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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안을 찾아 착실하게 심성을 수련하자

글/ 대륙 대법제자 법입자(法粒子)

[밍후이왕] 회사 상사가 나와 협력하라고 한 부사장은 전 회사에서 인정하는 다루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는 성격이 억세고 사나우며 모든 일에 제멋대로 주장을 했다. 그는 대륙 당(黨)문화 환경에서 형성된 불량한 습관이 비교적 많아 어떤 때 배후에서 나에 대해 일을 일으켰다. 어떤 부하는 그를 흉내 내며 나에게 그가 뒤에서 나에 대해 어떠어떠하게 말했으며 행동했는지 말했다. 나는 모두 웃으며 넘겨버렸다. 시간이 길어지니 어떤 사람이 “당신은 정말 참을 줄 아는군요.”라고 말하며 나를 대신해 억울함을 풀어주었다. 나는 생각했다. ‘법 공부를 통해 보면 지금의 세인은 도덕 수준이 모두 지옥 이하로 떨어졌다.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로 두 사람의 생존하는 목적과 경지의 차이가 너무 큰데 내가 어찌 그와 똑같이 상대할 수 있겠는가. 이 참음은 특별한 사람의 참음이며 그것은 관용인데 그것은 내가 전혀 마음을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본문 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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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고 자비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원래 공무원이고 1995년 초 행운으로 법을 얻었다. 대법의 박대정심(博大精深)한 함의와 깊고 높은 법리가 나를 깊이 감동시키고 이끌어 이번 생의 목표를 대법 수련하는 것으로 확립하게 했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사당(邪黨)은 공공연히 사악하고 황당하게 파룬궁을 수련하는 ‘진선인’ 신앙 집단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나도 대다수 대법제자와 같이 박해를 반대하고 대법을 수호하며 중생을 구도하는 격류에 가담했다. 이 기간 사악의 박해를 받았고 유리걸식도 했으며 두 차례 사악에게 납치되어 불법판결을 당하기도 했다.

2005년 출옥 후 예전과 같이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며 ‘세 가지 일’을 잘하려고 노력했다. 이후에 나는 현지 저명한 기업에 초빙되어 정정당당하게 자신은 대법제자라고 설명했다. 이 기업의 회장은 내 상황을 파악한 후 말했다. “원래 국가 공무원이고 과급 간부인데 다만 자신의 신앙을 추구하기 위해 우월한 직장 환경과 앞날을 의연히 포기하는 것은 고상한 경지다. 이런 사람의 인품을 더 말할 것 있는가? 이 사람을 나는 쓰기로 했다.” 그는 외부의 일정한 압력을 무릅쓰고 나를 그 기업의 높은 관리로 파격적으로 임용했다.

새 직장에서 나는 사람들을 선하게 대하고 곳곳에서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 본직 일을 성실하고 부지런히 했다. 뛰어난 업적은 동료를 괄목상대하게 했으며 여러 차례 회사의 표창을 받았는데 실제 행동으로 대법을 실증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매 한 사람, 매 한 신, 매 한 생명이 모두 자신의 역사가 있으며 모두 이야기(故事) 같다. 생명의 과정은 매 한 사람이 모두 한 부의 역사책과 같다.” [1]

수년간 매번 밍후이왕 대법제자의 심득교류문장을 읽은 것을 회상하면 몇 번이나 자신의 수련경험을 써내 수련생과 교류하려 했으나 늘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이번 제9회 중국대륙대법제자 심득교류회에서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사소한 경험과 심득을 사부님께 보고하고 수련생과 교류하자고 생각했다. 타당하지 못한 곳이 있으면 비평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1. 박해를 반대해 확고하게 대법을 수호하자

1999년 ‘4.25’ 이후 우리 대법제자는 수련환경의 변화를 선명하게 느꼈다. 우리 연공장 주위에 늘 공안이 나타났으며 국가안전국 사복경찰이 수시로 연공인 중에 섞여 들었다. 전국 각지 정부는 대법의 부정적인 소식을 끊임없이 전하고 매 파룬궁수련자의 마음에 충격을 주어 모두 사악 요소의 압력을 느꼈다.

같은 해 7월 19일, 우리는 당국이 ‘7.20’부터 파룬궁을 전면적으로 박해한다는 소식을 들었으며 모두 이튿날 오전 8시 반, 시 정부에 청원(上訪)하기로 약속했다.

