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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중학교에서 대학교까지, 한 명에서 한 팀으로

– 나는 대법 속에서 성장하고 성숙했다

글/대륙대법제자 칭허

[밍후이왕] 그 당시 대법은 나에게 유일한 의지가 되었고 사존의 법은 한 구절 한 구절 나의 머릿속에 들어와 나에게 비분을 자비로 녹이게 했다. 아버지와 계모를 선하게 대하게 하고 우리를 비웃던 다른 사람들을 선하게 대하도록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샤오친(小琴)을 만났고 아주 빨리 좋은 친구로 사귀었다. 샤오친은 믿지 않던 데로부터 믿게 되었고 수련으로 들어왔는데 그 과정은 신기하고도 현묘했다. 샤오친이 수련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다른 공간의 정경을 볼 수 있었는데 신과 부처님들이 우리들을 에워싸고 우리 둘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관음보살님께서 그녀에게 대법을 잘 수련하라고 격려하는 것을 보았으며 그녀는 대법음악을 들었고 파룬(法輪)을 보았는데 그때 사존께서 계단에 서 계시면서 나를 향해 “너는 임무를 이미 완성했구나,······”라고 말씀하셨다. – 본문 중에서

나는 대륙 대법제자로 대법을 수련한 지 이미 13년이 되었다. 그동안 수련의 길을 돌이켜보면 정말로 험난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로 진학하고 또 일자리를 찾을 때 험난함도 있었으나 언제나 자신감이 있었다. 추구하거나 정진할 때가 있었는가 하면 위안을 느낄 때도 있었으며 실망과 미혹도 있어서 포기할 때도 있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에 머무를 때가 있었는가 하면 또 그리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희로애락이 있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데에서 할 줄 아는 데로 이르기까지, 유치함에서 성숙함에 이르기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고 달고 쓰고 단 맛 등등이 이 13년 속에 면면히 이어온 듯이 매우 지치고 매우 고달팠다. 그러나 사존께서 법으로 나를 인도해주시며 나에게 굳건히 일어나서 사존께서 가리켜주신 곳으로 나의 동력의 원천지이자 나의 희망으로 걸어가도록 하셨다.

가정이 파탄되었으나 대법은 나를 지탱해주었다

내가 중학교에 갓 진학했을 때 어머니의 인도로 나는 운 좋게 법을 얻었다. 수련은 나의 신체에서 매우 많은 신기한 일이 일어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의 학교성적도 매우 큰 제고가 있게 하였다. 이 일체는 나를 무척 자신감 있게 하였고 대법과 사부님을 더욱 굳게 믿도록 만들었다.

1999년 7·20 이전에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이런 꿈을 꾸었다. 그곳에는 한창 비가 내리고 있었고 곳곳에 많은 사람이 운집해 있었다. 나는 앞에 있는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한 사람을 가리키며 치욕스럽게 욕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인파를 헤치며 앞으로 다가갔는데 사존께서 비를 맞으시며 미소를 지으시며 세인들로부터 욕설을 듣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격동되어 욕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당신들은 이렇게 하면 안 돼요! 당신은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아요? 그분은… ” 그때 사존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울었다. 위대하신 사존께서 묵묵히 그들의 모진 욕설을 감당하고 계셨다.

