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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법 공부를 중시하여 배우고 마음을 연마하자

글/베이징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 안녕하십니까!수련생, 안녕합니까!

사부님을 따라 정법의 길을 걸으면서 비록 비틀거리고 또 곤두박질치기도 했지만 다행히 맘속으로는 대법을 굳게 믿고 있어서 지금까지 걸어올 수 있었다. 지나간 1년을 되돌아볼 때 특별히 무슨 큰일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수확은 아주 많았다. 수련에 대해 말한다면 그래도 실수(實修)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자신의 일부 문제에서 관을 잘 넘겨 심성이 갈수록 온정(穩定) 해졌으며 사람 구하는 일도 한 걸음 한 걸음씩 착실하게 이루었다.

1. 법 공부를 첫 자리에 두고 법 공부를 중시하다

사부님께서 “중생을 구도하고 대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잘했고, 변화가 큰 그런 지역은 반드시 여러분이 법 공부를 잘한 것이다. 개인적인 제고가 빠른 그런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중시한 것이다. 왜냐하면 법은 기초이고 대법제자의 근본이며 일체의 보장이고 사람으로부터 신으로 걸어가는 탄탄대로(通途)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도 오스트레일리아법회의 기회를 빌려, 전 세계 모든 대법제자에게 알려준다. 신노(新老) 수련생을 막론하고 반드시 바쁘다고 하여 법 공부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법 공부는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염두(念頭)를 집중해서 배워야 하며, 진정하게 자신이 배워야 한다.” [1]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여러 번 곤두박질친 적이 있다. 근본적인 원인은 법을 잘 배우지 못했고 법 공부를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박해받기 전에 매일 책을 읽기는 했지만 형식에 따랐을 뿐이었다. 확실하게 말해서 그때는 아직 어떻게 법을 배워야 할 것인지를 잘 알지 못했다. 자신도 책을 보고 있으니 법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다른 사람이 법에 대해 말하면 나도 대법의 법리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일단 책을 내려놓으면 머릿속은 전부 속인의 생각으로 어느 것이 참 나인가를 바르게 구별하지 못했다.

오랜 기간 굽은 길을 걷다가 깨달은 바가 있어서 2010년부터 형식에 치우치지 않는 법 공부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때 직장에서 내 능력에 합당하지 않은 저급한 직위에 배치하는 바람에 받는 월급으로는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러나 사부님의 가르침대로 마음을 내려놓고 법 공부에 전념했다. 직장에 사람이 없을 때 법을 외웠는데 하루에 4, 5시간 동안 외울 수 있었다. 법을 외우면 외울수록 몸이 가뿐하고 기분이 유쾌했으며 심신이 가득 차서 대법의 지도가 있으면 이후의 길은 반드시 잘 걸을 수 있겠다고 믿었다.

1년 후인 2011년 나는 직장에 나에게 걸맞은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자 직위가 변동되어 정상적인 대우를 받게 되었다. 이 일이 속인이 보기에는 아주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나를 도우셔서 좋은 기회를 주셨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므로 나는 자주 명리심이 나올 때마다 ‘나의 생명은 사존께서 주신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없어졌을 것이다.’라고 생각했고, 또 ‘지금의 나의 생명은 대법에 동화하여 중생을 구하는 데 있지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스스로를 일깨웠다.

작년에 설을 쇨 때 우리 가족은 시가 댁에 가서 보냈다. (그들에게 진상을 알린다는 생각에서 해마다 시가에서 설을 보냈다.) 남편은 4남매 중 막내였다. 그들 형제자매들은 모두 이 사회에서 중상층에 속할 정도로 비교적 경제적 여건이 우리보다 훨씬 좋았다. 그들은 우리의 형편이 가장 어려웠을 때 도와준 적이 있지만, 악당을 두려워한 나머지 “부모와 가족 친지들에게 고통을 가져다주었다.”며 그 책임을 우리에게 지워 원망하고 특히 나에 대한 불만이 커서 우리는 그들에게 좀처럼 진상을 알려주지 못하고 있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나 스스로 넘지 못하는 심성의 관을 갖고 있었는데 바로 남편이 시댁에 오기만 하면 시부모가 남편에게만 잘 대해주고 남편과 그들이 함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마음의 평형을 잡지 못하는 속인의 사상애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어찌 이렇게 수련인답지 않은가?’라고 고민했지만 그 환경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작년에 또 시댁으로 갔다. 이번에도 내 눈앞에서 표현되어 나타난 것은 역시 나에 대한 심성 관이었다. 시어머니가 무심코 “그곳의 자식들 수입이 얼마나 많고 조건이 어떻게 좋다.”라는 말을 했다. 이런 말을 들은 나는 질투심과 불복하는 마음이 생기고 또 자비심 등 여러 가지로 복잡한 생각이 뒤섞이며 평형을 잡지 못하게 마음을 괴롭혔다. 이러는 자신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맘속으로 억누르면서도 ‘간혹 억제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지.’ 하는 안이한 생각을 했다.

