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明慧법회| 대법을 수련함은 오직 정진하고 정진하며 또 정진해야만 한다

글/ 산둥대법제자 자정

[밍후이왕] 나는 최근 몇 해 동안 수련에 아주 정진하지 못했다. 특히 연구생 공부를 한 이래 학습과 생활환경이 매우 여유가 생기자 바람따라 돛을 단 격으로 안일한 생활을 향수했다. 매일 대량의 시간을 들여서 늦잠을 자고, 거리구경을 하고, 인터넷 쇼핑을 하고, 게임을 하고, 잡담을 했다. 어머니가 나에게 이 정확하지 못한 상태를 지적했을 때 나는 사리에 맞지 않는 말로 억지를 썼다. 숙소의 동창들이 모두 이렇게 한다며 듣기 좋게 속인사회의 상태에 부합된다고 변명했다.

이 부합된 것은 괜찮았지만 놀며 즐기는 마음, 색욕심, 이익심, 안일심 등 한 무더기의 집착심과 부패물질이 장기간 자양되고 확대되어 근본적으로 수련의 상태를 벗어났다.

문제는 찾아냈지만 이번의 큰 곤두박질로 이미 단단히 떨어졌다. 어떻게 할 것인가? / 본문작자

* * * * * * *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님 안녕하십니까!
사존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중국대륙 및 전 세계 수련생들 안녕하십니까!

나는 1998년에 어머니를 따라 파룬궁을 수련했는데 그 때는 겨우 11살 이었다. 그러나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와 이끌림 하에 나는 이미 청년 대법제자로 성장했다. 10여 년의 수련 노정은 험난하고도 매우 진귀했다. 그 기간의 많은 일을 이미 몇 차례 법회 투고 중에 비교적 상세하게 논술했기에 여기에서 다시 중복하지 않겠다. 아래에서 나는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의 일부 수련 노정을 써내어 사존님께 회보해 올리고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게으른 집착에서 큰 빈틈이 생겼으나 사부님과 대법을 믿어 반드시 넘어야 할 관을 돌파하다

올해 2월 말 어느 날 저녁 나는 연공을 하고 있었다. 제2장 공법 파룬좡파(法輪樁法)까지 연마했을 때 갑자기 심장과 가슴이 극렬하게 아팠고 잠시 청력을 잃는 증상이 뒤따랐다. 이어서 나는 똑바로 서지 못했다. 극심한 고통에 정신적인 공포까지 더해져 정말 나의 목숨을 즉시 잃을 것 같았다. 나는 곧 이것이 명을 빼앗아 가려는 큰 난임을 의식하고 발정념을 해서 사악의 박해를 부정했다. 동시에 확고하게 사존께 가지해 달라고 빌었다. 이런 심각한 병업 가상은 약 한 시간 동안 지속된 후 차츰 사라졌다. 그 사이에 나는 끊임없이 ‘나는 리훙쯔 사부님의 제자이며 일체는 사부님만이 주관하신다.’고 발정념을 했다. 동시에 사부님께서 가지해 주시도록 빌었다. 그날 밤 어머니(수련생)도 나를 도와서 함께 장시간 발정념을 해서 사악한 흑수의 나의 몸에 대한 박해를 철저히 부정하고 해체했다. 이튿날 아침 나의 몸은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상황이었으므로 나는 먼저 자신이 수련생임을 생각할 수 있었다. 즉시 발정념을 해서 사악을 부정하고 해체하는 동시에 확고하게 신사신법하여 갑작스런 탄압으로 나를 소멸하려고 망상한 구세력의 음모는 이룰 수 없게 되었다. 그것들은 방식을 바꾸어 장기간의 병업 가상으로 나를 교란해서 나의 수련의 의지를 무너뜨리려고 했다. 그 뒤의 아주 긴 한 단락 시간에 나는 매일 비교적 큰 병업 상태에 처해 심장은 늘 이상하게 괴로웠고 가슴과 등이 아팠다. 그리고 호흡이 곤란해지는 증상이 뒤따라 숨이 올라오지 않고 머리가 어지럽고 귀울림 증상 등이 나타났다. 심지어 며칠 동안이나 숨이 막혀 나는 밤에 정상적으로 잠을 잘 수 없었고 잠이 들어도 늘 놀라서 깨어나곤 했다.

