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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몸은 속세에 있으나 마음은 법속에 있다

글/ 중국 동북대법제자 순청(純淸)

[밍후이왕] 그 당시 시간은 아주 고통스럽고도 몹시 어려운 느낌이었다. 법에서 똑똑히 인식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다. 어려운 것은 시간이 제한된 상황에서 가정을 보살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또 대법을 실증해 사람을 구하는 일도 잘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법 공부를 많이 했고 가정, 업무와 수련 관계를 잘 평형하기에 노력했다. 나는 최대한으로 세인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구실로 시간과 정력을 모두 가족 몸에 쏟을 수 없었으며, 또 자신이 수련한다고 해서 극단으로 가족을 관계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 당시 집안일이 한 무더기로 쌓였다. 나의 노 모친은 나에게 찐빵, 만두, 짠지 그리고 각종 음식물을 보내주었다. 이는 나를 도와 시간을 절약해 주셨다. 세인 중에서 나는 어머니에게 무슨 자랑거리가 못 된다. 하지만 나는 장래에 내가 꼭 어머니의 영원한 자랑이 될 수 있을 것임을 믿는다. – 본문 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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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수련의 길에서 사존께서 저에게 배치하신 매 하루에 감사를 드립니다. 사존의 자상한 가호와 끊임없는 점오로 제 곤경마다 안개를 몽땅 지워주셨습니다. 저는 이 때문에 무궁한 정념으로 중생 구도의 자신감이 강화됐으니 사존께 감사를 드립니다. 밍후이왕 수련생이 제공한 인터넷 법회 교류 마당은 저로 하여금 이 1년간 수련과정을 정리하는 동시에 다시 한 번 자신의 부족함을 찾고 수련의 길에서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하며 서둘러 사람을 구하게 해주었으니 이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바쁜 하루를 끝내고 창밖의 가물거리는 등불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미혹 속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감개가 무량하다. 한 방면으로는 사람을 구함에 긴박함을 느꼈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책임을 느낀 동시에 자신을 잘 수련해야 하는 것이 중요함을 느꼈다. 매일 속세의 소란스러움, 각종 이익의 유혹, 각종 사람 마음의 교란에 직면해 나는 늘 자신에게 ‘극 속에 너무 깊이 빠지지 말고 시각마다 법으로 자신을 가늠하며, 항상 불쾌한 일을 마음을 닦는 기회로 간주하라. 그리고 주의력을 집중해 법 공부를 하여 자신을 법 속에 용해시키도록, 대법의 법리가 심신의 매 하나의 미립자 속에 용해돼 들어가도록, 세인 사회의 일체가 신체 속과 대뇌 속에서 발붙일 곳이 없도록 하며, 마음속에 단지 나의 수련을 지도하는 대법과 구도를 받음에 조급하고도 간절히 바라는 중생만 있도록 하라.’라고 타일렀다.

1. 책임

나는 어릴 때부터 성격이 내성적이고 열등감이 있으며 말수가 적었다. 수련한 후 비록 진상을 알리는 것 때문에 많이 개변됐으나 여태껏 무슨 책임을 지려고 생각한 적도 없다. 나는 다만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세 가지 일만 잘하면 그만이고 다른 사람에게 협조해 내가 협력을 하면 더욱 좋다고 여겼다. 나는 자신이 책임을 감당할까 두렵고 또 자신은 그 능력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번은 사악한 납치 속에서 린시(鄰市)에서 걸어 나올 수 있는 수련생 여러 명이 납치당했고 여러 자료점이 파괴당했다. 수련생 사이에 간격이 생겨 한때 곤경에 빠졌다. 수련생과의 교류 중에서, 자료점이 파괴된 이유로 많은 수련생이 심지어 ‘밍후이주간’마저 보지 못하며 현지에서 대법을 실증하는 수련생 수가 아주 제한되어 있음을 알게 됐다. 당시 나는 책임을 감당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어떻게 되도록 빨리 수련생들에게 ‘밍후이주간’을 보게 하고 또 진상전단지를 배포할 수 있도록 하겠는가만 생각했다. 왜냐하면, 정체 제고는 그쪽 중생의 구도 됨에 관계되기 때문이다.