어느 날 나는 시어머니와 다투게 됐는데 이때 남편이 와서 나를 질책하는 바람에 나는 상당히 긴장하게 됐다. 만약 이전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이 명절은 잘 지낼 수 없었을 것이고 모두 불쾌한 기분으로 헤어졌을 것이다. 순간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사람을 구하러 온 것인데 어떻게 사람과 이런 모순을 발생하게 했는가? 마음속을 개변시키지 않고 좋지 않은 생각을 없애지 않는다면 상황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하는 인식을 했다. 그래서 될수록 집안일을 많이 하고 될수록 자신이 책임을 지면서 열심히 법 공부했다.

아마도 내가 이처럼 마음을 개변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을 읽었을 때 사부님의 말씀에 가슴이 뜨끔했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어떠한 환경에서든, 어떠한 상황에서든 사람과 모순에 직면했을 때, 모두 선량한 마음, 자비로운 마음으로 일체를 대해야 한다. 당신이 당신의 적을 사랑할 수 없다면 당신은 원만(圓滿)을 이룰 수 없다. (박수)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평범한 속인이 당신을 화나게 했을 때 당신은 그를 용서하지 못하는가?!” 여기까지 읽었을 때 마음속에 어떤 느낌이 왔고 머릿속이 단번에 똑똑해졌다. 그렇다.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모두 선량한 마음으로” [2] 대하지 않고 언제나 다른 사람을 나쁘게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나를 나쁘게 취급하며 나에 대해 어떻게 나쁜 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진정으로 내가 집착하는 문제점을 찾고 난 다음 다시 시어머니를 대하니 그녀는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를 대했고 모든 것이 좋아졌다.

나는 시댁에서 설을 쇠는 동안 1999년 전의 사부님 각지 설법을 모두 한 번씩 읽었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99년 전에 이미 후에 가능하게 발생할 일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말씀하셨으며 심성은 어떻게 제고시켜야 한다는 점도 모두 말씀하셨다. 나는 왜, 그토록 그렇게 긴 기간 동안 굽은 길을 걸었는가? 바로 법 공부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법 공부를 중시했다.

나는 지금 매우 절실한 마음으로 법 공부하고 있다. 매일 법 공부 팀과 함께 법을 읽었고 혼자서는 매일 몇 단락씩 외웠으며 후에는 매일 몇 쪽씩 외울 수 있게 되었다. 매일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 공부할 때 언제나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는데, 법을 읽거나 외우는 중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이 뜻이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즉시 느낄 수 있었고 깨달을 수 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기만 하면 반드시 매일 새로운 체득이 있을 수 있다. 명혜망에서 한 수련생은 “사부님의 한마디 말씀마다 모두 그에게 도리 하나를 명백하게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나도 바로 그런 체득이었다. 법에서의 한마디 말씀은 모두 나에게 하나의 법리를 보게 했다. 정말로 좋았다.

2. 가정에서 실수하다

가족이 모두 수련하기 때문에 3가지 일을 하는 데는 의견이 없지만 가정 중의 모순은 여전히 아주 많았다. 이전에는 자신을 연마하는 것을 중시하지 않고 자신의 감수를 중시했으므로, 남편과 애들에 대한 문제나 양쪽 부모에 대한 문제로 인해서 말다툼하게 되는 등 큰 모순이 끊이지 않고 발생한 적도 있었다.

나는 정에 대한 집착이 큰 사람이고 남편 수련생은 사람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어서 쉽게 다른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남편의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바로 나의 친정부모와 친정식구들이었다. 친정부모는 내가 법을 얻을 때부터 대법을 반대해왔다. 친정아버지는 악당의 기관장이었으며 친정어머니는 비록 당원은 아니었지만 악당의 그런 방식을 잘 알고 그것에 잘 적응했다. 남편의 말로는 나의 친정어머니는 전형적인 악당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의 대법수련을 반대할 때 대법이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해도 친정부모는 우리의 말을 믿지 않으면서 나를 향해 바보라고 나무라고 남편에 대해서는 달리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 의심했다. 십여 년 동안 이렇게 지내오면서 우리는 그들을 구하려는 신심조차도 잃어버렸다. 그러므로 남편은 나의 친정집의 그런 지위와 재산을 따지는 사상을 아주 좋지 않게 생각하면서 친정부모를 경원시했다.