“문제가 있으면 안을 향해 찾는 이것은 대법제자와 속인의 근본적인 차이이다.”[1] 육체와 정신적으로 극한의 고통을 감당하는 상황에서 나는 고통이 지나간 후에 다시 이전의 고통을 생각해 보고 자신의 문제가 어디에서 생겼는지를 정시하고 찾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이 몇 해 동안 자신이 수련에 아주 정진하지 못했음을 알고 있었다. 특히 연구생 공부를 한 이래 학습과 생활환경에 매우 여유가 생기자 더욱 바람 따라 돛을 단 격으로 안일한 생활을 향수했다. 매일 많은 시간을 들여서 늦잠을 자고, 거리 구경을 하고, 인터넷 쇼핑을 하고, 게임을 하고, 잡담 중에 있었다. 어머니가 나에게 이 정확하지 못한 상태를 지적했을 때 나는 사리에 맞지 않는 말로 억지를 썼다. 숙소의 동창들이 모두 이렇게 한다고 말하며 듣기 좋게 속인 사회의 상태에 부합된다고 변명했다.

부합된 것은 괜찮았지만 놀며 즐기는 마음, 색욕심, 이익심, 안일심 등 한 무더기의 집착심과 부패물질이 장시기 동안 자양되고 확대되었다. 심지어 놀며 즐기는 시간이 법공부 시간보다 훨씬 많았다. 법공부를 함에 진정으로 이해하여 마음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어떤 때는 하루에 단지 한 두 페이지만 보거나 심지어 책을 보지도 않았다. 발정념은 할 때도 있었고 하지 않을 때도 있었으며 늘 지나쳐 버렸다. 진상을 알림에도 진상 화폐에만 제한되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자신이 대법과 떨어지게 했는데, 근본적으로 이미 수련의 상태를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 전부는 자신이 정진하지 못한 것 때문에 인위적으로 사악한 마와 부패물이 나의 공간마당에서 함부로 범람하도록 자양했고 결국 호시탐탐 노리는 구세력에게 박해의 이유를 주어 나에게 극단적인 손을 쓰게끔 했던 것이다. 이때 어머니는 나와 깊이 교류를 하며 나를 도와 많은 집착, 빈틈과 부족함을 찾아주어 내가 정신을 차리게 했다.

문제는 찾아냈으나 이번의 큰 곤두박질로 이미 단단히 떨어졌다. 어떻게 할 것인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걱정하지 말라. 일부 곤두박질을 친 사람을 포함하여 당신이 빨리 일어서면 되는 것이다.”[2] 나는 빈틈과 집착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고 자신을 귀정하려는 결심을 했다. 그러나 형성된 집착과 부패물질을 없애 버리려고 할 때 나는 그것들이 이미 극히 완고한 정도로 발전했음을 발견했다. 예컨대 인터넷 ‘타오이푸’를 접속하는 집착을 수련해 버리려고 그 인터넷 홈페이지를 들어가지 않았을 때 안타까운 감각은 정말 괴로웠다. 만약 의지가 조금이라도 단호하지 않으면 곧 그것에게 이끌려 몇 번 눈길을 팔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한번 보기만 하면 곧 30분이나 한 시간이 지나가 버리는데, 바로 사악의 속임수에 빠진 것이었다.

그 후 나는 차츰 이 집착하는 부패물질을 이용해 사악이 나도 모르게 범하게 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나도 모르는 것’은 바로 자신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자신의 주의식이 주인 노릇을 못하고 집착심과 부패물질이 몸을 주재하는 표현이 아닌가? 이렇게 줄곧 내려간다면 얼마나 심각한가? 그래서 나는 마음을 먹고 사상 중에서 어떻게 들끓고 마음속이 어떻게 안타깝든지 그 옷을 파는 홈페이지를 보지 않았다. 그것이 어찌 교란하겠는가? 이렇게 한 단락 시간을 견지하자 관련된 집착도 점점 적어지고 점점 약해져 현재는 이미 이 집착을 없애버렸다.