그날 린시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앉자마자 나는 영문을 모르게 눈에 눈물이 가득했는데 어찌해도 참할 수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데 어째서 다른 공간의 장중한 장면을 느꼈을까? 무수한 중생이 서로 나를 빼곡히 둘러싸고 내 주변 상공으로 왔는데, 그 기대하는 눈길, 내가 책임을 감당하려 함을 깨달은 감동, 내가 빨리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아쉬워하는 모습……그들의 사유가 나의 의념으로 들어왔다. 나는 중생의 무력함을 보았고 담당한 책임을 느꼈으며 동시에 자비심이 저절로 생겨났다…….

그 후 수련생과의 교류를 통해 나는 자신의 능숙하지 않은 기술로 수련생을 도와 컴퓨터 운영체계를 설치했고 또 프린터를 샀으며 인터넷 접속을 가르쳤다. 당연히 과정 중에 아주 많은 장애가 있었다. 내가 운영체계를 설치함에 그다지 능숙하지 않았기에 어떤 때는 컴퓨터 한 대를 몇 번이나 설치해서야 완료할 수 있었는데 한 번 하면 하룻밤을 새웠다. 운영체계를 다 설치하고는 또 수련생에게 인터넷 접속을 가르쳐야 했다. 어떤 수련생은 컴퓨터를 한 번도 만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사부님이 계시고 대법이 있기에 일부 보기에는 몹시 어려울 것 같은 일도 저절로 풀어나갈 수 있었다.

수련생들이 차츰 ‘밍후이주간’을 볼 수 있었고 삼퇴 명단도 모르는 사이에 많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늘 함께 어떻게 법 공부팀을 조직하고 어떻게 기점을 바로 해서 구세력을 부정할지에 대해 여러 차례 교류했다. 차츰 교류에 참가하기를 원하지 않던 사람도 참가하기 시작했고 걸어 나오지 못하던 사람도 교류를 통해 걸어 나왔다. 예전에 한 수련생은 집에서 경찰에게 납치당할 뻔했는데, 그날 우리의 교류가 정말 아주 큰 작용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관념을 바꾸고 기점을 바로 하며 구세력을 부정할지 깨달았다. 그런 다음 정정당당하게 파출소 사람에게 진상을 알렸으며 또 그들에게 진상 CD를 선사했다. 결국, 보기에는 피할 수 없는 박해가 이렇게 해체됐다.

2. 끊임없이 용량을 넓히다

마침 우리의 일체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을 때 남편에게 갑자기 고혈압과 당뇨병 합병증이 도졌다. 이 때문에 그는 사유가 무디고 느리며 물건을 똑똑히 보지 못했고 글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또 길을 걸어도 차를 피할 줄을 몰랐으며 공공버스에 오르면 동전을 투입할 줄 몰랐다. 나는 급히 남편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야 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갑자기 또 린시의 수련생이 소굴에서 박해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갑자기 닥쳐온 이 부고는 나를 망연자실하게 했다. 그러나 나는 아주 빨리 눈물을 닦고 집안의 상황을 내려놓고 무거운 심정으로 황급히 수련생과 함께 린시로 갔다.

린시에서 돌아온 나의 마음은 극히 무거웠다. 머릿속에 어렴풋하게 그 수련생의 웃는 얼굴과 목소리가 떠올랐다. 나는 한편으로는 자료를 정리해 인터넷에 폭로하고 한편으로는 현지용 진상전단지를 만들었다. 바로 이때 학교 선생님께서 전화를 걸었는데 말로는 아이가 학습하지 않고 또 장난이 심하다면서 나를 한 번 오라고 했다. 이 일을 아직 처리를 끝내지도 않았는데도 줄곧 집안 남동생과 여동생들에 대해 아주 너그럽던 큰 언니가 작은 일 때문에 나와 노발대발했다. 그녀는 울면서 나를 원망했다. 정말 일이 숨 돌릴 새 없이 일어났다. 나는 한편으로는 집안일을 처리하고 한편으로는 계속 대법을 실증하는 일에 참가했다.

