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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慧법회| 나의 ‘단독 수련’ 체험

글/ 신장대법제자

[밍후이왕] 자비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나는 머나 먼 산간 지역의 작은 진에서 태어났다. 일찍 중학교에 다닐 때 학우에게 정공동작을 배웠는데 학우는 이것을 파룬궁(法輪功)이라 부른다고 했다. 그 때는 다만 앉아서 연마하는 데다 또 동작이 있었지만 별로 힘들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단조롭거나 지루하지도 않다고 여겼을 뿐이다. 집에 돌아와 혼자 연마했는데 곧 이어 번거로움이 왔다. 평소 결가부좌 하는 것은 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었는데 파룬궁을 연마하려고 결가부좌를 틀기만 하면 다리가 아파서 견딜 수 없었고 아무리 오래 견지해도 겨우 8, 9분을 견딜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우선 먼저 10분 동안 견디는 걸 돌파해 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략 3주 후에 15분을 돌파했는데 그 날 연공 중에 갑자기 무슨 물건이 몸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정말 편안하였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는지라 한편 두렵기도 했다. 이튿날엔 위로는 토하고 아래로는 설사를 했는데 갑자기 상태가 너무 맹렬하여 학교에도 가지 못했다. 오후가 되자 좀 나았다. 그 때가 93년 여름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아직 파룬궁(法輪功)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겨우 며칠 동안 연공을 견지한 나에게 파룬(法輪)을 넣어 주시고, 신체를 조절해 주셨으며, 나를 책임지기 시작하셨던 것이다.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났지만 그 때의 그런 것들을 생각하기만 하면 나는 언제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99년 ‘7·20’이 닥쳤을 때 나는 남방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단체 법 공부 환경이 없어짐에 따라 서서히 나는 수련을 포기하고 말았다. 졸업하고 생계를 위해 직장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2008년이 다가왔다. 그 해 나는 밍후이왕에 접속했는데 표류하던 마음은 밍후이왕에 접속하는 순간 철저한 세례를 받았다. ‘정법수련’의 단계를 걸어야 하고 또 세 가지 일을 해야 함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단독수련’을 시작했다.

가정과 전장(戰場)

부친(父親)

그날 나는 부친이 마오마(毛魔)와 사당을 찬송하는 문장을 쓰는 것을 보고 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 공산당은 사이비교예요.” 그러자 부친의 강렬한 반응에 나는 놀랐다. 부친은 반시간 넘도록 나를 향해 끝없이 욕을 퍼부었는데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져 아래층에서 마작을 놀던 사람들마저 다 들을 지경이었다. “썩 꺼져버려, 내겐 너 같은 아들이 없어.” 우리는 모두 상대방의 입에서 스스로도 불가사의하다고 여길 만한 말들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줄곧 조용히 듣고만 있으면서 심성을 지켰으나 전쟁의 불은 이때부터 점차 붙기 시작했다.

그 이후의 나날은 내가 집에서 매번 입만 열기만 하면 정과 사의 대전이었는데 늘 가슴이 답답하고 억울해서 견딜 수 없었다. 후에 모순에 부닥치면 안으로 찾아야 함을 서서히 생각하게 되었다.

최초로 안을 찾는 오묘함을 체험한 것은 한 차례의 치열한 논쟁을 겪은 후인데 몹시 난처한 상황이었다. 부친에게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나는 침대에서 가부좌하고 앉아서 안으로 찾았다. 쟁투심, 원망하는 마음을 찾아냈는데 당시 정수리에서 오랫동안 뭔가 휙휙 도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다시 부친의 목소리를 들었으나 별로 걸리지 않고 괜찮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내가 누락을 찾아냈으므로 나를 도와 이번 모순을 해결해 주셨음을 알게 되었다.

금년 새해가 되기 전에 나는 몸이 몹시 불편했다. 코가 막히고 콧물이 흘렀는데 발정념을 해도 소용없었다. 섣달그믐날 부친은 보험회사에서 갖고 온 보험회사 이름이 쓰인 주련, 초롱, 창문전지, 복자(福字)등으로 치장을 했는데 빈틈없이 다 갖추어 놓아 거실은 온통 붉은색이었다.