동시에 나는 이 병업의 마난 속에서 자신이 종래로 의식하지 못한 많은 사람의 마음 – 예컨대 두려운 마음, 원망하는 마음, 구하고자 하는 마음 등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중에 두려운 마음이 특히 심했다. 수련한 뒤에도 때로 몸에 병업 증상이 있기는 했으나 내가 심성을 올바르게 잡기만 하면 아주 빨리 지나갔다. 종래로 이렇게 극심하고도 직접적으로 생사에 닿은 마난의 고험은 있어 본 적이 없었다. 또 이 때문에 이번의 마난은 죽기를 두려워하는 이 마음을 철저하게 폭로했던 것이다. 몸이 극한까지 괴로웠을 때 나는 의식 중에서 ‘사(死)’자가 생겨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처음에 병업 가상 상태가 사납게 나타났을 때 나는 죽을까봐 두려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심지어 어머니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세상을 뜬 다른 사람을 말할 때에 “그녀는 그렇게 젊은데 떠나갔네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옆에서 듣고 놀라고 겁이 나서 벌벌 떨면서 어쩔 줄 몰랐다.

냉정해진 뒤 이것은 죽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장난친 것임을 인식했고 이것은 바로 그것을 없애는 좋은 기회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매번 두려운 마음이 나올 때마다 나는 곧 자신의 이 두려운 마음을 정시했다. 동시에 자신에게 ‘나는 대법제자다. 나는 두려운 마음이 없다. 나는 무슨 두려울 것이 없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두려운 것이 두려워한다.’고 알려주었다. 동시에 확고하게 그것을 부정하고 해체했다. 어떤 때에 그 두려운 것이 나타나 정말 통제할 수 없을 때면 나는 반복해서 사부님의 홍음 중에서 ‘두려울 것 뭐냐’를 외웠다. “당신이 두려워하면 그놈은 붙잡을 것이요 생각이 바르면 사악은 무너지리라 수련하는 사람은 법을 간직하고 있다네 정념을 발하면 썩은 귀신 터져버릴지니 신이 세상에서 법을 실증하고 있음이로다” 이렇게 한 달 넘게 견지하자 두려운 부패물질은 차츰 해체되었고, 두려운 마음도 적어졌으며,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게 되었다.

이번 병업의 마난을 경험하고 나는 정말 자신이 심성과 오성 방면의 수련에서 적지 않는 진보를 얻었다. 이번의 뼈아픈 교훈을 통해 나는 자신의 생명의 본질에 대해 처음으로 똑똑하게 나는 대법제자이며 나의 생명은 대법과 함께 있으며, 내가 이곳에서 존재하는 유일한 목적은 수련인바 바로 조사정법하여 중생을 구도하는 것임을 인식했다. 속인중의 일체는 단지 내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조건과 요소로서 나에게는 어떠한 실질적인 의의가 없으며 마지막에는 전부 다 버려야 하는 것이다.