하루는 마침 우리 몇 명 수련생이 박해로 사망한 수련생과 관련된 부서 및 책임자를 어떻게 고소할지를 상의하고 있을 때 NTD(新唐人) 위성 안테나를 설치하는 수련생이 린시로 가서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곳 수련생을 잘 알지 못했다. 당시에 린시는 단지 나와 갑 수련생만이 익숙할 뿐이었다. 그러나 설날에 가까워져서 갑 수련생도 근무로 아주 바빴다. 만약 휴가를 내면 돈을 받지 못하고 더욱 많은 업무가 쌓일 수 있었다. 나는 린시에서 돌아온 지 아직 며칠이 되지 않았고 남편 몸도 좋지 않으며 또 아이가 공부하기에 두 사람을 모두 보살펴 주어야 했다. 게다가 당시 또 인터넷 진상자료를 정리해야 하는데 하지 못했다. 나의 당시 생각은 그 수련생이 직접 린시로 가서 모 수련생을 찾도록 하게 하면 모 수련생이 책임지고 설치 과정을 안내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갑 수련생은 다른 몇 명 수련생 앞에서 나에 대해 큰 소리로 질책하며 내가 가족을 내려놓지 못하고 가족에게 집착한다는 등을 말했다. 잇따라 온 모순에 직면해 나는 눈에서 맴도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면서 해석하려 했다. 그러나 나는 말하지 않았다. 이후에 누가 나에게 큰소리를 치는 것은 물론, 누가 나에게 위안하는 말 몇 마디를 한다고 해도 나는 참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무형의 압력, 수련생의 말은 내가 아직 수련해 버리지 못한 사람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내 눈물은 여전히 줄줄 흘렀다. 가정이 없는 사람이라 그렇게 가볍게 말한 것인지? 가정이 있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내가 확실하게 그녀가 말한 문제가 존재하는 것인지? 나는 한편으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을 찾았다. 나는 자신의 억울함은 단지 수련생의 몇 마디 말에서만 온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여러 방면의 압력은 나로 하여금 결국 다른 사람의 이해를 바라게 했던 것이다. 내 가정의 지금의 곤경을 이해해 주고, 많은 일은 내가 걱정해야 하며, 인터넷에 폭로하고 전단지, 메시지를 편집하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휴대폰과 컴퓨터 기술 등 많은 일은 내가 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또 집을 돌봐야 했음을 이해해 주기를 바랐다. 어떤 때는 늘 아주 늦게 잠을 잤는데 심지어 하룻밤 동안 잠을 자지 않으면서도 또 법 공부하고 연공해야 했다. 어느 한 가지라도 적으면 안 됐다. 그러나 내가 한 이런 일은 오히려 또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었고 단지 자신의 마음속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울면서 한편으로는 시간을 보며 거듭 자신에게 더 울면 시간을 지체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눈물은 끊이질 않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 중에서 “그의 心性(씬씽)이 있는 위치에 이르렀을 때 그의 공도 여기까지 자랐는데, 그가 그의 공을 더 제고하려 하면, 이 모순 또한 두드러져서 그는 계속 그의 心性(씬씽)을 제고해야 한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그리고 또 사부님께서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에서 “대법제자는 한 수련인으로서, 문제를 볼 때 사람과 반대로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언짢은 일에 부딪히면 기분 나빠 하는데, 그러면 당신은 바로 사람이 아닌가? 무슨 구별이 있는가? 언짢은 일에 부딪혔을 때가 바로 당신 자신을 수련할 때이며 마음을 수련할 때이다. 과거 종교 중에서 안을 향해 마음을 닦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당신은 지금의 사람이 하는 말을 듣지 말라. 그는 진의(眞意)가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다. 진정하게 당신 자신을 수련하며, 모순에 부딪히고 문제에 부딪히면 자신의 어디가 잘못됐는지 살펴보고, 내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법으로 가늠해야 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것이 바로 수련이 아닌가?”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사부님의 법을 생각하자 눈물이 뚝 그쳤다. 나는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수련생에 대해 어떠한 견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알려주면서, 한편으로는 조용히, 도대체 내가 아직도 어디가 부족한지? 나에게 아직도 무슨 문제가 존재하는지를 생각했다. 고생스럽고 힘들고 다른 사람이 질책하고 원망함은 아무것도 아니며, 불편한 것도 단지 한순간일 뿐이다. 어떻게 법 속에서 문제를 보는지 이것이야말로 수련의 실질이며, 또 이것이야말로 관건이구나. 무엇 때문에 모순에 마주치면 억울한가? 바로 자신의 심성이 다 찼던 것으로 용량이 너무 적어 마땅히 좀 큰 용량으로 바꾸어야 했다. 나는 눈물을 닦고 속으로 “사부님, 저는 꼭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당시 시간은 아주 고통스럽고도 몹시 어려운 느낌이었다. 법에서 똑똑히 인식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다. 어려운 것은 시간이 제한된 상황에서 가정을 보살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또 대법을 실증해 사람을 구하는 일도 잘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법 공부를 많이 했고 가정, 업무와 수련 관계를 잘 평형하기에 노력했다. 나는 최대한으로 속인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구실로 시간과 정력을 모두 가족 몸에 쏟을 수 없었으며, 또 자신은 수련한다고 해서 극단으로 가족을 관계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 당시 집안일이 한 무더기로 쌓였다. 나의 노 모친은 나에게 찐빵, 만두, 짠지 그리고 각종 음식물을 보내주었다. 이는 나를 도와 시간을 절약해 주셨다. 나는 어머니에게 효도를 해드리고 보살펴 드릴 시간이 없었다. 심지어 어떤 때에 집으로 돌아갔다가 단지 입구에서 좀 서 있다가 떠났다. 참, 나는 무슨 언어로도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뜻과 양심의 가책을 표현할 수 없었다. 예부터 충과 효를 다 갖출 수 없다고 했다. 여기에 쓰기는 아주 적절하지는 않지만, 이때 나는 겨우 그의 진정한 함의를 이해했다. 세인 중에서 나는 어머니에게 무슨 자랑거리가 못 된다. 하지만 나는 장래에 내가 꼭 어머니의 영원한 자랑이 될 수 있을 것임을 믿는다.