나의 아버지는 중공(중국공산당)의 공안이다. 그의 업무는 그런 압력 앞에서 이성을 잃고 대법 서적을 훼손하며 우리를 구타했다. 후에 어머니는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하다가 불법 납치되어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수감되었다. 아버지가 나를 때릴 때 어떻게 때려도 나는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아버지가 이처럼 중공의 함정에 빠진 것을 보고 나는 아버지가 무척 가련하게 보였는데 내가 진심으로 아버지에게 진상을 알려주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 무렵 나는 매일 가슴을 졸이며 살았다. ‘그런 아버지가 언제 들이닥쳐 대법 서적을 찾아내어 훼손하지 않을지, 언제 갑자기 내 방으로 들어와서 나를 한바탕 때릴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항상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버지는 이렇게 단정 지었다. “내가 파룬궁수련을 견지한다면 중공은 나를 대학에 못 가게 할 것이며 더욱이 출국하여 해외 유학도 가지 못하게 할 것이니, 내 인생의 앞길은 파룬궁(法輪功)으로 끝장나고 말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중공의 박해가 진수 제자를 더욱 견정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 역시 그러했다. 아버지의 위협은 나에게 소용이 없었는데 사존께서 나를 보호해 주시니 나는 두렵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국 이혼했다. 아버지는 아내와 일자리 앞에서 어머니를 버리고 후자를 택한 후 곧 재혼했다. 어머니가 수감되어 박해받고 있는 동안 나는 고독하고 그리움에 젖어 있었다. ‘예전의 화목했던 가정이 이렇게 훼멸되다니.’ 어머니는 수련한 후 몇 년 동안 고통스럽게 낫지 않았던 질병들이 모두 사라졌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자애로워 모두 어머니를 좋아했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사람이 오히려 수용소에 갇혀 시달림을 받고 있으니 도대체 하늘의 이치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는 날마다 울면서 잠이 들어 눈물로 베개를 홍건하게 적셨다.

그 당시 대법은 나의 유일한 의지의 대상이었다. 사존의 법은 한 구절 한 구절 나의 머릿속으로 들어와 나에게 비분을 자비로 녹이게 했으며 아버지와 계모를 선하게 대하고, 우리를 비웃던 다른 사람들을 모두 선하게 대하게 했다!

고등학교에서 우리 법 공부 팀이 생겼다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샤오친(小琴)을 만났고 아주 빨리 좋은 친구로 사귀었다. 샤오친은 믿지 않던 데로부터 믿으며 수련으로 들어왔는데 그 과정은 신기하고도 현묘했다. 샤오친이 수련하겠다고 결정했을 때 다른 공간의 정경을 볼 수 있었다. 신과 부처님들이 우리들을 에워싸고 우리 둘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을 보았다. 관음보살님께서 그녀에게 대법을 잘 수련하라고 격려하는 것을 보았으며, 그녀는 또 대법음악을 들었고 파룬을 보았다. 그때 사존께서 계단에 서서 나에게 “너는 임무를 이미 완성 했구나 ….”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로 샤오친은 정진하여 실질적으로 수련했고 우리 둘은 서로 격려하고 교류했다. 샤오친의 변화는 너무나 컸다! 원래 허약한 체질에 병이 많았던 신체는 수련한 후 약 한 알도 먹지 않았는데 완전히 건강해졌다. 중학교에 갓 올라간 후 샤오친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등 이른바 ‘샤오타이메이(小太妹-여자 중고생 폭력 써클)’ 활동을 하던 불량학생이 완전히 다른 학생으로 변했다. 샤오친의 시간 관념은 아주 강했는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반드시 해냈고 자신에 대한 요구도 엄격하여 아주 대단한 어린 대법제자였다. 후에 우리 두 사람은 같은 중학교에서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했으며 아울러 함께 진상 알리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 당시 몇몇 동급생들이 모두 수련하겠다고 했다. 그때 우리는 잘 알고 지내던 수련생 샤오후이(小辉)와 샤오두어(小朵)를 만났다. 바로 이렇게 해서 고등학교의 법 공부 팀이 성립되었고 매주 법 공부는 멈춘 적이 없었다.

