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
[밍후이왕] 24일 대륙 수련생이 쓴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감당하셨다”를 다시 논함과 “무장부장이 대법을 수련한 일부 경험”등 문장을 보고 나도 역시 자신의 인식을 말해보려 한다.
밍후이편집부 문장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중에 이런 한 단락이 있다. “이 사악한 위험 정황에 직면해 사부님께서는 이런 수련생에게 내려온 압력과 사악이 형성된 거대한 물질요소를 한데 뭉쳐, 자신의 신체로 감당하셨고, 동시에 그런 사악한 거대한 요소를 소멸하셨다. 이런 사악한 생명이 거대한 업력과 악독한 요소를 집결해, 사부님께서는 9개월간 시간을 이용하셨고, 아울러 강대한 공력으로 비로소 그런 물건을 소멸하셨다. 그러나 사악한 요소와 업력의 요소로 사부님의 신체에 엄중한 파괴를 조성했다. 사부님의 머리도 희었다. 이것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부님의 신체에 조성한 그 상해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지 않으신다. 이로 인해 수련생이 사악한 생명에 원한을 조성해 수련생의 수련에 영향을 미칠까봐 걱정하시기 때문이다. 얼마나 자비하고 위대한 사부님이신가, 정법 중 사부님께서는 중생을 위해 일체를 다 소모하셨다.
사부님은 ‘전법륜(轉法輪)’에서 말씀하셨다. “스승이 어떤 것들을 주는가를 말하자면, 나는 여러분에게 이런 것들을 준다. 나의 법신(法身)은 당신 스스로 당신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때까지 줄곧 보호해 준다. 그때면 당신은 世間法(쓰젠파) 수련을 벗어났을 것인데, 당신은 이미 도를 얻은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정법시기 대법제자’ 경문에서 “만약 당신들을 위해 역사상의 일체를 감당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전혀 수련할 방법이 없고, 만약 우주 중생을 위해 일체를 감당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역사가 지나감에 따라 해체될 것이며, 만약 세인들을 위해 일체를 감당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오늘날 세상에 있을 기회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개인의 이해로는 정법시기의 수련은, 박해당한 대법제자 자체의 업력, 구세력 및 각종 교란, 파괴한 정법요소가 제자로 향한 거대한 압력은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많은 것을 감당하셨다. 그렇지 않으면 제자는 박해 중 걸어지나 가기가 어렵다. 물론 잘한 제자는 법에서 수련했고 대법의 신기함과 초상적인 것을 나타냈고 바로 법을 실증했다. 그러나 많은 수련생도 부딪히고 곤두박질하며 관을 넘기고 난을 지나왔다. 심지어 세 발짝 가고 두 발짝 후퇴하기도 한다. 사부님께서는 제자의 정념을 가지하기 위해 마음을 쓰셨다. 만약 사부님의 감당이 없으면 필연 일부 관과 난은 더욱 커진다. 이런 것은 박해당한 제자로서는 마땅히 깊은 체험이 있다.
몇 년 전 바로 이런 ‘누가 감당’이란 토론이 있었다. 그때 일부 수련생은 교류 문장에서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감당하셨다.”고 썼다. 교류문장 ‘무장부장 대법 수련 중 일부 경력’중에서 제자는 글로 적었다. “악한 경찰이 나를 때릴 때, 매우 잔혹하게 때렸지만 나는 그다지 아픈 감각이 없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를 감당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개인의 인식인데 일률로 부정하거나 혹은 수련생의 이런 이해를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구체적인 정황에서 이것 역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인식했는데 일부 문장에서 이끌어낸 이런 “자연스러움”, “마땅함”은 사부님께서 감당한 인식에, 일종 쉽게 느끼는 표현이다. 자신의 관과 난이 해탈한 느낌에 더욱 집착한다. 이런 관을 넘기고 어려움에서 부동한 정도의 해탈을 얻은 것은 착실하고 신기한 심리감수가 섞여 있고 이후에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감당하셨다.”는 인식이 자신을 더욱 중히 보게 된다. 어쩌면 단지 “사악이 나를 때렸고 나는 아프지 않았고 사부님이 감당했다.”는 뿐이고 “사당은 여전히 때리고 사부님은 여전히 감당”해야 하는 이런 인식이 아닌가?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무소부능하다. 사부님께서 고생하면 고생이 아닌가? 제자는 마땅히 이런 “사부가 제자를 위해 감당”했다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인식하는가?
일부 부동한 층차에 열려서 수련하는 수련생도 관을 넘기는 과정에서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감당하는 정황을 말했다. 제자로서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매 번 제고 중 사부님께서 얼마나 많은 감당과 지불이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 사부님은 구세력의 존재를 승인하지 않고 수련생도 이 이치를 알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고비에서 입으로 승인하지 않는다고 하고 수련생의 일언일행은 다 승인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언제 우리의 대각자의 금강의지를 수련해낼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미국국제법회설법’중에서 “만약 정말로 곤란 앞에서 염두가 아주 바르면, 사악의 박해 앞에서, 교란 앞에서 당신이 정념으로 단호하게 말한 한마디는, 사악을 즉석에서 해체할 수 있으며, (박수) 사악에게 이용된 사람이 고개 돌리고 도망가게 할 수 있으며, 당신에 대한 사악의 박해를 종적도 없이 깨끗이 사라지게 할 수 있고, 당신에 대한 사악의 교란을 형체도 없이 사라지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오직 진정으로 자신을 잘 수련하여 비로소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적게 감당하시게 해야 한다.
개인의 인식이고, 치우치는 것이 있으면 수련생이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2년 12월 27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이성인식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2/27/2670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