어떤 수련생은 “당신은 그(남편을 가리킴)가 좋아지도록 하게 할 수 없나요?”라고 말했고, 어떤 수련생은 내가 그에 대한 정이 무겁다고 했다. 나는 해석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가족에 대한 집착이 없고 또 발정념을 발해서 다른 공간에서 가족을 이용해 내가 조사정법을 함에 교란하는 모든 사악의 요소를 해체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편 상황은 여전히 그다지 좋지 않았다. 나는 어떤 일은 복잡한 것으로 표면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수련의 길은 모두 같을 수가 없다. 그러면 참조하는 길이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2012년 미국수도국제법회 설법’ 중에서 “대법제자의 수련은 개개인이 모두 다른 것이다. 나는, 본보기가 없고 참조가 없으며 다만 참고할 수 있을 뿐이며, 남이 정념의 작용 하에서 한 그러한 일을 볼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당신이 그가 어떻게 하면 당신도 따라 그렇게 하거나, 그가 무엇을 하면 당신도 그것을 그대로 가져다 따라 한다면, 당신은 잘못한 것이다. 개개인이 모두 자신의 길을 걷고 있으며, 개개인이 모두 자신이 장래에 대법 중에서 인식할 법을 바르게 깨닫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 남편도 법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담배와 술도 모두 끊었다. 다른 사람은 그를 보더니 아주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루 두 끼씩 술을 마시고 담배 두 갑씩 피우던 사람이 어떻게 끊을 수 있었느냐?” “술은 끊기 쉽다고 하지만 담배는 그렇게 쉽지 않은데.” 그는 “고인(高人)의 한마디 말씀을 듣고 다시는 담배를 피우고 싶지 않아졌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남편은 막 법 공부를 할 때 담배를 끊지 못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담배를 끊는 그 단락 법을 집중적으로 한 번 읽어주었다. 그때부터 그는 담배를 피우고 싶지 않아 했다. 지금 남편의 머리와 사유는 정상을 회복했고 법 공부를 함에 글을 익히는 것도 매우 유창했으며 밥을 짓고 집안일을 하며 작은 장사도 모두 할 수 있다. 처음에 병원으로 가서 돈을 쓰면서 병 치료를 해도 약간의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법 공부를 한 뒤부터 약을 먹지 않고 주사를 맞지 않고도 몸은 오히려 차츰 건강을 회복했는데 아마도 바로 이런 형식으로 그로 하여금 대법을 얻게 했을 것이다.

