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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의식 중의 사람의 관념을 바꾸자

글/ 밴쿠버 대법제자

[밍후이왕] 며칠간 수련생이 쓴 몇 편의 문장을 읽었는데 그 중 ‘연공이 매우 중요하다.’는 문장을 보고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연공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매일 제대로 견지하지 못했던 점을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 서글펐다.

연공을 보장하기 위해 심지어 시간표를 만들고 매일 몇 동작을 했는가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또 이행하지 못했다. ‘무슨 원인이 나로 하여금 연공을 견지하지 못하게 하는가!’ 나는 이렇게 탄식하며 다만 ‘나 자신의 의지가 약하고 상사(上士)의 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스스로를 평했을 뿐이다. 그리고 늘 내가 연공을 견지하려는 것을 어떤 원인이 저애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다. ‘타성의 원인으로 견지하지 못하는가?’

그러던 중 법 공부를 하면서 한동안 법을 외울 때 갑자기 깨달았다. 원인을 찾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왜, 연공을 해야 하는가?’의 관념을 바꾸지 않았던 것이다. 나의 잠재의식에서는 항상 건강 그리고 신체가 아프지 않는 것을 연공과 연결시켰던 것이다. 표면에 표현되는 것으로 느끼면서 바로 신체의 어디가 불편하면 마땅히 연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속으로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주의를 환기시켜 주시는 거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평소 신체의 상태가 좋으면 연공하는 것을 귀찮게 여기며 ‘차라리 법 공부를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구실을 댄다. 또 그 외 여러 가지 구실을 대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3가지 일을 잘해야 하는 것에서 연공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등이고 지금은 이렇게 바쁘다는 핑계 등등 이었다.

많은 노년 수련생이 연공을 적극적으로 하고 젊은 수련생이 비교적 연공을 중시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모두 그런 관념으로 조성된 것이 아닌가? 노년 수련생은 신체가 젊은 수련생보다 좋지 않다고 생각하므로 연공을 더 많이 한다. 그러나 젊은 수련생의 신체적 건강상태는 비교적 문제가 나타나지 않고 당장 괴롭지 않으므로 연공을 소홀히 하게 되는 것 같다.

어쨌든 아직도 연공을 신체적 건강과 연결시키려고 한다. 때로 진상을 알릴 때의 대화중에서도 역시 ‘자신이 연공 후에 신체가 얼마나 좋아졌다.’고 말을 한다. 비록 진상을 알리기 위해 속인을 대면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은연중에 스스로도 동공과 정공은 건강을 유지시켜주는 법보라고 묵인한다. 그러면 연공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法輪大法(파룬따파) 역시 성명쌍수(性命雙修) 공법이기에, 연마(煉)할 동작이 있어야 한다. 동작은, 한 방면으로는 공능을 가지(加持)하는 데 쓰는데, 무엇을 가지라고 하는가? 당신의 강대한 공력(功力)으로 당신의 공능(功能)을 강화하여 더욱더 강하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당신의 신체 속에서 또 많은 생명체를 연화(演化)해 내는 것이다. 고층차의 수련에 이르면, 도가에서는 원영출세(元嬰出世)를 말하고, 불가에서는 금강불괴지체(金剛不壞之體)를 말하며, 또 많고 많은 술류의 것을 연화해 낸다. 이런 것들은 모두 수법(手法)을 통해 연련(演煉)해야 하는데, 동작은 이런 것들을 연마(煉)하는 것이다. 완정(完整)한 한 세트 성명쌍수 공법이라면 닦기(修)도 해야 하고 연마(煉)도 해야 한다.”(전법륜)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말씀하셨다. 동작은 한편으로 공능을 가지하고 다른 한편으로 당신의 신체에서 많은 생명체를 연화해 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근본적으로 연공은 신체를 좋게 하고 건강하게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이 한 단락의 법을 몇 번이나 읽었는데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읽으면서 자신이 늘 연공을 견지하지 못한 원인을 찾았다. 나는 그동안 연공은 도대체 무엇을 위하는 것인지 정확히 몰랐던 것이다. 연공은 수련의 일부분이다. 성명쌍수 공법이라면 닦기도 하고 연마도 해야 한다. 반드시 그의 더욱 깊은 내포가 있다. 나는 어찌 독선적으로 연공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가.

현재 내가 연공을 할 때 일단 연공하지 않으려는 게으른 요소를 발견하면 자신에게 ‘연공은 법에서 요구하는 것이다.’라고 주의를 준다. 기왕 대법을 수련하면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한다. 이때부터 나는 연공을 할 때 마음이 많이 조용해졌다. 나는 연공을 견지하는 것은 신체가 좋기 위해서 신체가 편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법에서 이렇게 요구했기 때문에 수련제자로서 바로 매일 해야 할 수업이다. 우리는 모두 마땅히 해야 하지 않는가!

나는 이렇게 깨닫고 난 후 연공 후에 얼마나 편안한가를 더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이전에 연공을 견지하지 못한 원인은 바로 구하는 마음이어서 편안함을 구하게 되면 바로 연마하지 않았다. 이것은 속인의 생각과 같았던 것이다. 연공 중에 은근히 신체가 좋아지기를 위하는 마음이 섞여 있다면 정말 그렇다면 신체가 좋아질 수 있겠는가? 신체가 좋아진 것은 심성이 제고된 것이고 사부님께서 소업을 해 주셔서 비로소 좋게 변한 것이다. 일체는 사부님께서 하신 것이다.

연공도 역시 수련을 하는 요소가 있는 것이다. 아픈 것을 참을 수 있는가 그리고 견지할 수 있는가 등등이다. 나는 이 같은 법리를 깨닫고 연공을 견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상은 법을 외울 때 얻은 약간의 깨달음이다. 부당한 점은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12년 12월 1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2/18/2666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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