나는 창문 전지에 보험회사 이름이 있는 것을 보고 가위로 잘라 버리려 하다가 부친에게 저지당했다. 그래서 나는 부친이 사악에게 심하게 통제당한 것을 보고도 상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병업’ 반응은 갈수록 강렬해져서 법 공부, 연공, 발정념을 할 때 콧물이 줄줄 흘렀다. 연공할 때는 호흡마저 어려웠고 잠자기도 불편했지만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늘 벽에 붙인 것과 걸어놓은 것에 문제가 있다고 여겼다. 한 주일 후 발정념할 때 갑자기 내 오른 쪽에 나와 같은 키의 펭귄 같이 생긴 것이 거기에 있음을 발견했다. 주둥이는 넙죽하고 검고 반들거리며 뒷등에는 주먹만 한 종기가 가득 자라 있었다. 나는 천목이 열리지 않은 채 수련하지만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교란의 본질을 나에게 보여 주시어 나로 하여금 중시하게 하셨던 것이다.

이틀이 자나자 부친의 반응이 얼마나 강렬하든지 간에 그가 붙여놓은 물건들을 모두 청리해 버리겠다고 결심했다. 먼저 거실의 초롱을 벗겨버렸는데 부친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마 내가 치워버린 걸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다음 날은 창문 전지를 청리하였는데 이번에는 알아차리고 화가 동해 야단이었다. 나는 그런 부친을 상관하지 않고 법 공부만 했다. 정월 보름 오후, 주련과 복자를 모두 제거했다. 아무튼 설도 지났으니 부친이 또 어떤 반응을 하는가 볼 작정이었다. 결과적으로 이튿날 나의 병업 교란은 사라졌다. 생각해보니 속인의 물건은 사악이 숨는 곳인 것 같았다. 후에 나는 자택에서 물건을 정리할 때 적지 않은 마오마와 사당의 낡은 서적들을 들춰냈는데 죄다 태워버렸다. 하지만 몇 년 전에 고가로 사들인 사당 표기가 있는 고서, 훈장, 편액 등은 쉽게 처리하기가 어려웠다. 많은 것은 내가 진상을 모를 때 부친에게 구입해 드렸던 것이다. 이 한 고비를 오늘까지도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부친은 군 복무 중 전역했는데 군인의 신분으로 소속 부대를 따라 이곳에 와서 정착한 것이다. 부대에서 방송국 관련 업무를 담당하였고 전역한 후에는 ‘낙실정책사무실’이란 곳에서 근무하면서 이른바 사회주의 교육(현지 사당의 각급 두목에게 사회주의 교육을 해주는 것으로 세뇌교육임)을 하는 정치교원이다. 평생 가장 득의양양한 것이라면 바로 마오쩌둥 사상으로 두뇌를 무장한 것이었다. 한 평생 사람을 괴롭히지 않았고 해치지 않았으며 입당하지도 않았는데 그저 말다툼하기를 즐기고 일마다 남과는 반대로 했다.

부친에게 션윈 예술단 공연 시디를 보여주었더니 부친은 눈물을 떨구었다. 또 ‘천안문 분신자살사건’진상을 얘기해 주자“ 한 정권으로서 수단이 없고서야 될 일이냐?”고 말했다. 박해를 말했더니 “감옥에 갇힌 사람은 모두 나쁜 사람이다.”라고 했다. ‘9평공산당’을 들려 주니 “이것은 국민당이 대륙 진공을 하는 한 부분이다.”고 했다. 밍후이 방송국의 신전문화를 듣고 나서 “그것은 봉건적 미신이니 절대로 그것이 다시 살아나게 해서는 안 되며 역사를 거꾸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민주와 자유를 언급하면 “이는 자본주의 국가의 음모라.”하고, 신앙을 말하면 “그럼 넌 왜 산속의 절로 들어가지 않느냐?”고 말한다. 불도신을 말하면 그런 건 없다고 하면서 “모두 가짜이며 사람을 속이는 것이라”고 했다…. 한번은 내가 부친에게 물었다. “2009년 그 날 아침 아버지가 직접 눈으로 금빛 찬란한 부처가 창문으로 날아 들어오는 것을 보았고, 거실 벽 구석에 10여 분이나 머물러 있었던 걸 단지 아버지만 보시지 않았어요? 이건 아버지 스스로 한 말씀이 아닙니까?” 그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형(兄)