육체가 극한까지 감당했을 때 나는 내심 깊은 곳에서 ‘이것이 내가 감당해야 할 것이든지, 아니면 외래에서 강요한 박해이든지 나는 사부님의 말씀만 듣는다. 만약 내가 당신들에게 빚진 것이고 사부님께서 나에게 배치하셔서 마땅히 갚으라고 하신 것이면 나는 전부 사부님의 배치에 따른다. 그리고 확고하게 이와 같은 이른바 고험과 배치를 부정한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나의 생사는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 내가 존재함은 단지 조사정법하여 중생을 구도하기 위함이며 다른 구함이 없다.’는 일념을 발해냈다. 여기까지 깨닫고 나는 또 자신이 지난 몇 해 동안 진상을 알리는 이 방면에서 상당히 부족했음을 인식했다. 기왕 내가 존재하는 의의가 여기에 있는 이상 나는 반드시 대법을 위해, 중생을 위해, 또 자신을 위해 진정하게 책임을 져야 했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을 보시고 나를 가지하셔서 중생을 구도하는 지혜를 열어 주셨다. 어느 날 연공을 할 때 갑자기 인터넷 돌파 소프트웨어를 얻는 경로와 방법을 한 두 마디로 축소한 다음 쪽지에 복사해서 A4종이로 프린트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런 다음 작은 쪽지를 잘라내어 배포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집안에서 사용하지 않는 진상 도장은 작은 상표를 붙이는 종이를 사서 하나씩 도장을 찍어 붙일 수 있었다. 그래서 이튿날 나는 학교에 가서 인터넷 돌파 소프트웨어 종이쪽지를 프린트했다(민감한 용어가 없음). 그런 다음 수련생의 도움으로 지퍼백을 사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와 함께 가위로 잘라 하나씩 나누어 백에 넣었다. 그런 다음 슈퍼, 재래시장, 주차장 등에 가서 배포했다. 그리고 진상표어도 만들어 손이 가는대로 버스, 정류소 표지판, 울타리, 공원, 손잡이, 선전대 등에 붙였는데 효과가 괜찮았다.

동시에 나는 밍후이왕에서 많은 노 수련생들이 핸드폰으로 진상을 알리기 시작한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도 수련생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는 핸드폰을 사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기술이 있는 수련생의 도움을 받아 메시지를 보내고 진상 전화를 거는 방법을 배웠다. 지금은 대문을 나서기만 하면 진상화폐, 쪽지, 진상표어와 핸드폰을 지니고 가는 곳마다 이지적으로 지혜롭게 하여 서둘러 정법 형세를 따라잡고 많은 노력을 들여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한번은 어머니와 함께 한 마을에서 큰길 옆의 전신주와 깨끗한 벽을 따라 진상 표어를 붙였다. 집으로 돌아온 뒤 우리는 함께 정각 발정념을 했다. 이때 나의 눈앞에 한 장면이 나타났다. 바로 우리가 방금 붙였던 그 마을의 큰길 양편에 정연하게 몇 미터 간격으로 검은색 옷을 입고 아주 높은 모자를 쓴 사람들이 한 사람씩 서 있었다. 사람마다 손에 술잔을 하나씩 추켜들고 있었다. 나는 바로 길 중간에 서있었는데 그들은 마치 나를 위해 축하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주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줄곧 닫힌 채 수련했기에 이렇게 또렷한 장면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발정념을 한 뒤 나는 내가 본 장면을 어머니에게 들려드렸다. 어머니는 듣고 나서 “이것이 바로 그곳의 구도 받은 중생이 축하와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니? 사부님께서 우리를 격려하시는 것이야”라고 말씀하셨다.

가정 마난으로 고통을 받은 후 정과 집착을 버려 안개를 벗어나다

어머니의 수련을 지지하던 아버지는 1999년에 사당이 대법에 대해 사악한 박해를 감행한 후부터 수련을 반대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몇 해 동안 늘 우리 모녀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해 강제적 수단으로 우리의 믿음을 포기시키려고 했다. 게다가 어머니가 두 차례 사당에게 불법 감금을 당해 집안은 금전, 명예 등의 방면에서 모두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더욱 대법을 적대시했고, 어머니가 연공을 했기에 이 집을 해쳤다고 여겼다. 나는 몇 년 동안 어머니와 함께 각종 각도와 직간접적인 방식으로 아버지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리고 우리 집이 당한 박해는 공산사당의 무리한 박해에서 온 것임을 똑똑히 알렸다. 동시에 생활의 각 방면에서 잘 하려고 노력해서 대법의 아름다움을 펼쳤다. 하지만 아버지는 완고하게 사당의 주입식의 선전만을 믿었고 현실 이익이 손상을 입은 것에만 눈을 돌려 대법을 적대시했으며 연이어 어머니를 적대시했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는 수련생이 그에게 선물한 ‘9평공산당’을 태워버렸고, 대법책을 찢어버렸으며, 법신상을 부수어 망가뜨렸다. 그리고 어머니가 불법 감금당한 기간에 노동교양소에 가서는 어머니가 근본적으로 고쳐지지 않았기에 며칠 더 가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 내가 대법수련을 한다고 표명한 뒤로 그는 대법과 우리 모녀를 적대시하는 정서가 더욱 심각해졌다.