상대적으로 남편의 부모는 대법을 인정하고 악당이 나쁘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어 이 방면에서는 훨씬 좋았다. 남편은 평소에 말할 때 무심코 이런 양쪽 집안을 비교하며 친정 집안을 폄하하면 나는 맘속으로 균형을 잡지 못해 처음에는 참고 말은 안 했어도 불편하고 괴로웠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길어지자 결국 참지 못하고 남편에게 불공평한 처사라며 원망하고 질책하자, 남편도 견디지 못하고 나를 향해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한다고 화내어, 서로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주장하며 양보하지 않고 바깥을 향해 찾으며 다투었다. 이것은 진정으로 법에서 자신의 집착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꾸물거리며 제때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으로, 이런 문제가 나타나 우리의 수련을 제고하는 데에 장애가 되어 이곳에서 사악이 우리를 방해하는 틈이 된 것이다.

우리 부부가 이렇게 2년 동안 아이나 부모 문제로 다투고 싸우게 되면서부터 직장 보위과와 가두 주민 위원회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오기 시작했음을 발견했다. 우리가 대법의 요구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악이 그걸 구실로 삼아 속인을 통제하여 우리를 방해하려고 온 것이다. 그 원인이 우리 몸에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것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어디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고 법 공부를 중시했고 안을 향해 찾아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법 공부팀에서 교류할 때 성실하게 우리의 집착을 폭로하고 모순을 피하지 않은 채 침착하게 스스로의 문제점을 찾았다. 남편은 나에게 “당신은 정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서 부모와 애들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이 간섭하게 되면 견디지 못하고 싫어한다.”고 지적해 주었다. 남편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확실히 그랬다. 누가 애들이나 부모에 대해 평가를 하면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만약 그들이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그의 평가가 정확하다고 생각되어도 몹시 싫어했다. 나의 그런 집착심은 이미 주위의 수련생들도 알게 되어 나에게 지적해 줄 것이 있어도 그가 말하면 내가 싫어하거나 화낼까 봐 두려워서 감히 말하지 못했다. 정말로 집착심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한 사람의 진정한 생명은 元神(왠선)이기 때문에 당신의 왠선을 낳은 그 어머니만이 당신의 진정한 어머니다. 당신은 육도 윤회 중에서 당신의 어머니가 인류였든, 인류가 아니었든 다 헤아릴 수 없다. 생생세세(生生世世)에 당신은 자녀가 얼마인지도 헤아릴 수 없다. 어느 누가 당신의 어머니고, 어느 누가 당신의 자녀인지, 두 눈을 감기만 하면 누구도 누구를 알아보지 못하며, 당신이 진 업은 그대로 갚아야 한다. 사람은 미혹 중에 있기 때문에 곧 이런 것을 내려놓지 못한다.” [3]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대법제자로 수련하는 사람이고 법리는 다 알고 있으므로 다시는 이런 집착에 빠져서는 안 되고 눈앞에 있는 물건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부모, 아들딸과의 금생의 연분은 대법을 위해 온 것으로, 구도되고 법을 얻을 수 있으며 대법 중에서 수련하는 것은 가장 행복한 일인데, 우리가 가족을 선하게 대하고 다른 기타 중생을 선하게 대하는 것처럼 대해야 한다. 어느 사람의 그의 전생은 당신의 부모이고 아들딸일지도 모르므로 다시는 이런 것을 가리지 말고 마음을 이런 방면에 둬서는 안 되며, 사람의 정에 서로 엉켜 방해돼서는 안 되고, 대법에 정련되는 생명이 바로 하나의 신인데 어떻게 아직도 삼계의 정에 따라 움직이겠는가? 안 된다! 나는 남편에 대한 원망, 그의 가족에 대한 질투, 자신의 부모에 대한 정과 부모로서의 마음을 개변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 집착의 마음을 내려놓았다.