‘7.20’ 오후, 나는 직장에서 나와 시 정부로 갔는데 그곳은 내가 가장 처음 대법제자의 신분으로 정부에 향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다)’를 설명하는 날이었다. 발걸음이 아주 확고했지만 사상염두는 오히려 매우 심하게 들끓었는데 나는 이 행동의 결과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당시 생각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나는 대법제자이고 신을 수련한다. 지금 매 일보는 모두 신을 향해 내 딛고 매 발자국은 모두 사람과 결별한다.’

내가 시 정부 대문에 거의 도착했을 때 매우 많은 대법제자가 잇달아 도착한 것을 발견했다. 그들 어떤 사람은 다른 현에서 달려왔고 어떤 사람은 향진에서 달려왔는데 장면이 비교적 혼란했다. 나는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어떠한 상황에서나 모두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으니 대법제자는 대법제자의 풍모를 체현해 내야 한다.’ 나는 즉시 나서서 아는 수련생과 함께 수련생을 조직해 네 줄로 대문 앞에서 가부좌하며 조용히 항의했다.

좀 지나 대량의 경찰이 일부 공공버스를 몰고 와서 우리를 쫓아내려 했다. 우리는 이치에 근거해 온 힘을 다해 변론했으며 그들에게 대법이 어떻게 좋다는 것을 설명하고 사실을 왜곡하지 말아야 하며 대법을 불공정하게 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우리에게 민원소에서 만날 것이니 대표를 선출하라고 해서 나와 10여 명 대법제자가 대표로 그들과 교섭하고 다른 대법제자는 강제로 공공버스에 실려 멀리 가서 해산됐다. 정부인원은 우리의 성명과 직장을 일일이 적었다. 내가 직장에 돌아가기 전에 그들은 전화로 직장에 이미 통지했다. 이때부터 내 이름은 시에 걸렸는데 소위 ‘중점인물’이 됐다.

‘7,20’ 이후 중공 사당(邪黨)은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시작하는 서막을 열어 전면적으로 파룬궁을 먹칠하고 박해했다. 내 지역의 대법제자들은 잇달아 걸어 나와 베이징에 가서 청원해서 사부님과 대법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1999년 12월 어느 날, 나와 몇몇 수련생이 베이징에 청원하는 길에 올랐다. 당시 정념이 충족해 청원하려는 마음밖에 없었기에 돌아온 후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도 않았다. 나는 사악한 경찰에게 불법적으로 붙잡혔고 나와 함께 온 수련생은 랴오닝(遼寧)성 후루다오(葫蘆島)에서 왔는데 (이후 밍후이왕에서 보니 이 수련생은 법 실증에서 또 사악에게 체포되어 박해로 사망했다.) 나는 사악에게 형사구류를 한 달 받은 후 직장에 돌아와 당적이 취소됐고 사악에게 여러 차례 집이 수색당했다.

먹구름이 드리우고 박해 세력이 창궐했지만 나는 난을 크게 보지 않았으며 예전대로 출근했다. 상사와 동료가 사당이 사람을 괴롭히는 수작을 쓰리라 생각했지만 나는 무슨 선명한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직장 상사는 상급기관의 압력을 받았는데 나는 새로운 일터에서 한 달 일하고 또 제자리에 돌아왔다. 참으로 웃음거리다. 나 같이 당에서 제명당한 사람이 또 늘 직장의 사당 중심팀 학습회의에 참가하게 됐는데 이로부터 중국의 사당 당원들은 사당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얼마 없고 대부분 그럭저럭 대응하거나 이용할 뿐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곳곳에서 ‘진선인(眞善忍)’으로 자신을 요구했으며 일하는 능력이 높았으며 늘 표현이 좋았다. 늘 상사나 동료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위로는 직장 상사와 중층 간부, 아래로는 일반 사무직원에게 모두 알렸으며 파룬궁은 사람을 선(善)을 향하게 가르치며 좋은 사람이 되게 한다고 알려주었다. 비록 정부와 사회에서 파룬궁 박해를 바싹 틀어쥐었으나 우리 직장 환경은 반대로 느슨했다. 나는 직업상 편리함으로 상점에 가서 복사지를 사다 매일 퇴근한 후 밍후이왕에서 자료와 사부님 경문 ‘밍후이주간’을 다운로드한 후 복사해 제때에 수련생에게 전했다. 이후에 걸어 나온 수련생이 더욱 많아지자 자료의 수요도 갈수록 늘어나 직장 동료의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나는 깊은 밤까지 혼자 일했다.

