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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최근의 일부 교란에 대한 견해

글 / 샌프란시스코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어떤 수련생들이 원망과 증오심에 대한 문제를 놓고 교류를 진행했는데 듣고 나서 큰 감동을 받았다. 자신을 되돌아보니 자신에게도 어떤 때 매우 강렬한 증오심이 있음을 발견했던 것이다. 남이 하는 방법이 자신의 관념에 부합되지 않을 때, 남의 언어가 자신을 자극할 때, 남이 자신을 불공정하게 대할 때 등등에서 항시 원망과 미움이 나왔다. 심할 때는 심지어 수련생과의 관계와 법 실증 사업에 영향을 주었다.

우리에게는 모두 이런 경험이 있다. 상황이 지난 후 되돌아보면 전혀 대단한 일도 아닌데 자신마저 이상할 정도로 당시에는 그렇게 강렬한 불만에 빠졌으며 이후에는 또 몹시 후회한다. 우리의 진정한 나에게는 이런 부정적인 면이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마성이라고 할 수 있는 물질, 그것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나는 사고했고 여러 날 곤혹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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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침 깨어나기 전에 나는 한 장면을 아주 분명하게 보았다. 나는 한 사람의 생명을 해쳤는데 장면을 보면 이 한 생과 아주 가까운 한 생인 것 같았다. 중요한 점이라면 이 생명이 줄곧 나를 미워한다는 것이다. 많은 때 나의 남에 대한 원망은 바로 그가 끊임없이 나에게 주입한 증오의 표현이었음을 나는 나중에 발견했다. 그가 바로 당신의 수련을 교란하려 하는 것이다.

사실 내가 살펴본 바로는 나는 모든 사람을 다 말하고 싶지 않지만, 최근 아주 많은 수련생들이 모두 원망과 증오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문제를 보았는데 이는 우연한 것이 아니다. 역사상 우리는 무수한 환생을 하면서 일부 생명을 해쳤다. 나 개인적으로 이해하기에는 그들의 증오는 우리가 표현하는 원망의 한 가지 근원으로 최근에는 비교적 특별하다. 한 가지 원인은 중요한 항목이 관건적 단계에 이를 때 그는 교란한다. 다른 한 가지 원인은 정법이 최후의 최후에 이르자 많은 생명은 서둘러 빚을 받으려 하고 복수하려는 것이다.

나는 또 발견했다. 우리가 정진할 때, 그들이 전달해 온 원망이 적고, 정진하지 않을 때일수록 표현되는 원망이 더욱 심하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만약 우리가 수련을 잘하면 사부님께서 모두 우리에게 이런 역사상의 원한을 선해(善解)해 주실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명들은 우리가 정진하지 않으면 그들은 당신이 미래에 원만할 수 있을지 파악하지 못하고 당신이 그들에게 복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게 되므로 그들은 곧 이렇게 한다. 이럴 때면 사부님께서도 방법이 없다. 어떤 생명은 심지어 생각한다. 이전에 당신들은 발정념 할 때 ‘나를 교란하지 말라, 앞으로 너를 좋은 곳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당신이 법공부, 연공 혹은 발정념하거나 혹은 진상을 알리는 상태를 보면 하는 둥 마는 둥 하는데 당신이 하는 것이 모두 거짓 약속이 아닌가? 그래서 그들은 더욱 강렬하게 교란하면서 증오와 업력을 끊임없이 당신의 몸에 더해 넣어 당신의 증오심을 더욱 심해지게 하거나 심지어 이 때문에 몸에 병업 표현이 나타나게 한다.

이런 것을 써내는 것은 단지 여러분을 일깨워 줄 수 있기를 바라서이다.

우린 정말로 정진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사부님께 죄송하고 자신에게 미안하며 또 일찍이 상해했던 그런 생명에게도 미안하게 된다. 본래 남에게 빚을 졌는데 지금 그들이 우리를 교란하는 죄를 저지르는 것은 우리가 정진하지 않음에서 기인된 것이다. 만약 우리가 신변의 일체 현상을 모두 수련하는 사람처럼 대한다면 안으로 찾는 것을 포함해 많은 저항은 모두 저절로 풀릴 것이다.

이밖에 다른 수련생이 우리를 좋지 않게 대할 땐 ‘맞붙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바르게 대한다면 구세력이 우리에게 배치한 사부님 정법을 교란하는 부정적인 사유(물질)와 방법을 제거할 수 있다.

(2)

우리가 표현하는 원망에는 근원이 있는데 구세력이 전달해 보내는 질투심임을 나는 느꼈다.

우주는 각양각색의 물질과 생명으로 가득 찼는데, 당신이 무엇에 부합되면 그것은 곧바로 당신 몸에서 작용을 일으킨다. 구세력은 대법제자가 법을 얻을 수 있음에 대해 질투하고 사부님께서 우리에 대해 이렇듯 관용하는데 대해 질투해 마음의 평형을 잡지 못한다. 그들이 질투를 전달할 수 있는 때가 바로 우리가 정진하지 않고 안으로 찾지 않을 때인데, 그들의 구실이란 이런 것을 배치해 우리를 제고시킨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표면상 아직도 사람 마음이 좀 있는데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할 수 있다면 작용을 일으킬 수 없다. 하지만 수련을 홀시하고 그들의 것에 부합될 때면 그것은 곧 작용을 일으키며 당신의 집착을 강화할 것이다. 그것에 따라 생각할수록 마음은 더 불평이고 그럴수록 자기가 더 옳은 것 같다. 그리하여 상대방과 갈수록 맞서거나 혹은 피해서 에돌아간다. 하고 있는 ‘법실증’ 일은 갈수록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고 갈수록 효과가 떨어진다.

마음에 원망, 증오를 품고 법실증 일을 하면 어찌 법을 실증할 수 있겠는가? 가슴에 진선인(眞善忍)을 품어야만 법을 실증할 수 있고 법이 비로소 당신 몸에서 위력을 체현해 낼 수 있다. 그렇지 않은가?

조그마한 깨달음을 참고로만 제공하오니 적절하지 못한 곳은 제때에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2년 12월 2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수련교류>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2/21/2667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