가정의 관을 넘는 과정 중에서 또 나의 많은 마음이 반영돼 나왔다. 예를 들면 물질 이익에 대한 집착, 언제나 다른 사람보다 강하려는 마음 그리고 질투심과 자비심 등등, 모두 법 공부하는 중에서 하나하나 인식했고 하나하나 온 힘을 다해서 연마하여 없애니 온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 대면하여 션윈 CD를 배포하다

2011년 션윈 홍보 CD가 나왔을 때 나는 거리에서 속인들에게 배포해 봤는데 사람의 경계심이 아주 강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아주 적었다. 명혜망에서 수련생들이 교류한 것을 보면 “금년 션윈 CD는 직접 대면하여 배포해야 한다. 이걸 널리 전파하는 것은 요구에 따라 하는 것인데 이것은 사부님 정법 노정에 따라가는 것이다.”라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사실 사부가 어떻게 하고자 하면 결코 간단한 생각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주 많고 많은 기반을 다지는데, 당신들은 보지 못하지만, 그런 신들도 모두 같이 하고 있다. 모든 것을 다 다져 놓고, 당신이 가서 하기만을 기다리는데, 그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한다.” [4]라고 말씀하셨다. 금년에는 대면하여 션윈 CD를 전파해야한다고 요구하는 이상, 그러면 꼭 조건이 이미 있다는 것으로 우리가 하기만 한다면 CD는 꼭 속인에게 대면으로 배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이 일을 잘하면서 션윈 CD를 인연 있는 속인에게 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대면하여 배포할 때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하나는 두려워하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체면을 고려하는 것이었는데 속인들이 받지 않을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발정념하여 사람을 구하는 것을 방해하는 좋지 않는 나의 요소를 제거했다. 일단 입을 연 후, 한두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하면서 두려운 마음이 없어졌으며 그 사람이 CD를 받든지 받지 않든지 개의치 않고 계속 다음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라 사람에게 션윈의 진귀함을 알려주면서 맘속으로는 세인들이 구도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이렇게 하여 10여 개의 CD를 아주 빨리 모두 배포했다.

정말로 금년과 작년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대면하여 션윈 CD를 배포할수록 더욱 많은 세인이 받아 갔는데 젊은 사람이든 나이가 많은 사람이든 모두 받기를 좋아했고 아주 기뻐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한 수련생이 CD를 배포할 때의 상황을 이야기했는데 나와 공감이 있었다. 이를테면 CD를 배포할 때 사람마다 반응은 각기 달랐다. 그(그녀)에게 “이것은 전 세계 중국 사람들의 신년만회로 해외의 중국 사람이 국제적으로 펼치는 공연인데 우리 중화민족 5천년의 전통문화를 연출한 것이다. 공연은 세계에서 최고로 평가받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수백 번 순회공연을 했다. 곧 대륙에서도 공연하게 될 것이다. 금년에 우리가 이것을 홍보하면서 이 CD를 선물로 주는 것인데 놓치면 아주 아쉬운 일이다.”라고 알려 주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은 처음에는 표정이 아주 냉정하고 굳어 있다가도 우리들의 설명을 듣고 나서는 즉시 웃으며 계속 감사하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나와 중화문화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하면서 아주 흥미가 있다고 했다. 나의 연락처를 알려달라면서 새로운 션윈 CD가 오게 되면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처음에 믿음이 가지 않아 내게 아주 많은 문제를 물어봤다. “왜, 이런 걸 배포하는가. 왜, 돈을 받지 않나. 안의 내용은 정말 좋은가?” 등을 물었다. 나는 “우리는 좋은 물건을 전파하는 것일 뿐이다. 대만에서는 한 달에 37회나 공연을 한 작품이고, 한국에서도 13회에 걸쳐 공연한 것인데 좋은지 안 좋은지 한번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보고 나서 기분도 좋아지고 신체도 건강하게 됐다.”라고 했다. 내가 그녀의 많은 의문점에 대해 확실하게 대답해주자 그녀는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걸 확신하고 CD를 받은 후 아주 고맙다는 표정이었는데, 내가 다른 곳에서 설명할 때 그녀가 나에게 손을 흔들어 격려와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어느 날 내가 CD를 배포하는데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아침저녁으로 공원 저쪽에서 춤추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곳에 있는 많은 사람은 문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그곳에 가서 배포를 해봐요.”라고 알려주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선 새벽에 운동하는 길가의 한 장소를 찾아갔다. 과연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났는데 한 50여 세 돼 보이는 사람이 얼후[二胡. 호금(胡琴)의 일종으로 두 줄 현악기]를 켜고 있었다. 그녀에게 “이 CD 안에도 얼후의 연주가 들어 있는데 한번 보세요. 좋다고 느끼실 거예요.”라고 했다. 그때 옆에서 탁구를 치던 남자가 다가와서 션윈 CD라는 말을 듣고 “안다, 나도 안다.”라고 말하며 얼른 CD를 가져갔다. 그러자 그곳에 아침 운동을 나왔던 사람들이 모두 CD를 가져갔으며 두 사람은 애들에게 주겠다며 한 장씩 더 가져갔다. 내가 그곳을 떠나려고 할 때 맨 처음 CD를 가져간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나를 향해 “나는 안다. 이것은 파룬궁(法輪功)의 CD다.”라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그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렇게 배포하기 시작한 후 날이 갈수록 가지고 나간 CD가 모자랐다. 처음 배포할 때는 한 번에 10장 정도를 들고 나갔지만 지금은 40여 장의 CD와 가방 가득히 책자를 갖고 나가도 2시간이면 모두 배포가 됐다.