2003년 전후, 우리 지역의 사악은 매우 창궐해 ‘610’과 국보, 안전국, 공안국, 국보지대는 합심해서 광적으로 대법제자를 체포했다. 자료점 하나하나가 파괴당하고 대법제자가 차례로 박해를 당했다. 대부분 수련생이 사악의 박해에 직면해 대법제자가 마땅히 있어야 할 풍격을 표현했지만, 또 일부 수련생은 집착이 너무 중해 한때 멍하게 잡혀 들어간 후 감당하지 못해 자료의 출처를 말했다. 어느 날 내가 늘 접촉하는 한 수련생이 국가안전국에 납치되어 나를 밀고했다. 사악이 우리집에 와서 나를 납치하려 했다. 나는 ‘전법륜’ 한 권을 품고 정념에 의해 그날 밤으로 벗어나 외지에서 전전했다. 대법의 진정한 믿음을 품고 나는 몇 달간 어려운 생활을 하며 곳곳을 떠돌게 됐다. 비록 내가 고향을 떠났으나 사악은 나를 놓지 않았으며 그들은 공안 내부 인터넷에서 나에 대해 지명수배령을 내렸다. 감시 장비로 내 휴대폰을 도청해 나는 고향을 떠난 지 반년 만에 납치되어 돌아왔다.

구치소에서 사악의 통제인은 새로 온 대법제자에 대해 처음부터 본때를 보이려 했다. 법령으로 규제해 죄수복을 입게 하고 교도소 규정을 암기시켰으며 일은 분공하고 연공하지 못하게 했으며 연공인끼리 서로 말하지 못하게 하는 등등이다. 그들의 소위 규정에 대해 나는 하나도 승인하지 않았다. 교도원이 나에게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고 할 때 나는 먼저 발정념으로 다른 공간을 통제하는 교도관의 사악한 생명을 해체해 그들의 사악한 근원을 끊어버리고 그다음 정념이 충족히 말했다. “나는 대법제자이고 국가의 국민이며 박해를 당한 것이다. 범죄자가 아니기에 죄수복을 입지 않고 감옥 규정도 암기하지 않겠다.”

그 시기 우리 지역 구치소는 감금된 대법제자가 아주 많아서 많을 때는 40여 명이었다. 우리는 많은 방법으로 소통하고 수련생을 조직해 어려울 때 서로 소통, 격려해 함께 정진하여 정체를 형성했다. 연공과 법 공부를 못하게 하면 우리는 여러 방식을 취해 대항했다. 단식이라든지 단체 법 암기라든지 연속 발정념이라든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구호소리가 불시에 일어나게 했다. 나와 교도관은 이치에 근거해 온 힘을 다해 변론했다. 어느 한번 부소장과 근 한 시간 동안 쟁론했다. 모두 함께 노력해 우리의 환경이 매우 큰 변화가 발생해 대법제자가 연공해도 순찰은 못 본 체하며 이후에는 아예 묻지도 않았다. 법 공부하고 연공하며 일하지 않는다고 수갑을 채우거나 독방에 감금하는 상황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2. 안을 찾아 착실하고도 착실히 마음수련을 하다

구세력이 대법제자를 박해한 구실 중 하나는 바로 만약 이런 큰 난이 없다면 대법제자는 높이 수련하지 못하고 수련 성취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왜곡사설이라는 것을 법 공부를 통해 우리는 알았다. 법난 이전을 돌이켜 보면 대법제자는 늘 함께 법 공부하고 연공하며 서로 교류하고 일상 직업과 생활 중에서 심성방면의 수련을 아주 착실하게 했다.