사실 전체 과정을 회상하면 남편의 병은 집안의 작은 장사를 하루라도 지체하게 하지 않았고, 또 내가 대법을 실증하는 업무를 한 건이라도 지체하게 하지 않았다. 단지 당시 압력이 아주 컸을 뿐이다. 지금은 마침내 걸어 나왔다. 그는 늘 감개무량해서 “만약 내가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지금 무슨 모양이 됐을지 단언하기가 어렵습니다. 내 병을 지금 병원에서는 전혀 치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나에게 만약 무슨 문제라도 생긴다면 우리집은 곧 망합니다. 다행히 사부님 덕분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날 언니가 나에게 화를 낸 뒤 나는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내가 그녀의 너그러움에 의지했던 이유로 어투가 좋지 않았다고 말하며 이후에 더욱 주의하겠으니 양해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언니는 메시지를 보고 매우 감동을 하였다. 그 후부터 나에 대해 더욱 존중했는데 나는 그것은 대법에 대한 존중임을 깨달았다.

3. 사상을 대법에 놓으면 일체는 모두 변할 것이다

늘 함께 협력하던 수련생이 후에는 사오(邪悟)해서 유다(수련을 포기하고 대법 사부님을 배반한 자를 비유: 역주)가 되어 적잖은 수련생을 배반했다. 그 후 배반당한 수련생들은 잇달아 납치를 당했다. 듣는 말에 의하면 그가 또 특별히 나를 언급했다고 한다. 당시 내 압력이 매우 컸다. 그러나 나는 구세력에게 목적을 달성시켜서는 안 됨을 깨달았다. 배반당한 수련생이 납치당하는 그날 날씨는 음침했고 어둑어둑한 하늘에서는 이슬비가 날렸으며 내 마음은 매우 무거웠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수련생 그곳으로 가서 컴퓨터를 찾아다가 그를 도와서 운영체계를 설치하러 떠났다. 나는 거리에서 한편으로는 걸으면서 한편으로는 발정념을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중에서 “만약 대법제자들이 모두 정념·정행할 수 있고 어떠한 정황에서도 모두 정념으로 문제를 사고한다면 매 하나의 대법제자는 모두 박해를 마주하고 두려운 마음이 나올 수 없는데, 누가 감히 와서 당신을 박해하는지 보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내 생명은 대법에 속하고 중생에게 속하며 나는 사명을 갖고 거짓말 독해를 입은 중생을 구도하러 온 것이므로 구세력과 약간의 관계도 없음을 갑자기 생각했다. 갑자기 나는 나에게 무형의 역량, 일종의 대법과 함께 이어진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 정념을 느꼈는데 그 두려움은 이미 연기처럼 사라졌다.