대학 생활의 인생 전환점

나는 몇 달간의 노력을 거쳐 우수한 성적으로 현지의 명문대학에 들어갔다. 이때 아버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의 노력이 고맙고 네가 좋은 대학에 합격하여 고맙다.” 나는 ‘이것이 대법의 신기함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대법의 신기함과 나의 올바른 믿음은 우리에게 암담하고 빛이 없던 가정에 한 가닥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입시를 앞두고 나는 끊임없이 공부하며 가끔 식사도 걸렀다. 그러나 아무리 바쁘더라도 나는 법 학습만은 언제나 견지했는데 반드시 대학에 들어가는 것으로 대법을 실증해야 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샤오친과 나는 같은 대학에 들어갔고 샤오두어와 샤오후이는 우리 법 공부 팀을 떠나서 타 지역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타 지역은 매우 고달팠는데 수련과 교류의 환경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편지를 쓰거나 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연락을 유지했고 서로 격려해주었다. 샤오후이는 방학 때나 주말이 되면 타 지역에서 밤 기차를 타고 우리의 단체법공부에 참석했는데 나는 맘속으로 정말 대단하다고 탄복했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박해는 멈추지 않아 곳곳에는 모두 마(魔)가 있었고 곳곳에는 모두 고험이 있었으며 우리의 올바른 믿음을 시험하고 있어서 우리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대학 2학년 때 사당(邪黨)에 관한 과목이 있었는데 필수과목이었다. 이 과목을 배우지 않으면 졸업증서를 받을 수 없었다. 우리 수련생들은 교류했다. 모두 시험 볼 때 수업시간에 들은 대로 답을 쓴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중공은 좋은 사람을 박해하고 있고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있으며 더욱이 대법제자의 장기를 생체로 적출하는 죄악을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그것들은 오히려 세인을 독해시켜 대법에 대해 원한을 갖도록 하고 있다! 중공이 이렇게 사악한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는데 아무리 시험을 치르는 것이라고 해도 중공을 선양하는 거짓말을 적을 수 있는가! 이렇게 한다면 대법제자라고 할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 우리를 사부님의 제자로 승인하실 수 있는가?”

깨달은 후 나는 시험지에 ‘9평공산당’의 내용을 적었고 아울러 시험장에서 발정념하여 대학생을 독해하는 사악의 요소를 제거했다. 선생님은 나의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는 부끄러운 나머지 화가 치밀어 내가 집에 들어가자마자 크게 화를 내며 나를 내쫒았다. 일이 너무나 갑작스럽게 터지자 나는 처음에는 아주 긴장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정말로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이 집을 떠나고 싶었지만 나는 또 이 집을 떠날 수 없었다. 내가 이 집을 떠나면 정말로 끝장이라는 느낌이 아주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이번에야말로 마음을 굳힌 듯이 정말 나를 집에서 내쫓으려고 했다. (이미 처음이 아님) 나는 먼저 냉정을 찾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물건을 좀 챙길 게요…”라고 말한 후 방문을 닫고 법 학습을 시작했다. 읽고 또 읽고 배우면서 나의 마음은 안정을 찾아 긴장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한편으로 발정념하면서 아버지에게 이치를 따졌다. “내가 시험지에 쓴 것은 모두 사실인데 뭐가 잘못되었나요,······” 하고 묻자, 아버지는 마성이 크게 나와서 내 말 자체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으며 나에게 “빨리 떠나라!”고 독촉했다. 이때 아버지는 또 아무 이유도 없이 계모와 크게 다투었고 계모까지 내쫒는 바람에 집안은 온통 울고불고 난장판이 되었다.

아버지가 단호하게 독촉하는 바람에 나는 잠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좋아요. 제가 먼저 나가지요. 물건은 나중에 와서 가져갈게요.” 바로 이렇게 나는 계단을 내려왔으나 마음은 매우 괴로웠다. 샤오친에게 전화를 걸어 대략적으로 나의 상황을 말해주자 그는 나를 위해 발정념하겠다고 했다. 이때 하늘의 먼 곳에서 검은 구름들이 나를 바싹 따라다니는 것을 보았는데 내가 어디를 가면 어디로 따라 왔다. 나는 단번에 청성해졌다. ‘이는 마난이다. 사악은 바로 이렇게 나를 무너뜨리려고 한다. 더구나 아버지와 계모, 진상을 모르는 속인의 가족들에게 대법제자를 더욱 미워하게 하여 그들을 훼멸시키려고 한다. 나는 갈 수 없다!’ 폭우가 쏴- 하고 퍼부었다. 나는 비 오는 거리를 왔다갔다 걸어 다니며 끊임없이 발정념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너무나 어려웠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을 떼어놓기가 참으로 힘들었다. 대략 반 시간 정도 서 있다가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계모가 물건을 챙겨서 집을 나가버려 집은 텅 빈 듯했는데 아버지만 혼자 컴컴한 방안에서 컴퓨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저 왔어요!”라고 말하고 그대로 내 방으로 들어가서 젖은 옷을 갈아입었다. 아버지는 나를 힐끗하고 한 번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평온이 찾아왔다. 저녁에 계모도 돌아왔다.