1996년 직장에서는 나에게 공무용 차량을 주었는데 자동차 번호판을 단지 6일 만에 우리집 아래에서 도난당했다. 그때 보험을 들지 않았는데 나는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연공인(煉功人)으로서 이치상 스승의 법신이 책임지고 있기에 다른 사람이 당신의 것을 가져가려 해도 가져갈 수 없다.” [2] 그럼 무엇 때문에 내 차는 훔쳐갈 수 있었을까? 나는 안으로 찾으니 ‘공무용 차량은 사적으로 쓴다면 이는 편한 점을 얻으려는 마음이다. 그리고 또 만약 나의 새 차라면 더 아낄 것이며 문밖에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지금과 다른데 지금은 곳곳에 차량이지만 그때는 문밖에 차를 세워 놓는 현상이 없었다.) 이는 사심이다.’ 그 후 수련 전에는 늘 다른 사람의 것을 받고 다른 사람의 것을 얻어먹었는데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인을 찾으니 마음이 탁 놓였다. 나는 돈을 내서 같은 차를 샀다. 직장의 재무관리 사장은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나에게 부정한 영수증을 떼어 슬그머니 결산하라고 했으나 나는 거절했다. 그때부터 십몇 년간 나는 다시는 아무런 물건도 잃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제복을 입고 공무용 차량을 몰고 우리집 부근 농시장에 가서 붉은 대추를 샀다. 대추는 알알이 가득 찼는데 집에 돌아온 후 부인은 말했다. “당신 썩은 대추를 사와 뭘 하게요?” 나는 당시 귀를 의심했다. 금방 산 대추가 알알이 가득했는데 어떻게 썩을 수 있단 말인가. 펼쳐보니 과연 대추가 작고 쭈그러지며 썩은 것을 보았다. 당시 마음이 좀 움직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거기에서 날 속였나, 그를 찾아가자.’ 그러나 돌이켜 생각하니 세인의 이치에 부합되지 않는다. 이치대로 말하면 서로 모두 아는 처지고 평소 만나면 서로 존중하는데 하필 날 속이겠는가. 사부님께서 수련인이 만나는 어떠한 일도 모두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생각했다. ‘비록 작은 일이나 이는 나를 직면해 온 것이다. 절실한 이익이 침해를 받을 때 내려놓을 수 있는가. 자신이 수련인임을 깨달을 수 있는가. 이 일이 나타난 것은 분명히 인연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니 수련인으로서 자연스러움에 따라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의 부서 또는 그들 사무실의 한 사람은 무엇을 해도 안 되고 아무것도 잘하지 못한다. 어느 날, 잘하지 못하는 이 사람이 도리어 간부로 승진했고, 게다가 그의 상사가 되기까지 했는데, 그는 승진하지 못했다. 그의 그 마음속은 평형을 이루지 못해 위아래로 다니며 불평하는데, 질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부분은 나를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우리 사무실에 한 사람은 바로 무슨 일을 하나 안 되는 사람이었다. 사람의 인품으로부터 학식과 능력 사회관계 등 어느 것도 나와 비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주임으로 발탁이 됐으며 또 내 상사가 됐는데 비록 내가 “위아래로 다니며 불평하는데, 질투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2] 정도는 아니었지만, 마음이 평형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사부님의 설법과 대조해 나는 깨달았다. 마치 사부님이 말씀하신 “만고의 일은 법 위해 왔거늘” [3]이었다. 이 일의 출현은 바로 나를 제고시키기 위해 집착심을 버리라고 특별히 배치된 것 같았다. 내가 또 무슨 이해되지 않을 것이 있겠는가. 나는 기분이 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지난날과 다름없이 그를 지지했다. 내 표현을 상사와 동료가 직접 보았고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일반인과 다르다고 모두 말했다.

회사 상사가 나와 협력하라고 한 부사장은 전 회사에서 인정하는 다루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는 성격이 억세고 사나우며 모든 일에 제멋대로 주장하고 전 사장과 여러 차례 정면충돌이 있어서 함께 앉아 일할 수 없는 관계가 되기도 했다. 그는 나와 협력한 후 큰일에서 기본상 일치점을 찾을 수 있었고 내가 일을 전개하는데 일정한 작용을 일으켜주었다. 하지만 그는 대륙 당(黨)문화 환경에서 형성된 불량한 습관이 비교적 많아 어떤 때 배후에서 나에 대해 일을 일으키기도 했다. 어떤 부하는 그를 흉내 내며 나에게 그가 뒤에서 나에 대해 어떠어떠하게 말했으며 행동했는지 말했다. 나는 모두 웃으며 넘겨버렸다. 시간이 길어지니 어떤 사람이 “당신은 정말 참을 줄 아는군요.”라고 말하며 나를 대신해 억울함을 풀어주었다. 나는 생각했다. ‘법 공부를 통해 보면 지금의 세인은 도덕 수준이 모두 지옥 이하로 떨어졌다.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로 두 사람의 생존하는 목적과 경지의 차이가 너무 큰데 내가 어찌 그와 똑같이 상대할 수 있겠는가. 이 참음은 특별한 사람의 참음이며 그것은 관용인데 그것은 내가 전혀 마음을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이 자체가 바로 가상임을 깨달았다. 어떤 사람은 일부 일을 나에게 듣도록 하는데 하나는 고험이고 다른 하나는 내 몸에 아직 버려야 할 이 방면의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몇 년간 내가 바르게 걸었기에 그 부사장은 나에 대해 매우 탄복했으며 이후 우리 둘이 지내는 것이 매우 융합되어 한 번도 유쾌하지 않은 일이 나타난 적이 없었다. 그는 지금 나와 협력해 늘 연분 있는 사람에게 ‘9평 공산당’을 전하고 인터넷 봉쇄돌파 프로그램을 전한다.