션윈 CD를 배포하는 과정도 자신을 연마하는 하나의 과정이었는데 가장 두드러지게 작용하는 것은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었다. 비록 자신의 두려움이 심하지 않다고 생각하더라도 중국대륙의 이런 환경 때문에 배포할 때는 가끔씩 ‘어떤 사람이 나를 노려보고 있지는 않은가. 고발당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했다. 물론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 보통 내가 쓰는 방법은 한곳에서 오래 머물지 않고 4, 5장 내지 10여 장을 배포하고는 즉시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선택한 장소도 자주 바꾸면서 고정적인 일정한 틀을 만들지 않고 너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도 배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많을 때는 그에게 어떻게 말하고 설명해도 그가 집중해서 듣지 않음을 발견했다. 사람이 적은 곳에서 그에게 집중적으로 말해 주면 그는 멈춰 서서 설명을 듣고 효과도 비교적 좋았다. 내가 나가서 배포할 때는 한 곳에 도착한 후 먼저 발정념으로 거기에 있는 사악의 요소를 제거하였으며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의 배후에 있는 사악의 요소를 제거하고 나서 그 사람에게 말했다.

그러나 아직도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을 없애는 일부터 하지만 그래도 일부 방해가 있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CD를 받아들고 “이건 파룬궁의 CD 아닌가?”라고 묻는다. 처음 그런 일을 당했을 때 나는 그의 물음에 직접 답하지 않고 “이것은 중국 전통문화를 연출한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파룬궁의 CD라면 가져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때 그 사람의 사상에 악념이 있고, 자신에게는 두려운 마음이 있어 대답하지 않았고 진상을 알리지도 않았다. 나중에 나는 아주 후회했다. ‘사람이 비록 CD를 받았지만 나중에 그 안에 파룬궁의 내용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CD 안에는 좋지 않은 것이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버리거나 다른 짓을 한다면 나는 그를 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나쁜 일을 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CD는 아주 진귀한 것인데 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무리해서 주면 안 된다. 나는 왜 정정당당하게 사람들에게 파룬궁의 진상을 알려주며 CD를 배포하지 못했는가? 먼저 두려움을 연마해 없애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부터 어떤 사람이 물으면 나는 “파룬궁은 좋은 것이다.”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명백해졌다.

한번은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어떤 모자에게 CD를 줬는데 아들은 20여 세 정도로 보였다. 그들에게 션윈을 소개해주자 아들이 “파룬궁의 CD가 아니냐?” 하고 물었다. 나는 마음을 잡고 그의 눈을 보면서 “파룬궁 수련생들이 공연한 것이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좋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CD를 내게 돌려주려고 하는데 그의 어머니가 아들을 막으며 “받아라, 받아!”라고 했다. 사악이 나를 고험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래서 내가 “이건 정말로 파룬궁이다!”라고 말하자 그들은 오히려 받았다. 이전에 내가 두려워하고 있을 때 받지 않은 것은 두려워서가 아니라 사실은 그 두려움이 구실을 댄 것이었다.