이런 폭풍우가 지나가면 당연히 평온이 찾아오는데 이런 식의 평온을 무수히 겪었다. 그 평온함이 너무 자연스럽고 그 전에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듯싶다. 나는 사존께서 나에게 큰 난을 없애주신 것을 알았다. 그 후 생각할 때 두려웠었다. ‘만약 그 당시 내가 사람 마음이 일어나서 정말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후과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 곳곳에는 모두 일념의 고험이 있었고 일념지차로 결과는 확연히 상반되었다.

현실 속에서 실질적으로 고험이 시작되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 1학년까지 나는 계속 장학금을 탔고 대학교 1학년 때는 과의 학생 간부였다. 그러나 대학교 2학년부터 그렇지 못했다. 사당과목 수업을 듣지 않아서 장학금이 잘렸고 물론 과 대표도 아니었다. 나는 사당과목 시험에서 ‘9평’의 내용을 적어 제출했기 때문에 담당 교수가 나를 호출하여 상담하게 되었다. 그녀에게 진상을 알리려고 했지만 그 교수는 중공에 대한 맹신의 정도가 지나칠 정도로 우매하여 대화자체가 될 수 없어서 묵묵히 발정념만 했다. 그 당시 형세는 매우 험난했는데 다행히 현지의 많은 대법제자가 단체로 나에게 발정념해주었다. 학교의 관련 책임자와 그 배후의 사악을 제거하고 그들이 나에 대해 어떤 좋지 못한 조치도 취하지 못하게 했다. 결국 이 일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담당 교수의 사무실은 4층에 있었는데 나는 후일 기회를 보아 진상자료를 잘 포장해서 출입문 손잡이에 걸어놓았다. 그는 수업시간에 “어떤 사람이 자기 사무실에 파룬궁 전단지를 놓고 갔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를 위해 정말로 마음이 아파 마음속으로 묵묵히 발정념했다. 그녀가 중공에 의해 철저히 훼멸되지 않기를 바랐다.

이 사건 이후에 그런 유형의 시험문제가 출제되면 나는 전부 답을 쓰지 않았다. 가끔 또 동요가 일어나 ‘극단으로 가는 것이 아닌지.’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미혹과 두려움은 입으로 말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생사를 내려놓는 것처럼 어려움을 느끼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비록 동요가 일어나도 나는 여전히 정념으로 그것을 저지할 수 있었는데 양심을 거스르고 답을 쓰는 짓을 나는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은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을 거부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고 나쁜 일을 할 수 있지만 수련인은 다르다. 그들은 하늘의 이치를 알고 선악에는 보응이 있음을 알며 중공이 역사상에 있어 본 적 없는 잔혹함으로 좋은 사람을 박해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나는 대법제자로서 개인 이익을 탐하여 대법에 손해를 끼치는 일을 할 수 없었다. 마땅히 나의 주변의 많은 대학생에게 진상을 알려야 했다. 최소한 나 자신의 행동으로 이를 실증해야만 했다. 다시 말해서 지금의 세간 이치에서도 올바른 이치가 존재하는데 이러한 사람들은 올바른 이치를 수호하기 위해 이익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했다.

새로운 수련생을 만나 새로운 항목을 기획하다

대학시절 같은 과 동급생에게 진상을 알린 적이 있는데 그가 내게 말했다. “내가 한 사람을 잘 알고 있는데 그녀의 생각이 너와 비슷한 것 같다. 네가 그녀와 만난다면 아마도 많은 공통의 화제가 있을 것 같다. 그러니 내가 그녀를 소개해 주겠다.”며 소개해서 만난 사람이 샤오치앤(小千)이었다. 만나고 나서 샤오치앤이 수련생임을 알았고 그래서 우리 법 공부 팀에 수련생 한 명이 더 늘어나게 되었다.

