에게 누가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말했다. 당신은 생각해보라. 이 두 가지 사건을 동시에 나에게 안긴다면 내가 버틸 수 있겠는가? 당신은 마땅히 청성을 유지하며 일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을 하고 곧바로 내가 잘못됐음을 인식했다. 일에 부딪히고 나서 또 밖으로 찾은 것이다.

나는 사부님의‘시드니법회 설법’을 읽었다. 책을 펼치자, “우리가 거리를 가늠하는 표준은 늘 인류 자신의 현대과학의 이 각도에서 일체를 가늠한다. 당신은 실증과학의 틀과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신이 그 공간에 들어가려면 그 공간의 형식에 부합되어야만 비로소 들어갈 수 있다.”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이 한 단락의 법을 읽고 나는 단번에 점오를 받았다. 지금과 같은 이런 상태는 여러 해 동안 지속되었는데, 무슨 일이든지 부딪히면 늘 옳고 그름을 따지며 나 자신이 옳다는 마음을 언제나 제거하지 못했다. 표면상 우리 부부는 자신들이 수련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직 사람의 고유의 관념, 육친정, 남편, 가족 등등을 내려놓지 못했다. 사람의 관념적 틀에 갇혀 심성이 제고되지 못하고 한 층차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수련인은 다 원만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법리에 명백하지 않아 사람 마음을 제거하지 못했다. 사람의 이치가 수련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마치 담이 가로막고 있어 늘 걸어서 지나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법리를 깨닫고 나니 마음속이 확 트이고 신체가 가벼워지고 머리가 똑똑해졌다. 누가 옳고 그름을 따져도 다 매우 강렬한 쟁투심인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자아에 집착하는 마음, 이 마음이 줄곧 나로 하여금 이 한 층차에 머물러 있도록 저애하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여러 해 동안 수련했어도 제고하지 못한 근본 원인은 이런 집착심 때문이었다. 이런 기회를 이용해 부족함을 찾게 해주신 데 대해 사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나는 이것을 깨닫고 난 후 남편에게 잘못을 인정했다. 이전에 나는 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나에게는 뛰어난 식견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남편은 청성하지 않고 똑똑하지 못하다고 생각햇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자신의 이기적인 정(情)에서 생긴 것이며 이 정에서 강렬한 자아만이 체현됐던 것이다. 그러므로 남편을 원망하는 마음만 있고 남편을 신뢰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다. 나는 남편과 다투는 것이 외부적인 원인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것은 수련에 대해 엄숙하지 않은 모습으로, 수련인으로서 억제해야 할 하나의 썩은 물질인 것이다. 마침내, 나는 자아에 집착하는 스스로의 소용돌이 속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안으로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함께 인식을 제고하고 이 한 층차를 타파했다.

법의 이 한 층의 요구에 부합되는 상태에서 마음을 비우고 의념을 조용히 한 후 컴퓨터를 켜고 다시 달력을 인쇄하기 시작했다. 달력 표지에는 잉크는 물론 다른 무슨 흔적도 나타나지 않았다. 수련은 정말로 신기하고 초상적이다! 나는 진실하게 체험했는데 안으로 찾아 심성을 닦고 법리에 동화하면 오묘하기가 이를 데 없다. 본질적으로 제고된 경지의 변화는 자신의 공간장의 일체를 개변할 수 있고 물체와 소통할 수 있으므로 일체의 물질과 생물은 다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대법의 자비와 위엄은 수련 경지의 승화 중에서 체현된다. “그러나 그의 박대정심(博大精深)한 내포는 오직 수련하는 사람이 부동(不同)한 층차 중에서 진정으로 수련해야(眞修)만 비로소 체험하고 깨닫고 나타낼 수 있으며, 비로소 법(法)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볼 수 있다”(정진요지 – 박대)

심성의 승화는 마치 인체의 맥락처럼 일맥이 백 맥을 이끌고 모든 맥을 다 여는 것과 같은 초상적인 경지를 체험하게 했다. 이것은 내가 진정한 체험으로 알게 된 것이다. 이튿날 아침, 연공하려고 MP3를 작동시키려니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건전지가 다 된 것이다. 내가 막 건전지가 다 됐다고 말하려고 하려다가 순간 자신의 일사일념을 바로잡고 ‘사부님께서 지켜보시고 계시다. 꼭 전원은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1동작부터 5동작까지 전부 다 연마할 수 있었다. 그 후 6시 발정념을 할 때까지 녹음기는 정상적으로 작동됐다. 대법수련은 너무도 신기하다!

문장발표 : 2013년 1월 1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수련체험>심성제고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13/2677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