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明慧법회| 긴긴 수련의 길에서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하다

글/ 대륙 대법제자

[밍후이왕] 기억하건대 어느 한번 내가 집회 광장에서 진상을 알릴 때 한 임신부에게 진상을 말하는데 그의 시어머니가 왔다. 나는 또 이 할머니에게 말하니 할머니는 진상을 안 후 두 손을 하늘에 대고 맹세했다. “푸른 하늘이 위에 있으니 나의 전 가족 5명 당원을 전부 탈당시키겠다”고 맹세했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를 집중하고 바라보았다. 당시 나는 중생이 진상을 알게 된 모습을 보자 격동되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본문 작자

* * * * * * *

나는 근 70세가 다 되어가는 사람이다. 공부를 얼마 하지 못했기에 한평생 고되게 일했다. 가정을 이루었는데 10년이 되지 않아 남편이 세상을 떠났고 나는 아이 넷을 거느리고 작은 도시에서 생활했다. 그때 생활의 고통이 너무 심해 회상하고 싶지 않다. 막내 아이를 성인으로 키우니 나는 이미 백발이고 전신에 질병이 걸렸다.

1997년, 나는 담결석에 걸려 고통을 참지 못해 병원에 입원해 수술하려고 준비했다.

병원에서 검사하니 여러 병이 있었다. 심장병과 위장병, 저혈압과 악성빈혈 등이다. 피 검사를 할 때 보니 피가 모두 시커멨다. 높은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나는 정말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이때 파룬궁이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특효가 있다는 것을 듣고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기로 결정했다.

기억하건대 첫날 ‘전법륜(轉法輪)’을 볼 때 나는 단숨에 오전부터 오후 3시까지 보았다. 책을 볼 때 강렬한 열기가 전신에 펴져 신체는 따뜻하고 매우 포근했다. 당시 나는 이 책은 인간세상의 책이 아니라고 깨달았다. 오후 3시가 지나니 담결석 동통이 심해져 콩알 같은 땀방울이 온몸에서 나왔다. 그때 나는 법리에 대해 아주 옅은 인식이어서 다만 책속의 ‘물극필반(物極必反)’(사물의 발전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한다: 역주)만 기억했다. 나는 7시간 심한 고통을 꾹 참았다. 가족은 이 상황을 보고 나에게 병원에 가라고 권했다. 나는 “죽어도 이번만은 믿어요!”라고 말했다. 말이 떨어지자 ‘왝왝’하고 누런 물을 한 통 토하고 이어서 세 덩이 검은 것을 토해냈다. 토한 후 신체가 즉시 편안해 온몸은 가벼웠다! 몇 십 년 답답하던 심정도 개운해지고 나는 딴 사람처럼 됐는데 너무나 신기했다! 그때부터 나는 확고하게 수련의 길을 걸었다.

나는 억만 대법제자처럼 수련의 길에서 비바람과 고난을 겪었다. 베이징에 가서 법을 수호함으로부터 유랑하고 걸식하며, 신고로 납치돼 불법적인 판결을 받기도 했으며 다섯 번 감옥에 들어가고 나왔다. 나는 대법에 대해 여태껏 조그마한 동요하는 염두가 없었으며 확고하게 오늘까지 걸어 왔다.

갑작스럽게 비바람이 불다

1999년 ‘7.20’에 중공사당은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어찌 연마하지 말라고 할까?’ 나는 우리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파룬궁이 사람을 선하게 가르치고 몸을 건강히 하며 병을 치료하는데 특별한 효과가 있으며, 나라와 국민에게 백 가지 좋은 점만 있고 한 가지 해로운 점이 없다……연속 4일 말했다. 가족의 두려움으로 나는 가족에게서 오는 거대한 압력과 마주쳤다. 그리하여 나는 차라리 베이징에 가서 중앙 지도자들에게 말하리라 결심했다. ‘파룬궁은 좋다.’ 당시 생각은 매우 단순하고 순정했으며 OO당이 그렇게 사악하리라 생각하지도 못해서 한 마음으로 다만 대법에 공정한 말을 하려고 생각했다.

기억하건대 베이징에 가던 그날 나는 가족 몰래 집 뒤 담장을 뛰어 넘었다. 넘을 때 발뒤축 살을 깊이 스쳐 뼈가 어슴푸레 보일 정도였다. 피가 바짓가랑이를 물들여도 나는 마음에 두지 않고 확고하게 베이징 가는 길에 올랐다.