가족들은 모두 매우 놀라 했다. 부모, 오빠와 언니는 단호히 나에게 집을 떠나라고 했다. 나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용히 내 생각을 말했다. 처음에 아주 격동해 하며 나를 설득하려던 가족들은 맨 마지막에 “우리가 함께 상의했는데 네가 어디로 가든 안전하지 않아. 너를 보니 반대로 안전한 느낌이다.”라고 한마디 했다. 나는 구세력의 음모가 파괴됐음을 깨달았다.

바로 얼마 전에 우리집이 있는 건물이 통째로 이사를 하려 했다. 나는 ‘이사하기 시작하면 너무 번거롭다. 협의하고 집을 이사하고 셋집을 맡고 집을 사는 등 일련의 일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는가. 시간이 이렇게 긴박한데 어떻게 수련과 사람을 구함에 관계없는 일을 끼어들게 한단 말인가?’라고 생각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래도 이사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시간이 지나자 이사 사무실에서 다른 집은 모두 이사했는데 유독 우리집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통지를 붙여놓았다.

나의 예전 근무는 업무를 하는 동시에 물건값을 받는 일이었다. 어느 한 사장은 늘 물건을 사고 떼어먹기를 즐겼는데 많은 직원이 모두 손실을 보았다. 어느 한 번 그는 나에게 결산하는 영수증에 문제가 있다면서 그의 컴퓨터 안의 수치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와 말했는데 당시 따진 것은 모두 사람의 이치였다. 마음속으로는 대법제자의 돈을 그렇게 쉽게 점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지금 사람은 너무 부패해서 늘 다른 사람의 이익을 가지려 한다. 나는 물건값을 손실 본다고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 영수증을 결산하지 않고 놓아두었다. 한동안 시간이 지난 뒤 또 결산이 필요하자 나는 그의 집으로 또 이 영수증을 가져갔다. 이때 나는 이 일에 대해 또 새로운 인식이 있었다. 나는 ‘사장이 다른 사람의 장부를 떼먹으면 단지 덕으로 바꿀 뿐이지만 만약 나의 돈을 떼어먹는다면 그가 손실 보는 것이 너무 크다.’라고 생각했다. 이때 돈은 나에 대해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그에게 업을 짓지 말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의 미래에 대해 너무나 좋지 않다. 내 마음이 완벽히 다른 사람을 위해 고려하자 그는 이 일을 잊은 듯이 전체 영수증의 물건값을 한 푼도 적지 않게 나에게 주었다.

나는 을 수련생과 함께 동시에 한 직업을 찾았다. 그러나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단지 음식점 일만이 비교적 많았다. 음식점 근무는 바로 눈만 뜨면 일하고 눈을 감으면 잠을 자는데 법 공부를 할 시간이 조금도 없었다. 나는 어쨌든 법 공부를 할 시간이 있는 직업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을 수련생은 지금 다만 음식점의 일만이 찾기 쉽고 다른 일감이 없다며 어쩔 수 없이 음식점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하길 원하지 않아서 가지 않았다. 을 수련생은 갔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어떤 사람이 나에게 돌아다니는 일을 소개해 주었다. 비록 수고스럽지만 그래도 법 공부를 하고 연공하는 시간이 있었고, 또 진상을 알리기가 편했다. 그러나 을 수련생은 지금까지 여전히 음식점에서 일하는데 장시간 동안 법 공부를 할 시간이 없었던 이유로 지금 이미 대법에서 벗어났는데 정말 유감스럽다. 우리가 사상을 대법에 놓고 문제를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4. 자신을 잘 수련해 서둘러 사람을 구하다