약 한 달 전, 아버지는 갑자기 나와 어머니의 침실에 뛰어들어 책상위의 사부님 법신상을 집어 들고 깨뜨렸다. 그런 다음 사부님의 사진을 사진틀에서 꺼내어 갈기갈기 찢어서 태웠다. 그때 어머니는 주방에서 밥을 짓고 있었기에 미처 뒤쫓아 오지 못했다. 나는 큰 소리로 아버지를 제지했고 사진을 빼앗으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 나와 어머니는 거의 이지가 붕괴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심성을 지켜내지 못하고 즉시 이혼을 제기했다. 나도 극단적으로 놀라고 분노한 상황에서 자신의 신분을 잊고 그들이 이혼함을 동의했고, 어머니를 따르겠다고 표시했다.

아버지는 이 상황을 보더니 퇴로가 없자 즉시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때 어머니는 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목이 메도록 통곡했다. 나는 분노가 가시지 않아 즉시 그들을 도와 이혼합의서를 작성했다. 결국 아버지는 노기등등해서 집을 떠났다.

아버지가 떠난 뒤 나와 어머니는 차츰 냉정해졌다. 우리는 무릎을 맞대고 교류했다. 방금 한 이 행동에 수련생다운 점이 어디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 여기에 바르지 못한 상태와 좋지 못한 사람의 행위가 나타났을 때 그것은 사람 마음을 겨냥하여 온 것이다. 우리는 낡은 세력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지만, 이 방면에서 잘 하지 못 하면 빈틈을 타게 된다는 것을 겨냥할 필요가 있어 나타나는 것이다.” “수련인이 안으로 찾는 이것은 하나의 법보(法寶)이다.”[3]

나와 어머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각자 안으로 찾았다. 나는 자신이 아버지에 대해 아직도 아주 무거운 육친의 정이 있고, 두려운 마음이 있으며, 쟁투심 등이 있음을 찾아냈다. 많은 강렬한 집착심이 짙고도 지저분한 인정 속에 가득 차 있는데 어찌 구세력이 빈틈을 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머니도 아버지에 대해서 역시 정이 너무 무거우며 통제하려는 마음, 쟁투심 등의 집착심이 매우 심각함을 찾아냈다. 어머니는 예전에 도끼를 잡고 아버지를 찍은 꿈을 꾸었는데, 현실 중에서 부부지정도 너무 무거워 자비심은 상당히 부족했다. 몇 년 동안 우리 두 대법제자의 장은 한 속인의 좋지 않은 사상과 관념을 바로잡을 수 없었고, 정법이 이미 종결 단계에 이르렀으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가정 마난 속에서 벗어 날 수 없음은 너무 옳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한 것이 정말 형편없었기에 오늘의 이 국면을 조성했던 것이다. 나와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정이 너무 무거웠기에 구세력은 우리를 고험한다는 명목으로 아버지를 이용하고 통제하여 우리에게 마난을 조성했다. 이로 인해 아버지는 이 몇 해 동안 한 차례씩 대법에 대해 죄를 저질렀는데 죄업이 매우 엄중해 도태되는 비참한 말로에 직면했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아버지의 표면적인 각종 부정적인 표현에만 눈을 돌려 그를 원망하고 실망하였으며 어찌할 방도가 없어했으며 구제불능이라고 여겼다. 우리는 중생이 대법에 대해 죄를 저지름을 조성했고 우리 자신이 그 구제불능을 조성한 근원이었음을 전혀 몰랐다. 나와 어머니가 이것까지 분명히 깨달았을 때 정말 자신의 수련이 너무 형편없었음을 알았고 부끄러워 진땀이 났으며 중생에게 미안했다. 아버지가 우리 두 대법수련생과 금생에 인연이 있을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원인이 있는 것이며 그의 배후에는 무량한 중생이 구도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했다. 정법이 끝나고 진상이 드러나는 그 날이 되면 우리는 무슨 얼굴로 그와 이 중생들을 직면하겠는가?