나는 시종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을 모두 연분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모두 구도중생의 대상으로 여겼다.

3. 진상을 알려서 중생을 구도하는 사전 서약을 실행하다

사부님께서는 ‘2012년 미국수도국제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말하는 이 ‘진상(眞相)’이라는 말이 포함하고 있는 내포는 아주 크다. 현재 말하는 것은, 사람에게 사악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하여 조작한 거짓말에 대한 진상을 알리고 중공사당이 도대체 어떤 물건인가 하는 이런 진상이며, 왜 파룬궁을 박해하는가 하는 이런 진상이다. 파룬궁이 도대체 무엇인가는, 여러분도 말하고 있지만 이런 진상은 사람이 인식하기가 아주 어렵다. 어쨌든 간에 장래에는 또 많고 많은 것이 있는데,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 알고 싶어 하는 것, 사람이 옳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모두 잘못된 것 그리고 많은 진상이 전부 다 드러날 것이며 사람이 믿지 않는 것 역시 사람에게 보여줄 것이다. 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정말로 한차례 각골명심(刻骨銘心)할 굉장히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사부님 설법에서 나는 깨달았다. 진상을 알리는 것을 우리 전반 수련과정에 관통되어야 한다. 사람은 육안과 현대 과학기술의 인식에 의하기에 이 우주의 일체는 가상이며 삼계 내의 이치도 반대 이치다. 초기 홍법부터 지금의 세인을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기까지, 또 장래에 매우 많은 우주의 진상이 일일이 펼쳐질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원만한 이후 우리 세계 중생에게 우리가 증오(證悟)한 우주법리를 말하는 것도 진상을 알리는 과정이다. 진상을 알리는 것과 우리의 수련은 긴밀히 연결되었는데 특히 정법시기에 우리가 중생을 구도하는 서약을 실행하는 중요한 방식이자 매 대법제자가 모두 몸소 체험해야 할 큰일이다.

내가 진상을 알린 과정은 1999년 ‘4.25’ 이후에 시작됐다. 그 당시 대륙 중공사당은 대법을 박해하려는 중이었기 때문에 우리 각 연공장 수련생은 자발적으로 협조해 세인과 정부기관에 진상을 알렸다. 그 시기에 진상을 알리는 중점은 대법이 어떻게 좋고 수련은 신체를 건강하게 할 수 있으며 대법을 수련하면 사람을 가르쳐 좋은 사람이 되게 하고 사회 안정을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을 말했다. ‘7.20’ 이후 사악은 대법을 박해해 중생을 훼멸하려는 목적으로 새빨간 거짓말을 했으며 대법에 매우 많은 거짓말을 했다. 초기에 우리는 사악의 조성한 거짓말에 대해 동료와 친척, 동창과 익숙한 사람에게 진상을 알렸다.

박해가 확대됨에 따라 매체는 지속해서 유언비어를 날조해 대량의 군중이 독해로 기만을 당했다. 우리는 진상자료를 타자하기 시작했고 이후에 우리는 밍후이왕에서 진상자료를 다운로드하여 배포했다.

그 시기 엄혹한 박해에 직면해 대법제자와 원래 연공장의 보도원, 각 보도소 소장과 부소장은 생사를 내려놓고 잇달아 걸어 나와 베이징에 가서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데 투신했다.

나는 대법의 한 입자로서 걸어 나온 수련생과 함께 사부님의 정법노정에 바싹 따라 세인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다가 불행히도 사악에게 재차 납치당했다.