내가 또 잘못한 적이 있다. 그날 아침에 부채춤을 추는 한 무리 사람을 봤는데 50여 세 돼 보이는 15~16명이었다. 그들에게 다가갔을 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파룬궁의 CD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할까? 사람들도 많아 걱정도 좀 되고 하니 많이 배포하려면 위험을 자초하지 말아야겠다. 그러니 직접 파룬궁이라고 말하지 말고 전처럼 전통문화의 연출이라고 말하자.’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런 태도는 바로 사람을 구하는 중요한 사명을, 일하는 것처럼 생각한 것이고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이 섞여 있으며 자신을 보호하려는 사심과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나는 다가가서 앞에서 율동하고 있는 사람에게 “미안하지만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여기에 선물이 있는데 바로……”라고 했다. 앞에 있던 사람은 받았는데 좋아함을 알 수 있었다. 그러자 여러 사람이 모두 몰려들어 서로 가지겠다며 사람마다 빼앗다시피 하나씩 가져갔다. 그러나 그 후 즉시 그중 옷차림새도 꽤 괜찮다고 여겨지는 사람이 나를 향해 “파룬궁의 CD가 아닌가?”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금방 생각한 것처럼 “전통문화를 공연한 내용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 대답을 듣고도 “이건 파룬궁 CD다.”라고 하면서 돌려주었다. 나는 웃으면서 그녀가 돌려주는 것을 받으면서 “이것은 자원적인 것이다. 보고 안 보고는 모두 각자의 자유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또 3, 4명이 그녀의 행동에 영향을 받고 내게 CD를 되돌려주었다. 그녀들은 내게 “왜, 정확하게 대답하지 않는가?”라고 계속해서 채근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CD를 가져가지 말고 돌려주라고 권했다. 이때 나는 발정념하기 시작했다. 앞에서 춤추던 사람이 “안의 제목을 보려는데 괜찮은가?”라고 물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기뻤다. 그렇다. 전에 교류할 때 한 수련생이 한 말이 생각났다. “안의 무용을 보는데 어떻단 말인가? 누가 공연했는가를 보지 말고, 공연이 얼마나 좋은지 좋지 않은지를 자신이 직접 가늠하면 되지 않는가?”라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나는 발정념하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그 후 수련생과 교류했는데 이것은 여전히 나의 두려움을 향해 온 것이라고 했다. 언제나 파룬궁의 문제를 회피하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해서 어떻게 정정당당하게 할 수 있는가? 이것은 내가 제고해야 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이미 많은 사람은 션윈 CD를 알고 있다. 어느 날 아침에 나는 주택구역 입구에서 옷차림이 좋은 중년 여자 두 사람이 대화 중인 것을 보고 다가가 션윈 공연을 소개하고 CD를 주자 그중의 한 사람이 “나도 안다.”라고 말하며 나를 한번 힐끔 쳐다보고는 동료에게 “내가 좀 있다가 알려줄게.”라고 했다. 그들은 CD를 손에 들고 대화하면서 걸어갔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주 기뻤다. 그들은 어디선가 션윈 CD에 대해 들었거나 직접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그들에게 션윈 공연을 보고 구도되도록 안배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4. 수련생과 협조하는 중에서 자신을 집착하는 마음을 닦아버리다

우리 법 공부팀에는 모두 다섯 사람이 있는데 우리 세 식구와 다른 한 쌍의 부부다. 우리는 함께 법 공부하고 협조하며 3가지 일을 한 지가 이미 10여 년이 돼 온다. 이 과정에서 모순도 있었고 심지어 굽은 길을 걸은 적도 있었으나 모두 마음이 다 법에 있었고 어떻게 해야 자신을 잘 수련하고 조사정법 하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진상자료를 만들 때 우리는 서로 협조하면서 여러 사람의 부동한 특징에 따라 부동한 진상을 알리는 항목을 선택했다.

우리는 하나의 정체를 이루었으나 이 정체 중에서도 시시각각 심성을 연마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곤 했다. 그중에서 가장 크게 나타난 모순은 바로 우리 부부와 그 한 쌍의 부부가 하는 일의 방법과 일부 의견에서의 다른 점이었는데, 언제나 다른 사람이 잘못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들과 교류할 때 우리가 질책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으니 당연히 마음은 순정하지 않아 그들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더욱 모순이 엄중해질 땐 우리는 각자 자기 마음에 맞는 대로 했다. 다행히 지금은 몇 년 전과 달라져서 문제가 발생하면 서로 머리를 냉정히 하여 자신을 볼 수 있어서, 갈수록 어떻게 협조해야 하는지를 마음속으로 생각하게 되어, 모순으로 부딪치는 정도는 적어졌다.

최근에 발생한 일인데 나와 수련생이 협조하는 중에 폭로된 집착심으로 또 하나의 청성한 인식이 있게 됐다. 이 일은 바로 이 부부 수련생의 한 친척 수련생의 생사 관과 관련된 일이었다.