나의 형에게는 간질병이 있는데 마성이 엄청 심해서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서도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를 정도로 그렇게 미워했다. 입만 벌리면 더럽고 지저분한 말을 하고, 대법 진상 자료만 보이면 찢어버린다. 그 한 동안은 그의 오관마저 다 변형되어 누나는 형만 보면 무서워했다. 나는 이것이 그의 몸에 있는 저령난귀(低靈爛鬼)가 너무 많은 연고이며, 또한 내가 수련하기 때문에 비로소 나타난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그 형에 관해서는 듣지도, 보지도, 믿지도 않으면서 속수무책이었다. 늘 ‘이 생명은 이미 지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생지문에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동시에 나의 두뇌 속에는 극히 사악한 염두가 생겼는데 연공만 하면 나왔다. 매 번 연공할 때면 이 악념은 연공이 끝날 때까지 나의 허튼 생각을 붙잡고 있었다. 이튿날이면 형의 표현은 몹시 사악했다. 이런 상황이 근 두 달 동안 지속 되었다. 하루는 나의 마음속에 갑자기 수련을 포기하려는 공포적인 염두가 생겼다. 후에 밍후이왕에서 수련생이 쓴 문장을 보고서야 수련생들 속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는 법을 외우는 것으로 사념을 해체한 걸 알게 되었다. 나도 그대로 하면서 ‘홍음’과‘논어’를 외웠다. 여러 날 견지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어느 날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았다.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마음을 굳게 먹고 사부님께 여쭈었다. “사부님, 제자가 만일 이 악념을 버리지 못한다면 사부님께서 제자를 철저히 소훼해 주십시오. 절대로 제자가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이 후의 연공에서 무슨 상태든지 아니든지를 막론하고 음악이 울리기만 하면 나는 법을 외우기 시작했는데 음악이 끝날 때가지 외웠다. 이렇게 나는 한 달 정도 견지했다. 하루는 연공할 때 갑자기 머릿속에서 무슨 물건이 없어지면서 텅텅 빈 감각을 느꼈는데 악념이 없어진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걱정이 놓이지 않아 며칠 동안 연공하면서 그냥 법을 외웠다. 후에 보니 형이 그다지 사악하지 않음을 발견했는데 그제야 자신의 두뇌 속의 악이 이젠 철저히 해체되었음을 의식하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야 사부님께서 고통을 감당하시고 그 좋지 못한 물질을 없애주셔서 비로소 나로 하여금 그 하나의 큰 관을 넘게 하셨음을 알게 되었다.