구치소에서 내 방에 있던 ‘큰 형님’은 소위 혼탁한 세상 사람이다. 이 사람은 비교적 의리를 중시하며 일정한 학력이 있다고 교만해했으며 ‘도덕경’을 두 번 읽었다. 사악의 거짓말에 속아 대법에 대해 일정한 오해가 있었으며 ‘도덕경’이 최고라고 여겼다. 그는 나와 만난 후 ‘이 도리를 아는가, 저 도리를 아는가?’라고 물으며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우호적으로 그가 깨달은 법리에 따라 먼저 그의 ‘도덕경’을 긍정해주고 내가 대법에서 깨달은 법리로 그가 깨달은 법리를 해독하고 더욱 높은 이치를 말해주었다. 그는 매우 깜짝 놀라면서 나에게 어디에서 그런 이치를 알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모두 대법 사부님이 알려주셨다고 대답했다. 그는 즉시 태도를 개변해서 나를 그의 옆에서 휴식하게 배치하고 게다가 같은 방의 모든 사람에게 “앞으로 모두 이 분을 돌보아라. 이 사람은 존중할 만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그는 늘 나와 교류하고 대법 경문을 가져다 보려고 했다.

구치소에서 절대다수 소위 범죄피의자들에게 나는 모두 착실하게 진상을 알려 그들 마음속에 있는 대법의 오해를 제거해 상당수가 ‘삼퇴’를 했으며 어떤 사람은 또 파룬궁을 배우려고 했다.

출옥 후 나는 현지 지명기업에 초빙되어 회장이나 일반 직원이거나를 막론하고 나는 모두 나의 대법제자 신분을 속이지 않았다. ‘진선인’의 요구에 따라 현실 사회에서 명명백백하게 자신을 수련해 속인 일을 잘하고 동시에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을 견지해 중생을 구도했다.

사업상 동료에 대해 공정거래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함으로써 공평, 공정, 성실, 신용하며 일 처리가 맹렬하고 신속하며 여태껏 수수료를 받거나 사례금을 받지 않아 늘 상대방은 나에 대해 칭찬하고 감동했다. 매번 이럴 때마다 나는 대법제자이며 나의 사부님이 나에게 이렇게 하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동시에 정부 부패와 결합해 그들에게 진상을 말하면 ‘삼퇴’를 권하는 효과가 모두 매우 좋다.

당연히 특수한 사람도 있다. 특수한 상황은 나는 특수한 방식을 취해 대한다. 어느 한 항목에서 협력하던 사람은 사당의 노 당원으로 사당에 대해 일정한 견해가 있었으나 퇴당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주로 사당의 본질을 똑똑히 인식하지 못한 것이 주요 문제라고 생각해 외지에 가서 상담하는 도중에 그에게 ‘9평’을 틀어 들려주었다. 연속 몇 차례 9평을 다 들고 나는 그가 큰 충격을 받았다고 느꼈다. 과연 며칠 전 그는 자발적으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 퇴당시켜 달라고 했다. 전화에서 똑똑히 말할 수 없었기에 그는 시름 놓지 못하자 나에게 직접 와서 내가 인터넷에서 그를 퇴당시킨 것을 보고서야 시름을 놓았다.

동창과 친구, 이전 동료에 대해 더욱 잘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기 위해 나는 주로 동창 친구들의 관혼상제에 참가했는데 목적은 연계를 회복, 융합하며 진상을 알리는데 편리하도록 하여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다. 어떤 때 한번 모임에 참가해 10여 장의 션윈 CD를 나누어 준다.

나는 평소 업무를 향상하기 위해 정부 관리와 접촉한다. 그들에 대해 진상을 알리는 것도 느슨히 하지 않는다. 정부 관리들은 사당의 부패를 더욱 똑똑히 알고 있고 절대다수는 그중에 있어 그날그날 되는 대로 살아간다. 그들은 두려운 마음이 매우 심해 비교적 외부 영향에 주의한다. 그들에 대해 진상을 알리는 것은 동창이나 노동자와 다르니 방식에 주의해야 하며 꼭 단독으로 말해야 한다. 그들은 환경이 안전해지면 마음을 조용히 하고 들을 수 있으며 쉽게 접수한다. 몇 년간 진상을 알리는 것을 통해 내가 접촉한 과학기술 간부와 현 급 간부가 ‘삼퇴’한 것도 적지 않다.

비바람의 17년 동안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정념정행으로 오늘날까지 걸어왔다. 이 과정에서 사존의 요구와 대조하면 부족함이 매우 많은데 이후 정법 노정에서 법 공부를 많이 하고 자신을 잘 수련하며 ‘세 가지일’을 잘하도록 노력해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겠다!

주:[1]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년 설법’[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3 ]리훙쯔 사부님의 설법 ‘홍음2-연극 한편’

(밍후이왕 제9회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2년 11월 15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제9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15/2650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