몇 년 전부터 나는 휴대폰으로 진상 알리기를 시작했는데 이미 기본적으로 성숙됐다. 휴대폰으로 진상을 알림은 편리하고 빠르기 때문에 늘 수련생에게 추천하려 했다. 그 후 몇 명 수련생도 스마트폰을 사용했다. 나는 급히 1기 현지 메시지를 편집했으며 또 밍후이왕에 투고를 보내 현지 음성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후에 나는 휴대폰으로 진상을 알림이 정말 널리 알려지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어떤 수련생은 휴대폰을 샀지만, 집에 놓고도 사용할 줄 몰랐다. 어떤 이는 또 단지 드문드문했을 뿐이다. 여러 번 수련생에게 가르쳐서 일부 진전은 있었으나 기미가 크지 않았다. 나는 사고하기 시작했다. 나는 늘 다른 사람은 하지 않았다고 강조하기만 했지만, 자신이 얼마나 했는지는 보지 않았다. 나는 마땅히 자신의 행동으로 모두를 이끌어 나가야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2009년 대뉴욕지역법회 설법’ 중에서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대법제자 한 사람이 정말 백 명·천 명 몫을 했으며, 사악이 대법제자에게 만든 이 한 차례 마난(魔難)을 유력하게 폭로했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다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항목에 참여했는지 생각하지 않았고, 또 다른 사람이 얼마나 했는지 눈여겨보지 않았다. 나는 나 혼자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몇십만 중생으로 하여금 사람마다 대법 진상을 듣게 하려고 했다. 내가 한편으로 현지의 중요한 전화번호를 편집하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속으로 이 일념을 발했을 때, 나는 다만 등이 뜨겁고 한 줄기 에너지가 머리로부터 발까지 전신을 꿰뚫는 감만 느꼈다……나는 눈물이 만면에 흘러내림을 금할 수 없었고 사부님께서 나와 그렇게 가까이 계신 감을 느꼈다. 나는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慈悲)를 감수했고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격려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늘 밍후이왕에 투고한다. 수련 체득이든지 아니면 박해문장을 폭로하든지, 진상 전단지 등은 기본적으로 모두 발표하는데 출발점은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서다. 그 후 한 단락 시간에 몇 번 투고했으나 모두 발표되지 않았다. 아주 많은 힘을 들이고 많은 시간을 허비했으나 오히려 사용되지 않아 나는 좀 낙심했다. 나는 내가 이런 것을 함은 모두 대법을 실증한 것이지 위사위아의 요소가 없다고 생각했다. 비록 마음속으로 분석하고 있었지만 나는 꼭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음을 알았다. 나는 자세히 자신을 찾았다. 그 후 자신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스스로 괜찮다고 느끼고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아주 착실하게 수련한다, 나는 법 공부와 연공 그리고 진상을 알림을 중시한다, 안으로 찾음을 중시한다, 컴퓨터와 휴대폰 그리고 편집 등 일반적인 수련생이 알지 못하는 기술도 나는 알고 있다.’라고 느꼈다. 언제부터 이런 독선적인 지저분한 생각이 있기 시작한 것인가! ‘자신이 괜찮다는 느낌’이 얼마나 위험한가? 나는 깜짝 놀랐다. 바로 이때 수련생이 교류한 소제목 ‘자신을 낮추다’를 보았는데 나는 그 제목은 마치 나에게 보여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많은 때에 나에게 곤경이 나타날 때면 사부님께서는 곧 각종 방법으로 나를 점화해 주신다. 어느 한 번, 우리는 교류하는 중에 악인에게 감시를 당했는데, 그 후 사존께서의 가호와 수련생들의 정념 하에 놀라움은 있어도 위험은 없었다. 그러나 그 한순간에 나는 자신의 바르지 못한 심태를 발견했다. 당시 마음속으로 대법의 각도에서 정념으로 문제를 보지 않고 세인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생각했다. 나는 아주 낙심했다. 나는 새롭게 자신을 상세히 분석했는데 자신이 이렇게 여러 해를 수련해오며 뿌리에서 뜻밖에 사부님을 믿지 않고 대법을 믿지 않는 요소가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정말 감히 믿지도 못하고 또 감히 자신이 이러함을 승인하지도 못해 아주 괴로웠다. 며칠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법 공부를 했다. 사부님의 많은 설법에 관련된 대법을 모두 외웠다. 내가 자신의 뿌리의 문제를 찾고 다시 법 공부를 했을 때 나는 대법의 현묘함을 느꼈고 관념을 없앤 뒤에 대법과 함께 이어진 기쁨을 감수했으며 층층의 법리가 펼쳐짐을 느꼈고 미시적으로 표면적인 몸이 좋지 않은 요소가 청리됨과 동시에 대법에 동화됨을 감수했다. 바로 이때 밍후이왕에서 또 ‘백 분의 백으로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다’란 소책자를 발표했다. 사부님께서는 무엇이든 모두 알고 계셨다.