형의 마성이 중했으므로 나는 매번 모두 가장 중한 말로 그를 자극하여 늘 그가 광증상태에 처하게 했다. 하지만 줄곧 병은 발작하지는 않았다. 나는 호된 방법으로 그의 주의식을 깨워주지 않는다면 이 생명은 구원되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 어느 날 식사를 마치고 나서 그가 말했다. “류샤오치(劉少奇) 부부는 당년에 그렇게 나쁜 일을 많이 했는데 너희들 무리들은 아직도 그에게 명예회복을 해 주려 하는구나.” 나는 대뜸 문제의 매듭을 의식하고 얼른 말했다. “류샤오치가 한 그런 일에 나는 흥취가 없어. 그러나 그의 일에 대해 말한다면 형한테 알려 줄 수 있어. 그건 문제를 처리할 때 사당의 방법과 사유일 뿐이야.” 그는 마치 대번에 안 것 같았다. 이후 날마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뉴스를 보더니 서서히 그의 마음속의 마오당(毛黨)은 확실히 좋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지난 해 지역사회에서 ‘승낙카드’사인을 받으려고 우리 집에 왔는데 내가 문을 열었다. 이 일은 갑자기 닥친 일이라 나를 좀 긴장하게 만들어서 다만 “이 일은 우리가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서명하지 않는다”라고 문을 닫아 버렸다. 결과적으로 그 직원이 다시 문을 두드렸다. 이 때 한창 빨래를 하고 있던 형이 달려 나오더니 문을 열고 말했다. “뭘 하려 온 거야? 신분증을 봅시다. 소개장이 있나요? 공산당마저 믿지 않는데 무슨 사이비교를 믿는단 말이요? 당신들은 지역사회에서 취업 문제를 해결해 주나요. 안 주나요? 예? 예?….”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고 그 직원은 도망치다 시피 가버렸다. 이런 형의 모습을 본 나는 한바탕 격동된 마음으로 생각했다. ‘사부님, 그를 보십시오. 이 역시 그가 호법한 것입니다.’ 사당에 대한 그의 새로운 인식은 완전히 그 자신이 자신의 방식으로 한 것이다.

금년 보시라이, 왕리쥔 사건이 발생한 후 형이 어디서 사이트를 찾아보았는지 그가 말하는 내용을 보면 ‘대기원시보’ 내용과 흡사했다. 그날 형이 내게 말했다. “내용이 너무 많았어. 뒷면에 너희 파룬궁을 말한 것이 있던데 너희들이 도대체 어찌된 일인지를 보아야 하겠다.”나는 듣고 나자 좀 긴장해 졌다. ‘만일 이 사이트에서 파룬궁을 언급할 때 허튼 소리를 한다면 어떻게 하지?’ 그것이 국내에서 공개적으로 폭로하였는데도 봉쇄당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람을 의심스럽게 한다. 나는 말했다. “형은 그런 것들이 거짓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또 믿어. 내가 바로 형 앞에 있는데, 그 동안 형도 분명히 보았을 거야. 3년에 믿지 않으면 4년, 그래도 안 되면 5년, 6년, 형이 살아 있을 때 반드시 형을 전변시킬 거야. 일체 대가를 아끼지 않고 말이야.” 후에 그가 무슨 대법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이 며칠 동안 법 공부할 때 늘 졸려서 눈을 뜰 수 없었는데 보이는 글자가 모두 원래의 글자가 아니었다. 이 졸림을 타파하기 위해 나는 법을 아침에 두 강, 오후에 한 강을 읽기로 결정했다. ‘전법륜(轉法輪)’ 한 번을 읽었을 때 형이 들었지만 나쁜 반응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전에는 법을 읽는 것을 듣고는 오랫동안 욕을 퍼부었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의 곁에서 ‘전법륜(轉法輪)’을 네 번 읽었는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밖에 최근 그의 오관이 정상으로 회복되었고 지금은 말을 하는 어투와 발음도 정상이다. 다른 공간의 흑수 난귀는 이미 소멸되어 얼마 남지 않았음이 분명한 것이다.