그들 부부에게는 친척 수련생이 있었는데 2년 전부터 갑자기 신체가 급속도로 여위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녀는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생각했으나 후에 11.5kg 정도까지 체중이 감소됐을 때(원래 65kg) 극도로 쇠약해지면서 식사도 못하고 잠도 이루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고, 작년 6월부터는 두 다리가 붓기 시작하더니 한 달 동안에 다리의 굵기가 허리통만큼 변했다. 겁에 질린 가족들이 서둘러 병원에 데려가서 검진한 결과, 가장 치료가 곤란하다는 폐암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우선 폐에 고인 수액을 뽑아내고 퇴원했으나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뇌에 세균성 종양이 있어 뇌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 부부는 줄곧 그 환자 옆에서 정념으로 격려하며 그녀를 보살펴주고 있었다. 우리도 그 환자를 찾아가서 어떻게 안을 향해 찾으라고 격려했다. 그러므로 환자 자신도 스스로 많은 집착을 찾아냈다. 환자 수련생은 후에 퇴원하여 귀가했는데 현지 다른 수련생들도 환자를 찾아가서 격려를 보냈고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는 법 공부팀도 구성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그 환자 수련생이 사람 마음의 마난(魔難) 중에 있는 상태를 봤으며 우리 또한 그랬다. 그 환자수련생 문제로 의견 충돌이 되면서 심지어 언쟁했으며 서로 질책하며 상대방을 무시하는 가장 좋지 않은 상태로까지 되었다. 또한 마난 중에서 환자 수련생은 확실히 사람을 차별하는 마음을 나타내기도 했는데 우리 부부가 한 말은 받아들이되 친척 수련생이 한 말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우리 모두는 환자 수련생의 상태가 빨리 좋아지기를 기원했기 때문에 각자 자기의 각도에서 생각하며 상대방의 의견이나 방법이 틀렸으며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서로를 나무라고 질책한 것이다. 급한 마음일수록 더 그랬는데 우리는 서로 상대방의 집착을 봤을 뿐이다.

1년 동안 이렇게 밖을 향해 보고 찾는 상황은 처음과 같이 그대로 개변되지 못했다. 금년 7월 환자 수련생은 갑자기 복부의 통증이 심해졌다. 수련하지 않는 가족이 그녀를 병원에 입원시켜 검사해본 결과 담석이라는 진단이 내려져 담석 제거 수술을 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의 말로는 암이 이미 복강의 각 장기에 모두 전이된 위중한 상태라고 말했다. 가족이 즉시 항암치료를 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의사는 그녀의 현재 건강상태로는 항암치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담석 제거를 위해 개복 수술한 관계로 환자의 통증이 극심하여 병원에서는 매일 1회씩 돌랜틴(dolantin.마약진통제)을 주사했다.

수련생들은 모두 번갈아가며 병원을 찾아가서 환자 수련생에게 법을 읽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어느 날 내가 병원으로 갔는데 그럴만한 환경이나 분위기가 안 된다는 것을 발견했고 또 당시 환자와 같이 수련했던 현지 수련생들도 여러 가지 바쁜 일 때문에 하나둘 모두 병원 출입을 안 하게 되어 환자를 찾아오는 수련생은 극히 적었으며, 환자의 용태도 좋지 않아 돌랜틴 진통제를 하루 2회씩 주사한다고 했다. 이 같은 사실을 수련생 부부를 통해 알게 되어 우리는 함께 환자를 위한 집중적인 발정념을 하기 시작했다.

발정념을 통하여 자신이 환자 수련생을 위한다면서도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을 발견하였고, 한 수련생의 입을 통해 다른 수련생의 마음을 질책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도 똑똑하게 봤다. 자신이 한 말을 수련생이 받아들이지 않자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밀어버리며 오직 자신은 좋지 않은 작용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다른 사람만을 개변시키려 하고 자신은 개변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너무 강렬했던 것이다. 이러고도 어떻게 수련생을 도와주려고 했다는 말인가? 그건 단지 수련생을 이용하여 자신을 실증하려는 목적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환자 수련생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볼 때 마음은 더욱 급했지만 이 급한 마음속에는 자신이 수련생을 도왔는데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초조함이 숨어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일단 집착심이 나와서, 당신이 병을 잘 치료하지 못하면 당신은 조급해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심지어 그가 병을 볼 때 어떤 생각을 하는가? 이 병을 내가 대신 얻고 그의 병이 낫게 하자. 그것은 자비심(慈悲心)에서가 아니다. 그는 그 명리심(名利心)을 전혀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비심이 아예 생길 수 없다. 그는 자신의 명성을 잃을까 두려워, 자기가 이 병을 얻지 못함을 한스러워한다. 그는 이 명성을 잃을까 봐 몹시 두려워하는데, 명성을 추구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렬한가!” [3]라고 하셨다. 바로 그 말씀이 생각났다.