매일 바쁘고 각종 일로 피로해 어떤 때는 아주 지친 느낌도 든다. 나가서 걸으면서 휴대폰으로 진상을 알리다가 한나절이 넘기도 했고 컴퓨터 책상 앞에 앉기만 하면 하루가 지나거나 혹은 하룻밤이 지났다. 어떤 때는 컴퓨터 의자만 보아도 두려웠다. 가끔은 시간을 그렇게 긴장하게 배치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자신을 그렇게 긴장하게 하지도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신체적인 피로는 짧은 것임을 발견했다. 만약 사상을 대법에 놓지 않는다면, 심리적인 해이함 그것은 나를 너무나 괴롭히는 것이다. 나는 자신의 능력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며 그 근원이 대법에서 온 것임이 매우 똑똑했다. 내가 어찌 또 안일을 위해 이 능력을 사용해 대법을 실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자신이 대법을 얻어서부터 지금까지 모두 법 공부를 중시했음을 아주 다행으로 생각한다. 마음속에 대법이 있었기에 무슨 일을 하든지 모두 대법으로 가늠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 비교적 우둔하던 내가 대법을 실증하는 항목의 기술을 배움에서 그래도 둔하지 않음을 발견했다. 다만 문장을 쓰려고 하면 여전히 아주 힘들 뿐이다. 또 어떤 수련생은 내가 박해문장을 폭로함에 아주 잘 썼다고 칭찬하기도 하고 어떤 수련생은 내가 가정을 잘 평형해 대법을 실증하는 항목을 잘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별말을 다 하는데 그것은 사존께서 가지해 주신 것이고 대법이 부여해 준 것이었다. 내가 어찌 하늘의 공적을 훔쳐 자신의 공로라고 말하겠는가? 사부님께서는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에서 “당신은 자신이 이처럼 큰 능력이 있어 어떠어떠하다고 말하는데, 그건 법이 당신에게 부여한 것이다! 당신은 능력이 없어서도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을 시각마다 경계하고 깨닫게 하려고 나는 컴퓨터 비밀번호를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함이 급하다.’라고 설치했다. 이러면 매번 컴퓨터를 열 때면 자신에게 사람을 구함에 긴박감을 주도록 할 수 있었다.

그날 컴퓨터를 열고 마침 워싱턴DC 법회설법을 개최했다는 보도를 보았는데 사존께서 직접 설법을 하셨다. 사존께서 설법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컴퓨터 책상 앞에서 나는 끊임없이 흐느꼈다. 고생스럽고 지치며 억울함이……단번에 깨끗이 사라졌다. 단지 가없이 넓은 부처님의 은혜 속에 흠뻑 빠져서 사존께서 기대하시는 눈빛을 우러러보았는데, 머릿속에는 ‘자신을 잘 수련하고, 서둘러 세상 사람을 구하라. 다른 선택이 없다.’라고 메아리쳤을 뿐이다.

(밍후이왕 제9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2012년 11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10/2642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