이 몇 년 간 부친과 형의 표현이 얼마나 사악하고 얼마나 극단적이든지 간에 내 침대 머리의 대법 서적을 그들은 처음부터 건드리지 않았다. 그들의 표현은 분명히 나를 향해 온 것이고 나의 제고를 위해 나에게 길을 깔아준 것이었다. 이 몇 년 동안 나의 원망하는 마음, 보복심, 증오심, 질투심 등등은 모두 그들 두 사람을 통해 드러낸 것이다. 나는 최초의 억울한 마음을 참음으로부터 ‘이는 내가 수련함으로 하여 비로소 나타난 것이며, 나에게 어딘가 꼭 누락이 있는 것에 집착하는 참음으로부터 지금의 ‘그들은 나의 수련 제고를 위해 이렇게 큰 지불을 하였는데 나는 어떻게 보답해야 하겠는가?’하는 일종의 무사위타(無私爲他)하는 참음에 이르렀고 나의 심성에는 지대한 개변이 발생했다. 수련하는 중에 심성이 끊임없이 제고됨에 따라 대법의 법리도 끊임없이 층층이 나를 위해 펼쳐졌다. 나는 사존께서 거대한 감당과 세심한 안배와 그리고 내 신변의 일체를 부단히 평형시켜 주시었기에 비로소 나는 안정하게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불법수련을 당신은 용맹정진 해야 한다.”(轉法輪)그럼 제자는 용맹정진 하는 마음으로 조사정법하고 세 가지 일을 잘 하여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이 전의 수련생

나의 이 전의 수련생이 바로 당초 나에게 ‘신통가지법’을 가르쳐준 그 중학교 동창이다. 나는 그를 찾아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첫 번째로 그를 만나러 갈 때였는데 약속전화를 하고 나자 나는 교란을 받았다. 메스껍고 눈에 불꽃이 튀며 온 몸에 땀이 나는 등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졌다. 나는 열심히 정법 구결에 의하여 이틀 후 정상을 회복했을 때 마침 그 동창으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교류 후 알게 되었지만 그는 이미 대법을 떠났던 것이다. 그 스스로 대법을 떠났는데 원인은 몇 년 전에 한 동안 그의 수련상태는 아주 좋아 한 차례 띵(定)중 자신의 일념이 하나의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느꼈으나 감히 그 일념을 움직이지 못했다. 후에 나쁜 것을 잘못 먹어 배앓이를 했는데 견딜 수 없어 약을 먹었고 결과적으로 불도신을 보게 되었으나, 그 때부터 모두 환각이라 여겼으며 철저히 망가졌던 것이다. 그날 나는 그에게 3퇴를 권했으나 그는 탈퇴하지 않았다. 그때는 2008년 11월이었다.

후에 그는 결혼하고 애를 낳았고 그 사이 우리는 드물게 만났는데 매 번 다 달랐다. 그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한 번 만났는데 말을 주고받는 가운데서 그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가로 막혀 있음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말이 우리 둘 사이를 연결하기도 전에 빠르게 튕겨져 나와 도무지 그의 앞에 닿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의 반응도 아주 강렬하고 하는 말까지 불손하였다. 애를 낳은 후 또 만났는데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그의 귀에 뭔가 막혀 나의 말이 그의 귀가에 가기도 전에 튕겨 나옴을 발견하였다. 그 후의 상봉은 더욱 어려웠는데 그는 사업과 애에게 이끌렸다. 이 2년 동안은 모두 전화로 연락을 했다.

금년 사부님의 ‘20년 설법’이 발표된 후 나는 또 그를 만나고 싶었지만 어떻게 만나겠는가? 법 공부 할 때 사부님 법상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사부님, 제자는 모모모를 만나고 싶은데 어떻게 만날 수 없을까요? 그는 시간이 없는데 사부님께서 제자를 도와주십시오.” 여러 날 동안 모두 이렇게 생각했다. 그날은 주말이었는데 나는 법을 실증하는 항목을 하러 가려던 참이었다. 문을 나설 즈음에 형이 말했다. “너 그 낡아빠진 핸드폰을 좀 갖고가라. 자꾸만 벨이 울려서 시끄러워.” 나는 조용히 핸드폰을 집어서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평소에 별로 전화를 갖고 다니지 않는다. 내가 항목을 끝냈을 때 그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지금 시간이 있으니 만나자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속으로 격동을 금할 수 없었다. 이는 사부님의 안배였던 것이다.