3일 후 상처를 닦은 발뒤축이 딱지가 앉았다. 보통 예전에 이러한 상처는 보름이 되어서야 나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주셨으며 내가 가는 길이 옳다고 생각했다. 나는 더욱 신념을 확고히 하고 사부님과 대법의 결백함을 돌려주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9월 중순 베이징에서는 대규모 체포를 시작해 나는 7~8명 경찰에게 잡혀 파출소에 갔다. 길에서 나는 끊임없이 경찰에게 진상을 알리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렸다. 어떤 경찰들은 믿기도 하고 믿지 않으면서 물었다. “당신이 말한 것이 정말인가?” 나는 정말이라고 말했다.

파출소에 와서 나는 여전히 파출소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다. 경찰은 나의 구술을 적었는데 4 페이지나 됐다. 나는 본 후 정중하게 나의 진실한 이름을 서명했다. 게다가 내가 구술한 자료를 중남해(中南海-중앙 정부와 공산당의 본부 및 관저 등이 있는 곳: 역주)에 보내라고 신신당부하니 경찰은 “꼭 보내겠다”고 대답했다. 당일 오후 5시 경찰은 또 나를 베이징 창핑(昌平)에 임시 납치 장소로 보냈다. 나는 당시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니 사부님 나를 구해주세요”라는 염을 내보냈다. 과연 들어간지 10분도 되지 않아 사람이 이미 찼다면서 고향에 돌아가라며 불법적으로 현지 파출소에 감금하고 이전했다. 그때 나는 나에 대한 사악의 박해를 철저히 부정했다.

불법적으로 15일 감금된 후 나는 정정당당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사악의 어떠한 요구에도 협조하지 않았고 한 글자도 서명하지 않았다.

나는 현지에서 처음으로 베이징에 가서 법을 널리 알린 사람이기에 사악은 전문적으로 하루 24시간 우리집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사람을 붙였다. 나는 다른 수련생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 옷을 잡고 경찰의 주의력을 돌려 수련생들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했다. 이때 사부님의 한 마디 말이 내 머리에 번뜩 떠올랐다. “걸어 나와 각종 방식으로 법을 실증하는 것은 위대한 행위지만, 절대로 사악에게 잡혀가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정진요지2-이성) 나는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요구해 끝내 지혜롭게 마귀굴을 벗어났다. 일이 이미 이런 상태에 이르러 나는 당지 중점 ‘수배자’가 됐다. 농촌에서 시내 모든 친척은 모두 사악의 교란을 받았다. 그리하여 나는 유랑 생활을 시작했다.

유랑하던 시기에 나는 시종 대법제자의 사명을 잊지 않고 진상을 알리고 박해를 폭로했다. 나는 세 차례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다. 첫째, 당시 사악을 벗어난 후 나는 홀로 유랑했는데 대법책이나 바꾸어 입을 옷도 없었다. 나는 내 고뇌를 옆집 진상을 안 노인에게 말했다. 몇 리 밖 수련생 집에 책이 있지만 그 수련생이 연루될까 봐 내가 가지 못한다고 말하니 노인은 자발적으로 나를 도와 왕복 10여리 되는 길을 걸어 ‘전법륜’ 책을 가져왔다. 신기한 것은 이 곱사등 노인이 이튿날부터 허리를 펴고 지팡이를 버리고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그때 나는 농사일을 도와주고 오후에 법공부를 했는데 저녁에 농민들이 일을 끝내면 나는 집집이 다니며 진상을 알렸다. 기억하건대 어느 한번 저녁에 나는 아주 멀리 갔다 걸어 돌아왔는데 이미 매우 늦었다. 나는 육안으로 내가 사는 집안이 온통 붉은 빛이 비추고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보았다. 연속 3일간 진상을 알리고 오면 이런 것을 보게 됐다.

세 번째, 다른 수련생이 내가 유랑하며 이 마을에 있는 것을 알고 나에게 줄 사부님의 경문 ‘제자의 위대함’과 진상자료를 준비해주었다. 그러나 그 수련생이 우리 마을에 오니 밤이 이미 깊어서 내가 묵고 있는 집이 어디인지 찾을 수 없었다. 곤란할 때 그 수련생은 한 집 문 앞에 크고 밝은 ‘정(正)’자가 있는 것을 보고 그 집에 들어가 내 이름을 부르니 바로 내가 나왔다고 한다. 내가 나갔을 때 ‘정’자는 사라졌는데 수련생은 몹시 격동했다. 나는 불법의 현묘함과 수승(殊勝)함을 깊이 느꼈다! 사부님께서 그 수련생에게 내가 있는 곳을 가르쳐 주셨고 동시에 제자가 수련한 길이 반드시 바르다고 격려해주셨다.