여기까지 인식하고 나와 어머니는 장시간 동안 발정념을 했다. 자신의 공간마당의 일체 정, 두려움, 원한 등 집착심과 부패물을 청리하고 우리의 가정 수련환경을 철저히 청리해 어떠한 외래 요소가 박해와 교란을 강요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동시에 아버지의 머리 및 배후의 좋지 못한 요소와 그를 조종하는 일체 흑수 사악을 청리하여 구세력이 우리의 빈틈을 구실로 삼아 중생을 박해하고 중생을 훼멸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정념으로 청리함에 따라 나와 어머니도 자신의 의식과 대법에 대한 인식이 점점 분명해졌다. 다시는 정에 이끌려서 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심하지 않았고 자비로운 역량이 늘어남을 느꼈다. 우리는 수련생의 도움으로 대법수련생은 이혼하지 말아야 한다는 도리를 인식하고 이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으며 정력을 집중해 정념을 발하여 사악을 부정하고 청리했다.

그 후 아버지와의 소통 중에 우리는 어머니가 이혼을 제기하고 내가 그들의 이혼을 동의한 일에 대해 먼저 아버지에게 사과를 드렸다. 그러나 다른 한 방면에서 어머니는 아버지가 법신상을 소각한 행위에 대해 단호히 승인하지 않음을 표시했다. 나와 어머니는 또 대법을 끝까지 굳게 수련하려는 결심과 태도를 거듭 밝혔다. 사악은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아버지도 집으로 돌아온 뒤에 다시 지난번의 일을 언급하지 않았으며 이번의 풍파는 여기에서 마무리 되었다.

이번의 가정 마난의 교훈은 손해가 매우 컸다. 나와 어머니는 자신에게 누락이 있었기 때문에 사악에게 빈틈을 주어 사부님과 대법에 엄중한 손실을 가져다주었다. 동시에 또 중생으로 하여금 하늘에 사무치는 죄를 짓게 했는바, 책임과 과실은 중대했다. 우리는 사부님의 법신상 앞에 꿇어앉아 성심으로 뼈저리게 잘못을 뉘우치면서 금후의 수련 중에서 자신을 잘 수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진상에 똑똑하지 못한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노력하며, 되도록 빨리 가정 수련환경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여 잘못을 메울 수 있기를 희망했다.

신성한 수련의 길에서 14년 동안 고초를 겪었다. 나는 자신의 수련이 매우 형편없고, 정진하며 수련을 잘하는 수련생들과 거리가 아주 멀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다. 사존님께서 부여해 주신 ‘정법시기 대법제자’라는 위대한 칭호에 전혀 자격이 없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님께서 못난 제자를 버리지 않으신데 대해 감사를 드린다.

“사존님, 당신이 한길에서 제자를 가호해 주시기 위해 감당하시고 헌신하심을 제자는 영원히 그 만분의 일도 알 수 없습니다. 정진하고 또 정진하며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철저히 대법에 동화되어 자신을 깨끗이 씻겠습니다. 가장 순정한 마음으로 가장 큰 노력을 하여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일체를 원용하여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苦度)에 죄송할 것이 없고, 중생의 간절한 기대에 미안할 것이 없으며, 자신의 내세의 진실한 염원에 떳떳하게끔 하는 이것이 바로 제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층차가 제한되어 있기에 부족한 점을 수련생이 자비하게 지적해 주기 바란다.

사존께 감사를 드립니다.
수련생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주:

〔1〕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정진요지-大法 산동 보도소에게’
〔2〕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3〕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2009년 워싱턴DC 국제법회설법’

(밍후이왕 제9기 중국대륙 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2012년 11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2/11/9/264522.html