만난 후 대화 과정에서 자연히 의견 충돌이 없을 수는 없었다. 그는 오늘 그의 아내가 애를 데리고 친정에 갔고 오후에 출근하려고 막 차에 올랐는데 직장에서 오늘은 휴무를 한다고 통지가 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건 사부님의 안배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오늘은 꼭 심성을 지키고 정념을 많이 유지하여 그에게 이끌리지 않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는 끊임없이 말했고 나는 그를 맞춰 주면서 어떻게 말할 것인지를 궁리했다. 사부님께 가지를 청구한 후 갑자기 방법이 생각났다. 나는 그의 장황한 말허리를 자르면서 “난 너에게 할 말이 있어. 뿐만 아니라 몹시 너에게 들려주고 싶어. 하지만 넌 나에게 내 말을 들을 것인지 안 들을 것인지를 알려줘야 해.”하고 말했다. 그는 속인의 교활함을 가지고 응대하려고 했다. 나는 또 한 마디로 다잡아 물었다. “나는 명명백백하게 너에게 알려준다. 나 너에게 아주 꼭 들려주고 싶어. 이 결정이 아주 어려운거냐? 너는 도대체 감히 결정하지 못하는 거냐, 아니면 결정할 능력이 없는 거냐. 아니면 전혀 결정할 수 없는 거냐?” 내 말이 끝나자 그의 가슴이 세차게 들먹이는 것이 보일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또 끊임없이 말하기 시작했는데 다만 소리가 많이 작아졌을 뿐이다. 그의 배후의 바르지 못한 요소가 많지 않다는 게 분명했다.

거듭 사부님께 가지를 청한 후 나는 그의 말을 끊고 직접 말했다. “너는 그렇게 높은 층차에서 왔고 그렇게 큰 근기가 있으며, 그렇게 큰 법을 수련하였으며 그렇게 큰 책임을 지니고 있으면서 어찌하여 이런 곳에 미혹되고 있냐? 이 법을 위해 너는 신의 광환을 버리고 이곳에 온 것이야.” 나는 아주 느릿하게 말했지만 눈물이 내내 눈가에서 감돌아 하마터면 눈물을 떨어트릴 뻔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눈물을 흘렸다. 다만 아무 일도 없는 듯이 태연하게 눈물을 훔쳤을 뿐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의 입을 빌어 나의 이런 말이 그의 생명 깊은 곳에 닿게 하였음을 알고 있는 동시에 나에게 자비한 상태와 역량을 감수하게 했다. 그날은 오랫동안 환담을 나누었고 헤어질 때 그는 돌아가서 책을 보고 밍후이왕을 보겠노라 대답했다.

보름이 지나갔는데 나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큰 파도 모래를 이는데 나는 네가 모래는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 시각을 기대해 본다. 너는 너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기운을 내어 힘차게 일어서서 따라 잡아라. 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라.”

보름이 또 지나갔다. 그가 나를 찾아왔다. 이번에 우리 사이의 교류에는 이미 아무런 교란도 없었다. 먼저 번 말이 작용을 일으켰으며 그가 오랫동안 생각했음이 분명했다. 그가 말했다. “당초 내가 도달한 그 상태는 정말 괜찮았고, 일념이면 하나의 세계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천국 세계는 진실한 존재라고 여긴다.” 이번 교류는 시간이 길지 않았지만 효과는 무척 좋았다. 그가 하루빨리 대법 수련에로 돌아와 자신의 서약을 실현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이 몇 년을 단독 수련하면서 세 가지 일을 모두 하고 있다. 하지만 대면 진상만은 잘 하지 못하고 있으며 ‘3퇴’시킨 인원수도 얼마 되지 않는다. 색욕심, 쟁투심, 증오심을 시종 깨끗이 버리지 못했고 시간의 변화에 집착하며, 늘 과거를 회억하기 즐기고, 집에 사당 표기가 있는 물건도 깨끗이 청리하지 못했다. 이런 것들은 내가 앞으로 닦아 버려야 할 집착과 돌파해야 할 관이다,

합당하지 않은 곳이 있다면 수련생들이 지적해 주기 바란다. 감사하다.

(밍후이왕 제9회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문장발표 : 2012년 11월 10일
문장분류 : 9회법회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10/2633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