2004년 ‘9평공산당’이 나왔다. 법에서 나는 대법제자의 책임은 위대하고 간고하다는 것을 알았다. 매 한 세인을 구도하면 그의 배후의 무량무제(無量無際)한 중생들도 동시에 구도되는데 이 책임이 너무나 중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사부님의 요구대로 온 힘을 다 해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데 투입했다. 7년간 한겨울 맹추위나 무더운 여름이든, 바람이 불고 비가 와도 나는 의지를 굳게 하고 흔들리지 않았으며 매일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우리 이 시에서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나는 차례대로 분별 있게 현지 대법제자를 박해하는데 참여한 공안국 부국장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 중 한 사람은 9번을 찾아갔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영향이 끼칠까 두려우니 앞으로 적게 오세요, 진상자료를 인터넷에서 늘 보고 있고 당신들이 모두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진상자료를 보내지 마시고요.” 국보대대장도 한 차례 만나 진상을 알렸다. 우리 현지 수련생이 끊임없이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기에 구치소에서는 수련생을 납치해 가면 거절하며 “파룬궁은 모두 좋은 사람인데 당신들은 실컷 먹고 마시며 할 일도 없소? 우리는 파룬궁을 받지 않으니 앞으로 여기에 보내지 마시오”라고 말했다. 파룬궁을 신고하는 전화가 와도 대다수는 출동하지 않으며 어떤 때는 나가서 신고한 사람 앞에서 수련생을 풀어주거나 경찰차로 한적한 곳에 수련생을 내려준다.

기억하건대 어느 한번 내가 집회 광장에서 진상을 알릴 때 한 임신부에게 진상을 말하는데 그의 시어머니가 왔다. 나는 또 이 할머니에게 말하니 할머니는 진상을 안 후 두 손을 하늘에 대고 맹세했다. “푸른 하늘이 위에 있으니 나의 전 가족 5명 당원을 전부 탈당시키겠다”고 맹세했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를 집중하고 바라보았다. 당시 나는 중생이 진상을 알게 된 모습을 보자 격동되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또 한 번 내가 현지 중학교에 가서 진상을 알리니 진상을 안 한 중학생이 자기 학우들에게 외쳤다. “파룬궁 할머니가 왔다, 너희들 빨리 와서 삼퇴해!” 몇 분도 되지 않아 50여명이 탈퇴했다. 그 중 한 학생이 경찰에게 신고하려 하니 진상을 안 학생이 말했다. “너 보응을 받는다, 악보(惡報)를 받아”라고 말하며 그를 제지했다.

이렇게 몇 년 지나 나는 3만여 명을 권고해 탈당시켰다. 수련생들은 이 숫자가 불가사의하다고 말하면서 또 어떤 수련생은 “진상을 제대로 말 했는가?”라고 물었다. 사실상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시간만 되면 듣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상세하게 말했으며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두 세 마디로 그들을 탈당시켰다. 나는 매일 내가 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기제(機制) 중에 들어갈 수 있는데 이 기제 중에 들어가면 사람 구하는 효율이 특별히 높다. 다만 두 세 마디면 곧 퇴출한다. 그 다음 나는 진상자료를 준다. 나는 다만 내가 발을 움직이고 입을 놀리기만 하면 되는 것을 알았다. 일체는 모두 사부님이 다 하고 계시며 사부님께서 인연 있는 사람을 내 앞에 보내주시며 사부님께서 이미 길을 펼쳐놓으셨다. 매 대법제자가 사람마음을 내려놓고 사람을 구하는 마음으로 가서 하면 된다.

매번 냇물처럼 끝임 없이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모두 아직도 매우 많은 중생이 우리가 가서 구도하기를 기다린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아직 매우 많은 사람 마음을 수련하지 못해 어깨의 짐이 무거우나 한 가지는 똑똑하다. “나는 꼭 확고부동하게 사부님께서 가리키는 길을 따라 법정인간 그 시각까지 가겠다.”

이 문장은 본인이 구술하고 수련생이 도와 정리했다. 허스!

문장발표: 2012년 11월 1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제9회 밍후이법회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13/2649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