우리는 매주 함께 모여서 법 학습하고 교류했는데 수련에서나 속인 생활 중에서도 우리의 취미는 아주 비슷하여 교류가 아주 잘 되었으며 늘 아주 많은 방법이 나왔다. 샤오치앤은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다. 샤오치앤은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이 급하면서 두려움이 없었다. 그 시기 션윈 DVD가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샤오치앤은 시내에 가서 사람들을 직접 대면하면서 션윈 DVD를 나누어 주자고 했다. 나는 그의 이런 말을 듣고 두려운 마음이 나왔으며 그 관념으로 샤오치앤의 행동을 막으려고 했다. 후에 나는 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들에 시장을 주지 말고 우리가 그곳에 가서 함께 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우리 몇 사람은 지역을 나눠서 함께 배포하자고 약속하고 시간을 정했다. 준비를 위해 샤오치앤은 DVD 표지를 인쇄하고 우리는 모두는 집에서 발정념하였다. 약속한 시간에 우리는 DVD를 가지고 진상의 목적지로 향했다. 우리 쪽은 그런대로 순조로웠으나 다른 곳은 빈번히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내지 못했다. DVD를 건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는 아주 좋은 공연입니다.” 어떤 사람은 멍해 있다가 받지 않고 떠났는데 그래도 우리는 주저하거나 풀이 죽지 않고 계속 진행했다. 우리가 정한 장소는 상가가 밀집한 거리였는데 행인들은 별로 잘 받지 않아서 대부분 상가 주인에게 전해주었다. 어떤 사람은 “파룬궁이 아닙니까?”라고 물었고 그럴 때면 “공연은 중국의 전통문화입니다.”라고 답하고 급히 떠났는데, 결국 몇 장 배포하지 못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샤오치앤을 만났는데 그녀가 배포할 때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앞다투어 가져가는 바람에 준비해간 물건이 모자랐다고 했다. 심지어 맨 마지막 한 사람은 매우 은근한 말로 “더 없냐?”고 묻기까지 하여 자료를 많이 가져가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쉬웠다고 말했다. 나는 생각하기를 ‘샤오치앤의 마음은 아주 진솔하고 두려움이 없어 배포할 때 남들이 모두 앞다투어 가져갔지만, 나는 사람 마음이 가로막아 결국에 모두 배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큰 차이를 느꼈다.

매년 파룬따파의 날(法輪大法日)과 사부님의 탄신일 그리고 다른 명절 때가 되면 나는 사존께 축하카드를 만들어 밍후이왕에 발송하는 것을 책임졌다. 후에 샤오치앤의 참여로 우리가 만들었던 간단한 모습의 카드가 더욱 수준 높은 카드로 되었다. 샤오치앤은 아주 재능이 있고 탐구하기를 좋아했는데 한번 결정한 일은 결코 돌이키는 일이 없었다. 그녀의 이런 특점은 우리들에게 적지 않게 기술적 정황적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카드는 샤오치앤과 내가 분담해서 제작했는데 샤오치앤은 그림을 아주 잘 그려 도안을 맡았고 나는 디자인을 책임졌으며 표지나 제목은 법 학습에서 공동으로 논의하여 정했다.

현지의 한 수련생은 진상 동영상을 만들었다. 그녀는 소재를 모으고 선택하고 디자인하여 편집하는 모든 분야를 혼자서 만들다 보니 어려움이 매우 컸다. 우리는 아주 우연하게 이 수련생을 만났다. 이 수련생이 우리에게 동영상을 만들도록 제의했으나 우리는 이 방면에 대한 이해가 없었으며 그럴만한 인원도 없고 또 기술도 없어서 뭣 하나 조건이 되지 않는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나는 그 당시 그걸 만들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만을 했을 뿐이었는데 샤오치앤은 마땅히 해야 한다면서 일종의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순간 나는 매우 큰 두려운 압력을 느끼게 되었다. 왜냐하면 ‘박해는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데다가 이런 기술이 있는 수련생은 극히 소수이며 더구나 이 일을 하려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해야 하는데 이건 우리에겐 너무 벅찬 일이 아닌가? 이런 내 생각을 말할까 말까?’ 하고 주저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이 일을 법 학습할 때 교류했다. 모두 아주 좋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영상편집을 전공하고 졸업한 샤오펑(小蜂)이 있었고 샤오친과 샤오후이는 작곡을 할 수 있었으며 샤오치앤과 나는 애니메이션 제작을 책임질 수 있었는데 어쩜 이렇게도 맞추어졌을까? ‘인연이 있어 법 학습 팀을 설립했지만 그 누구도 처음 모일 때 이렇게도 묘하게 우리가 장래에 중생을 구도할 항목을 하도록 정해졌다니?’ 우리는 대법의 신기함에 감탄했고 사부님의 위대하심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책임감과 정념은 우리에게 더욱더 견강불파의 정체를 형성하게 했다.