나는 자신을 찾는 한편 발정념했다. 이때 인터넷에서 한 수련생이 교류한 문장을 봤는데 “마난 중에 있는 수련생을 위해 발정념할 때 사람마다 발정념만 하고 마난 중의 수련생의 부족한 점을 보지 말고 결과를 보지 말라.”고 했으며 또 “자신이 순정한 마음 상태에서 발정념했는가 하지 않았는가를 보고 좋지 않은 사상이 있으면 즉시 제거하고 계속 발정념하라.”고 했다. 수련생의 교류는 아주 정확했다. 나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적게 하고 순정한 마음 상태에서 철저히 구세력의 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부정한다고 발정념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수련생의 상태가 뚜렷하게 좋아지고 통증도 상당히 완화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연마하는 의식도 자연히 강해졌다. 그제야 이전에 자신을 집착하고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이 강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모순이 나타날 때 안을 향해 찾지 않고 다른 수련생에 대해 불신하고 쟁투하는 마음이 있을 때 사악은 바로 그 틈을 타고 마난 중에 있는 환자 수련생의 신체에 박해를 가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집착을 찾고 동시에 마난 중의 수련생도 진정으로 안을 향해 찾는 자세로 변하자 사부님께서는 수련생의 마난을 없애주셨다. 이 환자 수련생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을 속인은 어떻게 생각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는 이 과정을 거치면서 진정으로 자신을 수련할 때 마난이 해체되는 것을 친히 목격할 수 있었다.

수련생과 모순이 생겼을 때 끊임없이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 각 수련생의 길은 다르다. 대법 중에 그렇게 많은 우주 중의 거대한 신의 모든 길과 각자 사람의 집착이 다르고 특징도 다르다.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길이 다르므로 자신의 표준으로 다른 사람을 가늠하고 다른 사람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단장취의(斷章取義)해서 다른 사람이 법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이런 생각은 협애한 사상이라는 것을 체득했다. 법 중에서 우리에게 요구한 것은 “대법제자는 어떤 일을 대하든지 모두 마땅히 긍정적으로 대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일면을 보지 말고 늘 다른 사람의 좋은 일면을 보아야 한다.”, “남들의 좋은 점을 많이 보고 남들의 좋지 않은 점을 적게 보라.” [5]는 것이다.

수련생이 자신의 수련의 길을 걷는 중 집착이 반영되는 것은 아주 정상적인 것이다. 수련생으로서 그(그녀)가 법 공부하는 기초에서 꼭 집착을 없앨 것이라고 믿어야 하지, 수련생을 질책하고 심지어 수련생의 수련 형식(일하고 생활하는 방식)을 부정하고 수련생에게 수련 방식을 개변하라거나 집착심을 제거하라고 질책해서는 안 된다. 이것도 내가 대법수련의 “대도무형’의 법리에서 얻은 깨달음이다.

수련생의 집착심을 봤을 때 선의로 건의해도 좋지만, 만약 자신의 사람 마음으로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관념을 갖기만 하면 틀린 것이며, 아주 쉽게 구세력에게 이용되어 수련생을 방해하여 쉽게 상대방에게 반감을 일으키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어떤 경우라도 다른 사람을 공격해서는 안 되고 더구나 인신 공격을 해서는 더더욱 안 되는 것으로 다시 말해서 모욕감을 줘서는 절대 안 된다. 이런 경우는 아주 위험한 상태를 초래하는 것으로 악당 문화의 체현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악당이 바로 한 사람의 명예심을 아주 납작하게 만드는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이런 사상이 나타나면 꼭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아주 쉽게 구세력에게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이 한 법문은 바로 직지인심(直指人心)으로서 개인 이익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 중에서 이런 문제를 담담하게 보고 가볍게 볼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이것이 관건 문제다.” [3]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수련생 간의 모순만을 너무 중시했던 것이었다. 수련생 중의 많은 모순은 속인 중의 일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그 반영해 나온 것은 속인의 마음이지만, 이런 모순은 사부님께서 우리의 집착을 없애라고 안배해주신 것으로 우리에게 좋은 일이고 제고하는 기회인 것이다. 속인 사이의 모순은 다만 업력의 윤보이지만 우리의 이것은 속인의 그런 모순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나는 그 본질적으로 수련하는 많은 기간 동안 다른 근본을 인식하지 못했으며 수련인 간의 모순과 속인 간의 모순을 구분하지 못한 채 헷갈려서 속인의 마음으로 추측하고 원망하며 속인이 하는 것처럼 이익의 득실을 따지고 생각하고 비교했다. 이것은 내가 아직도 아주 강한 쟁투 심과 불복하는 마음 그리고 다른 사람을 신임하지 않는 마음 또 질투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으로, 근본적으로는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맘속으로는 언제나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고 적게 손실을 보려는 그런 속성이었다.

착실하게 수련할 부분은 아직 아주 많고 부족한 점도 많다. 모든 대법제자와 함께 정진하고 사부님의 정법 노정을 바싹 따르고 사람을 많이 구하고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야 한다.

수련생 감사합니다.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랍니다.

주:[1]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오스트레일리아법회에’[2]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4]리훙쯔 사부님의 경문: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5]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밍후이왕 제9기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2년 11월 14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제9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14/264872.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2/12/7/1365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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