바로 이렇게 우연인 것 같지만 실은 사존께서 정성어린 배치를 해주셔서 우리의 애니메이션 항목 팀이 설립되었다. 매주 단체법공부가 끝나면 우리는 항목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만사는 시작이 어렵다. 항목 기획을 시작할 때 우리는 경험이 없고 기술도 아주 충족하지 못했는데 정말로 사존의 점화와 사람을 구하려는 일념의 열성으로 어설프게 시작을 했다.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매주 법 학습이 끝난 후 소재와 내용을 논의하고 어떤 시리즈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까를 논의했다. 모두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고 마지막에는 지금의 독해를 깊이 받은 대학생을 소재로 하여 당 문화에 의해 굳어진 관념을 타파하는 내용을 만들기로 하고, 진상을 알리기 위한 형식으로 대중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화젯거리와 현실 생활을 둘러싸고 있는 문제점을 한 회 한 회씩 만들어 진상을 알리기로 결정했다.

주제는 정해졌지만 어디서 소재를 찾아야할지 몰랐다. 또 어떤 이야기를 쓰고 어떻게 생동감 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하는 문제도 난제였다.

시간이 아주 긴박했다. 첫 시작에는 매주 한 번씩 모두 모여서 극본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정말로 힘든 과정이었다. 모두 속인 중의 업무가 있어서 바쁘기도 하지만 1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한다면 노정에 따라갈 수가 없었다. 후에 1주일에 두 번 내지 세 번 모이고 매번 모일 때마다 아주 늦게까지 매달려 일을 했다. 퇴근하자마자 식사도 하지 못하고 모여서 간단하게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는데 모두 헌신적으로 아주 고생스럽게 작업을 했다.

시간이 긴박할 뿐만 아니라 또 외부에는 실제적으로 사악한 박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수련생들의 감당 능력을 고려하여 우리는 서로 배려하고 조심했으며 작업실을 출입할 때마다 발정념했고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절대로 전화상으로는 일체 언급하지 않는 등 조심스럽게 우리 단체의 환경을 보호했다. 사존의 가지 역시 아주 컸다. 이렇게 큰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사존의 보호가 안 계셨다면 걸어올 수 없는 일이었다.

서로 항목을 논의할 때 고험과 난이도가 모두 컸고 사람마다 모두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면 앞으로 나가지를 못하고 모순도 겹겹이 들이닥쳤다. 이 과정에서 밍후이 수련생들이 큰 지지와 협조를 주었다. 무수한 실패와 좌절을 거쳐 우리의 애니메이션은 수없이 많은 교정을 거쳐 끝내 밍후이왕에 발표되었다.

애니메이션이 발표된 후 현지 수련생들은 온 힘을 다해 전파했다. 주변의 어린 수련생과 어린 속인 친구들에게도 보여주었는데 들은 바에 의하면 감상의 평이 아주 좋았다고 했다. 이런 결과에 대해 우리는 매우 큰 행운과 영광을 느겼다.

마지막에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제8회 대륙법회’ 교류문장을 라디오방송을 통해 들었을 때 나도 한 편의 글을 쓰고 싶었다. 우리의 체험을 써내어 수련생들과 교류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제9회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를 빌려 나는 전 우주에서 가장 또 가장 위대하신 사존께 가장 큰 숭고한 경의를 표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수고하셨습니다!

허스!

(밍후이왕 제9회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2012년 11월16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대륙 사이트법회원고 >제9회(2012년)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16/26460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